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과 오락, 이런 것들은 뭔가 답답하고 심장 상하는 일들이 있으면 해소책으로 시도하는 것들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유대인과 바리새인은 로마 압제 속에서 울분을 속으로 삭이던 때였다. 하지만 예수님의 등장과 외침은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식이 되어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고 그 당시 권세자들에게는 자신들의 분통을 푸는 먹이감으로만 적당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해 놓으신 예수님의 죽으심을(에베소서 1:7) 사람들은 오락거리로 밖에 느껴지지 아니했다.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보고 있는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농담만 실실 던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장난치고 있었다. 예수님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일상에게는 오는 짜증과 힘든 일과를 그런 식으로 풀자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 단골 손님은 붓지를 않고, 왔던 손님도 다시 찾아오지도 않고, 따라서 헌금은 안나오고, 그렇다고 교회 출석잘 한다고 해서 바깥 자기 사업이 번창하도록 복주지도 않고, 집에는 돈 못 벌어온다고 바가지 바가지를 긁어서 집에 들어가기도 무섭고, 애들 앞에 부모는 권위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그렇다면 이 모든 분통을 풀어놓은 분풀이 대상이 있어야 한다.
자연 눈은 소위 하나님이라고 우기는(?) 예수에게 쏠린다. 예수의 피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다. 농담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어이, 거기 예수. 당신이 정말 메시야라면 오늘날 경제를 한 번 살려보시지. 그러면 당신을 메시야로 믿어줄게 . 어때 우리 흥정 그럴사 하지 않나?"
이들에게 있어 진지함이란 자신이 현재 몰두하고 벌리는 자기 직업 뿐이다. 자기가 벌리는 일에 원할치 않으니 그 외의 모든 일들은 술 안주감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전혀 진지한 일이 아니다. 중요하지도 않다. 도리어 짜증만 유발하는 짓거리에 해당된다.
이처럼 자기 일이 뜻대로 안되어서 분통이 터질 판인데 아직 '예수의 피' 운운하는 작자들이 있다니! 어디 장난이나 쳐볼까? 농이나 걸어볼까? 얼마나 화를 내는지?
세상 일이 잘 안돌아가서 화가 나는데 이판사판 모든 것을 호잣질을 해서 물에 물 탄듯이 모두 장난이나 오락거리로 휘저어놓고 싶은 것이 사람의 악마적 본심이다. 자기 몸 아프니까 대구 지하철 중앙역에 휘발유을 부어 불을 질러 "너도 죽도 나도 죽고 다 죽자"하는 식으로 화풀이 하는 심정으로 '예수님 피'에 작대기질해서 휘저어 놓는다.
내가 중요하지, 예수 죽으심은 나의 생존보다 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래도 악마 아닌가?
이래도 세상이 지옥판이 아닌가?
자기가 숨쉬어야 한다는 것 빼놓고 다를 농담거리와 장난거리로 만들고 싶어 환장한 세상이 과연 저주받을 지옥이 아니고 뭔가!
진지한 것도 없고 심각한 것도 없고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을 상실한 세계, 남은 것은 화풀이 대상으로서의 세상 뿐이다.
그 화풀이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까지 파급되었다. 십자가마저 뽑아치워버려서 속시원해하면서 손털고 일어설 때, 과연 남은 것은 무엇인가?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 세상에서 나만 있으면 돼!"라는 악마의 목소리 뿐이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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