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차별하는 하나님-제사장 제도
레위기에 보면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많이 나온다. 신체적 결함을 가진 장애인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자격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성전 가까이도 못 오게 하고 심지어 몹쓸 병에 걸린 자나 사생아까지 그러하다. 외국인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구하지 말라고까지 한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 문제로 인해 철두철미 배타적이고 차별적이며 단지 중동의 한 민족의 미숙한 신관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문제는 레위기의 전체 주제와 연결시키지 않고, 문자적 해석에 근거하여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해병대나 공수부대 같은 특수 부대에선 항상 그 부대만의 아주 혹독한 규율이 있고, 그것을 어겼을 때는 지독한 체벌이 따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불침번 서면서 졸면 일반 부대에선 연병장 풀 뽑기 한 시간을 시키는데 반해 특전사에서는 사흘 배식 일절 금지에 연병장을 오리걸음으로 10바퀴 돈다는 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특전사의 기합을 두고 일반 군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좀 심하다고는 생각하겠지만 꼭 잘못되었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특전사는 적진에 홀로 침투하여 자기 생명을 거는 특수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에, 그에 맞는 훈련과 정신무장도 갖추어야 하므로 어떤 면에서 당연하고 더 심한 벌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위기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적진에 홀로 생명을 걸고 들어가는 하나님의 특공대로 훈련시키는 교본이지, 남자라면 누구나 다 가는 논산훈련소 교본이 아니다. 그것도 지난 4백 년간 단 한번도 실제 전투나 훈련을 겪어 보지 못한 오합지졸을 훈련시키려면 더 엄격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럼 그 교본의 첫째 항목에 무엇이 나오겠는가? '비상시나 전시에 적진후방에 단신으로 투입되어 적을 교란하고 아군의 교두보를 확보한다'는 식의 특전사병의 임무와 목적이 나오고 그 다음에 세부적으로 불침번이 졸 때는 어떻게 한다는 규정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 세부적 벌칙 규정만 보고 특전사 교본이 잘못되었고 너무 심하다고 따지지는 않는다.
레위기 곳곳에 바로 이 특전사병의 임무와 목적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이라 여호와라.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20:24, 26). 특전사병으로 불렀으니 그에 맞게 되라고 한다. 예의 장애자를 위한 규정에도 마지막 부분에 가서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레 21:23)고 하셨고 거의 모든 세부규정마다 그 끝은 항상 "나는 너희의 여호와라" 는 말로 결론짓는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더러 여호와의 군병답게 완전하게 구별되라는 뜻이지 내가 장애자들을 차별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특전사병 훈련에 앉은뱅이나 장님이 오는 것을 막으라고 해서 장애자를 차별하는 규정을 두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도 완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창세기 32장에 하나님이 근본적으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있다. 이스라엘 12가문의 선조가 되는 야곱이 쌍둥이 형 에서의 장자권을 속여 빼앗는 바람에, 이방 땅에 도망 가서 천신만고 고생 끝에 이룬 많은 재산과 처자식을 이끌고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내일이면 얍복강을 건너 맞대면할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일지도 모르는 그런 불안 가운데 밤새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한다.
그런데 그 사자가 야곱의 기세에 눌려 밀리다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시키지만 그래도 야곱은 끝까지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우겨 기어이 복을 받는다. 이때 야곱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지만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창 32:30)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선조가 불구자 병신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것도 하나님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은 불구자를 하나님의 백성의 선조로 삼으셨다.
환도뼈란 엉덩이의 골반을 형성하는 좌우 한 쌍의 좌골 뼈로서 사람의 힘과 생명의 근원을 상징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더 이상 생식능력이 없어진 고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을 신체적으로는 장애자 겸 고자로 만들었고 영적으로는 그가 의지했던 모든 인간적인 힘을 꺾으시고 완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게 만든 것이다. 장애자·병든 자·과부·사생아·고아·이방인들… 모두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을 병신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 민족 전체를 이런 사람들과 같은 처지로 만드셨다는 뜻이며 그런 자들을 하나님은 더 사랑하셨다. 또 그런 자들만이 전심(iiay)으로 하나님을 찾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율법의 세세한 규정들은 당시 사람들로선 알 수 없던 미개한 위생상태에 대한 예방과 또 예배 같은 공중 집회에서 전염병을 막는 실질적인 효과도 감안된 것이다. 당시의 외국인의 경우는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아무도 없었으며 모두 우상 숭배자들이었다. 그들을 성전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은 요즘 식으로 따지면 굿을 하는 무당을 교회의 공적 예배에 금한 것과 같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어느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대신에 하나님은 외국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3, 34). 무당이나 그를 추종하는 자를 공적 예배에서는 배제하더라도 실제의 삶에서는 절대 인종 차별하지 말고 같은 민족처럼 사랑해주라고 하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신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것도 구약의 하나님을 더욱 자세하게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이외의 민족들은 그 신관이 변천 되었고 설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변천된 신관에 영향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성경의 하나님은 변화가 없었다. 또 하나님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자들을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선지자로, 그루터기의 어린 순으로, 이세벨에게 굴복하지 않는 7천 명의 모습으로 항상 남겨 두셨다. 그 남은 자들이 세상의 나머지 전체 숫자에 비해 너무 미약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자기 일을 이루시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으셨던 분이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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