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사건 후, 하나님께서 뱀에게 허락하신 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흙'입니다.
창세기 3장 14절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우연의 일치일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바로 그 흙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흙은 흙으로 되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9절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흙에서 나온 존재가 흙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뱀의 음식으로 결국 뱀과 한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음식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바로 죽음이지요.
여기서 꼭 짚고 먹어가야 할 부분은 뱀과 흙된 인간이 어떤 방법으로 한 몸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바로 강자인 뱀이 약자인 인간을 '먹는' 방식입니다. 힘의 방식입니다. 먹고 먹히는 순환궤도에 따라 먹히는 쪽은 먹는 자 쪽으로 흡수, 통합됩니다. 강한 자가 남고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몸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사건은 이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한 몸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내어 줌'의 방식입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어 누군가에게 먹힘에도 불구하고 먹는 쪽이 먹히는 자에게 편입되게 됩니다. 힘의 논리가 아닙니다. 내어줌의 원리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이러한 내어줌-사랑의 원리를 여전히 힘의 논리로 해석하고 이를 밀어부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었음 --->그러므로 구원을 소유했음!'
피와 살을 내어 주신 분의 사랑은 온데 간데 없고, 강자로서 예수의 살과 피를 덥썩 먹어버린 '나'만 남았습니다. 흙을 덥썩 먹어버려 자신의 배 속에 넣어버린 뱀과 어찌나 그렇게도 똑같은지요? 예수님께서 인간들 중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다음의 말씀처럼 취급하신 것은 결코 지나친 평가가 아닌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마태복음 23장 33절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생존을 위해 무엇을 먹고 먹은 것을 내 몸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여전히 뱀과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뱀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이상, 기도하고 금식하고 전도하고 설교해도 뱀의 위장 속에서 뱀의 살과 피를 구성하는 채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위는 '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몸의 원리입니다.
몸의 원리란 악한 몸과 한 몸이 되었다면 그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악하고, 선한 몸과 한 몸이 되었다면 그 어떤 행위를 하더라고 선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뱀과 한 몸된 죄인은 결코 행함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선한 분과 한 몸을 이루는 방식외에는 결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먹히는 방식으로 흙을 취급하셨을까요?
그것은 본래 창조의 취지를 완전히 되살리기 위함입니다. 흙에 불과했던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은 먹고 먹히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은혜와 사랑의 원리인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흙이 아담이 된 것은 흙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능, 지식, 행위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창조주의 은혜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끝까지 관철시키시기 위해서 약속하신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뱀과 한 몸된 흙이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창조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즉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은혜의 방식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원래 창조의 질서는 먹고 먹히는 힘의 원리가 아니라 창조주가 아무 조건없이 내어주는 은혜의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이러한 창조의 은혜를 다시 확인합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죄인은 뱀과 한 몸을 이루어서 여자의 자손의 발을 상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피와 살에는 뱀의 DNA가 지독스럽게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심보를 그대로 유지한 채 구원까지 점령하고 싶습니다. 구원까지 내 몸 속에 저장해 두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살과 피 또한 음식처럼 취급합니다.
하지만 주도권은 여전히 우리에게 없습니다. 처음 뱀에게 흙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살과 피를 허락하신 분 또한 바로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내가 잡아 먹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물어뜯고 있는 죄인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먹이시는 것입니다.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취급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게 하십니다. 친히 그 몸의 머리가 되셔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인간들의 모든 죄를 받아내시고 계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이 뱀과 한 통속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죄와 그 죄성을 송두리째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두 응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가 아니라면 죄도 의도 사랑도 용서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빼놓고 말하는 죄와 의는 여전히 뱀의 생각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기에 내가 의인되었다고 자랑할 수 없는 것은 그 한 몸을 이루는 방식이 '내가 먹었음'이라는 힘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는 존재임에 불구하고 우리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의 원리에 의해서 우리는 여전히 용서받아야 할 죄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주님의 발뒤꿈치를 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를 다스리시는 방식은 힘이 아닙니다. 주님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하는 속성을 그대로 받아주시는 방식입니다.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성도를 십자가지신 예수와 한 몸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신 분의 사랑을 싹둑 잘라먹고 나 의인 되었음만을 고집하는 뱀굴 속에서도 십자가 사랑은 그렇게 흘러넘칩니다. 비밀스럽게......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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