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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하면 교회된다

설득하면 교회된다인간을 설득하지 말라. 인간을 설득하는 그 날부터 교회된다.예수가 그토록 싫어했던 교회를 인간이 그 자리를 대신해 작업에 나서면 누가 그토록 기뻐할까?포기해라.망가져라.망가지기 싫거든 설득해서 교회 만들라!그 책임은 자기에게 돌아갈 뿐.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납득시키는데 대가다.인간이 죄인되기를 포기할 그 때부터 하늘은 눈물의 비를 저주의 땅에 쏟아 붓는다.지나가는 우스갯 소리로 맑은 하늘인데 갑자기 비가 왜 내릴까?'육' 밖에 모르는 인간을 경고하기 위한 우주의 주인이신 분의 심판이 아닐까?'인간들아 정신 좀 차려라!' 하시면서 잠에서 깨워주시는 그 분의 짧은 순간의 사랑이 아닐까?십자가는 설득으로 나서

에덴동산 중앙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에덴동산 중앙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중앙, 그러니까 한 가운데라는 곳은 매우 중요한 근원 혹은 원리가 차지하는 자리입니다. 또한 동산의 중앙이니까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즉, 가장 잘 보이는 장소라는 의미 입니다. 정리해보면 동산 중앙의 두 그루의 나무는 에덴동산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통치하는 근본 원리로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나무를 심으신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근본원리를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두 그루의 나무로 표현하셨다면 그것은 두 나무 사이의 ‘상호관계’를 통해서만 그 원리를 말씀하시겠다는 뜻으로 새겨볼 수 있습니다. ‘상호관계’가 아니라면 굳이 두 그

왜 예수가 싫은가?

왜 예수가 싫은가? 평소에 예수님을 천대하고 천시하고 신경 쓰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세상에 이런 거짓말이! 사람들은 자신이 줄곧 살아왔던 이 세상에 철저히 길들여져 있다. 자신이 평생토록 가꾸어 온 이 세상을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은 자살하는 경우 이외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성질의 세상 안에서 교회를 하는 목사들은 교회를 말아 먹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참된 교회라는 것은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자들의 모임인데 반해서 세상은 예수님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인간에게 고유영역을 인정할 수 있는가?

인간의 독자적인 행위영역이 인정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시간적으로 접근해서 소위 구원 전후로 구별해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하셨습니다.마 12장 28절-29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이 비유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악한 이 세상의 주인은 마귀다. 인간은 그 마귀의 집에 놓여진 세간살이에 불과하다. 마귀의 세간살이를 빼앗아오기 위해서는 집 주인인 마귀를 결박해야한다. 마귀를

십자가와 삶의 연결선-김대식 성도님의 글

종착역에서의 만남2009/08/12 00:57 in 교회와 양립불가인 십자가 종지부 찍은 십자가 종착역오늘 또 하루가 지나간다. 시간이다.그러나 사건을 품은 시간은 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씁쓸하다.그리고 지친다.복음은 참 쉽다. 그런데 인간은 너무 너무 복잡하다.그래서 쉽게 지친다. 피곤하다.벗어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얼마전의 공부에서 이런 말을 했다.참으로 부럽다고. 용서받은 것이 얼마나 부러운지 하늘에 천군천사들이 춤추며 반기는 탕자 하나 돌아오는죄인 하나 돌아오는 그 아버지의 감격스러운 마음아버지는 참 쉬웠다. 자신이 흘린 피가 드디어 그 값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탕자를 보며 죄인 하나 돌아오는 것이 하

교인과 하나님과의 대화

교인: 나를 살게 해다오. 그러면 당신을 섬길 게. 하나님: 그런식으로 나를 공격하라. 그것이 너의 본색이니까

교회는 쓰레기다

교회는 쓰레기다 집에 쓰레기통이 마련되어 있다. 쓸모없는 것들은 거기에 다 갖다버린다. 어느 날 쓰레기통을 다시 살펴볼 때가 있었다. 샅샅이 살펴보았다. 쓰레기들뿐이었다. 역시 쓸모없는 것들뿐이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사람들을 자꾸 생산하신다. 약속을 담는 그릇이요 전달하는 증인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내신다. 그런데 그 중에 복음이 담기지 않는 그릇들이 있다. 쓰레기다. 그들이 집결하는 쓰레기장을 ‘게헨나’ 즉 ‘쓰레기 처리장’ 혹은 ‘지옥’이라고 한다. 맹렬한 불길이 영원히 그들을 태운다. 태워도 태워도 타지 않으면서도 계속 뜨거움만 영원히 가중될 뿐이다. 이처럼 복음이 없는 공간이 저주스러운 공간이다. 오늘날 교회

돈없이 사는 세상은 있다

돈이 또 사람을 죽였다. 최진실이라는 유명인이 돈 때문에 죽었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에서 돈과 결부된 자존심에 스스로 얽혀 그녀는 자살해야 했다. 안재환도 돈 때문에 죽었다. 돈으로 뭉쳐진 자존심 때문에 죽었다. 현대인의 자아는 그 안에 돈으로 다져져 있다. 남이 나를 볼 때, 돈 기준으로 보기에 나도 나를 돈으로 뭉쳐보는 식으로 사는 것이다. 마치 눈송이를 뭉쳐서 눈사람 만들듯이 돈 송이 뭉쳐서 돈 사람 만들어놓고서는 그것이 곧 남들 앞에 내세우는 나의 나됨이다. 돈 없이 사람을 평가하는 시선은 어디 없는가? 있다. 하나님은 거지 나사로를 돈을 평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지 나사로 스스로 자신을 돈으로 평가

이준, 박윤진 성도님의 글이 탁월한 이유

이준, 박윤진 성도님의 글이 탁월한 이유 1.자기 삶의 바탕을 들추어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직업이나 사생활을 공개한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깔고 앉아 있을 그 방석을 구조적으로 파헤쳐 보인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은 숨어 지내기를 원합니다. 본인 아니게 신비주의 전략을 쓰게 마련인데 이는 동굴 속에 몸통을 숨기고 얼굴 부위만 동굴 밖으로 쏙 내밀면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한 소리씩 하는 가운데 자신의 불만스러운 인생의 화풀이하는 식으로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이준, 박윤진 성도님은 자신의 몸통을 감싸고 있는 이 삶의 구조를 더 이상 숨긴 채 살 수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

사단과 예수의 만남

복음서에 보면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성령에 이끌리어 사단에게 잠시 시험받기 위해 광야로 내몰린다. 시험을 다른 말로 “유혹”이라 표현해보자.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여기서 예수가 광야에서 사십 일 금식 후에 시험 면접관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유혹자 곧 사단이다. 광야란 면접 장소에서 두 인물의 주고받는 순서 즉 질문자(사단)와 답변자(예수)가 등장하는데 잠시나마 성경과 반대로 보고 싶어진다. 예수가 유혹자를 말씀의 세계로 끌어 당겨 인간이 아주 유혹 당할 만한 세 가지 질문을 인간을 대표하는 사단에게 먼저 질문을 한다. 왜 이런 발상을 시도

성경 해석의 기본

성경 해석의 기본 고린도후서 5:15에 보면,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5:17에 보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즉 ‘새로운 피조물’이란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는 자’에만 해당된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로서 해석하는 성경 해석은 성경의 그 대목을 해석해도 필히 ‘나를 위한 진리가 아니다’라는 느낌이 풍겨져 나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이 말은 곧 그가 외치는 구원의 복음은 사도 바울 자신을 위한 복음이 아님을 전제로 하고 외치는 복음이다. 예를 들면, 그가 예수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한마디로 자신을 끝까지 방어해 낼 수 있을까? 그리움조차 잃어버린 세상, 자포자기 하는 식으로 하루의 삶을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견하신 바 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세상이다.(마 11;17) 십자가를 앞장 세워 이야기하니 상대방은 황급히 자기 몸을 숨길 공간 찾기에 급급한다.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요. 나도 십자가 안단 말이에요” “정말 알아요?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뭘 해도 죄가 된다는 것을 정말 알아요?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고 아이티 아이들에게 구호품을 보내주는 것도 정말 죄라는 사실

죽음과의 조우

건방진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생사,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터, 원인에 투자하고 또 투자하면 그만한 결과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지성이면 감천이고 일찍 일어난 새가 많은 벌레를 잡을 수 있으니, 노력하고 갈고 닦으면 인생살이가 뭐 그렇게 애닳고 서글프고 고단할까요. 그런데 열심히 원인에 전력투구하면서 달콤한 결과를 상상하며 기계처럼, 혹은 개처럼, 혹은 돼지처럼 살다가 의외의 사건과 충돌합니다. 죽음과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무엇인가 계획하고 실행해서 이제 어떤 결과물을 얻을 때 쯤, 그 사람이 없어집니다. 말을 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 누구도 그 사람을 깨우지 못합니다.

결혼식과 장례식

결혼식과 장례식 2009-06-24 11:03:20 이름 : 이근호 지난 6월 20일에는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리고 오늘 (6월 24일)은 장례식에 다녀왔다. 둘 다 하나님에 의해서 조성된 사건이다. 그런데 어느 사건이 인간의 본질에 가깝나?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 7:1-4) 결혼식과 장례식에는 확실한 차이

대지진과 상식과 비복음과의 관계

대지진과 상식과 비복음의 관계사람이 상대방을 만나거나 보거나 대화하면서 자신이 현재 보고 있는 세계관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그물 던지듯이 던져서 포섭하려는 본심을 드러낸다. 그래서 대화를 해보면 그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표면에 떠오르게 된다. 자신이 흥분하는 일에 상대방도 같이 흥분하기를 원하고, 자신이 격분하는 일에 상대방도 같이 격분되기를 원하고, 자신이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일에 상대방도 같이 즐거워하고 만족하기를 원한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6-27)결국

불안한 사람

불안한 사람 사람을 만난다. 눈동자가 불안해 보인다. 왜 불안해할까? 상대방에게 내놓을 자랑거리가 딸린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속에 감추고 있는 것들이 너무 차서 긴장을 늦추면 숨겨진 허점이 들통 날까봐 불안해한다. 그런데 성경을 보자. 거기서 성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늘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사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마 6:9)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인 사람은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사람에 대해서 불안하지를 않는다. 반면에 자기 영광을 늘 생각하는 사람을 늘 불안하다. 들통 나서는 안 되는 것들이 들통날까봐 불안해한다. 상대방이 내가 숨겨놓은 것을 눈치 챌까봐 불안해하다. 아무리 내색을 안 하려

주체와 대상

주체와 대상(객체)이란 무엇일까? 주체와 대상은 어떤 관계안에 놓여 있는가? 인간은 주체와 대상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가? 주체는 어떤 자가 되면 대상은 어떤 자가 위치해야만 하는가? 주체와 대상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또 무엇인가? 일례로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을 보자. 김일성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창시한 자라면 김정일은 아버지의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실질적으로 실천한 장본인일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 부자지간은 북한이란 국가체제를 고수하고 방어하고 변호하기 위하여 자신들만의 주체사상을 이론화하고 실천화했다. 주체란 단어의 일반적 개념은 '어떤 단체나 물건의 주가 되는 것', '사물의 작용이나 어떤 행동의 주

설교란?

설교란? 악마의 신경선을 건드리는 것이다. 치아가 아플 때, 치아 표면만 깎아낸다고 문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치과의사는 치아 밑을 지나가는 신경선을 찾아내어 처리해야 한다. 이처럼 악마의 신경선이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악마의 노림수는 뭘까? 악마는 주 예수님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고 거기에 자기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여. 나하고 이야기하세요. 나를 비켜가서 예수님하고 의논하는 것 싫습니다” 이렇게 해서 악마는 신으로 대우받고 싶어한다. 악마의 신경선에서 피어난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예수님 중심으로만 움직이는 그 복음의 광채를 싫어하고 외면하려 한다.(고후 4:4) “하나님 나하고 이야기합시다.

주기도문에 등장하는 '우리'의 의미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온다. 우리라는 개념의 핵심은 내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없다면, 그 무리는 우리가 아닌 '그들'이 된다. 우리는 나를 포함하기에 우리라고 칭하고 있는 '나'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핵심이다.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우리라고 칭하고 있는 '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리 중 혹은 제자 중 누군가를 포함하여 우리라고 지칭하고 계신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기도문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위치, 즉 중보자의 위치에 계신 분은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내 아들아!

하나님은 아들의 소리를 들으셨다.죽지 말아야 할 아들의 십자가 절규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내 아들아 왜 죽어야만 했니?''넌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 않아도 될 내 아들인데 왜 죽어야만 했니?'하고 하나님의 아픔이 하늘과 땅에 전달된다.'내 아들을 살려 내거라! 이 죄인들아' 하시며 대자연과 우주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고함친다.(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하나님의 마음을 찢어 버린 아들의 피의 외침이 온 대지와 우주를 서늘하게 했다.'이 소리가 누구의 소리인가?' 하고 죄인들은 눈치를 채기 시작한다.(마 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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