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전에 십자가 질 것을 목적지로 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죄를 깔아두셨다. 인간은 죄를 지어야했고 그 죄 줄기와 파도를 타고 와서 용서의 세상의 해변에 도달되도록 하셨다.
이런 일방적인 용서의 출처는 오직 십자가 사건이다. 거기서 쏟아내신 ‘언약의 피’가 시간을 역류시켜 세상을 덮친다. 하나님께서 ‘피 없이’는 일하지 아니하신다. (히 9:7) 이로서 세상은 ‘언약의 피’를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 시간으로 짜놓으신 카펫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선악 지식으로 무장된 채 그 카펫을 더럽히고 훼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시킨다. 시간이 흘러가면 언젠가는 자신이 구원되리라 믿는 희망으로 죄 위에 깔아둔다. 하지만 이것은 악마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거짓말이었다. 인간에게는 애초부터 구원될 자격이나 권리가 없었다. 이 속임수를 까발리고자 심판의 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미리 오셨다.
인간 세상은 메시아마저 죽여 없애는 성질이 발휘되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엉뚱한 구원방책이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죄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의로움으로 상쇄시키면 구원될 수 있다는 방책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방법을 저주하신다. 하나님의 방식은 사람 손에 죽으신 예수님을 사흘 만에 살려내심으로서 인간들의 방식을 정죄하신다.
인간은 그 누구도 구원될 자격도 없고 구원받을 권리도 없는 자들이다 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인간의 손으로 죽임을 당하신 사건으로 분명히 못박아두셨다. 그리고 복음 사건의 반복해서 적용하신다. 여기서 구원의 요건도 병행해서 알려진다. 그것은 곧 피이다. 이 내용만이 예수님 사이에 창세전에 의논된 구원근거다. ‘하나님이 죽어서 생산된 그 피 사건과 그 반복성 안에서’만 구원이 성사되는 것이다. “피 없이”는 일 아니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4, 7)
이제 성도가 새삼스레 자기를 위해 할 일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이 진실을 알릴일 뿐이다. 쉬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죄보다 용서가 먼저였다고 알리자. 그 먼저 있는 용서와 만나기 위해서 우리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죄인으로 부르신다는 사실도 아울러 말하자. 원래 구원받을 만큼의 의인은 없었나니 하나도 없다는 사실도 빼놓지 말고!(롬 3:10)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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