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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학과 "과연 그러하니라"
미래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현재 상태의 과학 기술의 수준과 발전 속도를 고려하여 2020년에는 어떤 것이 발명되고, 2030년에는 어떤 것들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문입니다. 물론 나름의 과학적 근거와 기준, 통계를 기초로 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예상한 사건의 실현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이미 실현된 것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화상전화, 홈네트워크 서비스, 각종 로봇, 인공장기 등등.......모든 미래학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대부분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죽음의 극복입니다. 미국에서는 노화를 더이상 자연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질병'이라고 전제한 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중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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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과 십자가
권력과 십자가 2010-05-12 10:37:14 이름 : 이근호 권력이란 ‘집중화 작업’을 말합니다. 힘이 자기 몸으로 모이지 아니하면 자신이 누군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기 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힘’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악마가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입니다. 힘을 쌓고 축적하는 식으로 자아를 규정하게 해서 ‘권력의 주체’로서는 자아를 규정하게 하는 겁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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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냐 존재가치냐?
피냐 존재가치냐? 2009-08-25 00:29:37 이름 : 이근호 세상의 모든 인간 행위들은 자신이 아직도 ‘산 자’라는 간주하는데서부터 출발한다. 살아있는 자신들을 더욱더 살게 하기 위한 용도의 학문이요 과학이요 신학이요 목회학이다. 따라서 이들의 목표는 곧 성공학이다. 가정에 성공, 사업의 성공, 목회의 성공, 건강의 성공을 지향한다. 하지만 복음은 완전히 다르다. 삶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예수님의 죽음 속에 모든 이를 ‘죽은 자’로 끌어당겨서 모든 이가 죽었음을 알려주는 것이 복음이다. “한 사람이 죽은 즉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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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반대 편에 서서
십자가 반대 편에 서서교회 사람들은 저 마다 자신이 십자가 편에 서 있다고 믿고파 한다.그러나 그런 믿음은 예수님이 준 적 없다.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십자가 반대 편에 서도록 하셨다.그리고 외치도록 만드셨다.“못 박으라! 못 박으라!”칼로 깊숙이 예수라는 자의 모든 원천을 찔러서 회칠해 버리겠다 라는 외침이다.왜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십자가 반대 편에 서게 만드셨는가?마귀를 보라는 것이다.그런데 도통 마귀가 보이지 않는다.다들 두리번 두리번 고개를 돌리면서 마귀를 찾아 보고 있지만마귀를 찾을 길이 없다.맞다, 마귀를 볼 수 없다.마귀도 못 보면서 예수님을 제대로 볼 리가 없다.마귀를 왜 못 보는 것일까?이유는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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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찮아지는 크리스마스
귀찮아지는 크리스마스 2009-12-14 11:50:05 이근호 산다는 것, 그것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것을 억지로 ‘살았다’는 것으로 우기려면 대충 고생의 잔주름들을 정리하고 난 다음의 일이다. 연말은, 한 해 동안의 손익을 따져보기 위해 자투리로 남겨둔 기간이다. 그 시작점에 크리스마스가 자리 잡았다. 누가 태어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쳐있는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한 해 동안 수고 있어!”라고 본인을 격려하는 특혜를 허락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각자 자신들 뿐이다. 여기에 아기 예수의 탄생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아기 예수와 연관 있는 것이 아니라 몽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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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 사랑이 가능한가?
이웃 사랑이 가능한가? 내가 죄인임을 알고, 그 어떤 누구도 나의 죄를 씻어 줄 자 없음이 분명하고,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나의 죄를 씻어 줄 수가 알게 되었다면 구태여 ‘이웃’을 찾을 필요가 뭐가 있는가? 이 구원의 논리 안에 ‘이웃 사랑’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리하자면, 나의 구원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만이 필요하다면 눈에 보이는 인간들이 나의 곁에 얼쩡거리는 것이 몽땅 귀찮은 일이 아닐까? “다들 내 눈 앞에서 꺼져 버려라. 내 구원에 일말의 보탬도 되지 못하는 것들아!”라고 마구 고함질러도 구원하고 상관없는 일아 아닐까? 그런데 왜 성경에 ‘이웃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고 왜 성경에 형제 사랑이 나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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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십자가를 거부하는가?
왜 십자가를 거부하는가? 문제는 단 하나다. 과연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용서하느냐 여부다. 도무지 이것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이 신학자들보다 학적이고 논리적인 수준이 높은 이유가 여기 있다. “나사렛 동리에서 살았던 그 예수라는 작자가 죽으면서 흘린 피가 어떻게 우리 죄를 씻는지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도록 설명해 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달리 이야기하면, 피가 죄를 씻어주는 과정을 ‘눈에 보이는 식’으로 나열해보라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나 신부들은 분주해진다. 교회를 등장시켜서 ‘피가 씻어준 증거’들로 세상 번영과 축복을 예를 들어 사람들을 납득시키려고 시도해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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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서 본 의존교회-김창길 성도님의 글
뒤에서 본 의존교회 10년 전, 그러니까 2000년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교회 때문에 방황하고 있을 때, 산하엄마와의 인연으로 의존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가보게 되었다. 처음 방문이 수요예배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들의 찬송소리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어떤 감흥을 준다. 바닥은 장판을 깔아 놓았고 의자 없이 낮은 책상에 성경책과 찬송, 그리고 노트를 올려놓고 필기를 하며 예배를 드린다. 갓난아이에서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예배를 드린다. 가족단위로 앉아서 예배를 드렸고 주일에 나오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요일임에도 작은 예배당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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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려치우고 싶다!!!! -김창길 성도님의 글
고객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제 오전에 입금 했는데 왜 오늘 오전에 택배가 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몇 시에 택배를 보냈냐는 것이다. 어제 오후에 보냈다고 했다. 택배 보낼 것을 취합하여 오후에 모두 발송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전에 택배를 보내든 오후에 보내든 그날에 발송되는 것은 대부분이 그 다음날 배송이 다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배송은 택배 기사의 운행 경로에 따라서 일찍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다. 상황설명을 했다. 그래도 막무가내이다. “오전에 송금을 했으면 오전에 택배를 보내야지……. 토요일에 주문을 했는데 송금을 못해서 월요일 오전에 붙였는데……. 그동안에 거래를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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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설교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2009-06-27 18:08:52 이름 : 이근호 의존교회 김명현 목사님의 ‘죽다’라는 아주 짧은 글 (“어제까지 살아있었으니 오늘쯤에는 정말 죽고 싶은데 왜 글 쓰는 지금까지 살려져 있는가?”) 속에서 설교자로서 겪는 아픔이 한이 되어 두꺼운 녹처럼 마음 벽에 들어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왜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하는 자에게 그런 마음의 고통을 안겨주시는 걸까요? 그것은 오직, ‘복음 전달’에 있어 그 어떤 세상적 대가를 기대하지 말하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 전달 자체가 하나님께서 받은 상(償)이라고 했습니다. 즉 아무나 이런 상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천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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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와 찬양은 행위가 아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놀라운 성실하심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주체로 하여 성취하신 의(義)는 성도에게 두 가지 방향성을 만들어 냅니다. 그 두 가지 방향성의 이름은 각각 은혜와 감사라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도를 몸으로 비유할 때(이것은 따로 존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머리에서 몸쪽으로 어린양의 피가 흐를 때 일어나는 방향성의 이름이 바로 은혜입니다. 즉, 구원에 있어서 내가 그 피를 끌어당길 만한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값없이, 나는 아무 한 것도 없이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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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열광
월드컵 열광 “내게 절하면 한국 축구팀을 월드컵 16강에 넣어줄게”라는 유혹을 강렬하게 받는 것은 이 세상 말고 달리 떠날 곳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머뭇거리고 얼쩡거리면 어느 골목에서든지 예쁘장한 악마가 탁 튀어나와 유혹 목록을 건네게 된다. “네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돌이 떡으로, 돈으로 돌변시키고 싶지. 그지?” 악마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신기한 기적이 너에게 일어나서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인물이 되고 싶지. 그지? 포부를 좀 더 키워 보자구. 이건 어때. 세상 전부가 다 너의 것이 되는거야. 그러면 너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 그지?” 악마는 사람들에게 제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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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 월급 100만원
목사 월급 100만원 수년 전이었습니다. 헌금이 잘 안 나와서 맨 날 적자였습니다. 우리교회 교회 재정을 맡은 조규현 장로님께서는 그 날짜가 되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목사 사례금을 농협에 넣는 일 때문에 늘 걱정하셨습니다. 그 당시 아무리 적게 잡아도 목사 기본 생활비가 200만원이 필요했던 때였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십일조 안 해도 구원받는다는 그 기쁜 소식(?)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네들 살기가 급선무였는지 모르지만 교회 돌아가는 사정에 나 몰라라 했습니다. 이 때 이상규 집사님께서 이런 제안을 하셨습니다. (지금부터의 내용은 제가 일방적으로 지어낸 가상 시나리오입니다.) 이상규 집사님: 조장로님, 목사님 사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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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서 예수 이야기를 하다니...
교회에서 예수 이야기를 하다니... 2009-07-07 20:09:26 이름 : 이근호 “교회란 사람들의 모임이다. 오늘날 교회는 현대인들의 모임이다. 왜 모였는가? 서로의 아픔과 한 맺인 것에 대해서 위로가 필요해서 모였다. 사회에서 당했던 경제적 어려움, 가정에서 버림받음, 직장에서의 따돌림, 정신적으로 외로움, 육체적 질병으로 인해 고통, 이런 저런 한(恨)들을 갖고 교회에 나왔다. 그래서 하나님께 위로도 받고 해결도 받고 복도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왜 목사는 ‘예수’라는 먼 과거 인물 중심으로 설교를 하나? 왜 예수 믿으라고 외치나? 교인들은 예수를 믿고자 교회 나온 것이 아니다. 나를 더욱 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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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과 영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육과 영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2009-05-04 08:59:01 이름 : 이근호 첫째 의견: “육 밖에 없다.” 심리학, 신경정신학 계열의 과학과 철학 및 불교계의 의견이다. 영을 거론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든 간에 비과학적인 신화시대의 산물인 영지주의(靈知主義)적 전통에 해당된다고 보는 것이다. 영이란, 인간의 정신활동이 낳은 결과적 현상에 관한 언어적 표현에 불과하며 인간의 정신활동이라는 것도 실은 두뇌에 있는 물질인 세포들의 활동상황에 해당된다. 물질의 메타구조를 가지고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은 실체가 따로 없고, 단백질로 만들어진 세포가 그 실체를 대변한다. 이로서 인간은 자연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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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이 오셨다
성령이 오셨다. 성령이 오시면 더 기대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다. 알고 싶고, 듣고 싶고, 믿고 싶은 것도 모두 복음의 세계뿐이다. 세상이 복음과 어떤 식으로 엮여있는 지가 궁금해진다. 만약에 여전히 기대할 만한 것들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죄로 이어지는데 왜냐하면 악마의 유혹이 관여되었기 때문이다. 육은 육의 세계를 그리워한다. 듣고 싶은 것도 세상 이야기요 교회 이야기이다. 인간 이야기이다. 어느 신학자, 어느 교회 이야기, 어느 목사 이야기도 다 세상에 속하는 이야기다. 예수님 이야기가 아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그들은 예수님께서 되살아난 것에 감사했고, 예수님의 죽으심이 실은 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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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사와 설교와 복음
관심사와 설교와 복음 목사의 설교는 목사의 평소 관심사를 드러낸다. 목사가 평소에 십자가 복음에 관심이 있다면 설교에도 그것은 토대로 하여 진행되고 최종적으로 그 십자가 복음만을 부각하는 설교가 된다. 반면에서, 목사가 평소의 관심사가 자기 생존에 몰두해 있다면 결국 설교가 교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질책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나쁜 놈들아. 왜 돈을 안 내놔. 교회에 돈 좀 내놔라!”라는 결론을 부각한다. 물론 어느 뻔뻔한 목사가 노골적으로 돈 내라 라고 하겠는가. 단지 ‘성령을 따르는 삶이 되어라’ 혹은 ‘말씀에 복종하려고 노력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이라’라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발언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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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교인들의 배짱
요즈음 교인들의 배짱 2009-11-20 11:59:11 이름 : 이근호 내 안에 누가 들어오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내가 간섭받는다. 내 안에 나만 있어야 한다. 이 생이 다 할 때까지 나만 잘 살면 그만이다. 그래서 예수라는 분이 실제로 살아서 내 안에 들어오면 안 되고, 단지 내 밖에 그냥 타인으로 계셔서 내가 믿고, 경배하고, 예배하고, 찬양받으시고, 헌금 받으시고, 존경 받으시고, 신학을 통한 연구 대상으로 계속 머물러야 한다. 만약에 주제넘게 나라는 경계선을 타 넘고 내 안까지 침범할 낌새를 보이면 나는 살기 위해서라도 예수를 버려야 한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도 예수도 다 무의미하다. 부모에게 자식이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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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로마 여행기(1)
독일 로마 여행기 (1일째 )깊은 밤, 도둑고양이 모양 몰래 독일 쾰른 시에 들어갔다.사방이 고요하다. 모두 잠자고 있다. 그래서인지 낯선 곳이라는 의식이 들지 않는다. (2일째)아침이 되자 모든 것이 윤곽이 드러난다. 벌써 나는 이방인이 되었다. 거리에 나서자 온통 독일 냄새다. 쾰른 대성당이 시야를 가린다. 높이 157m두 개의 첨탑안으로 들어서자 엄청난 공간을 품고 있다. 그래서 장엄하고 신성한가? 시커멓게 수백 년 세월을 짋어진 잿물을 홀로 뒤집어쓰고 있기에 더 고상해 보인다.천당 만들기 참 쉽다. 하나님께서 바깥의 넓은 공간을 버리고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공간에 자진해서 갇힐 것이라는 그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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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이 주는 느긋함
복음이 주는 느긋함 2009-12-04 10:39:14 이름 : 이근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 있듯이(요 8:32), 자유함을 만끽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성경 말씀은 삶의 여유로움과 느긋함을 더욱 느긋하게 만든다. 말씀을 보면 볼수록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거나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수리 날개가 자꾸만 추가되어 존재 자체를 가볍게 한다. ‘존재의 가벼움’! 존재의 가벼움은 상실과 함께 찾아온다. 사도행전 27:38에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로 이송되어 가면서 거센 풍랑을 만나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같이 배를 타고 갔던 모든 죄수들과 선원들이 ‘상실에서 오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처음에는 죽음에

-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