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디모데후서 4:6-8
의의 면류관빌립보서 2:17-18에 보면,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자신을 관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하겠다고 말합니다. 관제(전제)는 제사의 마지막 순서로서 제물 위에 포도주나 독주를 부어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관제는 단독으로 드려질 수 없고 번제나 소제와 함께 드려지는 주된 제물이 아닌 일종의 보조적인 제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레 23:12, 13, 18/민 15:5).
즉 구약 율법에 나오는 제사 절차에 실질적으로 들어서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 제사절차에 관통해 들어간다는 것은 이미 영생을 얻었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관통에 성도들도 같이 기쁨으로 참여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20:22-24에 보면,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천국으로 통하는 문을 알게 된 겁니다. 제사율법에서 흘러나온 그 노선의 마지막이 곧 천국으로 통하는 문이었던 겁니다.
따라서 복음의 실질성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천국은 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제사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것은 그 안에 특이한 죽음, 곧 ‘대리로 희생하실 어린양’으로 오신 분에 의해서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죽는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그 어떤 죽음도 거부하십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자가 죽는 것이기에 그 어떤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죽지 말아야 될 분의 죽음만이 천국을 만들어내십니다. 그 이유는 천국은 심판없이는 생겨나지 않기 때문입니다.(마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