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11-12 이방인
오늘 본문에서 ‘이방인’을 ‘밖에 있는 자’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기준을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집어넣으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안에 있다’는 자들의 자부심이나 구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에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준이기에 사람을 함부로(?) 둘로 나눈다는 겁니까?
셋으로 나누는 것도 아니요 넷으로 나누는 기준도 아닙니다. 단지 둘로 나누는 기준입니다. 여기서 ‘안에 있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이 결코 훌륭하거나 대단한 자들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도리어 ‘안에 있다’고 자부하므로서 그들을 안에 두게 하신 하나님의 기준을 소홀이하고 무관심하게 만들 가능성이 이방인들보다 더 위험하게 작용할 수가 있습니다.
즉 구원받았으니 더는 챙길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여기는 안일함 같은 것이 찾아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실패 속에서 하나님의 기준에 담긴 내용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둘로 나누는 기준은 결코 ‘인간의 소원이나 욕구 만족’을 위함이 아닙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실패자'로 태어났음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참으로 ’실패자‘로 태어났다면 이는 아무리 내쪽에서 애를 써봤자 성공은 물 건너 갔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미래는 참담하다고 느끼는 겁니다.
그러나 성공할 희망이 없다는 것이 어떻게 해서 ’참담함‘으로 여겨져야 할까요? 그것 자체가 아직도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기대를 걸고 산다는 뜻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인류를 둘로 나뉜 기준은 인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기대를 걸라고 내리신 조치가 아니라 악마의 설침을 전제로 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왜냐하면 악마의 심어놓은 세상 기준이 이미 인간 세계에 상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기준은 사람을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악마를 잊고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것이 진정 인간다움이다 고 가르치는 기준입니다.
따라서 악마의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유대인들의 생활패턴이 답답해 보일 뿐입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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