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문신 어떻게 볼 것인가?
정준모 목사
<목사의 문신 문제를 단순한 허용/금지의 이분법적 접근>을 넘어서, 개혁주의 신학의 균형 잡힌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다루고자 하였다. 특히 한국교회의 문화적 맥락과 현대 문화전쟁의 상황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어떻게 지혜롭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복음의 전진과 교회의 일치,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한 목회적 지혜의 문제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1장. 성경적 기초와 해석학적 접근레위기 19:28의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는 명령은 개혁주의 해석학에서 의식법으로 분류되어 신약시대 신자들에게 직접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의식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명시하며, 율법의 영적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문신 자체보다는 그 동기와 목적이 성경적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구약의 문신 금지는 이방 종교의 주술적 관습과 죽은 자를 위한 의식에서 구별되기 위한 목적이었다. 현대의 신앙 고백적 문신은 이와 다른 맥락에 있으므로 동일선상에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로마서 12:1의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은 신체 사용에 있어 경건성을 요구하는 것이다.개혁주의 해석학의 구체적 적용루이스 벌코프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구약 율법을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으로 구분하며, 의식법은 그리스도의 완성과 함께 폐지되었다고 명확히 했다. 헤르만 리델보스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구약의 문신 금지가 언약 백성의 구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영적 정체성으로 대체되었다고 해석한다.현대 개혁주의 해석학자 고든 피는 문신 문제를 문화적 명령과 초문화적 원리로 구분하여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문신 자체는 문화적 명령이지만, 그 안에 담긴 "거룩한 구별"의 원리는 초문화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장. 기독교 자유와 목회자의 절제개혁주의 신학에서 기독교 자유는 양심의 자유를 포함하지만, 이는 무제한적 자유가 아니다. 칼빈은 "자유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였다. 목회자는 개인의 자유를 넘어서 공동체를 섬기는 공적 사역자로서 더 큰 책임을 진다.고린도전서 10:23-24의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각각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존 스토트는 "기독교 자유는 남을 위해 자신을 제한할 때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다"고 하였다. 문신이 성도들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그 자유는 절제되어야 하는 것이다.자유의 한계와 목회적 책임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0장은 기독교 자유에 대해 상세히 다루면서, "이 자유는 죄를 짓거나 정욕을 따라 살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목회자의 자유는 세 가지 차원에서 제한받는다.첫째, 성경적 제한이다. 비록 문신이 율법적으로 금지되지 않더라도, 성경의 전체적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 교회적 제한이다. 목회자는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덕을 세우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셋째, 선교적 제한이다. 복음 전파의 효과성을 위해 문화적 민감성을 발휘해야 한다.J.I.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참된 기독교 자유는 책임 있는 자유"라고 강조하며, 특히 지도자일수록 더 큰 절제력이 요구된다고 했다.3장. 신체의 성전론과 거룩성고린도전서 6:19-20의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은 신체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의 기초가 된다.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는 "인간의 몸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거룩한 그릇"이라고 표현하였다.문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는 경건한 목적이라 할지라도, 신체의 거룩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특히 목회자의 몸은 개인의 소유를 넘어서 교회 공동체와 복음 사역에 헌신된 도구이기 때문이다. 존 맥아더는 "목회자의 몸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복음을 전하는 살아있는 편지"라고 하였다.성전론의 목회적 적용개혁주의 성전론은 단순히 개인의 경건을 넘어서 공동체적 차원을 포함한다. 고든 피는 고린도전서 6장의 성전 개념이 개인적 성전과 공동체적 성전의 이중 구조를 갖는다고 해석한다. 목회자의 몸은 개인적 성전이면서 동시에 교회 공동체를 대표하는 상징적 성전의 의미를 갖는다.안토니 후크마는 『개혁교의학』에서 성령의 전으로서의 몸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몸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어야 하며, 이는 외형적 장식보다는 내적 변화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마이클 호튼은 현대의 신체 개조 문화에 대해 "자기 표현의 자유가 성령의 전이라는 신학적 진리와 조화를 이루는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4장. 문화적 맥락과 상황화의 원리바울의 상황화 원리는 고린도전서 9:19-23에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고 표현된다. 이는 복음 전파를 위한 문화적 적응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문화적 민감성을 요구한다. 한국 교회의 문화적 맥락에서 문신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팀 켈러는 "복음은 모든 문화를 초월하지만, 복음 전달은 문화에 적절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목회자의 문신이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D.A. 카슨은 "우리의 자유는 복음의 진보를 위해 기꺼이 제한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문화적 지혜와 선교적 전략크리스토퍼 라이트는 『하나님의 선교』에서 상황화의 핵심을 "복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문화적 형태를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문신의 경우, 서구 문화권에서는 개인 표현의 자유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여전히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레슬리 뉴비긴은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에서 "복음의 상황화는 문화에 대한 비판적 참여"라고 했다. 이는 문화를 무조건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관점에서 변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한국적 맥락에서 문신은 전통적으로 사회적 일탈이나 반사회적 행위와 연관되어 인식되어 왔다. 비록 젊은 세대에서는 개방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교회 공동체 내에서는 여전히 보수적 인식이 강하다.5장. 목회적 모범성과 지도력디모데전서 4:12의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의 본이 되라"는 말씀은 목회자의 모범적 삶을 강조한다. 개혁주의 목회신학에서 목사는 단순한 설교자가 아니라 성도들의 영적 모델이다.찰스 스펄전은 "목사의 삶 자체가 설교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마틴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의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문신이 목회자의 권위나 모범성에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개인의 표현 자유보다 목회적 효과성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지도력의 도덕적 권위존 스토트는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서 "기독교 지도자의 권위는 강압이 아닌 모범에서 나온다"고 했다. 목회자의 도덕적 권위는 법적 권위나 카리스마적 권위와 달리, 성품과 삶의 일치에서 비롯된다.리처드 보컴은 목회자의 모범성을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한다: 신학적 모범성(교리의 순수성), 도덕적 모범성(품성의 고결함), 문화적 모범성(사회적 적절성). 문신 문제는 주로 세 번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팀 체스터는 『일상의 교회』에서 "목회자는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의도적으로 성도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6장. 교회 일치와 공동체 건설에베소서 4:3의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명령은 교회 내 일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목회자의 문신이 교회 내에서 분열이나 논란의 원인이 된다면, 이는 공동체 건설에 해가 되는 행위가 된다.존 칼빈은 "교회의 일치는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되어야 할 가치"라고 하였으며, 리차드 백스터는 "목회자는 자신의 권리보다 교회의 평화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교회는 다양한 배경과 연령대의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모든 결정이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공동체적 의사결정의 원리디트리히 본회퍼는 『공동생활』에서 "기독교 공동체에서의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제한받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이는 개인주의적 자유관념을 넘어선 공동체적 자유 개념이다.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교회의 덕윤리학적 접근에서 "개인의 선택이 공동체의 품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목회자의 문신은 단순히 개인적 선택을 넘어서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7장. 한국교회의 현실과 문화적 도전한국교회 내 문신에 대한 인식 현황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유교적 문화와 서구 기독교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상황에 놓여 있다. 2023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 성도들의 78%가 목회자의 문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0대 이상 성도들의 경우 90% 이상이 반대 의견을 보였다.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여러 문화적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 유교적 신체관이다. 전통적으로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관념이 강해 신체를 함부로 훼손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둘째,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문신이 주로 조폭이나 사회 일탈 계층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온 역사적 경험이다. 셋째, 급속한 서구화 과정에서 나타난 세대 간 문화적 갈등이다.세대별 인식의 차이와 교회 내 갈등젊은 세대(20-30대)와 기성세대(50대 이상) 간의 문신에 대한 인식 차이는 극명하다. 젊은 세대는 문신을 개성 표현의 수단으로 보는 반면, 기성세대는 여전히 사회적 일탈의 상징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갈등은 교회 내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2022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에서는 "목회자의 문신"에 대한 질의가 제기되었고, 총회는 "성경적으로 금지되지는 않으나 한국교회의 문화적 맥락에서 신중히 고려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여전히 개 교회 차원에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문화전쟁의 새로운 전선한국교회가 직면한 문신 논란은 더 큰 문화전쟁의 한 양상이다. 개인주의 문화와 공동체주의 문화, 전통 가치와 현대 가치,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이 문신이라는 구체적 이슈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형의 문제를 넘어서 한국교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한국교회는 이러한 도전 앞에서 복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변화하는 문화에 지혜롭게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는 배타적 대립보다는 포용적 대화를 통해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8장. 문화전쟁에서 기독교 세계관의 승리 전략문화전쟁의 본질적 이해현대 사회의 문화전쟁은 세속적 휴머니즘과 기독교 세계관 사이의 근본적 대립이다. 프랜시스 셰퍼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이를 "두 종류의 인간관과 우주관의 충돌"이라고 정의했다. 문신 논란 역시 이러한 큰 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세속적 관점에서 문신은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 표현의 권리에 속한다. 반면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신체가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거룩한 그릇이며, 개인의 선택도 공동체적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갖는다.승리의 핵심 원리기독교 세계관이 문화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 원리는 다음과 같다:첫째, 진리의 명확성이다. 성경적 진리를 애매하게 타협하지 않고 명확히 선포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경직된 율법주의가 아니라 복음의 자유 안에서 균형 잡힌 진리 선포여야 한다.둘째, 사랑의 실천이다. 진리는 사랑 안에서 말해져야 한다(엡 4:15). 문신에 대한 반대 입장도 정죄가 아닌 사랑의 권면으로 표현되어야 한다.셋째, 지혜로운 상황화이다. 복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문화적 맥락에 적절히 소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넷째, 모범적 삶이다. 말보다 삶으로 기독교 세계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야 한다.목회자의 역할과 책임문화전쟁에서 목회자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의 대표자이자 수호자이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교육적 책임: 성도들에게 성경적 세계관을 명확히 가르쳐야 한다.모범적 책임: 자신의 삶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의 실천 모델을 보여야 한다.화합적 책임: 교회 내 다양한 의견을 조화시키고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선교적 책임: 복음 전파의 효과성을 위해 문화적 민감성을 발휘해야 한다.통합적 접근 방법문신 문제에 대한 통합적 접근은 "예/아니오"의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선다. 대신 다음과 같은 다층적 고려가 필요하다:신학적 차원: 성경적 원리와 개혁주의 전통에 근거한 판단목회적 차원: 교회 공동체의 덕과 일치를 위한 고려문화적 차원: 한국 사회와 교회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민감성개인적 차원: 목회자 개인의 양심과 확신에 대한 존중선교적 차원: 복음 전파의 효과성에 미치는 영향 평가9장. 결론: 자유 안에서의 지혜로운 선택문신 자체는 성경적으로 금기시되지 않으나, 목회자에게는 더 높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 원리인 "오직 성경", "오직 은혜", "하나님의 영광"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 전파에 유익한지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의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고백처럼, 목회자의 모든 선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문신이 개인의 신앙 표현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복음 사역에 장애가 된다면 사랑 안에서 절제하는 것이 더 성숙한 신앙의 모습이다.결국 이 문제는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해야 하느냐"의 지혜의 문제이며, 개혁주의 전통에서 강조하는 "복음을 위한 자기 부인"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영역인 것이다.최종적 권고사항개인적 확신: 목회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공동체적 합의: 가능한 한 교회 공동체와의 대화와 합의를 추구해야 한다.문화적 민감성: 한국교회의 문화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선교적 효과성: 복음 전파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평가해야 한다.점진적 변화: 급진적 변화보다는 교육과 대화를 통한 점진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기독교 세계관의 승리를 위한 지혜로운 전략 선택의 문제이다. 개인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복음의 전진과 교회의 일치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 참된 기독교적 자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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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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