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도 응답이 없나

왜 기도 응답이 없나

왜 기도 응답이 없나

 

 

지난 주, 점심 식사 중에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다. "왜 목사님께서는 기도하는 것도 죄라고 하시는 겁니까?"

식사 중이라 제대로 답변해드리지 못한 것 같다. 

 

어느 목사님(정석훈 목사님) 의 설교 안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그저께 어떤 목사님을 만났는데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순종해야 하지 않느냐고 열변을 토하시더라고요.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은 것은 인정하겠는데 우리가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인간들이 ‘순종’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도 그다지 순수하지 않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 대가를 노리게 된다. 기도를 하든, 순종을 하든 필히 대가가 생각하게 되어 있다. 기도에 대한 ‘응답’도 마찬가지다. 기도라는 힘든 노동을 했으니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고 여긴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의 원리, 곧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 받은 자는 아무런 대가를 생각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누구나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도 못 믿는 존재이다. 따라서 ‘은혜 받은 자의 마땅한 순종’에 본인이 해당되는지 여부를 자력으로 확정지을 길이 없음을 답답해한다. 성경의 원리가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믿어지지 않아서 그러하다.

그러니 순종을 하든, 기도를 하든, 봉사를 하든 본인이 기대한 대가가 정말로 주어지면 그제사 하나님의 원리, 즉 “은혜 받는 자는 대가없이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진리로 받아들이겠다는 수작을 벌리게 된다.

예를 들면, 목사들이 목회를 하든 설교를 하든 강의를 하든, “이는 은혜 받은 저가 아무런 대가 없이 마땅히 봉사하는 겁니다”라고 전략을 취하면서 대중들 앞에 나선다. 그런데 반응들이 시원치 않고, 교제 나누던 교인들도 하나 둘씩 어느 날 면전에서 사라지고, 생계가 위태롭고, 아무도 목사 자신의 가치나 존재감을 알아주지 않고, 심지어 한때 자신으로부터 은혜 받았다고 고마워한 사람들까지 목사 본인으로부터의 연락 오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할 때, 목사는 그들을 향하여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복수(復讐)를 감행하게 된다.

소극적인 방법은, “어디 가더라도 저주받아라!”라 하면서 속으로 혼자서 분을 품는 방법이고, 적극적으로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을 폄하하고 그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 발언을 쏟아놓게 된다. 하지만 이 보복하고 복수하는 성질은 하나님에 대한 보복이요 복수이다. 즉 “왜 제가 한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쳐주지 않고 떼먹으시는 겁니까?”라는 식이다.

필자가 인용한 그 목사님의 설교문에는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적절한 인용해놓으셨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실컷 아무 대가없이 주의 일 봉사하노라고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 사람의 마음을 이미 간파하고 계셨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목사들에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일반 교인들에게 일어난다. 복음을 알게 된 은혜로 산다고 무한정으로 자진해서 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쳐대지만 실은 “나도 신자다. 이 정도로 내가 대단하니 날 무시하지 마!”라는 자존심을 타인으로 인정받으려는 대가를 위함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인간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 하고만 상대해서 일하신다. 예수님의 기도(히 7:25), 성령님의 기도만(롬 8:26-28) 응답하신다. 하나님께서 성도보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우리 자신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자신의 죄를 알기 위해 기회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이 얼마나 큰 불신자로 사는 지를 본인들이 짐작조차 못한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 속에서 어떤 형태의 복수심이 세월따라 계속 누적되어 있다. 세상이 자기 기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데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도 폭발해야 숨통이라고 터이겠다는 것이 육의 본성이다.

이런 복수심을 예수님께서 십자가 심정으로 오늘날 다 자신에게 흡수하시고 긍휼을 내놓으시는데 그 대상이 바로 오직 성도될 자 뿐이다. 그래서 성도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님, 제가 죄인 맞습니다.” 이런 고백이 바로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대하시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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