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ers of Jesus Christ-Iamachristian.org
실제적 다신론

실제적 다신론  신이 하나인가 여럿인가 하는 문제는 종교마다, 시대마다, 사람마다 여러 의견들이 있어 왔다. 기독교는 신이 하나밖에 없음을 믿는 유일신론(eæieaeOa Monotheism)이다. 신의 호칭부터가 하나님이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의 하나님, 이슬람교의 알라신, 힌두교의 시바 신, 중국의 상제, 한국 전래의 하나님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러나 간혹 불신자와 대화하는 중에 상대방의 신과 그 종교를 부인해 버리면 당장 시비 밖에 생길 것이 없으니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다 보니, 불신자에게는 기독교인이 마치 여러 신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신에 대한 관념과 인식이

부족신관

부족신관 성경의 하나님 가운데 가장 오해될 소지가 많은 것은 히브리 성경 초반에 나타난 하나님이다. 동방의 조그만 부족 이스라엘을 택하여 그들과 반대하는 모든 족속을 잔인하게 쳐부수는 모습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자기 백성밖에 모르는 원시적인 부족신(Y≫ðeae)의 모습에 불과한 것 같다. 이런 하나님으로 오해 될 수 있는 대표적인 성경 기사로는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상식적으로 어떤 책을 잘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 주관적 해석 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일지나 회의록 같은 것 말고는 독자는 반드시 저자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한

장애인을 차별하는 하나님-제사장 제도

장애인을 차별하는 하나님-제사장 제도 레위기에 보면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많이 나온다. 신체적 결함을 가진 장애인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자격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성전 가까이도 못 오게 하고 심지어 몹쓸 병에 걸린 자나 사생아까지 그러하다. 외국인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구하지 말라고까지 한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 문제로 인해 철두철미 배타적이고 차별적이며 단지 중동의 한 민족의 미숙한 신관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문제는 레위기의 전체 주제와 연결시키지 않고, 문자적 해석에 근거하여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판단해선

잔인하신 하나님 - 가나안 정복 이야기

잔인하신 하나님 - 가나안 정복 이야기  모세의 지도 아래 풀려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의 지체가 있었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산물이 풍성하고 땅이 비옥하다는 뜻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산업이라고는 양봉과 목축밖에 할 것이 없는 척박한 땅이라는 의미이다. 애굽의 풍요와 비유가 되며 오직 하나님만 전적으로 바라보고 의지해야만 하는 땅이며, 바로 그런 뜻에서 신자에게는 도리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다을 향해 진군하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한다. 애굽에서는 이스라엘의 어린이 심지어 육축의 한 마리도 상하지 않게 하던 하나님이 돌변하여, 가나안 땅에는 여자·노인·어린아이·육축까지 씨도 남기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또

율법주의적 신관

율법주의적 신관 기독교는 인간이 자신의 선행이나 공적에 의해서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에만 영생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그럼에도 기독교 신자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기준으로 삶을 살고 있다고 비난한다면, 이는 기독교 신자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십자가의 예수가 근원적으로 부인되는 결과가 된다.

율법주의적 믿음과 삶

율법주의적 믿음과 삶 모든 종교에는 나름대로의 도덕률 내지 계명이 있고, 그것을 잘 지켜 죄를 짓지 않으면 나중에 심판을 면하고 내세에 복을 받는다는 것이 일반인이 율법에 관해 갖는 공통적인 견해다. 이런 권선징악적인 심판의 하나님을 믿는 것을 율법주의적 신관이라고 하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율법주의적인 삶이라고 한다. 기독교의 율법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언제 주셨는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으로 구원해내신 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 여정길의 시내 산에서 주셨다. 이미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얻은 백성에

왕으로서의 하나님

왕으로서의 하나님 일반적으로 왕이라는 메타포(Metaphor-eßec)는 그 상징적인 의미와 그것이 우리에게 떠오르게 하는 형상과, 또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부분에 있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거나 율법주의적인 신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만은 이것을 다른 종교에서처럼 일률적으로 취급할 수 없으며 신자 개개인의 아주 주관적인 문제로 보아야 한다. 구약의 이스라엘인들을 포함하여 기독교인들이 여호와를 왕이라는 호칭으로 부를 때, 율법주의적-----신자에게 왕이라는 호칭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모든 주권을 가진 자라는 뜻이다. 그 주권의 뜻에는 생사여탈(ßæÞYæ¨÷¬)권과 생존을 유지시켜 주는 것과 외적으

조건부 신관-이기적 신앙

조건부 신관-이기적 신앙 신자가 선한 일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기뻐하신다. 그러나 그 선한 일에 비례해서 축복을 내리지는 않는다.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보다 특별히 복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 훨씬 복을 많이 받고 있거나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신관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성경에는 그렇게 오해될 수 있는 구절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럴 때는 항상 앞뒤 문맥과 성경 전체의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석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문자적인 해석의 오류에 빠진다.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스스로 하나님이 된 사람들

스스로 하나님이 된 사람들 어떤이에게 아무리 전도해도 씨가 먹히지 않는데 그가 드는 이유는 한 마디로 '예수 믿는 자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데 질렸다'는 것이다. 실컷 기도해놓고 기도한 대로 응답이 안 되고 결과가 정 반대의 나쁜 모양으로 나타나도 하나님의 뜻, 또 전혀 기도도 하지 않고 있다가 마치 카지노에서 대박 터지는 모습으로 행운이 나타나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고 너무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더 분통터지는 일은 불신자도 하지 않는 분명히 잘못된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밀어붙이고 강요하는 꼴은 정말 못 봐주겠다는 것이다. 한 예로 자기 동네의 아주 큰 교회에 주일 예배를

하나님과 생태계 문제

하나님과 생태계 문제 인간과 자연세계는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그의 피조물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자연 사이는 도저히 상호 넘나들 수 없는 존재론적 간극(EaÐA)이 있다. 자연의 신비함과 그 속에 드러난 신성(aeao)까지 부인할 필요는 없지만 피조물에 불과한 자연을 신성시(aea¡aE)할 수 없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신격화하는 것과 그 피조물에서 신성을 발견하고 찬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보았을 때 어디까지나 그 작품에 베어 있는 작가의 정신·혼·의도 등을 발견하고 찬미하는 것이지, 그 작품 자체가 작가 당신은 아닌 것과 같다. 물론 그 작품이 그 작가의 전부 혹은 전 인생을 드러

어느 신학자의 신관

어느 신학자의 신관 인간이 절대자에 대해 절대적인 입장을 취하는가 아니면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는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 두 가지 종류의 사람으로 나눠 볼 수 있게 한다. 신관이 나이가 들수록 변천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이다.스스로 보다 의미 있는 신관을 찾아서 끊임없이 평생을 구도자적인 자세로 사는 것은 평생을 다 보내도 완전한 신관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과 시간에 따라 자기의 감정과 지성적인 수준과 영적인 상태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신관이다. 변치 않는 신관을 유지한다는 것이 어린아이 때에 교회의 주일 학교에서 들었던 신관을, 커서도 아무런 반추작용 없이 유지하고 있거나 보수적

신은 존재냐 비존재냐?

신은 존재냐 비존재냐?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한 마디로 잘 설명해주는 성경 구절이 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 1:17). 썩지 아니하다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영원하다는 것이며, 보이지 아니하다는 것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영이라는 것이며, 홀로 하나라는 것은 그 존재가 존재하게 되는 근원이 외부에 있지 않고 스스로에게 있어, 자신의 뜻이 아니고는 그 어느 것에도 구속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주의 모든 사물과는 절대적으로 다르다. 세상의 어떠한 존재도 썩으며, 보이며, 외부와의 관계에서만 그 존재가 존재다워지지

초자연주의 신관

초자연주의 신관 모태 신앙인으로 어려서부터 전통적인 교회 그것도 강압적인 교회에 계속 출석한 자의 경우는, 자신의 신관에 대해 갈등을 많이 겪고 어른이 된 뒤 그 신관이 변화되거나 심한 경우 기독교 신앙마저 포기하는 경우를 왕왕 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그런 사람이 상당히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정 개인의 문제이지 성경이 이야기 하는 신관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그런 사람들이 만났던 목사들이 잘못 가르쳤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 그 책임이 제일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 스스로 성경을 제대로 탐구해 보았어야 할 책임마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구원만큼은 어느 누구도 개입될

흔들리는 신관

흔들리는 신관 앞에서 지적한 대로 교회 주일학교에선 의도적으로라도 초월하시고 권선징악적인 하나님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잘못하면 벌을 주시는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 반대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여 착하게 사는 자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보상해주는 사랑의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하면 당연히 벌을 받는다는 것을 대조하여 가르친다. 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내용의 한 가지 주제와 궁극적인 도착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인데, 어렸을 때부터 이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맛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 사랑은 반드시 죄를 벌하시는 공의가 성취되어야 완전해지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면

초월이냐 내재냐

초월이냐 내재냐 예수님만이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기독교의 선언은 하나님이 타종교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몇천 년간 암흑 속에 살아가도록 방치했고, 한국에 개신교가 들어온 것이 백 년밖에 안 되었는데 그전에 살았던 우리 조상은 모두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말인가 하는 의심과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개념과 양립 불가능한 교리라는 결론을 내린다. 누구는 떡을 주고 누구는 매를 주는 하나님이라면 그 공평성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공평성이란 반드시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질적인 판단을 정확하고도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좋은데도 점수를 박하게 매기거나

성찬의 4중 행위(Four Actions)와 한국교회 예배의 내일

성찬의 4중 행위(Four Actions)와 한국교회 예배의 내일 글 / 김순환 교수 들어가는 말 한국 개신교회의 대다수는 그 동안 교파와 교단에 상관없이 내용과 형태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설교가 중심이 된 예배를 드려왔다. 이런 양태에 이렇다할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많은 교회들이 전통적인 예배에 대한 관심이나 동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한 예배에 대한 관심을 확대해 가면서 예배의 다양성이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 가운데는 전자와 같이 예배의 예전적인 측면의 중요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성찬의 위상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후자와 같이 현대적인 구미

(1)한국교회사

한국 교회사 정리1. 서론 지난 2세기 동안 세계 사조, 특별히 기독교 사상은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격변의 변천 과정을 거쳐왔다. 서구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역사에 등장하면서 종교를 시대적 역사적 산물로 보려는 움직임이 기독교계 일각에서 일어나 종교 진화론과 종교 사학파의 영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유럽 기독교 지성사의 변천이 19세기 중반부터 미국 기독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전통적인 청교도 개혁주의가 지배하던 미국 기독교가 유럽으로부터 밀려오는 고등비평과 찰스 다윈의 진화론등 현대사조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거의 같은 시기, 특히 19세기 후반 남북전쟁 이후부터 미국 사회는

(3)한국교회사

11. 선교사들의 사상과 삶 :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한국인과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이 과연 무슨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우리가 바로 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사무엘 마펫과 마포삼열과 소안론 곽안련은 맥코믹 출신의 선교사들이다. 특히 소안론 선교사는 성경통신 강좌를 최초로 한국에서 시작하여 성서연구를 저변화시키는데 큰 공헌을 세웠다. 그는 음악적인 재능에도 뛰어나 몇편의 찬송가를 저술하기도 했다. 신학적인 면에서도 보수적인 선교사였다. 관안련 선교사는 그의 시카고 대학 논문인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해외 선교연구의 하나의 모델로 평가받은 작품이다. 표준성경을 비롯 성경주석, 평양신학교 교재, 그리고

(2)한국교회사

6. 하나님 호칭논쟁 : 처음 전래되고 성경이 번역될 당시, 19세기 말과 20세기초에는 천주냐 ,여호와냐 ,하나님이냐 아니면 하느님이냐를 놓고 선교사들 간에 적지 않은 마찰과 갈등과 논란이 있었다 예를 들어 언더우드와 기포드 선교사는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천주로 호칭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게일과 마펫 선교사는 하나님으로 호칭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하나님 호칭논쟁은 우리말에서 유일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는 여러신들을 여러 신들을 의미하는 신(god)과 대비되는 유일신 하나님(GOD)의 명칭이 있으나 대개 비슷한 한자를 쓰고 있는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일반적인

(5)한국교회사

24. 김교신과 무교회주의 : 1930년대 한국교회가 일제의 회유와 압력으로 흔들리며 일본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합류하던 그 때 민족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준 인물이 바로 김교신이었다. 일본에 유학하면서 친일로 전향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조선사람으로 남았던 민족주의자, 그러면서 교회의 제도와 가견적인 교회관을 거부하고 불가견적인 교회를 유일한 교회로 주창하며 기성교회를 주저하지 않고 공격했던 예리한 비평가, 때문에 그는 마치 초대교회 교부 오리겐처럼 예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은 인물이었다.무교회주의는 1930년 한국 장로교 총회가 자유주의와 아빙돈 성경주석 여권문제 창세기 저작권 문제처럼 총회적인 차원에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uy Now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Blog
About Us
Message
Site Map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Terms of UsePrivacy Notice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

Home
Gospel
Question
Blog
He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