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란?

설교란?

설교란?


 


악마의 신경선을 건드리는 것이다. 치아가 아플 때, 치아 표면만 깎아낸다고 문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치과의사는 치아 밑을 지나가는 신경선을 찾아내어 처리해야 한다.


이처럼 악마의 신경선이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악마의 노림수는 뭘까?


악마는 주 예수님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고 거기에 자기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여. 나하고 이야기하세요. 나를 비켜가서 예수님하고 의논하는 것 싫습니다” 이렇게 해서 악마는 신으로 대우받고 싶어한다.


악마의 신경선에서 피어난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예수님 중심으로만 움직이는 그 복음의 광채를 싫어하고 외면하려 한다.(고후 4:4) “하나님 나하고 이야기합시다.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 정말 질투 납니다. 나도 성령 받아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되었습니다. 나하고 이야기합시다.”


설교란, 이러한 악마선을 포착해서 집어서 그 실체를 현실의 표면 위로 건져 올리는 작업이다.


왜 청교도 정신이 악마적일까?


왜 개혁주의 신학이 악마적일까?


그것은 구원 가능성을 여전히 인간에게서 찾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신학’이라는 이성적 작업과 윤리성이라는 고운 양심적 모판을 먼저 깔아두고 그 위에다 십자가 복음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성사시키려 한다.


이 말은 곧, 이 모판을 치워버리면 구원이고, 영생이고 천국이고 도저히 성사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신학도 모르는 창녀나 강도가 예수님의 피만 믿고 금새 구원받고 천국가는 것을 도저히 못봐주겠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목회 전문가의 입지를 있으나마나로 만들어버리는 상황을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교회 없이도 구원이 되는 사실을 저주하겠다는 것이다.  


악마가 근원적으로 인간에게 심어준 신학과 양심에 바탕을 둔 이 의식은, “나도 하나님과 상대할 자격을 상당히 갖추어져 있습니다.”를 주장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에서 방출되는 피의 능력만으로 구원이 된다는 예수 그리스도 고유의 역할에 대해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악마는 늘 ‘적그리스도’다.


“예수를 넘어서서 언젠가 우리 피조물도 하나님과 직접 상대할 만큼 신적인 존재로 격상됨”을 목표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청교도 정신과 개혁주의가 이토록 악마적이다. 이 청교도 정신과 개혁주의 정신이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악마를 통해서 이 정신이 계속 확산되는 것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곧 악마의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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