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주는 느긋함
2009-12-04 10:39:14 이름 : 이근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 있듯이(요 8:32), 자유함을 만끽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성경 말씀은 삶의 여유로움과 느긋함을 더욱 느긋하게 만든다. 말씀을 보면 볼수록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거나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수리 날개가 자꾸만 추가되어 존재 자체를 가볍게 한다.
‘존재의 가벼움’!
존재의 가벼움은 상실과 함께 찾아온다. 사도행전 27:38에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로 이송되어 가면서 거센 풍랑을 만나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같이 배를 타고 갔던 모든 죄수들과 선원들이 ‘상실에서 오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처음에는 죽음에 직면에서 어느 것 하나 잃지 않기 위해 집착했던 자들이 양식마저 아낌없이 검푸른 파도 속으로 집어던진다. 나중에는 배까지 버린다.
버리고 다 버린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행하시는 장면처럼 떡을 가지고 축사하지만 이는 더 얻고자 함이 아니라 도리어 모든 것을 미련 없이 상실케 하시는 하나님을 감사하는 마지막 파티였다. 사도 바울은 진리를 안고로 느긋했다.
이처럼 구원이란(행 28:1) ‘상실’이라는 이름의 튜브를 통과하면서 발생한다. 누가복음 1:44에서 마리아와 그녀의 친족 엘리사벳은 태아가 태반 속에서도 기쁨으로 뛰노는 것을 듣게 된다. 처녀가 아이를 뱄다는 소문으로 둘러싸일 난처한 처지에 놓인 마리아지만 도리어 기쁨의 장(場)이 자기 내부로부터 발산되어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음을 감지한다.
가벼움, 느긋함, 기쁨, 자유, 이런 것들은 진리가 너무나도 진리롭기에, 오류가 아니기에, 그 안에서 성도에게 만끽토록 한다. 이런 느긋하다 인하여 성도는 자아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어느새 상실되어 있다.
자아에게 비중이 가 있는 신앙생활은 유사 신앙생활이다. 어느 성경 구절을 대해도 심적인 부담으로 덮쳐진다. 초조하다. 조마조마하다. “말씀대로 못 살면 어떡하나? 완벽한 해석을 못해내면 어떡하나? 그러면 지옥가게 되나? 나중에 치매 걸려서 내가 예수를 모른다고 했을 때, 그 때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 들이닥치게 되면, 그 때는 이미 나의 기름은 말라버린 후가 되잖아”
혹은 “나의 신학이 틀렸으면 어떡하나? 내가 복음을 잘못 증거하고 전달했으면 그 벌은 고스라니 나에게 다 오는 것인가? 그 벌의 종류가 어떤 것일까? 욥처럼 형편없이 당하지는 않을까? 나의 그동안 쌓아올린 명예와 체면과 위신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 가버린다면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마저 나를 비난한다면 그 저주를 회복하기 위해 사전에 나는 어떤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저축을 해놓아야 하나?”라는 불안감에 휘감기게 된다.
바로 이런 현상은 복음이 주는 무오류보다, 자신의 오류에 신경을 쓰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당연히 ‘악마의 흔들기’에 말려들었다. 즉 자기에게 자기밖에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존재의 무거움!’ 어두워,워,워!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다. 이 굴복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놓은 자신의 의와 거룩도 더불어 상실된다. 이것이 바로 자유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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