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안에 시간이 존재?
십자가 안에 시간이 존재?
십자가 안에 시간이 존재?
2009-11-24 16:50:38 이름 : 김성환
한국이란 나라 안에서 산다면 사시사철이란 사계절을 돈 안주고 즐기고 경험할 수 있다(물론 세금을 내고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떤 계절을 좋아하든 상관없이 취향에 따라 버리고 취할 수 있다. 각자 좋아하는 계절을 따라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러나 엄연히 세계지도 상에 6대륙이란 구분 안에 뿔뿔이 흩어진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 중 한 나라에 대한 정보를 캐보면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는 나라 즉 건기와 우기만 있는 필리핀 아니면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닌 뚜렷하지 않는 오세아니아도 있다.
신자든 불신자든 겨울철이 되면 마음도 몸도 움츠려 든다. 그냥 생체리듬에 따라 나타나는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리고 따뜻한 방에 앉아 각 자 소일거리를 한다. 그런데 그때 그 순간 타국에서는 시원한 바람과 낭만적인 날씨에 바닷가로 나가 일광욕을 즐기던지 아님 개인용 보트를 물에 띄워 항해를 시작하던지 아님 파키스탄 골짜기에 테러리스트들의 테러 준비에 열심이던지 다들 시공간안에 맞추어 살아 간다.
그런데 세상이 관심 갖지 않는 십자가가 발생시키는 시간개념이 문제다. 누구나 알지만 신자든 불신자든 모든 인간은 자연의 원리에 따라 늙어간다. 물론 죄의 세력이 인간을 죽음으로 밀고 있지만 아무튼 주름살과 허물어지는 피부를 안고 무덤을 향해 달려간다. 여기에 예외 되는 피조물은 없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죽지 않는 자들이 주님의 때에 맞추어 등장한다. 이 등장된 인물로 인해 조용하던 세상은 그만 골치 아프기 시작한다. 이 문제꺼리가 세상을 그만 혼돈에 빠뜨린다. 전쟁이다. 무기 갖고 전쟁하는 것이 아닌 이 골치꺼리가 세상을 뒤집기 시작한다. 머리로 부정하고 싶고 몸으로 부인하고 싶지만 여전히 이 문제꺼리가 인간을 괴롭힌다.
(요 8:52, 개역)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본문을 보면 예수와 유대인들 사이에 죽음을 두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모습이다. 단절이다. 인간은 늙으면 죽어야 함을 인지하고 있는데 예수는 자신의 말을 지키면(십자가 안에 거하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누구의 말이 옳은가? 어느 편이 참인가? 중간지대에 없어 보여 답답할 노릇이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화장터에서는 애곡하고 죽어 가는데 도로에서는 교통사고로 죽어 가고 있는데 늙은 부모가 죽음만 바라보며 병중에 있는데 이게 왠 말인가? 주님이, 장난치시나! 내가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면 예수를 죽이고 싶은데, ‘당신,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요! 뭔데 지금 이렇고 저렇고 ....하는거요! 당장...!’
여전히 인간은 시간이란 역사 안에서 한 발치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들판의 새싹이 올라오는 봄, 바다의 갈매기가 부르는 여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 그 동안 수확한 곡식을 믿고 한 판 놀고 싶은 겨울 등을 떠올리며 시간에 휩싸여서 살고 싶은데 난데없이 말썽꾸러기가 찾아오다니!
‘십자가 안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이거 뭐야? 이거 무슨 뜻이냐고? 여전히 인간은 시간의 산물인 의인으로 산다.
(출 16: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하늘로서 내리는 만나를 먹고 사는 자가 죄인인데 날마다 시간만 먹고 사는 의인만 있다. 이것밖에 못되는 존재인가! 개인가? 그런데 개도 죽고! 인간과 개가 무엇이 다른가? 서로 똑같이 시간만 먹고 죽는데 무엇이 다른가? 인간은 이성적 고등동물이고 개는 본능으로 사는 하등동물의 차이인가? 똑같아 보이는데.
(마 15: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자는 시간 안에 사는 개가 아닌 시간 밖에 있는 ‘여자’였다. 주님도 시간 밖에서 그녀를 만나 주셨다. ‘그 여자’가 속한 세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모든 인간은 시간에 갇혀 살아갈 뿐. 진정 죄인이라고 간주하는 자만이 개의 세계에서 벗어난 십자가 안의 새로운 피조물일 것이다. 물론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가 없지만. 이건 영생의 주님이 덮쳐 와야 가능한 일!
(요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요 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 6: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 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십자가 안에는 피만 운동한다. 늘 시간 때문에 쫓기고 불안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자존심 챙기고 나만 바라 볼 뿐이고...시간아 제발 물러가거라! 그래도 꼼짝하지 않네! 언제까지 그렇게 거기 서 있을까? 주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가장하고 다가오는 악마가 자기의 소임을 다할 때 너도 함께 끝나겠지.
사망의 몸 안에 십자가의 피가 들어오면 시간 속에 갇힌 죄인을 날마다 죽이고 죽음의 세력과 상관없는 영생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고 시간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자는 영원한 불못에서 죽자고 고집하지만 죽음이 오히려 그를 영원히 피하리라.
십자가 안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주님의 피만 운동할 뿐...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계 9:6, 개역)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