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그리고 본론부에서는 각 서신서들을 바울이 기록한 연대순으로 하여 정리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론에서 서술되어질 바울의 전도여행은 본 바울서신의 순서를 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1.1. 바울의 회심(A.D.35) 

바울서신의 저자인 바울은 당시에 매우 번성하고 교육의 중심지인 다소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상속 받았으며(행22:25-28), 다소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다(행21:39). 또한 자신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3:6)라고 말할 정도로 열렬한 율법주의자였다. 이 열심으로 그는 교회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다(고전15:9; 갈1:13,23).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을 하고 이방인의 전도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아라비아로 갔다가 돌아와 다메섹 근처에서 3년을 지낸 그는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15일 동안 머물렀다(행9:22-26;갈1:18). 고향인 다소로 가서 잠시 머물렀다가 시리아 안디옥으로 가서 1년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함께 선교사로 임명 받아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행11:27-30; 12:25). 

1.2. 제1차 전도여행(A.D.46-48) 

바울과 바나바와 마가의 전도여행은 안디옥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 섬의 살라미에 도착한 후 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구브로 섬의 서부 지역인 바보로 들어가 복음을 전파하였다(행13:4-12) 이곳의 전도 이후부터는 바울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기 시작한다.

바울과 그 일행이 배를 타고 버가(소아시아)에 도착한 후,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13:13). 바울과 바나바는 내륙지방인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다. 이곳에서 바울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유대인들이 박해를 하여 루스드라로 가게 되었다.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를 고치는 이적을 행하지만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바울을 쫓아 나선 유대인들의 방해로 더베로 갔다(행14:19). 더베를 방문하여 많은 결실을 거둔 바울과 바나바는 이전에 그들이 전도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에 들어가서 그들을 다시 격려한 후(행14:20-23),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버가에서 복음을 전한 후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1.3. 예루살렘 총회(A.D.49) 

유대로부터 안디옥으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 신자들도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다(행15:1). 이같은 문제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내게 되는데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결국 이 총회에서 이방인 성도들이 최소한의 몇 가지만 삼가해 줄 것을 결정하고(행15:19-21,28,29), 바울과 바나바, 바사바와 유다와 실라를 통하여 이방 교회에 전달하도록 하였다(행15:22). 이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하고자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에 갈라디아서를 썼다고 본다(A.D.49). 

1.4. 제2차 전도여행(A.D.50-52)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사항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해 주었던 바울과 바나바는 얼마 동안 안디옥에서 함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쳤다(행15:30-36). 이들은 구브로 섬과 소아시아 남부에 세워진 교회들을 돌아보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버가에서 헤어진 마가와 동행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인하여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자기 고향 근방으로 떠났으며(행4:36), 바울 역시 자기 고향 쪽으로 향하였다. 이때부터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실라와 함께 하였으며, 루스드라에서 디모데와 합류하였다(16:1-3).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 무시아에 이르러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드로아로 갔다(행6:6). 다시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네압볼리로 가서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하였다(행16:6-12).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빌립보의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로 감옥에서 나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행17:1). 이곳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많은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을 전도하지만 유대인들의 시기로 쫓겨났다.

밤에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로 가서 전도를 한 후(행17:10), 아덴에 가 그곳의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설교를 한다(행17:22). 이후에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일년 육개월 동안 말씀을 전하면서,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를 보냈다(A.D.52). 또다시 반대에 직면하여 에베소에 갔다가 잠시 전한 후 배를 타고 가이사랴에서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귀환하였다(행18:21,22).

1.5. 제3차 전도여행(A.D.53-58) 

안디옥에 얼마 있다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다니며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하다가(행18:23), 에베소로 가서 전도하였는데(행19:1-41), 이곳 에베소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두개의 서신을 썼다(A.D.55-58). 데메드리오의 사건으로 에베소를 떠나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행20:1-5). 바로 이때에 이 지방에 있는 고린도를 출발하기 직전에 로마서를 써 보내었다(A.D.57/58).

무교절 후에 바울은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드로아로 가서 이레 동안 머물며 강론을 하였다(행20:6-12). 이 후 앗소에서 배를 타고 미둘레네, 기오, 사모를 거쳐 밀레도에 도착하였다(행20:13-16). 이곳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작별을 하고(행20:17-38), 행선하여 제자들의 반대에도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났다(행21:1-17). 둘레마이에서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하루를 묵은 후 가이사랴에 이르러 빌립의 집에서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로부터 예루살렘에 가지 말 것을 듣지만 계속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예루살렘에 도착을 하여 '형제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행21:17).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이방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했다는 소문 때문에 유대인 신자들을 무마하기 위하여 정결예식을 행하였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바울이 이방인 드로비오를 성전 안뜰로 데리고 들어왔다는 말로 군중을 충동하여 바울은 심하게 폭행을 당하였다(행21:28-29). 이 때 로마군 천부장의 도움을 받아 빠져 나왔다. 그러나 바울의 고발당한 이유를 확실하게 알기 위하여 천부장은 바울을 산헤드린 공회 앞에 데려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바울을 죽이고자 하였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행22:30).

 

1.6. 결박과 순교(A.D.59-67/68) 

대제사장과 몇몇 유대 지도자들은 가이사랴까지 찾아와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였다. 벨릭스 총독은 첫 재판을 한 후 재판을 연기한 후 2년이 지날 때까지 연기하였다(행24:27). 이후 벨릭스의 후임인 베스도 총독에게 예루살렘에서 재판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베스도에게 로마로 건너가 네로 황제(가이사 행25:7-12) 앞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베스도 총독은 상소할 자료를 작성하기 위하여 헤롯 아그립바2세를 불러 도움을 구했다(행25:26-27).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로 가게 되었다.

로마로 가는 바울의 여행은 항해하던 중 폭풍을 만나 멜리데 섬에 상륙을 하기도 한다(행27:14-28:1). 그러나 이듬해 봄 다시 항해를 계속하여 무사히 로마까지 도착하게 되었다(행28:11-14).

이 로마감옥의 첫 투옥 때 바울은 옥중서신을 보내었다(A.D.60-62). 그 후 다시 석방이 되어 자유롭게 마지막 전도여행을 하던 도중에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보냈다(A.D.63-65). 그러다 갑작스럽게 로마의 감옥에 결박되어 있으면서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 후서를 보내었다(A.D.67/68).

바울의 순교는 네로 황제시대 때 순교를 당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그 년도에 대하여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데 유대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주후67년으로 잡고, 교부 제롬은 주후68년으로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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