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유령

“고야의 유령”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700년대 후반 스페인. 교황의 권위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공간. 아마 유대주의자를 색출하기 위한 비밀경찰 같은 존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에게 아주 예쁘게 생긴 처녀가 걸려듭니다. 새끼 돼지 요리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교회는 처녀를 유대주의자로 몰아세웁니다. 처녀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걸고 맹세컨대 자신은 유대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잔인한 고문에 결국 자백하고 맙니다.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고백은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됩니다. 아래와 같은 교회의 논리 때문입니다. 

교회는 말합니다.

“진정한 신자라면 그 어떤 고문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 

하지만 처녀의 아버지가 추기경 중 한 명을 납치해 고문해 본 결과, 그 역시 허위 자백을 하게 됩니다. 교회의 논리대로 하자면 그 역시 진정한 신자가 아닌 셈이죠. 

교회의 논리가 말도 안 된다며 항의하실 분들이 많을 듯 합니다만, 사실 이것은 인간 안에 있는 본성 중 하나입니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아주 깊은 함정이죠. 교회의 논리를 정리하면서 조금 확장해 볼까요? 

예수 안에 있다. → 예수님께서 보호하신다. → 그러므로 당연히 그 어떤 고문도 이겨낸다.

예수 안에 있다. → 예수님께서 보호하신다. → 그러므로 당연히 부자된다.

예수 안에 있다. → 예수님께서 보호하신다. → 그러므로 당연히 건강하다.

예수 안에 있다. → 예수님께서 보호하신다. → 그러므로 당연히 바울 서신의 하라, 하지 말라를 지킬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한 세트(set)입니다. 분리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예수 안에 있는지 예수 밖에 있는지, 구원받았는지 구원받지 못했는지, 십자가 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를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왜요? 고문을 이겨내는지, 부자인지, 건강한지, 율법을 지키는 지만을 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 자백을 하면 예수님께서 보호하지 않으신 것이고, 예수님께서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예수 안에 있지 않은 것이며, 그는 결국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지기 때문이죠. 

성화론이 우리 본성과 잘 맞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도대체 알 수 없던 구원 여부를 확인 가능하고 예측가능하고 접근 가능한 것으로 전환시키기! 구원의 양적 측정! 그것이 바로 성화론을 움직이는 원리입니다.

그럼, 위 논리에 십자가를 대입시켜 보겠습니다.

십자가 사건 → 모든 것이 죄로 드러난다. → 그 죄를 모두 용서하셨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십자가 사건도, 모든 것이 죄로 드러나는 것도, 그 죄를 용서받았다는 은혜도 모두 인간의 영역 밖에 있다는 겁니다. 즉, 내가 따로 등장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십자가 사건을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모든 것이 죄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주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그 죄로 모든 것을 용서받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옆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그건 죄에 불과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귀하께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죄 짓는데 귀하가 들러리 서다가 덜렁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영원히 비밀입니다. 구원의 측정 불가! 그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 쯤 되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고문을 참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