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자세
2010-04-16 18:29:43 이름 : 이근호
현대인들의 옛적 사람들의 입으로 혹은 문서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척 황당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황당무계한 대목을 다 빼버리고 나머지 인간들의 움직임만을 추려서 그들의 의식이나 세상관을 파악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삶의 자세가 오늘날 현대인마냥 자기 자신이 이득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짐승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운명에 순응하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운명이 우선이고 그 운명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이다. 운명을 비켜가는 인간이란 애당초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시대의 생각들이었다. 이 운명론은 신화를 통해서 밝혀진다. 그들의 운명론 입장을 고려하지 아니하면 성경에서 표현하는 ‘우상’의 개념이 모호해진다.
우상의 개념이 모호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개념도 모호하다. 우상과의 차이성이 분명히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운명론 중심으로 자신을 규정하면서 여기에 신들을 개입시킨다. 이 개인되는 신들과 인간 사이에는 소위 ‘형상론’이 펼쳐진다. 즉 인간은 신들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이해를 갖게 되느냐 하며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희로애락과 시기와 질투와 복수와 살인의지와 욕심들은 인간들이 보기에 대자연의 변덕스러운 기후 변화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대자연의 ‘변화’를 의미한다.
즉 대자연과 줄기차게 변화하고 그것에 못지않게 인간의 심성도 줄기차게 요동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성질과 성격은 대자연이 제공하는 변화에 준해서 영향을 받으면서 움직인다. 날씨가 흐리면 인간의 기분도 침울해진다. 따라서 인간은 대자연의 움직임과 별자리에 대해서 인격적인 면에 부여해서 해석하는 것이 대자연의 변화를 배경으로 해서 운명론을 형성하는데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변덕스러운 인간의 심성의 원천을 대자연의 변화무쌍함에 두는 것이 운명론적으로 해답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은 대자연의 변화와 혼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대자연을 인격화해서 신들의 행동들로 해명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자신의 운명론을 조성한 요건이 없지 아니한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화를 보게 되면 신들이라는 작자들의 행동거지가 꼭 인간 군상을 닮았다.
폭군(가이아, 제우스), 패륜아(크로노스), 질투의 화신(헤라), 간통자(아프로디테), 깡패(아레스), 도둑놈(헤르메스), 병신(헤피아도스), 술주정뱅이(디오니소스) 등 각종 성격을 총망라하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 있어 이러한 신 인식은, 만물이 상호간의 사랑에 의해 구성된다는 믿음의 토대 위에 도출된 결과이다. 신과 인간이 멀어지거나 따로 떨어지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유혹하려는 관계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유혹과 유혹 사이에서 적당한 거래가 형성된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은 거래 여하에 따라 허물이 조정된다. 우주는 부조화 가운데서의 조화이다. 즉 신들에게도 저마다 약점을 갖고 있고 신들에게도 허물이 있기에 인간에게 일어나는 각종 실수와 욕망의 모습에 대해 운명은 너그럽게 용납해 달라는 희구의 반영이다. 우주의 움직임이 그러하듯이 신들에게 약점이 있다는 것은 인간들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챙길 수 있는 여지가 확보된다는 것이다. 신이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보호하고, 이뻐해주고, 심사숙고해주고, 위대한 영웅을 창조해서 심어주어 난세를 풀어가는 그런 역할에 충실할 때 신으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 역사를 초월한 보편적 통념이다.
즉 신들의 사회가 있는 반면에 인간들의 사회가 있는데 이 둘 사회가 격이 없이 섞여있다. 결혼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창 6:2) 거기서 출생한 자들은 때로는 신으로, 때로는 인간으로, 때로는 영웅으로, 때로는 비겁한 모사꾼으로 살아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신과 인간은 다 같이 운명론의 요소들로 묶여져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이 없이는 자신을 경배한 피조물이 없어 허전하기도 하고 신의 권위를 뽐낼 데가 없다. 그리고 인간은 신의 도움 없이는 이 험한 대자연의 변덕스러움 속에서 마음 놓고 살아 갈 수가 없다. 쉽게 말해서 유흥업소가 어쩔 수 없이 조폭들을 끼고 살아야 하듯이, 인간들도 지상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신들의 횡포에 순응하면서 신들에게 고분고분해야 한다.
결국 인간의 운명론이란 ‘어쨌든 나는 살아남고 보자’는 식이다. 즉 ‘날 살리는 식’의 운명론을 규명해보겠다는 것이 신화론의 핵심이다. 이렇게 볼 때, 신화론은 우상의 토대다. 가정과 민족과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는 신의 마음을 달래야 한다. 제물을 바쳐서라도, 헌금을 하더라도 신들의 그 변덕스러운 성격을 누그려 뜨려야 한다. 마치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조화를 인간적인 면으로 해결할 수 있듯이, 세상만사의 모든 변화를 주관하는 신들의 심성을 건드려서 좋을 리 없다. 인간만 손해 보기 십상이다.
따라서 신화에 나오는 운명론이 결국 그 수정과 미래의 형편은 얼마나 인간들이 신들에게 뇌물을 정성껏 바치느냐 여부에 달렸다. 인생을 편하게 살고 싶으면 신의 마음을 헤아려 잘 섬겨야 하는데 그 방식은 마치 고집불통이고 늘 위협이 될 정도로 센 힘을 가진 이웃에 대해서 연약한 이웃이 어떻게 대처하느냐하는 방식과 일치한다. 신들의 성질이나 인간의 성질이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자연의 불멸성에서 신들의 불멸성을 짐작하게 되고, 신들의 불멸성에서 인류의 불멸성을 끌어내어보고자 하는 것이 신화론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육적인 안목’이다. 육적인 안목은 영웅을 원한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창 6:4)
영웅은 보통 인간이 아니다. 신적 요소를 지녀서 연약한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 못하는 것을 변덕스러운 대자연의 조화에 맞서서 인간 사회의 자율성과 안전을 보장해주는 능력을 발휘하는 자를 일컫는다. 즉 인류의 불멸성을 책임질 자이다. 이런 자의 등장을 위해 인간들은 신과 인간 상호 소통하는 신화를 견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곧 우상의 정체다.
이스라엘은 이런 신화에 입각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해석했다. 그래서 그들은 심판받아야 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다. 자기네 집단의 안정과 불멸성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웅으로 떠받든다. 하지만 참된 메시아는 이들의 신화론 앞에 오직 ‘피’로서만 다가가신다.
인간의 지혜로는 그 누구도 예수님에 대해서 알지를 못한다. 알았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다. (고전 2:8-10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인간은 원래 이단이요 원래 우상숭배자이다. 성령님이 오시지 않는 상태에서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모든 언론 매체나 정보 속에는 인류의 영웅만 찾고 있다. 이런 인간 세상에서 성령님을 통해서 ‘피’를 소개받은 자들이 차라리 희한한 자들이다.
이 세상에서의 탈출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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