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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권시장,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말씀의 칼
요즘 증권시장이 난리도 아닙니다. 매일 파티가 열리고 있습니다. 돈을 투자하지 않은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들고 있답니다. 저 역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1분단위로 증권시황판을 들여다 봅니다. 주가가 오를 때면, 마냥 행복하면서도 조금 더 올랐으면 하는 욕심에 시달리고, 떨어지면 미리 팔지 못한 자책과 후회에 시달립니다. 계속 돈을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들키고 또 들킵니다. 그런데 증권시황판 한 가운데를 가르고 들어오는 검이 있습니다. 번쩍 검의 섬광이 비출 때, 아 이것이 현실이 아님을 아주 잠깐 알게 됩니다.어떤 보험의 광고처럼 아이들이 재롱을 부릴 때면,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방안 가득할 때면, 나에게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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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한 심령과 찬양
시편 51편에 등장하는 '상한 심령'을 흔히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다윗의 반성 또는 후회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말하고 있는 상한 심령이란 인간의 축 처진 심리상태나 슬픈 마음, 후회와 반성 따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상한 심령은 인간쪽에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상한 심령이란 언약이 언약과 관계된 인물들에게 준 상처를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언약, 즉 영이신 말씀이 육으로 표상될 때, 육이 겪게 되는 육됨 자체에서 오는 한계상황을 의미합니다. 언약이 기피하고 거부해야 마땅한 죄인이나, 언약의 강권으로 인해 거룩을 드러내야 하는 도구로써 사용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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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명
이 땅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하나는 첫째 아담 안에 있는 인간이다. 또 다른 하나는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이다.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은 첫째 아담 안에 있는 인간을 품고 있다.이들 두 부류는 열심히 자신의 일을 감당한다.첫째 아담 안에 있는 자는 자기 자신의 일을.둘째 아담 안에 있는 자는 자신의 죄를 쏟아내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전한다.오늘 밤 아이랑 야곱이야기를 나누었다.야곱의 하는 짓거리, 그 아들들이 하는 짓거리 , 이 속에서 이들의 사명은 분명히 드러난다.자신들은 아니요 나는 아니요, 나는 죄인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이 언약을 이루어 내신다.죄인 때문에 씨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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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과 정신 이식
부활과 정신 이식 학자들이 두뇌 연구에 매달린다. 정신마저 이식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연구한다. 두뇌는 전기화학적 작용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한다. 전기신호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뇌 조직 각 층에 있는 전기신호를 만약에 옆에 있는 그대로 기계에다 옮겨놓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나’라는 의식이 나의 두뇌를 떠나서 옆의 기계에다 그대로 복제가 되고 나머지 모든 정보도 옆의 기계에다 이동시켜 버리고 그 정보마저 컴퓨터에서 무한 복제가 되면, 몸은 비록 죄로 인하여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게 되어버립니다.(고후 4:16) 그런데 그 기계마저 계속 수리해버리면 나의 마음과 그 마음을 담는 몸도 모두 모두 다 불멸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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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차이점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차이점 동양철학을 대하면 참 편하다. 농담으로부터 시작해서 농담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어차피 세상은 농담이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서 서양철학은 참 진지하고 심각하다. 신(神)의 뜻과 어긋나면 비진리라고 심판받아 절단 나는 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당하는 인간만 손해다. 따라서 진리를 캐고 또 캐나가는 식이다. 동양철학은 그게 아니다. 풍류를 즐기면 그만이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다. 누가 자기를 심판할 자가 없다. 교회는 서양철학이라면 절은 동양철학에 기초로 하고 있다. 중이나 절에 다니는 불자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자신들이 분류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예수 안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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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지옥 가게 해다오
제발 지옥 가게 해다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귀신들이 예수님에게 간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제발 돼지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세요”(31절) 멸망을 자처하는 장면이다. 이 돼지들은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가 몰살한다. 그 뒤에 이 귀신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왜 귀신들은 예수님에게 회개하지 않고 죽기를 자청했을까? 그것은 자신의 본성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셀 수도 없이 많은 복음을 전했건만 왜 사람들은 자기 소유물 속으로 깊숙이 기어 들어가 숨어버리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진심으로 지옥에 가고 싶은 것이다. 천국이 싫은 것이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지옥행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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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은 흙을 먹는다
선악과 사건 후, 하나님께서 뱀에게 허락하신 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흙'입니다. 창세기 3장 14절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우연의 일치일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바로 그 흙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흙은 흙으로 되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9절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흙에서 나온 존재가 흙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을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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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 그 무서운 지옥
지옥, 그 무서운 지옥 2009-08-09 07:17:21 이름 : 이근호 성경을 읽다보면 지옥이 나온다. 일시에 하나님을 만만하게 보게 했던 후덕한 인상의 하나님상이 싹 가신다. 소금 치듯이 심한 고통을 받는다고 했다. 뜨거운 기름 냄비로 소금 뿌려가면서 살아있는 해물을 요리해 본 사람이 다 알 것이다.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그런데 지옥에 간 사람은 이 형벌의 기간이 멈추는 시기가 없다고 결정 통고받은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희망 자체를 삭제시켰다. 전혀 희망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지옥에 던져 넣으시고 가두어시는 것이다. 참으로 인격이 있고 감정이 있는 정상적 인간이라면 외부인(하나님)이 가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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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란?
인간이란? 2009-07-20 10:15:02 이름 : 이근호 인간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짐 덩어리 같은 자기 몸을 좋든 싫든 감당해야만 하고 그렇다고 그 몸을 포기하고 자살하기도 뭐하다. 짐 덩어리 같은 몸을 감당하려니 이 귀찮은 인형은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해야 한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려면 돈이 요구된다. 돈 벌려니 짜증나서 미치겠다. 누가 나 대신 나의 몸을 입히고 씻기고 먹이고 웃겨주고 즐겁게 해주고 편한 잠에 빠지게 할 사람은 없나를 늘 찾게 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기적이란 이처럼 자기 몸과 관련 있다. 누가 알아서 나의 몸을 편하게 해주는 조건을 채워주기를 원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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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의 초등학교 입학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잠17:17)우리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그래서 함께 90여분 차를 타고 학교로 갔다.첫날이고 해서 일찍 하교 한다고 해서 기다렸다.기다리는 중 우연히 지난번에 본 어떤 아저씨를 만났다.함께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아저씨는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그는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었다.그러던 중 돈 이야기가 나왔다.보아하니 형편이 그리 넉넉지 못한 모양이다. 아주 유명한 선교단체 출신인데 지금 여기서 놀고 있다고 한다.문젠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다는 것이다.그러면서 우연히 잠언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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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이란 우상에 빠져 버린 교회
자본이란 우상에 빠져 버린 교회천국이란 단어도 인간들 기억 속에 저장해 놓았다가 심심할 때 한번 씩 끄집어내어 그 즐거움을 맛보는 것도 이제는 그 끝을 고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럼 무엇으로 이 상황을 증명해 줄 수 있나? 그건 다름 아닌 자본력으로 응집된 교회다. 지금 하나님은 언약의 피로써 이 세대가 마지막 때임을 알리기 위해 교회를 사용하고 계시는 것 같다(물론 예언은 아니다). 이제 교회 안으로 유입된 자본력이 응집되면서 가짜복음도 처음부터 자신이 입고자 했던 그 색깔을 껴입고 강단에 등장한다. 다른 복음은 교회 자본력에 일조한 자본가를 옹호해주고 그들의 노고를 칭찬하고 그들의 십일조와 감사 헌금 그리고 선교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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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를 결정하시는 분
마가복음 11장 13-14절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모든 과실은 열매를 맺는 때가 있습니다. 추수철, 수확기, 가을 이러한 때가 되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때가 아니라면 열매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때라는 것은 특정 날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벌어시는 상태를 의미하며, 사람들은 그저 경험적으로 이것을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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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믿음
우상이 여호와의 종교를 불독처럼 물어 뜯으며 놓고 있지 않는 것은 '믿음'이라는 내용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예수가 믿어지지 않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다. 선지자들이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데 자기들도 믿지 않는 예수를 그들이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를 믿으라고 해놓고는 설교의 결론은 우상, 높이달린 태양상, 아세라 목상, 바알, 아로새긴 우상 섬기기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예수를 믿어야 되는데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열쇠를 열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열쇠를 열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은 거의 실성(失性)한 것처럼 보인다. 성경은 장황하게 떠벌이는데 우상을 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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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을 외면하는 세계
말씀을 외면하는 세계 무섭다, 무섭다 해도 말씀을 거부하고 말씀 세계 밖에 있기를 원하는 세계보다 더 무서운 세계는 없다. 거기에는 저주만이 들 끊고 있다. 저주란, 자기로부터 시작해도 자기로 말미암아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세계에 주어진다.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는 곳이다.(요 3:36) 자기 외에 공경할 자가 따로 없는 자에게 저주와 진노가 임한다. 자기 외에 순종할 대상이 없는 자에게 저주와 진노가 임한다. 자기 외에 따로 엎드릴 것이 분이 없는 자에게 저주와 진노가 임한다. 이런 자는 결국 자기 외에 모두를 미워하게 된다. 신이라 할지라도! 세상은 말씀으로만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말씀으로 이루어진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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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과 아침'이란 시간으로 본 세상창조
하나님은 처음부터 묵시의 틀을 안고 세상을 창조하셨다.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고 처음과 나중이시다.즉, 하나님은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는 영원한 분이다.창세기1장에 등장하는 처음의 '빛'과 그것으로부터 '빛과 어두움'을 나뉘고 '저녁과 아침'으로 마무리 된다.하나님은 이것을 칭하여 '첫째날'이라고 명하셨다.(창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창 1: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하나님은 시간적으로 육일동안 창조사역을 하시고 일곱째날에 안식하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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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안에 시간이 존재?
십자가 안에 시간이 존재? 2009-11-24 16:50:38 이름 : 김성환 한국이란 나라 안에서 산다면 사시사철이란 사계절을 돈 안주고 즐기고 경험할 수 있다(물론 세금을 내고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떤 계절을 좋아하든 상관없이 취향에 따라 버리고 취할 수 있다. 각자 좋아하는 계절을 따라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러나 엄연히 세계지도 상에 6대륙이란 구분 안에 뿔뿔이 흩어진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 중 한 나라에 대한 정보를 캐보면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는 나라 즉 건기와 우기만 있는 필리핀 아니면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닌 뚜렷하지 않는 오세아니아도 있다. 신자든 불신자든 겨울철이 되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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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과 법의 관계성
오늘 본문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요한복음 12장 1절부터 8절까지(A)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마태복음 5장 17절부터 20절(B)입니다.(A)에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마르다와 가룟유다가 대칭을 이루고 있고, (B)에서는 천국에 있는 자들(큰 자, 작은 자 불문)과 서리관(바리새인) 묶음이 율법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A)에 등장하는 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부족국가의 구성원들은 가난을 현대 자본주의의 구성원과는 다르게 인식했습니다. 개인 책임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책임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부유함 역시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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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가족사
남9녀 중 마지막 막내를 보냅니다. 태어나보니 내가 걸린 그물은 오빠 한명에 언니들 여섯명이 있었는데, 그후에 동생 두명이 더 태어나더라구요....살면서 내내 나까지만 태어났어도 좋았을것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들 나까지만 태어났으면 했다고 합니다. 동생이라는 짐이 얼마나 싫었는지..이렇게 생각하면 맨 위에 태어난 오빠나 언니들은 줄줄이 사탕처럼 달려있는 동생들을 죽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복음으로 모든 것을 해석당하기 전까지는 왜 이렇게 지긋지긋한 곳에 태어나게 하셨는지 살 소망이 없었습니다. 벽에 붙어 있던 그 때에 유행했던 푸시킨의 시가 나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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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일이 어느새 나의 일로
주의 일이 어느새 나의 일로 디모데전서 4:3-4에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온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만약에 사람에게 ‘감사함’이 상실되었다면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자아상을 따로 챙겨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아상으로 인하여 내가 원치 않는 자아상으로 달라지는 것을 참지를 못하고 내부에서 극렬하게 저항하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몸은 ‘감사함이 나올 수 있는 몸’이다. 그러나 내가 고수하고자하는 자아상은 ‘감사함’이 나올 수 없는 몸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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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지지 마라.
왜 인간은 그토록 책임지길 원하는가?책임을 기꺼이 부담함으로써 인간이 집요하게 노리고 있는 것,그것은 바로 "기회"라는 체면상태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치와 자신의 행위를 별개로 생각하고자 한다. 그것이 자신의 자존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앏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책임은 나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의 계산이 끝난 후 변명하기 위한 논리적 구조물에 불과하다.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대시키고 있다는 판단이 서면 그 행위를 곧바로 존재와 연결시킨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이유를 타인들에게 역설한다. 나의 존재가 당신들의 존재에 유용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