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한마디로 자신을 끝까지 방어해 낼 수 있을까? 그리움조차 잃어버린 세상, 자포자기 하는 식으로 하루의 삶을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견하신 바 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세상이다.(마 11;17)
십자가를 앞장 세워 이야기하니 상대방은 황급히 자기 몸을 숨길 공간 찾기에 급급한다.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요. 나도 십자가 안단 말이에요”
“정말 알아요?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뭘 해도 죄가 된다는 것을 정말 알아요?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고 아이티 아이들에게 구호품을 보내주는 것도 정말 죄라는 사실을 안다는 말이요?”
십자가는 이래서 싫은 것이다.
사람이란 자기 행한 것 외에는 궁극적으로 모두 의심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뻔한 일이다. ‘결국에는 아무 것도 못 믿겠다’는 것, 이것이 곧 불신인데 인간은 이 불신의 힘을 스스로 극복할 수가 없다. 과연 신이 있다면 이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문제는 이 불신의 마음을 가지고 계속 믿는 척을 해야 하니 정말이지 이 위선의 세월이 너무 길다.
신학도 접고, 교회도 접고, 성경도 접고, 기도 끊은 지는 벌써다. 그래도 누구를 만나도 기죽지 않기 위해 십자가에 대해서도 알고 언약에 대해서도 알고 한국 교회 부패한 면도 안다고 큰 소리 처댄다. 하지만 상대방이 십자가의 의미를 가지고 계속 추궁해 들어오면 입장에 난처해 진다. 본심이 들통 날 지경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해 둔 멘트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날 잘 알지도 못하면서…”이다.
이 말은 곧 “내가 믿음 없다는 사실을 십자가만 외치는 당신만 알고 있어요. 제발 동네방네 나발 불지 말고…”라는 뜻이다. 십자가만 외치는 사람이 이래서 밉상 받고 밀침을 당한다.
하나님은 아담만 상대하신다. 모든 인간은 아담 뒤에 숨어있고, 아담 품에 들어있다. 이점은 사람들은 모른다. 인간이 믿음 없는 것은 당연하다. 조상 아담이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분과 상대하셨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시다. 그 예수님이 아담 품 안에 있는 자기 백성에게 십자가를 가지고 쳐들어오게 되면, 비로소 그 인간은 ‘자기 믿음으로 자신이 구원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 성도는, ‘예수님으로부터 난 믿음’으로 자신이 구원되었음을 고백한다.(행 3:16) 그 정도로 자기를 포함해서 모든 인간은 전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십자가 복음을 아는 자는 바로 이 점을 ‘안다’. 따라서 성도 앞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성도가 아닌 자는 방어막을 치면서 자기가 파놓은 어두운 굴속으로 날마다 피신하지만, 성도는 십자가 앞장세우면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다 알거든요. 어두운 굴속에서 그만 숨지 마세요. 그리고 이 피 흘리심을 보세요. 오직 피로 구원됩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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