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치라” (왕상 20:37)
어떤 선지자가 같은 동료 선지자에게 자꾸만 자기를 쳐달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런 감정 없는 이를 치는 것이 싫어서 그 사람은 선지자를 치지 아니하니 갑자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 선지자의 동무를 사자(라이언)가 나타나서 물어 죽여 버렸다.
그리고 난 뒤 또 그 선지자는 아무나 길 가는 사람에게 부탁하기를, “제발 날 심하게 쳐 달라”고 간청한다. 길 가는 사람이 그 선지자를 심하게 쳐버렸다. 그러자 그 선지자는 대만족하면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일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사자에게 물려죽은 그 선지자의 동무는 왜 자기를 쳐달라는 선지자의 부탁을 거절했을까? 무슨 생각으로 자기 동무를 심하게 치는 것을 싫어했을까?
이유는 단 한가지뿐이다. ‘우리는 선지자들이며 우리끼리는 같이 놀아야 될 동지’라는 동료의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자에게 물려 죽은 그 선지자의 의식 속에서, “선지자는 결코 심하게 맞아 망가질 존재가 아닐 것이며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지시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신분적 자긍심이 가득 찼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대로 나오신다. 즉 ‘이 험악한 세상에서 선지자는 심하게 망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형편없이 난데없이 임의적으로 우발적으로 얻어맞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이 세상 공기 전체가 안 더러운 곳이 없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 탁한 공기 속에서 참된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는 이러한 선지자직의 본래의 취지를 자기 자긍심 보존을 위하여 차단시켜 버린 것이다. 이 또한 더러운 선지자 집단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목사가 된 사람에게 제일 큰 문제점은 ‘나는 목사’다 라는 의식이다. 일반 평신도하고 동일하게 한 사람의 ‘1’라는 숫자로만 취급받을 레벨이 아니라고 여기는 의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권의식에 퉁퉁 부은 마음을 가진 목사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온통 얻어맞아 퉁퉁 부은 붕대 감은 얼굴을 나타나시는 것이다.(왕상 20:38)
진정한 이 악한 시대를 제대로 지적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선지자라면 자신을 실컷 패주는 그런 집단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더 이상 선지자가 자존심 다 버리고 외치는 복음에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 때 떠나야 한다. 그게 이 시대의 진정한 목사의 임무다.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고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뀌는 엉터리 같은 사태를 두고 말한다. (아직까지는) 십자가 마을 사람은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분이 어떤 오해를 옴팡 덮어 씌어지는 오해와 피해를 받는가 하면 ‘특정 목사의 신학만을 추종하고 특정 목사만 맹종하고 무분별한 추종하는 세력이요 힘의 단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 마을 사람들은 구차 없이 그 특정 목사를 공개적으로 비난해야 했고 자진해서 ‘나는 결코 그 특정 목사마저 믿지 아니한다’는 양심선언까지 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겪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정말 우리가 바라볼 것은 십자가 지지도 않는 특정 목사나 목사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피 흘렸고 그 피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행사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십자가 마을 사람들은 ‘특정 목사 추종자’라고 몰아세운 그 가해자들은, 이런 진심들이 다 위선이고 거짓이라고 매도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주장하고 싶은 이것이다. “이근호 목사는 오직 피만이 주장하는데 어떻게 성경이 피만을 이야기하느냐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성경을 보고 또 보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도저히 그의 피만을 주장하는 신학에는 도저히 동의 못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외부적으로 차마 이런 고백을 솔직하게 하지 못하면서 그 대신 다음과 같은 발언을 일삼는다. “이근호 신학이 다가 아니거든요. 십자가 마을 사람들 정신 차려세요. 나도 예수님 피 믿고 피만 증거하거든요!”
바로 이런 주장이 십자가 마을 사람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피 앞에서는 ‘목사’라는 신분조차도 일반 평신도와 같이 그저 ‘1’이라는 숫자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나는 목사 아니라도 좋아요. 남들이 나를 목사라고 인정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어요. 그저 예수님의 피 흘리심만 있으면 좋아요”라는 고백이 피 안다는 목사 입으로 술술 나오는 것이 너무나도 피 아는 사람들의 당연히 도리요 상식이요, 따라서 십자가 마을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교제라고 순진한 마음으로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지금이라도 지난날까지 ‘피만이 전부’라고 외쳤던 그 특정 목사가 어느 날 “개혁주의 신학도 긴긴 교회 역사를 통해서 오로지 성령 받은 신학자들의 지혜의 산물로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려주신 것이기에 귀한 진리의 신학으로 복음의 제 값을 하는 신학이니 폄하하면 안됩니다.”고 주장한다면 십자가 마을 사람은 “에라이. 이 얻어맞기 싫어하는 이단아. 드디어 이단 본색이 나오는구먼”라고 배척할 것이 뻔하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누가 세상 권세를 오직 피 때문에 포기하며 사는 자들인가? 진정 피만을 사랑한다면, 왜 피 앞에서 세상의 모든 신학마저 쓰레기로 버려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실컷 얻는 맞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이미 피 안다는 사람들마저도 예외 없이 세상 끝날 까지 계속 해당되는 사항이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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