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2-14 예수님의 자랑거리
지정된 날이 있습니다. 역사는 그 끝매듭을 향해 멈추지 않는 열차처럼 질주합니다. 그 지정된 나를 ‘주의 날’, 곧 ‘예수의 날’이라고 합니다. 사람 대 사람의 평가는 소용없습니다.
‘주님의 날’의 평가 앞에서 살지 않는 자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그리고 그 실체는 ‘주님의 날’에 발각될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소망이란 단순히 본인이 달랑 건짐 받는 것을 두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날’ 기준이 실제적 세상 운용체제였음이 공개되는 데 있습니다. “거 봐, 내 말 맞잖아!”라고 자랑하고 싶은 날이 바로 ‘주의 날’입니다.
성도와 성도의 만남의 즐거움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들의 성과나 가진 것으로 우월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자신의 실패담이나 늘어놓으면서 화풀이나 위로나 동정이나 받으려는 모임이어서도 아니됩니다. 이것저것 다 부질없는 관심사임을 속시원하게 털어놓은 그날이 부지런히 다가오고 있음을 다같이 감사하는 모임이 바로 교회이어야 하고 성도의 교제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서로가 만나서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평가에 너무 지쳐버리거나 낙담해서는 아니된다 는 겁니다. 운명이나 미래는 본인들이 써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랑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 위주로 형성되어지는 운명은 ‘나로 인해 자랑스러운 나’가 아니라 ‘주님에 의해 자랑스러운 나’가 되었음을 풀어놓은 사건들의 접속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되면 지금의 성도의 모든 활동들이 ‘주의 날’에 대한 전주(前奏)와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즉 미리 ‘주의 날’을 매일같이 경험하는 겁니다. 이는 곧 타인의 시선과 평가나 거기에 근거해서 내가 나를 지적하는 그 평사에서 얼마나 홀가분해져 살아갈 수 있느냐입니다.
주님이 해결해주셨다는 죄가 여전히 마음의 앙금이 되어 도사리고 있다면 온전한 감사라고 할 수 없고 온전히 지정된 ‘주의 날’을 증거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규정하는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들어오심으로 가능합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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