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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경해석 쓸모있니?

산업혁명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를 가능케 했다. 초기 산업자본주의사회의 이러한 대량구조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인간의 노동력이었다. 인간은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너, 뭐 좀 할 줄 아니?" 인간의 쓸모있음이 인간의 가치를 가로채 버린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의 마음 바탕에는 한 가지 믿음이 있다. 인간은 그 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무엇을 할 줄 알기에 인간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엄한 인간은 최대한 자유로와야 하고 모두 평등해야한다. 여기서 심한 모순이

구원은 어떻게(How)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냐(Who)의 …

신앙생활에 갈등하고 있다는 분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확인받고 천국행이 보장되는가, 어떻게 해야 교회가 부흥되고, 어떻게 해야 가정이 화목하며, 어떻게 해야 건강과 재물과 영생까지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는 지 궁금하고 또 궁금합니다.오늘 날의 우리 뿐만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바로 '어떻게'에 빠져 있습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여인은 천국을 확보할 수 방법으로 제사를 제시했고 예배의 장소를 중요 요건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십자가가 뭔가?

십자가란 1. 공평을 말한다. 십자가 앞에서 사람들 끼리 비교하는 것은 무믜미하다. 뭐든지 십자가 앞에서는 새로 시작해야 한다. 모든 이가 공평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마 16:24)십자가 앞에서 특혜란 없다. '누구든지..'이다. 신앙생활 오래했다고 해서 봐주는 법도 없고, 신학을 전공했다고 봐주는 법도 없다. 직분을 가졌다고 해서 봐주는 법도 없다. 돈을 많이 번다고 봐주는 법도 없다. 큰 교회 목회 한다고해서 특별나게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뭐든지 늘 새로 시작되는 곳이 십자가이다. 십자가 앞에서는 '누구든지..'의 원칙만 통한다. 2. '자기 부인'을 뜻한다. 십자가를 받아들이겠다는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아주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 멀리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난 못(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수문을 잠그고 여는 곳 위에서 폴짝 폴짜 뛰면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푹 내려가버렸습니다. 수영을 하지 못했던 나는 정신없이 손짓 발짓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연히 시멘트에 손이 닿아 밖으로 나올수 있었습니다.나중에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수영 참 잘하네.난 죽을 뻔 했는데.그래서 그 후 나는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지금도 바닷가에 살지만 십몇년동안 서너번 바닷속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것도 바닷가에.냇가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물속에

성령을 좇는 삶과 육신을 좇는 삶 (정락원)

성령을 쫓는 삶과, 육신을 쫓는 삶 이 글은 전 십자가 마을에 글쓰기를 차단해 놓아서 다른 이름으로 올렸더니 1시간만에 삭제를 하였더군요. 부득불 이곳에 올립니다. 이 글은 양무리님이 정영균님이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과 육체를 좇아 행하는 것을 어떻게 구분합니까? 라고 질문을 하자,,,,, 양무리님께서 대답한 내용입니다. 양무리님의 대답이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하여서 인내하지 못하고 글을 씁니다.이들의 성경해석이 얼마나 육적인 것인가를 잘 대변해 주는 글이라 사료되어 올리는 것이니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양무리 라고 하는 가명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가 밝히기를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목사님도 병신이면서-김창길 성도님(의존교회)의 글 …

목사님도 병신이면서...◎ 우리 이야기◎ 김창길 09.12.14 13:10 http://cafe.daum.net/uijon/Vhyu/33 친구의 전도로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설교는 기복주의와 신비주의, 율법주의를 강조하는 교회였다. 목사님 스스로도 기도를 하면 환상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목사님께 기도 받는 것을 교인들은 좋아했다. 점집에 가서 점을 치듯이...목사님의 가르침은 목사와 사모에게 맹목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주가 내려 모든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목사는 제사장과 같은 직분이라고 하면서...어떤 땐 나의 은밀한 죄를 목사님이 알까봐 기도 받기를

버림을 위한 행함

버림을 위한 행함 2009-11-22 18:15:56 이름 : 김성환 인간을 만나면 만날수록 느끼는 생각은 자꾸만 가지려는 행함이다.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텅 빈 뇌 속에 꽉 차지 못 생각, 그리고 자신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 지지 않는 발상들이 버림을 위한 행함과 늘 부대끼는 것 같다. (막 15:34, 개역)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 당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오셨는데 인간은 자꾸만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는데 몹시 바쁜 것 같다. 예수를 이

복음의 진지함

복음의 진지함 2009-06-03 09:46:28 이름 : 이근호 복음의 진지함이란 나에 대한 진지함이 아니라 실은 하나님에게서 진지함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음에 던져 넣으시고 ‘복음의 진지함’을 만드셨다. 이 ‘하나님의 진지함’에 동조할 사람을 모집하신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진지함’을 이해 못한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자기 진지할거리가 항상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니 건강 챙기는데 진지하고, 자식이 남들보다 뒤쳐질까봐 자식 챙기는데 진지하고, 자기 살 궁리하는데 진지하고, 목회를 시작했으니 교회 부흥 챙기는데 진지하고, 노후를 위한 여유 돈 챙기는데 진지하고, 외로움을

아담을 탓하지 말라

은혜(구원)의 영역에서 "주체의식"을 경계하는 것처럼 죄의 영역에서도 "주체의식"을 배제해야 하지 않는가? 행위로 구원받지 못한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이 믿음 또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이란 외부에서 침투하여 들어온 것이다. 즉, 인간에게 믿음이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만이 믿음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를 지향하는 구원, 나의 소유된 구원은 없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은혜로서 인간 행위와의 완전한 단절상태에 있다. 인간 행위의 결과물로서의 구원이 아니라, 인간행위와 무관한 은혜로의 구원이다. 이처럼 은혜(구원)에서 인간 행위의 배제, 즉 인간주체의식의 배제는 많이 강조되고 있다. 주체의식은

요한일서라는 칼 (박윤진)

요한일서라는 칼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라는 칼을 들고 읽는 자의 머리와 마음을 정교하게 해부한다. 감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담겨있다.’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진짜 예수 십자가 안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소개한다. ‘십자가 안에 있음’이 현실적으로 보여지고, 들려지고, 만져지지 않는 자들은 마치 진동 추를 바라보고 있는 듯 현기증만 느끼도록 이쪽인지 저쪽인지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형제’들에게는 사도요한이 집요하리만큼 오직 하나의 사건에만 집중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읽는 자들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진행시키고 있다

힘으로 사는가 용서로 사는가?

힘으로 사는가 용서로 사는가? 개인은 점 같다. 새까만 점같다. 그 안에 힘이 응축되어 있다. 자체적인 힘으로 무장되어 있는데 이 힘으로 세상에 나서면 세상은 당구대가 된다. 서로 힘이 부딪치고 구석진 곳으로 밀리고, 다시 중앙 진출을 시도하고 그러다가 깨어져 해체되고, 분할되고, 다시 응집을 시도하기를 반복한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돈이 모여야 힘을 채워나갈 수가 있는데 이 일이 예전처럼 수월치 않아서 탄식들을 한다. 당구공이 전보다 더 딴딴하지 못해서 언제 파괴될지 몰라 불안하다는 뜻이다. 전에 이런 당구공들이 모여 교회라는 이름으로 더 큰 당구공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었다. 그러나 이 큰 당구공도 경제

거짓 것을 믿게 하시는 하나님 (박윤진)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 11-12)-------------------------------------------------------------------------- 사단이 인간에게 설정하여 가르쳐 준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이다. 좋으신 하나님이다.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계신 참 하나님의 모습은'거짓 것을 믿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인간을 붙들고 있는 우상으로서의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지금 인간들이 그토록 부르짖고 있는 선하고 좋으신 그 하나님이 참 하나

피의 흔적

피의 흔적피의 흔적 ~쥴리의 글 이름 : 송영옥 교회 성장학, 설교 해석학, 성화, 이런 것들의 오류가 무엇입니까? 인간에게 가능성을 건다는 데 있어요. 인간에게 무언가 끄집어내어서 분기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털끝만한 희망이 없어요. 그래서 해방이 존재합니다. 해방이란 나 자신에게서 눈을 떼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거기 십자가가 나오지요 십자가의 멧세지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널 대신해서 내 아들이 죽었다!" 이것입니다. 거기서 눈물이 나오고 참회가 나오고 애통함이 나오게 해요. 그러니까 눈물만 줄줄 흘러야 하는데,,, 욥처럼 다 삣기고 배신 당하고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

누가 내 이불집을 무너뜨렸나요?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이불로 만든 집을 부셨다고부셨다고 난리다. 20분동안 내 뒤에서 말한다. 그러면서 예를 하나 든다. 자신이 할머니를 위해위해 아빠가 만드신 집을 부셔버리면 기분이 좋겠어요. 내가 대답했다.대답했다. 그래. 당연하지. 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지.있지. 그러자 아이가 말한다. 예수님이 더 소중해요. 예수님의 소중함을 자신이 만든 집을 위해 사용하는 아이. 결국 자신의 집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기분나쁘고 화가 났다는 것이다. 성도는 여러가지 상황속에서 자신이 발각되어지는 자이다. 그래서 십자가로 인도함을 받는 자이다. 그런데 어떤 자는자는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가 다 용서

층을 '피'로 걷어내라

복음은 세상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층들을 걷어내야 보인다. 다른 말로 복음은 세상과 죄인을 둘러싸고 있는 육의 층들을 예수의 피로 걷어낼 때 보인다. 마치 아스팔트를 새롭게 포장하려면 기존에 깔려있던 파손된 도로를 포크레인으로 걷어내고 새 것으로 깔아버리듯 복음도 죄로 파괴된 옛 사람의 마음 밭 자체를 성령이 말씀으로 뒤집어 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의 피로 덮어버릴 때 분명히 똑똑히 보인다(겔 36:34; 호 10:12). 요한복음4장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자가 결혼한 여섯 명의 남편들과 자신의 육의 층이 기경되지 않은채 매일 야곱의 우물가에 나와 물을 긷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격이라고 할까! 죄로 파괴된 옛 사람의 마

예수 안 믿을랍니다

예수 안 믿을랍니다 사람은 정(情)으로 삽니다. 정에 울고 정에 웃습니다. 이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하찮은 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동구 밖에서 주인의 모습을 먼저 보면, 쏜살같이 달려 나와서 꼬리를 힘차게 흔들어대는 것도 그동안 서로 익히 아는 데서 오는 정(情)의 힘 때문입니다. 게다가 주인이 자기 이름을 예쁘게 불러주면 주인 품속에 달려들어 얼굴을 사정없이 핥아댑니다. 정(情)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개나 인간이나 모두 유기체입니다. 유기체란 밖에서 주어지는 자극들과 체험들이 계속 쌓여나가 그것이 몸체를 이룹니다. 익숙함이 익숙함을 부르는 거지요. 익숙함에다 익숙함을 더하는 거지요. 우리는 그렇게 해서 생긴

우리도 5일장 지내자

우리도 5일장 지내자 투명한 프라스틱관을 마련하고서는 그 위에서 "쓰레기 유리관"이라고 쓰자.뚜껑을 열고서 방사능폐기물도 집어넣고 찢어진 고무장갑, 폐차장에서 나온 라지에이터도 집어넣고, 만물의 쓰레기도 다 집어넣자. 폐기물에다 이름 하나씩 붙여주자. '천하에 쓸모없는 예수', '무용지물의 사도 바울', '쓰레기 만도 못한 거지 나사로', '개죽음 당한 스데반 집사' 구멍난 깡통에다 숯불을 담아 연기를 내자 그리고 관 주위를 돌면서 흔들어대자. 이 퍼포먼스(perfomance)가 끝나면 우리도 관 속에에 들어가서 폐기물 옆에 나란히 들어눕자. 뚜껑을 잠시 밀었다가 황급히 팔을 접어서 "꽝"하고 뚜껑이 저절로

선한 목자 vs 삯군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누군가가 선한 목자인지 아니면 삯군인지를 구별해 내는 기준은 너무도 분명합니다.요한복음 10:11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스스로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섬뜩합니다. 선한 목자 하고 싶지 않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선한 목자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 자신은 이미 죽은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봐라, 내가 널 위해 이렇게 죽었지 않니? 이제 알겠지, 내가 바로 선한 목자라는 사실을!"선한 목자가 되는 순간 자신은 죽고,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의 칭송은 들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자세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자세 2010-04-16 18:29:43 이름 : 이근호 현대인들의 옛적 사람들의 입으로 혹은 문서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척 황당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황당무계한 대목을 다 빼버리고 나머지 인간들의 움직임만을 추려서 그들의 의식이나 세상관을 파악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의 자세가 오늘날 현대인마냥 자기 자신이 이득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짐승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운명에 순응하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운명이 우선이고 그 운명 안에서 자신의 모

인생의 목적

"하나님께서 알아서 척척 누구는 천국 보내고, 누구는 지옥 보낸다면 굳이 이 힘든 인생살이 살게 하지 마시고 그냥 보내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태어나게 하셔서 이 고생하게 만드십니까?"위와 같은 질문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공로로만 구원된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불평입니다. 우리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행위가 아무 의미가 없다면 굳이 몸이 필요없고 그렇다면 인생이 아무 쓸모없다는 논리입니다. 또한 이러한 논리의 근저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의 목적은 결국 사람의 구원여부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목적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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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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