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나오는 신앙인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돈이 잘 돌아가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이 화목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 받아 환희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모이기에 힘썼고 흩어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행운에 황송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현대인들을 보자.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을 보라. 자기 것 없어질까봐, 자기 것 빼앗길까봐 노심초사 그것만 지킨다고 피곤에 쩌려있다. 하나님 섬길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방법도 잊은 채 온 종일을 돈 생각만하며 보낸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왜 죽어가는 지도 모른다. 왜 아픈지도 모르고 왜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지도 모른다. 모두들 좀비(zombie)다. 즉 '살아있는 시체'들이다. 말이 살아있지 실은 이미 죽은 자들이다. 집안의 딸도 시체요 아들도 시체요 아비도 시체요 어미도 시체다. 진정 살아있는 것은 집안의 개뿐이다.
교회도 예외 아니다. 돈독이 오른 교회만 교회로 인정해주는 세상이다. 복음은 안 듣기로 작정을 하고 교회를 찾는다. 그러다 보니 목사도 돈에 환장했다. 장로도 돈에 환장했다. 이러니 목사도 시체요 온 교인들이 다 시체다. 돈 이야기만 하고 하나님을 돈과 연계시킨다. 교회 안에서 돈냄새를 찾아 해매고 교회 밖에 나가서도 돈 냄새만 맡고 다닌다. 허망하고 괭한 눈동자로 장착한채 거리의 좀비들의 행렬에 합류한다. 이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가정마다 어린 시체들이 잘도 자라고 있다. 하나님보다 세상이 더 중요한 줄 알고, 안퍅으로 배워가는 어린 좀비들, 성공이 하늘의 사랑보다 우선된다고 교육받고 있는 청소년들, 시체가 시체를 양육하고들 있다. 죽어라고 지옥가라고 부모가 자식에게 매질하는 식이고, 자식을 본성상 마귀 노릇을 잘도 해내고 있다. 복음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녀가 복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늘의 방침도 모르는 판국에 구원은 무슨 구원, 천국은 무슨 천국이겠는가!
지금은 경제 위기도 아니요 도덕적 위기도 아니다. 영적 위기다. 영적 의식 불능자들 뿐이다. 뭐가 우선이지 뭐가 중요하며 인간의 사는 보람이나 행복이 어디에 기초하고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성경에 나오는 참 신앙인의 모습에서 찾을 줄 모르는 영적 뇌사자들, '죽은 자'라는 묘사 외에 더 후하게 쳐줄 단어는 더이상 없다.
'세상이 감당치 못한 자들'(히 11:38)
성경에 나오는 이런 자는 오늘날 단종되어 버린걸까?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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