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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에 대해 바르게 알자

목사에 대해 바르게 알자 1) “주의 자녀“가 “주의 종“을 섬겨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여기에서 “종“이란 은유법입니다. 한국과 같은 민주 사회에서는 누구도 남의 종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타인 의 “종“이 되는 것은 불법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그리스도인 중 일부가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할 때에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그의 명령대로 행하려는 사람이라는 은유입니다. 한국 교회는 놀랍게도 이러한 은유를 제도화하고 목사직의 고유명사로 탈바꿈시키고 있음을 봅니다. 목사가 곧 주의 종이라는 인식을 일반화하고 신학의 일부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화의 오류는 고사하고

[1]바울과 바울서신

바울과 바울서신“대머리와 휜 다리에 눈썹은 서로 맞닿고 코는 매부리코에 단신의 다부진 체구를 가진 호감에 찬 사나이, 그는 인간의 모습에 천사의 얼굴을 가진 자이다” 이 글은 2세기 문헌인 ‘바울과 테클라 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외모에 관한 서술인데, 다혈질적이고 고집스러우면서도 생의 낙관적 의지로 충일해 있는, 서신들에 나타나는 바울의 인간적 면모와 일치한다. 바울의 생애를 결정적으로 규정한 것은 단연 다메섹에서의 회심사건이었다. 바울은 소아시아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으로서 독실한 유대교인이었다. 그는 자기 종교에 대한 회의로 인해 반성적으로 사유한 끝에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 아니다. 그는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으로

선지서 개론

선지서 개론 1. 선지자들의 출현-유다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 제시-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요단을 건넜던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때에 이르러 그 지역의 최강대국으로 부상했으며,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이때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셨던 일들이 성취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솔로몬은 성전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제련소를 세우고 무역을 활발하게 진행시켰으며, 남쪽과 북쪽에 있는 나라들과 거래하였고 아내와 처첩들이 거할 궁전과 창고, 그리고 군대 시설을 확충하였다.그러나 이러한 시설들을 확충하기 위하여 백성들은 심한 고역에 시달려야 했다. 솔로몬은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기 위하여 인구조사와 행정

[2]바울과 바울서신

< 바울 및 바울계 서신들의 명칭과 구분 > ​바울은 임박한 종말론적 전망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여 로마세계 곳곳에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이 신생 교회 공동체들은 곧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공동체 내부의 집단 사이의 갈등, 윤리적 해이, 광신주의의 폐단, 이른바 정통과 이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혼란 등등이었다. 때로는 외부로부터 오는 박해로 말미암아 교회가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바울은 교회공동체에게 닥치는 이러한 문제들을 그때마다 해결해 주어야 했다. 문제가 있는 교회를 그가 직접 방문할 여건이 안 되는 경우에는 편지로서 당면한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다. 이렇게 바울의 편지는 특수한 상

[4]바울과 바울서신

< 갈라디아서 >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라 불리던 지역의 교회에 보낸 회람(回覽)용 편지인데, 바울의 사도권, 율법과 복음의 문제, 성령 안에서의 삶 등이 주요 내용이다.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제3차 선교 여행 당시 에베소에서 2년여 동안 머물고 있던 주후 54년에서 57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본서의 주제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와 ‘은혜에 의한 구원’이라 할 것이며, 이 둘을 하나로 묶어 “그리스도인의 자유”라 할 수 있겠다. ​ ​*갈라디아 지방에 대해서는 흑해 쪽으로 터키 동북방향에 위치한 북갈라디아라는 설과 지중해 쪽으로 터키 중남부에 위치한 남갈라디아라는 설의 두 개의 상반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바울

[3]바울과 바울서신

(고린도전서 1:1-2, 표준새번역) 당시의 일반적인 서신의 형식에 따라 바울은 고린도에 보내는 그의 편지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여기에는 바울 신학의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담겨 있다. 여기서는 첫째, 바울의 사도직, 둘째, 고린도 교회의 정체 이 두 가지에 집중하기로 한다. 예수를 목격하지 못했던* 바울의 사도직-사도로서의 자격-의 문제는 바울 생전에 늘 그를 괴롭히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 고린도전서의 중반부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관하여 격하게 변호하기도 하였고(9:1-3), 고린도후서에서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관한 변론과 반론을 번갈아 해야만 했었다(고후12-13장). 아마도

교회부흥을 위한 7대 부흥 패러다임

교회부흥을 위한 7대 부흥 패러다임아직도 교회성장은 가능한가?지난 한국교회에서 1980년대까지 일어난 폭발적인 교회의 성장은 세계교회에 전무후무한 교회사적 사건으로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그 중심에는 총동원전도주일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교회성장 지상주의는 한국교회를 성장시키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의 사회적인 이미지와 신뢰의 추락이 계속되면서 교회는 더 이상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정체에 빠지게 되었다. 그 결과에 대한 자성으로 교회를 새롭게 변화시키고자하는 교회갱신운동이 일어났고 이 둘은 서로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은 교회 외적으로의 교회성장과 내적으로의 교회갱신운동이 밀접

[2]몰트만 (J. Moltmann)의 기독론

C. 십자가의 변증법과 묵시 사상적 고난 몰트만에 따르면 예수의 정체성은 초대교회 이래로 그에게 적용되어진 많은 기독론적 명칭들 때문에 은폐되거나, 혼란되어 왔다. 우리는 예수의 개별적 인격성과 구체적인 역사를 상실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역사적 예수와 그의 십자가가 단지 우리가 이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것들은 예수 자신과 그의 십자가에로의 길에 대하여 우리에게 별로 말해주지 못한다.우리는 이것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 자신과 그의 유일한 인격과 역사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변화시키고 수정하도록 해야 한다. 몰트만은 마틴 켈러가 십자가의 중요성을 매우 강력

[1]몰트만 (J. Moltmann)의 기독론

몰트만 (J. Moltmann)의 기독론 윤 철 호(장로회 신학대학) I. 서 론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을 때에 몰트만의『희망의 신학』(런던 1965)이 미래지향적인 기독교 소망의 지평을 열어줌으로써 해방신학의 영성을 고무시키고 고취시켜주었다면, 그의 십자가의 신학은 해방신학의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적 사회 분석을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십자가 사건안에 근거시킴으로써 해방신학의 신학적 기초를 더욱 굳건히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몰트만은 자신의 『희망의 신학』(1965)에서는 십자가의 신학이 비중 있게 깊이 다루어지지 않았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의 신학은 그의 전 신학의 여정을 “안내하

[1]삼위일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삼위일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중요성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는 단지 교회 내에서 성도들을 가르칠 때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때에도 자주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신자들에게는 아주 믿기지 않는 일이며, 사실 교회 내의 많은 성도들도 이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삼위일체 교리는 유대인들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무슬림들과도 관계가 있다. 특히 무함맏은 꾸란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거부했는데, 그는 꾸란에서 삼위일체를 잘못 이해하고 완전히 왜곡시켜 무슬림들에게 가르쳤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무수한 무슬림들이 예수

[3]몰트만 (J. Moltmann)의 기독론

VI. 그리스도의 파루시아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항목으로 종말론에서 다루어졌다. 그러나 몰트만은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를 기독론의 결론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완성으로 구성하고 있다. 파루시아는 예수의 길의 완성이다. 파루시아는 “도상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노정이 목표에 이른 것을 의미한다. 즉 그분의 구원의 사역이 완성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종말론적 인격 속에서 완성되고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우주적으로 계시된다.그런데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이 파루시아로 완성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속에 세상의 완전한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지 않은가? 그러나

[2]삼위일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서의 성령에 대한 이해 성령에 관한 설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이 영적인 존재이며 또한 사람에게도 영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과 인간의 영에 대한 역할은 고전 2:11-12만큼 잘 설명된 부분은 없다. 고전 2:11-12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1]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그리고 본론부에서는 각 서신서들을 바울이 기록한 연대순으로 하여 정리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론에서 서술되어질 바울의 전도여행은 본 바울서신의 순서를 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1.1. 바울의 회심(A.D.35) 바울서신의 저자인 바울은 당시에 매우 번성하고 교육의 중심지인 다소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상속 받았으며(행22:25-28), 다소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다(행21:39). 또한 자신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3:6)라고 말할 정도로 열렬한 율법주의자였다. 이 열심으로 그는 교회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다(고전15:9; 갈1:

칼빈의 삼위일체론

[칼빈의 삼위일체론] - 유해무(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교수) -삼위일체론은 신학 교과서에만 있는 지식인가? 비록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사실상 ‘단일신론’을 따르고 있다. 비록 매주일마다 성부, 성자, 성령께 송영을 돌려드리면서 예배를 마치지만, 설령 삼위일체론이 거짓으로 판명되어진다 하여도 기독교 경건 서적의 대부분 바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삼위일체론이 창조론, 기독론, 은혜론 교리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경건과는 거의 분리되어 있다. 가령 삼위일체론이 없어도 기독론에 결정적인 변화를 끼치지도 않을 것이다. 실제로 현대 기독론 연구는 대부분 주석적이지만

[2]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각 서신의 개론 2.1. 갈라디아서 2.1.1. 배경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로부터 이방인들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행13:1-3;14:25-27). 그 소식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안디옥 교회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도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유대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구원을 얻는 데는 단순히 예수를 믿는 믿음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한다고 곧 유대적 의식들, 특히 할례도 역시 불가결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무리였다.그러므로 이들은 이방인들의 회개 소식에 항의를 하였다(행15:1). 이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주의자들은 갈라디아를 누비

[4]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고린도 전서 2.4.1. 배경 2.4.1.1. 고린도 市고린도 시는 그리이스의 펠로폰네수스 반도에 있는 호머시대 부터 유명한 도시였다. 이곳은 두 바다를 연결짓는 항구를 소유하고 있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상업의 중심지로서 그리이스 최대의 도시였지만 그러나 B.C.120년에 로마의 뭄미우스(Mummius)에 의해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그후 씨이저(Julius Cesar)에 의해 재건되었다. 도시가 재건이 되자 상인들이 그리이스 전역에서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유대인들 역시 상업상의 편리함 때문에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이 후 고린도는 그 부와 예술, 문학, 사치 등으로 아카이아(Achaia) 지방의 수도가 되어 다시금 옛

[3]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데살로니가 전서 2.2.1. 배 경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동방으로 연결하는 로마의 대로인 비아 에그나티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중요하였다. 행정관들로 구성된 자치 기구가 있었으며, 또한 회당이 있었던 사실로 보아(행17:2) 도시 안에 유대인 식민 구역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바울이 실라 및 디모데와 함께 그곳을 방문한 것은 제2차 전도 여행 때였다. 바울과 실라가 투옥되었던 빌립보를 떠난 직후였다. 이곳에서의 사역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의 대다수는 우상숭배자들이었던 것 같다(살전1:9).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초신자들이었기 때문에 복음에 대한 지식과

[6]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에베소서 2.9.1. 배 경 에베소는 B.C.11세기에 건설된 도시로서 이오니아의 식민지, 페르시아의 영토, 알렉산더의 자유도시, 로마제국의 州 등의 역사를 겪으면서 신약 시대에 이른 도시이다.신약시대의 이곳은 소아시아의 수도였으며,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이고 종교와 우상 숭배의 중심지이기도 했다(행19장). 사도 바울 이후에는 사도 요한, 디모데 등이 이곳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였는데 마침내 에베소는 예루살렘, 안디옥과 더불어 초대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2.9.2. 저 자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서를 바울의 서신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주제를 다른 사람이 모방하고 창작하거나 다른 서신의 확대라고 말

[5]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로마서 2.6.1. 배 경 2.6.1.1. 로마교회로마교회의 기원은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에 로마를 방문한 적이 없으며 그가 로마서 15:20에서 다른 사람의 터 위에 세우지 않는다고 말함을 보아 이미 로마의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함께 갔던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들"(행2:10)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돌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이 로마의 교회는 신자들 가운데서 자발적으로 시작했던 인물이 있었을 것이다.교회의 구성원들은 아마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혼합된 하나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색채는 이방적 요소가 강했다고 보여진다. 왜

[7]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디모데 전서 2.11.1. 배 경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오랫동안 목회서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이 용어에 대하여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세 서신서들이 교회 목회의 원리적인 면들과 목회자가 지녀야할 자질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기 때문에 목회서신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바울이 투옥된 이후에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바울 자신은 자신의 소명을 불타게 잡으려고 좇아가는 일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빌3;12).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나이 많은 나 바울"(몬9절)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목회서신들이 쓰여졌기에 어휘나 형식 등이 다른 서신들과 달라지게 된 것이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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