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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교회사

18. 아빙돈 단권 주석 논쟁 : 아빙돈 단권주석의 출판은 한국교회에 적지않는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감리교에서는 대단한 환영이었지만 장로교에서는 교단적인 차원에서 그 주석을 장로교 내의 목회자들은 절대 구매하지 말 것을 결정하였고, 그 주석의 번역에 참여한 장로교 목회자들이 총회에서 문제시되어 아빙돈 단권주석의 파장은 한국교회 전체에까지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왜 이주석이 논쟁거리가 되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먼저 그 이유를 밝혀두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 50주년이 되도록 사실, 한국인들에 의해 기술된 주석은 고사하고 번역주석하나 없었다. 이런 국내의 현실을 잘 알고 감리교에서 선교 50주년을 맞아

(1)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행위론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행위론- 율법과 은혜는 대립적 의미인가 -십자가의 도(道)는 구원의 도이다. 그러나 이 구원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과 논쟁이 쏟아져 나와 교회를 혼란케 하고, 그 결과 이단이 생겨나고 교파가 갈라지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이번 논쟁에서는 구원에 대한 하고많은 주장과 주의(主義) 가운데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는 두 가지 논제(論題)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즉 구원에 율법을 준수하는 행위가 유효한 것인가? 또는 구원이 행위를 떠나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 거져 주어지는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다루려 한다. 율법과 은혜를 두고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던 이단에 대한

설교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

설교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의 뜻이니, 당연히 잘 전해지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잘 하지 못한다는 말은 듣는 까닭은 무엇일까?설교를 잘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설교자가 스스로 설교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대개 설교자 자신은 설교를 잘 하는데 듣는 청중이 무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설교자가 설교를 잘 하고 청중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인사치례로 설교에 은혜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자기가 설교를 잘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설교자가 자기 스스로 설교를 잘 하고 있

목사의 자기 점검수칙

목사의 자기 점검 수칙 01. 태초에 하나님은 목사를 만드시지 않고 사람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목사가 되려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02. 교인들은 목사가 안수 받는 순간부터 목사를 인간 아무개가 아닌 목사로 본다. 그러므로 목사는 죽을 때까지 목사답게 살아야 한다.03. 목사의 주요 역할은 교인들이 주님의 은혜를 입게끔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목사 자신이 누구보다도 성결해야 한다.04. 참된 목사가 되기 원한다면 우리 사회와 교회의 온갖 병리에 물든 눈을 미련 없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05. 목사는 구도자다. 구도자는 고독해야 한다.

각 은사의 정의

각 은사에 대한 정의 아래에 열거된 27가지 은사는 C.Peter Wagner교수가 분류한성령의 은사에 대한 정의이다. 1. 예언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세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하나님의 성별된 말로 전달하는 역량이다. 2. 섬기는 일 섬기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의 일과 연관된 과업 가운데 충족되지못한 요청 사항을 확인하고, 그 요청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자원을 사용하여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역량이다. 3. 가르치는 일 가르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

(1)12사도들의 사역

예수님의 제자, 12사도들의 사역 사도(使徒, Apostolus)라는 말은 '파견된 자', '사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샬리아(shaliach)에서 유래하고 그리스어의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의 동의어입니다. 사도의 자격은 성육신하여 역사적이고 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간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만났고, 그 분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4대복음서 에서는 예수의 제자 12명을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마가복음3:16-19) 그러나 그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넘긴 가룟유다가 자살하여 사도직을 버리자, 사도들은 '예수께서 활동하실때 우리와 같이 있던 사람'중 하나인 맛디아에게 사도직을 맡겼다(사도행전1:21-2

신사도 운동, '오직 성경' 정면 부정

“신사도 운동, 개혁교회의 ‘오직 성경’ 정면 부정” 기독교학술원 발표회서 장신대 최윤배 박사 발제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은 7일 오후 서울 종로 학술원 1층 세미나실에서 제10회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졌다. 최윤배 박사(장신대 조직신학)가 ‘신사도 영성과 개혁주의’를 주제로 발표했다.최 박사는 “정작 신사도 운동이 발생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그 영향이 최근 급격하게 감소했지만, 그 반대로 한국교회에서는 신사도 운동의 신앙과 신학이 평범해 보이는 각종 신앙수련회나 신학세미나 속에 암암리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교회와 신학, 목회와 선교를 위해 신사도 운동을 신학적 관점, 특별히 ‘개혁주의

(2)12사도들의 사역

12. 가룟유다(유다출신으로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넘긴 자)가룟유다(히브리어: יהודה איש קריות) 또는 가룟 사람 유다는 유대 출신으로 가룟 시몬의 아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나 나중에 예수를 배반하여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죄인이자 사탄의 하수인이요, 배신자의 대명사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가룟'이란 말에는 '가룟(남부 유대의 지명) 사람' 외에 '암살자', '가짜', '위선자', '거짓말장이', '단검'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가룟 유다는 가룟 시몬의 아들이며,예수 그리스도에게 선택받은 12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수학적

사탄은 언제 어떻게 생겼나요?

사탄은 언제 어떻게 생겼나요?사탄은 하나님의 피조물“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 성경에 사단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뱀을 사주하여 앞세우고 자기는 뒤에 숨어있었습니다. 사단에 관한 일언반구도 없다가 불쑥 나타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아름답게 교제 동행하던 아담을 유혹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만듭니다. 그 기원과 출현 과정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사단이라는 용어는 역대상 21:1에서야 처음 나옵니다.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친밀함 없어도 목회 잘할 수 있다

풍성한 인격적 교제 위한 ‘3T’ 강조새들백교회의 담임이자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인 릭 워렌 목사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넘치도록 누리는 방법(How to Have a Thriving Intimacy With God)”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발표했다.그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친밀함이 없이도 사역은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는 도전적인 말로 글을 시작했다. 그러나 단서를 달았다.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고.그는 “누구나 잠깐 동안은 속일 수 있지만 오래 가진 못한다. 우리에겐 뜨거운 헌신적 삶과 예수님과의 친밀함이 모두 필요하다”며 “목회자들은 간혹 사역의 분주함과 설교 준비로 인해, 정말 중요한 예수님과의

[1]듣기 싫어하는 설교

1.1. 듣기 싫어하는 설교 1.1.1. 하나님이 보이지 아니하는 설교 설교의 주인은 바로 말씀의 주인이신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 가운데 하나님이 보이시지 않고 설교자나 세상의 온갖 사건들과 저속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만 보인다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물론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지나가는 일은 아니다. 세상 이야기도 있고 예화도 있고 설교자 자신의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데 방해되는 말은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목사의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기

[3] 듣기 싫어하는 설교

1.1.6. 목사의 착각적 과신(過信) 인간이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일의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다. 그리고 일정한 일을 오랫동안 계속하면 그 분야에 전문인이 되어 스스로 진전시킬 수 있는 요령과 기술이 터득된다 그렇게 되면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의 가진 도사(道士)의 경지에 이른다. 설교 사역도 같은 맥락에서 설교에 도사가 된 목사가 있다. 이렇게 설교 도사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목사는 강단에 설 때 넘치는 자신감을 가지고 유창한 설교를 펼쳐 나아간다. 그 자연스러운 몸놀림과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달변에서 성도들은 목

[2] 듣기 싫어하는 설교

1.1.3. 왜곡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의의가 있을 수 없는 정설이다. 그러나 오늘 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상황에 맞추어 해석되는 일이 많다. 즉 자기를 선전하거나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생계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농담거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돌려 치려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땅에 글을 쓰신 일이 있으셨는데 그 글을 보고 살기 등등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묻기를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4] 듣기 싫어하는 설교

1.1.10. 발전 없는 목사의 설교 1960년대 후반에 클라이드 리드(Clyde Reid)는 ‘설교의 위기(Empty Pulpit)’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는 여기서 강단이 비어 있다는 말(empty pulpit)을 했는데 이 말의 의미는 설교가 없는 교회 강단을 의미한 말이 아니라, 오히려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도 좌석에 앉아 있는 성도들은 말 할 수 없이 허전해 하고, 전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며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심각한 곤경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은 ‘비어 있는 강단’이 아니라,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설교의 몰락' 또는 '설교의 임종'이라는 슬픈 비판들이

[6] 듣기 싫어하는 설교

1.1.21. 외국어로 말하고 그 말을 해석하는 것. 목사가 외국어를 말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말이 좋기는 하지만 우리말로 설명이 안 되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랑이라는 말이 그렇다. 천국이나 지옥이나 낙원이라는 말도 그 중에 속한다. 사랑이라는 말의 차이는 이미 잘 알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천국이라는 말은 천국으로 안다. 그러나 지옥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는 불교의 지옥을 연상하고 낙원을 말하면 천국과는 조금 다른 세상으로 천국 가기 전에 임시로 머무르는 세상 정도로 안다. 케도릭식 사고 방식이다. 이럴 때 목사는 그 말을 설명할 필요가 있고 설명을 위해 그 말의 원래의 단어를 사용할 수가 있을

[5] 듣기 싫어하는 설교

1.1.14. 주제가 많은 설교. 목사들은 설교에 욕심을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되 많은 것을 충분히 잘 전하려 한다. 이런 생각은 매우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 설교에 주제를 몇 개씩 설정하고 설교하면 듣는 사람이 혼란스러워 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종잡을 수 없게 되어 머리 아파한다. 목사가 설교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예를 들면 요한 복음 3:16절에는 성경 말씀의 모든 중요한 진리가 함께 들어 있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신론이고, ‘세상을’하는 말씀은 인죄론이며,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은 기독론이다.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라는 말씀은 교

[7] 듣기 싫어하는 설교

1.1.30. 말장난이 많은 설교 ‘축원합니다’ ‘믿습니다' ’원합니다' ‘바랍니다' ’생각합니다' ‘느낍니다' ’기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들. ‘아멘을 크게 해야 축복을 받습니다’언젠가 부터 우리 한국 교회는 이런 설교의 분위기 맞추기 화답이 성도들에게 강요되어 왔다. 그런 화답을 유행시킨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었고 이것을 본 많은 목사들이 그 교회와 같아지기 위해 모방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화답 말이 대 유행하게 되었다. 이런 화답하는 말은 성경 말씀에 있다. 민수기서 5장에서 27장까지 모세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백성들이 순종하며 복종하겠다는 의미로 아멘이라는 말을 화답하게 했던 것이

목회자의 안식년 성경적인가

한마디로 하면 목회자의 안식년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목사나 선교사를 위한 안식년 제도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기득 제도권이 만들어 낸 전통 내지 관습일 뿐입니다. 성경의 원칙을 주장하는 많은 한국교회뿐만이 아니라 외국 교회의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이 목회자의 안식년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한 이유는 그것이 성경적인 배경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보다 자신들의 개인적 유익을 향유하기 위함이며 그 권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인간적 이기심의 발로일 뿐입니다. 물론 소위 안식년이라는 기간을 통해 개인적 또는 자신이 속한 교회 전체를 위한 심신 충전의 호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인본주의에 입각한 결과론

기독교 시각으로 본 로마제국의 멸망

기독교 시각으로 바라본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1. 서론1200여년이 넘는 거대한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 제국은 왜 쇠퇴하여 멸망하게 되었는가? 어느 나라든지 멸망할 때를 보면 권력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왕권 내에서 서로 한 마음으로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 백성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살게 될 지를 연구하고 모색해야 하는 사람이 왕권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왕권 내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갈라지게 되면 이미 그 나라의 기강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나라의 안방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 정치를 하는 곳이다. 안방에서 부부싸움이 잦다면, 주위에서 볼 때 그 집안을 어떻게 보겠는가? 곧 ‘이혼 하겠구나’

(2)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행위론

바울이 보는 율법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규범으로서의 율법(롬 2:14, 15)도덕적 규범으로서의 율법은 성문율(成文律)을 가진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적용되는데, 이 법은 그들의 양심과 마음에 기록된 본성 율법(the law of nature)이다. 이런 의미에서 규범으로서의 율법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게 된다.- 율법은 정죄한다(롬 3:19)이방인이 본성의 율법을 어기든 유대인이 받은 바 모세의 율법을 어기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이를 온전히 지키지 못할 때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게 되며, 율법없이 범죄한 자나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나 똑같이 심판 아래 있게 되는 것이다(롬 2:12).율법의 행위로 하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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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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