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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 믿는 목사들

교인들 보기에, 목사들은 예수를 믿는 줄로 안다. 실제로는 안 믿는다. 그 대신 교회를 믿는다. 달리 말해서 교회를 소지하려고 한다. 목사들은 교회 때문에 울고 웃지 결코 예수 때문에 울고 웃지 않는다. 목사들이 교회 때문에 울고 웃는다는 말은 곧 돈에 울고 돈에 웃는다는 말이다.목사들은 말한다.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고 사람이다. 나는 결코 예수도 아니요 신도 아니다. 더이상 우리보고 어쩌란 말인가?"라고 교인들보고 항변한다. 사람들 끼리만 서로 용납해도 천국에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교회라면 목사의 이런 항변도 참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목사들이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모독해야만이 자기 주장이 정당화 된다는데

사기치는 것에 대한 격분

사기 치는 것에 대한 격분 사기 치지 않으면 못 사는 것일까? 물건 파는 사람들이 속여서라도 돈만 빼내면 장사 성공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누구나 격분하게 마련이다. 돈 몇 푼 날린 것도 분하지만 그런 식의 삶을 성공적인 삶이라도 자랑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노릇이다. 세상 구석구석 사기 아닌 것이 없다. 그 이유는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의식에 너도 나도 감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성공하고 나면 성공의 뒷자락에 길게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 는 수치가 안 되는 법이다. 그저 성공 그 자체만 유난히도 번쩍번쩍 빛난다. 성공에 환장하고 중독되어서 어느새 자신이 사기꾼과 한통속이 되어간다.이처럼 도처에서 악이 진리

어디가 길입니까?

어디가 길입니까?요즘 하는 일이 잘 안되는 사람들이 술자리에서나 인생상담 할 때 흔하게 하는 질문입니다. 하는 일이 잘 나가고 있다면 길이 어디냐고 묻지 않습니다. 잘 나가고 있음 자체가 이미 옳은 길에 올라서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요.지인 중 한 명에게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나아갈 길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죄인이 나아갈 길이란 원래 부터 없었다고. 인생이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 존재한다면, 예수께서 자신을 '길'이라고 했겠냐고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께서 자신을 길이라고 하셨다면, 독사의 자식인 인생 전체에는 길이라는 것이 예시당초 없었다는 뜻입니다. '내가 길이요'라는 말씀은 나

어떤 질문과 정낙원목사님의 답변

어떤 질문과 정낙원 목사님의 답변 이 글은 어떤 분이 방명록에 비밀글로 오고 가던 질문 속에서 개혁주의와 이근호 목사와 정낙원 목사에 대하여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질문을 한 것에 대한 답글입니다. 그냥 비밀 글로 묻어두기 보단 공개된 글로 두는 것이 유익일 것 같아서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 질문 : 무명인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근호 목사님 정낙원 목사님 등을 지칭할 때 "극단적 개혁주의" 라고 하는데 모르고 하는 소린가보네요. 저는 바울이 개혁한 것으로 끝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만. 사람들은 개혁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

그래, 그것을 알고 있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을 공부한다는 의미는 아마도 이런 의미일 것입니다. 누군가 성경의 어떤 구절을 풀었다고 했을 때에도 '숨어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그 사람에게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는 동시에, '창세 전에 감추었던 비밀이 밝힌 바 되었다'라는 말씀 역시 한 치의 오차없이 적용되고 있는 상태 말입니다.어떤 사람으로부터 "당신은 예수님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성령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라는 '정답'을 가볍게 인용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계시다면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런 질문한 사람을 구원하심으로써, 정답을 말했다며 안심하고 있는 나를 죽이시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교인들은 어떤 식으로 단합해야 하나?

교인들은 어떤 식으로 단합해야 하나? 예배 마치고 교인들은 무얼해야 할지 우왕좌왕한다. 어떤 이들은 아예 집에 갈 생각을 한다. 어떤 이들은 식사하고 집에 갈 생각을 한다. 도대체 교회 오는 것이 예배 관람하는 것 이외에 다른 할 일이 특별히 없다고 여긴다. 누가 자기 보고 “집사님 오늘 이것 하세요” 시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할 일이 없는 걸까? 교회에서 할 일이 없거나 교회에서 높은 사람(?)이 자기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교회 오면서 여전히 ‘내가 해야 할 나만의 것이 따로 있다’고 여긴다는 점에 있다. 쉽게 말해서 교회 나오면서 여전히 ‘내 것은 따로 챙겨놓

신앙생활이 어려운가?

신앙생활이 어려운가? 2009-10-13 09:45:29 이름 : 이근호 성경이 어려운가?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해하기가 어려운가 아니면 실천하기가 어려운가? 한 예를 들어보면, 주기도문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11) 일단 어렵다는 쪽의 견해를 들어본다. 1. 어렵다는 견해 사람들의 상식에는 일용할 양식은 본인의 노동 여하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일용할 양식에 대한 바탕은, 본인이 얼마나 노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경에서 “일하기 싫거든 먹지로 말라”(살후 3:10)고 되어 있다. 이는 일용할 양식을 얻어 위해 돈이 필요하고 돈

살아남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다

살아남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다 2010-05-19 08:42:01 이름 : 이근호 살아남은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다 스데반 집사의 최후를 보라. 그의 관심사는 오직 예수님에 대한 한결같은 섬김이었다. 자기가 의식되면 모든 행함이 자기 위주가 되어버린다. 그것이 온전한 섬김에 방해물이 될 뿐이다. 하나님이 덮치게 되면 자아를 돌아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모자람을 느끼지 못한다. 피조물로서 할 일이 있다는 것 때문에 더 이상 아쉬움도 없다. 시간의 흘러감도 의미 없고 공간이나 형편의 사정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괜히 인간들이 자기 생각에 열중하니 그 자체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복음을 모르는 자들

복음을 모르는 자들 고무줄은 늘어난다. 길게 늘어뜨릴 수도 있다. 그 고무줄 위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았다고 보자. 고무줄을 길게 늘어뜨리면 마치 파리는 먼 세계, 즉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 영적 세계나 복음의 세계나 천국에 진입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고무줄이 탄성의 한계에 도달하면 맹렬한 속도로 제 자리로 찾아든다. 역겨울 정도로 우둔하고 무의미한 타성에 젖은 짐승 같은 일상의 자리다. 고깃덩어리 하나가 굴러다니면서 세월 보내는 그런 자리다. 늘 자신의 지나온 육의 세월을 핥듯이 감상하며 입맛 다시는 자리다. “짐승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냥 내가 여기 있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자리다. 교회에 복음을 전하다보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내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내 집 대문을 가볍게 넘어 내 공간을 침범하였습니다. 나의 현관문의 열쇠장치를 망쳐놓았고, 나의 창문을 박살내고 들어왔습니다. 내 공간 구석 구석을 뒤지고 엉망으로 만들고 난 후, 결혼반지 등 폐물을 가지고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내 소유가 감소하였습니다.그래서 앞으로는 내 소유가 나의 의사에 의하지 않고 감소하는 일을 막기 위해 내 돈을 투자하여 내 현관물을 수리하고 방범창문을 달았습니다. 누군가 보안업체 스티커를 구해준다고 하여 좋다고 하였습니다. 재산 뿐만 아니라, 내 아내, 내 아이들을 내 소유로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져 보안능력을 향상시킬만한 여러 장치

'영적 전쟁'과 '자기 전쟁'의 차이

'영적 전쟁'과 '자기 전쟁'의 차이 2010-06-10 08:18:15 이름 : 이근호 1. 영적 전쟁은 지시자가 분명하다. 하나님이시다. 선지자들은 자기에게 지시하고 명령하신 분이 누구인지가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자기 전쟁’의 지시자는 자기 자신 외에는 없다. 내가 나에게 의욕을 가지고 지시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태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기 명령을 철회시키고 포기한다. 그래도 뭐라 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명령하고 자신이 명령받는 식이다. 2. 영적 전쟁의 성과는 곧 명령받은 본인의 변화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명령받은 자는 그 명령을 통해서 자기 자신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믿을 분

생명의 축복

생명의 축복 2009-05-06 11:05:05 이름 : 이근호 심리학자 마슬로우가 주창한 인간의 욕구는 다음의 다섯 단계로 되어 있다. ①생리적(본능 충족과 의식주 해결) 욕구. ②안전(안정을 위한) 욕구. ③함께(사회계층에 참여) 하려는 욕구. ④존경(인정과 존중)받고 싶은 욕구, ⑤자기실현(자아 완성)의 욕구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이런 욕구를 뿜어내면서 계속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요 피폐해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왜 죽는가? 말씀이 사건화 되기 때문이다. 말씀이 인간 세계에 주어진 이상, 말씀대로 인간은 제발 죽어줘야 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예수님의 피로 장난치는 인간들

장난과 오락, 이런 것들은 뭔가 답답하고 심장 상하는 일들이 있으면 해소책으로 시도하는 것들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유대인과 바리새인은 로마 압제 속에서 울분을 속으로 삭이던 때였다. 하지만 예수님의 등장과 외침은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식이 되어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고 그 당시 권세자들에게는 자신들의 분통을 푸는 먹이감으로만 적당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해 놓으신 예수님의 죽으심을(에베소서 1:7) 사람들은 오락거리로 밖에 느껴지지 아니했다.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보고 있는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농담만 실실 던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장난치고 있었다. 예수님을 가지고

인생의 행로에서 고민하시는 분 방문하세요

특히 병원에서도 특별한 병이 없고 시들시들 하신분 꼭 방문 상담하세요.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항상 시끄러운 분 사업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고민하는 분 결혼이 잘 성사되지 않아 고민하는 분 자녀 공부나 진로문제로 고민하는 분 자녀가 말을 잘 듣지 않아 애태우는 분 집이나 점포등 매매가 잘 되지 않는 분 임신지 잘 되지 않아 걱정되는 분 수요예배를 가는 중 버스를 타니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고민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준다는 광고가 눈에 들어 왔다. 돈벌이도 가지 가지다. 죄인들은 전도자의 말에 관심이 없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장2절) 시들시들 살아도, 시들 시들

두 종류의 떠미심 (이근호)

두 종류의 떠미심 1주님께서 어떤 인간을 떠밀고 있다. 어떤 인간: 왜 떠미십니까? 저 괜찮은 인간입니다. 예수 믿고 새사람 되었답니다. 저, 인간 개조했어요. 주님, 저 쓸모있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떠미십니까? 주님: … (계속 미신다) 어떤 인간: 저 신학에 대해서 연구 많이 했습니다. 믿는 자의 합당한 행동강령이 어떤 것인지 이제 감잡았습니다. 성령의 명령들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본격적으로 영광돌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강제로 떠미십니까? 도대체 어디까지 떠미실 겁니까? 주님: … (계속 미신다) 어떤 인간 : 저 십자가 은혜 잊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행함으로 구원받지 않고 보혈의 피로 구

나, 너 그리고 진리

다음과 같은 2가지 조건의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첫 번째 조건은 남자, 45세, 백정, 1400년대 한반도 거주, 두번째 조건은 여자, 18세, 음악가, 2009년 영국 거주....이 때, 첫번째 조건의 남자를 '나'라고 하고 두번째 조건의 여자를 '너'라고 부릅시다. 이제 나와 너가 만나서 진리를 이야기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진리에 대해서 두 사람의 견해가 일치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기에 진리라고 불러도 무방하다는 것이지요. 막연하게 사람과 사람사이에 소통이 일어나고 서로 양해되고 이해되었

생존보다 진리가 우선

생존보다 진리가 우선 세상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갈수록 치열하게 만든다. 성질도 고약하고 눈빛도 불안하다. 다 생존 때문이다. 어디 만만한 데가 없다. 항복을 받아내든지 아니면 항복하고 다 빼앗기든지 해야 한다. 인생사라는 것이 늘 이런 식이다. 생존여부로 사람을 평가한다. 생존하고 싶다면 생존에 모든 것을 헌신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인생을 하나님도 인정하실까? 하나님께서는 내민 지팡이는 진리의 지팡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 지팡이를 잡든지 놓치든지 해야 한다.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 진리로부터 점차 멀어진다면 분명히 가짜다. 생존이라는 그물에 걸려서 그 사람은 세상이 당기는 힘에 질질 끌려가고 있

우주선 발사 성공과 구원 성공

우주선 발사 성공과 구원 성공 1단계 연료 로켓이 떨어져 나가고 2 단계 추진 로켓이 점화되면서 나로호 우주선은 발사 성공했습니다. 2년간 하늘에서 살기 위해 날아갔습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위해 어떤 발사 과정이 필요할까요? 모든 행위는 떨어져나가야 합니다. 모든 죄와 함께 과거도 떨어져나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뽐내고 으스대는 것도 다 떨어져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만이 100% 원료가 되어 점화되고 또 점화되어 천국 속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점차 우리 자신이 원래 예수님의 몸이었음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동안 자아의 틀을 잡아주던 모든 껍데기는 산산조각 나고, 그 속살들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 뭉치였

아프칸 피랍을 바라보며

인간이 어떤 사건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사건과 자신과의 거리'입니다. 나를 중심점으로 하여 그 사건이 얼마나 멀리 있는가를 거의 본능적으로 계산하여 해당 사건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반응을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주권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국민주권이라는 정치적 환상은 자아를 국가까지 확대시키고 국가는 사건과의 거리를 측량하는데 있어서 자아와 비슷한 수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특히 단일민족국가임을 강조해 왔던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와 민족, 그리고 자아를 일치시키는 주장은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되어 왔습니다.이런 이유로 이번 아프칸 피랍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반

개혁주의 신학의 치명적인 오류는?

개혁주의의 치명적인 오류는? 아마추어들은(평신도) 알지 못한다. 왜 목사들이 개혁주의를 부르짖는지를!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이다. “형님, 나도 밥 좀 빌어먹고 삽시다”이다. 개혁주의 신학의 구조는 이러하다. 성경을 전체로 체제를 잡는 것이다. 즉 ‘성경⇒신학체계’가 된다. 이 와중에서 아마추어들(평신도)들은 배제된다. 전문적으로 신학교에서 수업료 납부해가면서 억지로라도 귀동냥해 가며 들어왔던 그 수업시간이 ‘성경⇒신학체계’로 이끈다. 이렇게 되면 ‘신학체계’가 성경을 대신하기에 아마추어들(평신도)은 여전히 성경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아마추어 티를 내지만 소위 신학교 물을 먹은 프로들은 ‘신학체계’를 만지작거리면서 여유만만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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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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