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신 하나님 - 가나안 정복 이야기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잔인하신 하나님 - 가나안 정복 이야기

 

 모세의 지도 아래 풀려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의 지체가 있었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산물이 풍성하고 땅이 비옥하다는 뜻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산업이라고는 양봉과 목축밖에 할 것이 없는 척박한 땅이라는 의미이다. 애굽의 풍요와 비유가 되며 오직 하나님만 전적으로 바라보고 의지해야만 하는 땅이며, 바로 그런 뜻에서 신자에게는 도리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다

을 향해 진군하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한다. 애굽에서는 이스라엘의 어린이 심지어 육축의 한 마리도 상하지 않게 하던 하나님이 돌변하여, 가나안 땅에는 여자·노인·어린아이·육축까지 씨도 남기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또 이스라엘 백성이 미처 못하니까 하나님이 직접 나서기도 한다. 정말 잔인한 하나님일까?

이런 기사에서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 완전히 용납하지 못하여 미진한 구석을 남겨둔 채, 대신 이스라엘 백성의 당시의 잘못된 부족신관에 불과하니까 그 잘못된 신관을 바로잡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해석해버리면, 앞에서 지적한 대로 저자의 의도는 물어보지 않고 평자가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각색한 꼴이다. 차라리 하나님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하나님이라고 깎아내리는 것이 정당한 평자가 할 일이다.

성경의 저자인 하나님에게 이런 비참한 일을 인간 저자로 기록하게 할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일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래서 잔인한 하나님인가 사랑의 하나님인가 둘 중 하나를 확정지어야 한다.

이 기록을 잘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이유와 과연 그렇게 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부족만 사랑하는 부족신에 불과한가, 두 가지를 순서대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의 신관이 정말 부족신관에 불과했는지 아닌지도 성경의 기록을 통해 조금 있다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하나님이 왜 가나안 족속을 진멸(씨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키는 것)하라고 하셨는지 성경에 적힌 이유 즉 성경의 저자 하나님의 의도를 먼저 알아보자. 창세기 15:16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하나님이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I≫cA)치 아니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여러 부족 중 가장 수효가 많고 강력한 부족이름으로, 가나안 족속 전체를 대표한 것으로 간단하게 가나안 전체 부족이라고 보면 된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열두 아들과 함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간 후 400년이 경과한 후에야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애굽에서 400년이나 지체해야 하는 이유를 가나안 땅에 죄악이 관영치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은 죄악이 관영하면 그때에 돌아오게 해주겠지만, 그 동안에는 애굽에서 노예살이의 고통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관영이라는 의미는 넘칠 만큼 찼다는 의미이다. 쉽게 예를 들면, 컵에 물을 부어 넘치는 것이 관영인데 컵 속에 오직 물만으로 가득 찾지 공기나 다른 물체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가나안 땅에 죄악이 관영한다는 것은 오직 죄악뿐이고 눈을 닦고 보아도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선이라곤 하나도 없기에 가만 두면 오직 악만 확대 재생산이 된다는 말이다. 중세 시대에 페스트균이 어떤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마을 전체를 불에 태워 없애야지 물로 씻거나 살아 남은 육축이 아까워 다시 잘 키워보려 하면, 그 마을에 들어가 새로 잘 살아 보려는 사람들이 흑사병에 걸려 몰살할 것은 뻔하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보시기를 페스트균이 퍼질 대로 펴져서 그 땅에 들어가 호흡하는 순간, 그 땅의 늙은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고 심지어 가축에게서조차 병균만 옮을 뿐이라고 보신 것이다. 이럴 때 그 마을을 불태우는 것이 잔인한 것인가? 그대로 두어서 새로 들어간 사람도 같이 흑사병에 걸리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신 9:5).

최근 그 지역을 발굴해 가나안 정복 당시의 사람들의 유골을 연구해 본 결과, 성병이 만연하였고 심지어 어린아이들마저 성병에 감염되어(유전적이었는지, 어린아이도 타락했는지 알 수 없지만)있었고 그로 인한 불구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가나안의 풍요의 여신들을 섬기면서 신전에서의 난교가 성행했고, 그런 문란한 성 풍속이 실제 생활에도 일반화되어 온갖 질병이 창궐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문란한 성은 아마 관영된 죄악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이것만으로도 항생제가 발명 안 된 당시로서는 페스트균처럼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진멸해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나님 나라의 왕국을 이 세상 가운데 건설할 때에 세상의 죄악을 그대로 둔 채 건설할 수 없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전염되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 그러나 자기가 창조한 인간과 그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스스로 불태우실 만큼 하나님은 절대 잔인하지 않다.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살려 주겠다고 했고, 니느웨의 12만 악한 백성도 사랑하신 하나님이다. 오죽하면 그렇게 하셔야 했을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최대 한계까지 가서 더 이상 사정을 봐줄 여지가 전혀 없었다. 죄악이 흘러넘치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수 없다. 옛사람이 죽어야 새 사람이 창조된다. 옛사람을 그냥 두고, 새 사람이 태어나면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만 나타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더러 자기를 의지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또 가나안 족속은 씨를 말리라는 명령을 했다고 해서, 고대 중동 지역의 부족신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당시의 모든 나라들이 믿는 신은 자기 민족만을 위하는 부족신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지 않았다.

민수기 22¡­24장까지 발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평지를 지나야 하는데, 이미 아모리 족속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했다는 소식에 겁을 먹은 모압 왕 발락이 이웃 지역 브돌의 신령한 제사장 발람을 초청해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이스라엘)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를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민 22:6)고 부탁한다. 처음에 발람은 이 요청을 받아들일 생각을 했다. 발락이나 발람이나 당시 보편적인 부족신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섬기는 신은 자기들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믿는 신에게 내가 복을 빌면 내게 복이 오고, 내가 저주하면 대적에게 저주가 필연적으로 따라 가는 것이 부족신관이다. 복을 빌거나 저주하는 것은 나의 몫이고 신은 내가 바친 열성과 치성의 정도에 따라 판단해서, 그 복과 저주의 질·양만 결정해 자동적으로 내리게 되는 것이 부족신이다. 혹시라도 복이나 저주가 기대 이하이면 치성과 열심을 더 동원하면 된다. 발락의 요청이 부족신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에 반해 여호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낼 때에 주신 약속의 말씀에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3)라고 했다. 부족신관과 무엇이 다른가? 아브라함이 남의 복을 빌거나 저주하는 주체가 아니다. 아브라함이 남을 축복하면 하나님이 남을 축복해주고 또 남을 저주하면 하나님이 남을 저주해준다고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게는 처음부터 여호와에게 우리 민족만 보호해주고 다른 민족은 벌주라고 요구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은 가나안 땅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유일신·창조주·사랑의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내가 너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데, 그 일을 너희가 수행할 때 너희에게 일어나는 모든 위험에서 내가 지켜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동참하는 나라는 이스라엘이 그 나라를 좋아하든, 설사 싫어하든 간에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복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만을 사랑하고 그들의 요구에 응답하여 복을 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민족이 이스라엘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어찌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부족신이라는 말인가?

출애굽하여 가나안 진군의 지도자로 모세를 세울 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다짐을 또다시 확인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 6). 아직도 부족신관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다른 부족들이 너희를 통해 참 하나님을 알게 하라는 명령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고 싶어하는 나라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참하나님을 아는 복을 받았으므로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은 그 복을 나눠주는 창구로 불림을 받았고 또 그 복을 체험을 해야 제대로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에 먼저 복을 받은 것뿐인데도, 이스라엘은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 못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무수한 징계를 당했다는 것이 구약의 기록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부족신관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자신들이 패배한 기록을 성경에 기록하여 자기 부족신의 능력에 먹칠을 하게 하겠는가?

요나의 경우를 보자. 요나는 악의 도성 니느웨를 저주하고 싶은데도 하나님은 자꾸 가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했다. 부족신 여호와라면 경건한 백성 요나가 하나님 앞에서 니느웨를 저주하면 당연히 니느웨에게 유황불을 내려야 하지 않는가? 벌을 받은 것은 오히려 요나이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맺은 언약을 요나가 제대로 지키지 않으려다 그렇게 되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어떻게 호소했는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덩굴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 4:10, 11).

구약의 부족신관을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바꾼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구세주 예수를 인간으로 이 땅에 보내려면 필연적으로 어떤 민족과 지역과 시대를 택하셔야 했는데, 하나님의 완전하신 섭리 가운데 이스라엘이 뽑혔을 뿐이다. 이스라엘이 잘났거나 특별히 사랑해서 뽑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십자가 계시를 완벽하게 드러낼 수 있는 민족으로 뽑혔을 뿐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만약에 예수가 한국 땅에 태어났더라도 성경 구약의 기록에는 중국에서 종살이 몇백 년 하다 탈출했고, 오다가 서해 바다 어딘가가 갈라지고, 평양성을 7일간 침묵으로 돌았더니 무너지고, 한반도에 살고 있던 죄악에 관영한 오랑캐족을 진멸하라는 명령이 내렸을 것이다. 또 그렇게 기적적인 은혜를 많이 입은 한국민족임에도 하나님을 배반하다가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는 기록도 나타났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한 동일한 언약을 주셨을 것이며 요나 같은 자도 나타났을 것이다. 분명히 한국민족이 다른 어느 민족보다 더 큰 축복을 받는 역사가 있겠지만, 다른 민족 앞에 하나님을 아는 백성으로 서 있지 않으면 가차없이 더 큰 화를 내렸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나안 족을 진멸하라고 했고 이스라엘 민족을 기적으로 보호했다고 부족신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전 인류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 누구를 편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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