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과 허상
실상과 허상
히브리서 11:1-3
실상과 허상 ‘나를 위한 일’은 없습니다. ‘나를 위한 현실’도 없습니다. 이게 실상입니다. 그런데 허상은 ‘나’가개입되면서 발생됩니다. 마치 이 세상 전부가 ‘나를 위한 세상’이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겁니다.
누가 이런 사고방식을 퍼뜨렸겠습니까? 악마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악마의 마음을 갖고 출생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악마는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인간들에게 있어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실상의 나라에서 인간들이 사는 허상의 나라에 왔을 때, 흉측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허상의 나라에게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지상에 나타난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박힌 하나님’셨습니다. 이로서 누가 과연 애초부터 거짓이며 엉터리인가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으로만 밝혀집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성도의 존재 이유는,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거짓이요 허구라는 사실을 밝혀주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이곳에서 계속 오래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해야 할 일과 더불어 행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 적절한 사건이 환경 속에서 쉬지 않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허상의 세계에서 안일하고 편하게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해야 할 것 하고 떠나라!”는 독촉이 주어집니다. 실상이란 ‘주님을 위한 일’입니다. 이로서 성도는 ‘자기를 위한 일’을 추구하는 자와 소통이 되지를 않습니다.
이는 허상이 철저하게 실상을 가리는 용도로 허상이 이 세상에서 허용이 된다는 겁니다. 즉 인간은 열심히 자기 한 몸을 챙기는데 사력을 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실상은 철저하게 그 사람에게 감추어진다는 겁니다.
‘보이는 것’과 ‘나타난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