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란 우상에 빠져 버린 교회

자본이란 우상에 빠져 버린 교회

자본이란 우상에 빠져 버린 교회



천국이란 단어도 인간들 기억 속에 저장해 놓았다가 심심할 때 한번 씩 끄집어내어 그 즐거움을 맛보는 것도 이제는 그 끝을 고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럼 무엇으로 이 상황을 증명해 줄 수 있나? 그건 다름 아닌 자본력으로 응집된 교회다. 지금 하나님은 언약의 피로써 이 세대가 마지막 때임을 알리기 위해 교회를 사용하고 계시는 것 같다(물론 예언은 아니다).



이제 교회 안으로 유입된 자본력이 응집되면서 가짜복음도 처음부터 자신이 입고자 했던 그 색깔을 껴입고 강단에 등장한다. 다른 복음은 교회 자본력에 일조한 자본가를 옹호해주고 그들의 노고를 칭찬하고 그들의 십일조와 감사 헌금 그리고 선교비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고 그리고 할 것이라고 부추긴다. 해운대란 영화처럼 돈의 원리가 쓰나미의 물결을 타고 점점 교회를 잠식한다.



(요 2:14, 개역)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요 2:15, 개역)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주님의 심판이 이제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예수님은 피의 노끈으로 심판의 채찍을 드셔서 세상이 아닌 교회를 향하고 계신다. 세상은 이미 피의 심판아래 놓여 있기에 상관치 않으시고 마귀에게 맡겨두고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본력을 끌어 모은 타락한 바벨론을 향하여 피의 복음은 오늘도 돌진하고 있다. 자본력을 믿고 있었던 교회에 주인인양 앉아서 행세했던 음녀의 정체와 비밀을 드러내기 위해 돌진하고 있다. 여기에 그 누구 맞설 수 있나!



(계 17:15, 개역)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피의 복음이 이제 택자를 찾아 나선다. 인간을 제외시키고 피 자체의 능력만으로 자본력의 응집으로 생겨난 교회를 이제 심판할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본력의 권세를 맛 본 인간은 그 뒷맛을 잊지 못하여 자꾸만 뒤만 쳐다본다. 그럼에도 피는 그의 환도뼈를 쳐서 거의 반 죽여서라도 기어코 끄집어 낸다.



(창 19:15, 개역)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창 19:16, 개역)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두 천사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자본은 힘이다. 교회는 이 자본력을 가짐으로 정치도 얻고 세상도 얻고 명성도 얻는다. 또한 교회의 자본력은 세계를 하나로 묶어내는 힘이 있다. 천주교의 교황은 예수란 이름을 빙자하여 그동안 끌어 모은 자본력으로 각 나라의 국왕과 정상들을 마음대로 요리한다. 그 절대자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그 국가도 지탱되기 때문이다. 그 방식이 사는 길이기에...



사단은 세상에 부귀영화를 주듯 교회에도 자본을 넉넉히 공급한다. 이를 통해 사단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자기의 소임을 빈틈없이 하기 위해 교회란 밭에 돈이란 가라지를 뿌리기 시작한다. 원래 교회에 온 것이 자기의 몸을 얻기 위함이었기에 자본은 사단의 빈틈없는 전략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 갈 뿐이다.



(마 13:25, 개역)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마 13:39, 개역)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돈으로 장사하는 교회! 이것이 피의 복음을 무시한 당연한 결과임을 그 열매로 알게 될 것이다. 그 동안 열심히 피를 전했지만 그 피는 가짜였음을. 어떤 피가 진짜인지 사단은 안다. 피 안에 자신의 욕망을 담아 전하는지 아니면 피의 주님만을 증거 하는지 사단은 이미 알고 있다.



사울과 그를 왕으로 옹립했던 백성들이 생각난다. 물론 하나님이 인간의 고질병으로 박힌 죄의 실상을 드러내기 위해 배후에서 악의 세력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친히 준비하신 다윗이란 왕을 전면에 부각시켜 사울 왕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심판 받는 자리로 밀어 버린다.



진정한 다윗 언약의 본질을 안고 오신 예수님은 진노와 긍휼의 심판자로 육신(자본)에 빠져버린 지도자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심판하셨다. 십자가 복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찍어 버리기 위해서 주님은 피의 코스를 통과하셔야만 했다. 그 누구도 걷고 싶지 않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심판의 기준을 확실하게 다시 한 번 인치기 위해 자신의 피로써 십자가 상에서 버림 받은 ‘주’으로서 증명하셔야만 했다(믿거나 말거나).



(눅 3:9, 개역)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불은 이미 교회 중심부에 붙었다. 전 세계 모든 교회 밑바닥부터 훨훨 타올라 모두 사른 후에 그 중 주님의 긍휼로 발생된 남은 자만 피와 그 이름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불의 공력은 시작 되었다. 내 것 네 것 우리 것 따질 때가 이미 지났다. 모든 것이 복음의 피 앞에 하찮은 것이다. 피의 심판하는 소리를 듣는 자만이 긍휼의 그릇으로 옮겨 질 은혜를 입을 것이다(믿거나 말거나).



(벧후 3:7, 개역)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10, 개역)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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