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보에 술꾼에 춤꾼인 예수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인 예수님의 저들이 붙이도록 만드시는 별명)
(눅 7:34,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2010)
요약정보드라마, 로맨스/멜로 | 미국 | 139 분 | 개봉 2010-09-30 | 홈페이지국내 www.eatpraylove.co.kr/ | 해외 www.letyourselfgo.com/site/ 제작/배급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배급),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수입) 감독라이언 머피 출연줄리아 로버츠 (엘리자베스 길버트 역), 하비에르 바르뎀 (펠리프 역), 리차드 젠킨스 (텍사스의 리처드 역), 바이올라 데이비스 (델리아 쉬라즈 역), 빌리 크루덥 (스티븐 역)
줄거리
인생에 한번쯤은 용기가 필요하다?!
딱 일년! 신나게 먹고, 뜨겁게 기도하고, 자유롭게 사랑하라!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맨해튼의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언젠가부터 이게 정말 자신이 원했던 삶인지 의문이 생긴 서른 한 살의 저널리스트 리즈.
결국 진짜 자신을 되찾고 싶어진 그녀는 용기를 내어 정해진 인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보기로 결심한다. 일, 가족, 사랑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무작정 일년 간의 긴 여행을 떠난 리즈.
이탈리아에서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제 인생도 사랑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용기가 필요한 당신을 위한 기적 같은 감동 실화!
지금, 당신과 함께 떠납니다~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Story.do?movieId=51145&t__nil_main_synopsis=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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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채우기(Attraversiamo욕망) VS 빈자리(평생웬수=십자가욕망) 만들기
2011년 6월 27일 월요일 오전 8:09:13 김대식
인간의 본능은 먹는 것과 기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먹는 것은 의식주를 말하며 (일단 배고프면 기도 안된다. 배가 불러야 기도를 해야할 것 아닌가?) (신의 축복 받기이다.)
기도는 바로 먹는 것 즉 의식주의 끊침없는 제공을, 멈춤없는 활동력 생명력 운동성을 말하며(단절의 불안 걱정, 집착에 대한 괜한 미련 떨쳐버리기 등등 평안함 평온함 찾는 불안하지 않는 나 찾기 플레이 play) (신에게 교회 세 채를 드리겠다.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천국의 통로인 거룩한 성전, 안정감찾기, 평안한 전쟁이 없는, 지진 없는 곳. 그런 나(집,공간, 하나님의 집 밷엘)가 되겠다. 축복의 통로가 되겠다.)
사랑은 그 와중에서도 권태롭지 않는 쉼없는 잉여 곧 재미(삶의 의미: 막 살아봤자 금새 권태로우니 안돼 제대로 살아야 돼)를 누릴수 있도록, 더 이상 결핍이 없는 최종의 채워진 충만한 상태로 해달라 라는 것이다 (나를 찾는 나를 사랑하자). (교회 세 채 세워도 썰렁하면 안된다. 충만케 해야한다. 그것이 나도 너도 우리도 심지어 신이 보기에도 심히 좋았더라 이다. 사랑의 충만이다. 부정의 부정이 아닌 긍정의 긍정이다. 천 개의 보석, 묵시의 리좀이다. 묵시 사랑)
(마 6:24, 개역)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눅 12:27, 개역)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그 자체가 허구요 허상이요 우상인 망상 이다. 실상이 아니다.
인간의 손으로 지은 인공물인 교회는 허상이다. 실상은 백합화다.
솔로몬 성전이라는 허상도 이 백합화 라는 실상보다 못 하다. 더 나은 것은 실상인 백합화다.
백합화 보다 못한 것들이다. 삑사리(미끄러뜨리는 실족) 나게 만드는 백합화를 보라.
인간이 자기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늘 인간은 하루에 눈 만 뜨면 저 3가지에 평생 목숨 걸며 살아간다. 그것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밑도 끊도 없는 권태라는 결핍채우기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주인이 그 속에 집을 짖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집 짖고 살고 있는 주인이 바로 인간이라는 집 속에 마귀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주인이 다르니 집도 다르다.
그래서 마귀의 3가지 시험처럼
돌이 떡 덩어리 되는 기적 - 즐겁고 신나게 맛있게 먹고
거룩한 성전에 뛰어내려도 안죽고 천사들이 손으로 받쳐주는 기적 - 거룩한 기도하고
온 천하 만국이 엎드려 머리 숙여 경배하며 절하는 것 - 나를 뛰어넘어서면서 까지 사랑하라
이 3가지 꿈을 안고 인간은 평생 살아간다. 주인이 시키는대로 말이다.
교회를 다녀도 소용없다. 그 교회에 마귀가 주인으로 있어서 이 3가지에 목숨걸도록 만든다. 거룩한 것에 가증한 것이 서면 산으로 도망치라고 했다.
(마 24:14, 개역)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5, 개역)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 24:16, 개역)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마 24:17, 개역)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마 24:18, 개역)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마 24:19, 개역)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 24:20, 개역)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 24:21, 개역)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이 영화를 보면서 그냥 단순하게 보고 넘길려고 했다. 아무 부담없이 쥴리아 로버츠의 밝은 미소나 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영화 내용은 완전히 여성 히스테리나 채울려고 하는 집착에 또 집착만을 보여주는 집착의 집착이다.
인간이 스토커를 만나면 골치 아프다. 참다 참다 못해서 결국은 신고하여 법적으로 처리할 정도로 할정도이면 연예인이 주변사람의 이목을 얼마나 의식하는 것을 알수 있다. 그 이목으로 돈 벌고 먹고 사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자기가 자기를 스토커 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기가 자기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자기를 집착하면서 자기를 괴롭히는 자기를 스토커 하는 자기사랑. 거의 변태적이고 퇴폐적이다. 인간이 신을 찾고 교회를 다니고 신을 찬양하며 이웃사랑실천하고 믿는 이유도 이러하다.
성깔부리며 성질더러운 자신을 자기도 감당하지 못해서 찾는 곳이 바로 종교다. 종교야 말로 그런 자기를 온순하게 길들일수 있는 자기학대의 장소이다.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벌하면서 처단한다. 자기 버릇 자기가 고치겠다고 한다. 마약 끊고 담배 끊고 술 끊고 여자 끊고 남자 끊고 나를 방해하는 나 조차도 끊고 혹독하게 방종한 자신을 벌 내리는 것이다. 자기가 봐도 자기가 너무 심하다 싶으니 줄이자 줄이자 이러다가 내 몸 탈랄라 탈 랄 라 ~~~~~~~~~. 뭐든지 적당히, 지나치면 시작한 것 보다 못하다, 아니함만 못하다.
마침 얼마전에 거기에 딱 맞는 표현을 발견했는데
공각기동대의 일본 발음처럼 스땐따도 알론 꼼쁠렉소 (이빠이 탈 랄 라~~) 군중 속의 고독
stand alone complex 자기가 또렷하면 또렷할수록 자기는 자기로부터 소외 당한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아 ~~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아 ~~~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마음을.
외로우면 안돼 소외되면 안돼 울면 안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길 왜 울어 ~~ 웃어라 캔디야 울면 바보야 웃어라 캔디 캔디 캔디야
그래 다시 시작하자 또 실패해도 또 다시 일어나서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이것을 한마디로 줄여서(합쳐서) 아뜨라베르시아모(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Attraversiamo
이 단어 찾을려고 나에게 나를 최면 거는 그 주문의 문자를 찾고자 방황아닌 방황을
나를 찾고자 나에게서 떠나 나에게로 도착하는 것이다.
건너편에 있는 나를 만나자. Attraversiamo.(건너가자), 저 길 건너에 있는 더 나은 나를 찾아서 떠나자. 나를 가로지르자, 나를 노마니즘 하자. 나를 나로부터 탈주하자.
돌체 파르니엔 (빈둥거임의 달콤함. 달콤한 게으름,빈둥거림의 미덕) Dolce Far Niente te가 붙어있느니 떼 라고 해야겠죠. 돌체 파르니엔떼 (이탈리아어 잘 모름 그냥 겐또)
나도 성악레슨받을때에 이태리 음악을 부르곤 했는데 왜 이탈리아 음악을 하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삑사리 타라고 흐름을 타라고 감각을 타라꼬 그것이 음악의 시작이니까 말이다. 힘을 빼야 부드럽게 흐름을 탄다.
이탈리아어는 소수 언어이다. 소수라고 해서 작은숫자라는 뜻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시스템언어인 의식언어에 반대된다는 의미다. 즉 주류가 될 수 없는 비주류의 언어이다. 즉 방언이다. 사투리다. 미끄러지는 언어이다. 삑사리 언어다.
그래서 주인공이 이 이탈리아 발음 때문에 귀엽고 앙증맞은 표현 때문에 즐거워하며 기뻐한다 웃음(해학 장난)으로 깔깔깔 거린다. 사실 이탈리아 언어가 그러하다. 잉여적인 언어이다. 그러나 의식의 언어를 만나면 다 깨어진다. 파토난다. 분위기 깬다.
아 그러고 보니 일본만화가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은 다 유럽풍이다. 풍경이란 얼굴이라고 했다. 유럽풍경으로써의 기호요 문자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기호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파괴하는 시스템이 바로 주류언어인 미국언어 영어다. 그래서 아바타라는 영화가 일본에니메이션을 다 짬뽕하여 배낀 것 같다고 한적 있다.(괜히 짬뽕 먹고 싶네 단어문자 기호가 권력이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일치성이야 말로 리좀 살아있는 창조가 아닌가? 그것을 어떻게 정치화 시스템화 의식화 한다는 말인가? 흐르는대로 내비둬야쥐! 내비둬 내비둬 렛잇비 렛잇비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감상한 느낌은 의도적이라도 적지 않을려고 했다. 영화 처음부분에 음악이 많이 들어가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서너곡 정도로 들어가서 좀 아쉬웠는데 막상 다 보고 나니까 정말 역겨운 영화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언급해서 적을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아침 먹으면서 어머니랑 대화를 하는 가운데 빈자리 만들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대조하기 좋다 싶어서 적어본 것이다.
빈자리 만들기
에스더는 그 왕비의 자리가 빈자리 곧 죽음의 자리인 반면에
하만에게서는 그 빈자리가 자기의 자리가 되고야 만다.
처음에는 모르드개를 목 매달아 죽일려고 했던 자리였지만
어느새 공로의 자리가 되고 말았고 그 공로는 가로챌려는 의도도 없었는데 하만에게로 돌아가자 그 하만은 왕의 홀(지팡이)과 왕의 뻘건 망토, 그리고 왕의 관으로 씌워지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그 자리가 덮쳐져서 그 자리 자체가 사람을 택해버린다. 에스더에게는 그저 빈자리요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리인데 하만에게는 전혀 꿈꾼적도 없었던 그 자리가 자신이 덮썩 안앉고는 못배기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졸지에 그 두 개의 점이 된 자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빈자리를 빈자리 스스로를 영광되게 하고자 양쪽의 인물을 에스도와 하만을 배치시킨 것이다. 그리고 역전의 십자가가 창조의 빛을 발한다. 높은자는 낮추고 낮은자는 높이는 승천을 주의 피가 피를 높이고자 들려올라간다.
죄인에게 발린 피가 올라간다. 피가 발린 죄인은 그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덩달아 딸려 올라갈 뿐이다.
항상 저주의 자리가 마련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은사다. 그렇게 되면 축복의 자리에 덮쑥 앉아버리는 자가 반드시 생겨서 그 축복과 저주를 뒤바꿔치기 라는 도둑질이라는 배신을 펼치신다.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는 에발산에 올라간다. 예수님도 말이다. 교회란 우리가 올라가는 저주의 자리가 되지 못하고 축복의 자리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저주를 받게 된다.
두 개의 교회가 있다.
이스라엘 내부에 쭉정이와 알곡이 있듯이 말이다.
그리심산 교회요 또 하나는 에발산 교회다. 12지파를 양갈래로 나누어서 각각 6지파씩 두 개의 산으로 오르도록 하고 중앙 세겜에서는 말씀이 선포가 된다.
축복을 외치는 교회 또 하나는 저주를 외치는 교회다.
무슨 수를 써서도 인간에게 축복 주고자 하는 교회가 있고
무슨 수를 써서도 인간에게 저주를 퍼붓는 교회가 있다.
중간에 세겜에서 말씀이 펼쳐진 이유 때문이다. 말씀 스스로가 이렇게 만드시니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펼쳐진다. 믿음도 소용없다. 행함도 소용없다.
오직 그 기준은 예수님의 피다.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세겜에서 결정나듯이 말이다. 기준은 그 어떤 산이 아니요, 그 어떤 조건을 갖추어도 소용없다. 기준은 십자가의 피다.)
아무리 역으로 바꾸어서 인간 쪽에서 부정함을 갖추는 조건으로써 금식하고 회개하고 눈물흘려도 그러면 또 예수님은 반대로 먹보에 술꾼에 춤꾼으로써 차이내신다. 무조건 반대이다.
다윗 왕에게 왜 왕이여서 아까 좀전까지는 금식하고 회개하고 눈물 흘리시더니만? 이제는 왜 먹고 마시고 춤추십니까? 나도 안다. 막안살면 될줄 알았다. 그렇게 자기마음대로 살지 않기 해본들 죽은 아이 못산다. 혹 살려주실까 싶어서 함 해봤다. 장난쳤다. 진지하게 장난을 쳤다. 예수님을 안죽도록 할수가 없다.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릴려고 하는도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구나 십자가로 별세하시러 가심을 막는 장난을 해도 소용없다.
(삼하 12:21, 개역)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삼하 12:22, 개역)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삼하 12:23, 개역)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삼하 12:24, 개역)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삼하 12:25, 개역)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그러나 주님의 장난이(여디디야) 나를 먹고 마시고 춤추게 하시니 안 먹고는 안 마시고는 안 춤추고는 못 배기겠구나. 이것이 오호라 나는 곤고함자로다를 바닥을 친 예수 안에는 정죄함이 없다 새피조물이니 누가 혼인잔치날에 금식하는자 회개하는자 눈물 흘리는자가 어디있는가? 막살지않고는 못배기니 여디디야 여디디야 여디디야 이로다.
(마 11:12, 개역)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3, 개역)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 11:14, 개역)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 11:15, 개역)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 11:16, 개역)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마 11:17, 개역)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 11:18, 개역)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 9:14, 개역)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 9:15,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주님은 자기자신의 중간에 세운 그 빈자리(여디디야)의 영광 떄문에 양쪽을 갈라버렸다. 양쪽의 세워서 이 빈자리(꺽으신 뼈)를 외치신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아뜨라베르시아모를 외치는 성화를 외치는 교회와
반드시 3가지 부정한 물증을 잡히고자 넘어뜨려 저주를 퍼부음을 당하는 교회
(반대로 인간이 눈치채서 거꾸로 설정해 해본들 소용없다. 도로타불이다.)
이 세상은 이 두 신전, 두 주인의 두 집 뿐이다.
천국의 집과 지옥의 집
성령의 소욕이냐? 육의 소욕이냐?
여기는 어떤 조건이 맞았느냐 안맞았으냐로 결정나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 마음대로 집어넣으신다. 이것이 주의 주 되심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식이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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