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짐과 다 이루심

버려짐과 다 이루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셨던 말씀 중에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와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 일치감이 어느 정도냐 하면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바로 나이고 내가 곧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조차 마음대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말씀만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셨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듯 아버지 하나님과의 일체감을 강조해 오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는 버려짐을 느끼고 계십니다. 일체감과 버려짐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버려졌다는 말씀은 아버지와 분리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아버지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다 이루지 못했다는 뜻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예수님께서는 버려짐과 다 이루심을 모두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궁금증은 여기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고 아버지와 일체된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버려졌다는 것은 분명히 일체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씀입니다. 인간 중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일체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버려짐은 인간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지는 하나님이 있을 수 없다는 잘못된 하나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버려짐은 예수님 자체가 본래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다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분만 하나님과 일체된 분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버려짐조차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을 정도로 존재에 대한 자신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명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고 자신과 일치된 어떤 분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철저한 자기부인이 벌어지는 장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인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 아버지로부터 버려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버려짐으로 이끄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라는 처소에서 아버지와 예수님은 여전히 일체를 이루고 있고 그 성령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부인의 길로, 생명을 버리게 하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길로 가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의 완전한 이루심은 바로 아버지의 뜻에 의해 버려져도 자아가 등장하지 않는 분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온전한 순종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버려짐이 바로 다 이루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버려짐 말고 아버지의 뜻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성령은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기 위해 자기부인을 유발합니다. 자기부인은 그냥 구호가 아닙니다.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한 기적입니다. 내가 버려진다고 해서 아버지와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부인된다고 해서 아버지로부터 부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 의해서 여전히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도가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 반드시 이러한 버려짐으로만 일하십니다. 그 버려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오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버려지셨다는 것을 모델(Model)화 하는 것입니다. 모범규준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오해이냐 하면, 모델화라는 것은 자기부인이 아닌, 자기긍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모델화라는 것은 모델이 있고 그 모델처럼 살고싶은 내가 있어서, 나를 점점 그 모델 쪽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를 말하기 때문에 자기부정이 되면 안됩니다. 자기가 부정되면 모델을 따라잡고 있는 주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모델화하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버려지셨다는 것은 인간들의 부족분을 보충해 줌으로써 인간과 하나님과의 일체를 가능토록 배려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버려지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떠밀어 버린 장본인이 바로 인간이며, 그가 바로 죄의 종으로 살고 있는 인간의 실체, 바로 하나님의 원수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화하여 따라잡기를 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부인의 길로 성령에 의해 쫓기고 있는 자입니다. 자신은 도저히 할 수도 없고 하기도 싫고 해서도 안되는 자기부인이 생명의 버려짐의 현장에서까지 벌어지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처럼 말입니다.




성령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을 적용받을 수밖에 없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을 모델화하여 따라잡는 것은 서로 원수관계에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에 의해 처리된 버려짐에 의해 공격받고 지적받는 것과 성도 또한 말씀이 육신된 자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서로 원수관계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버려짐은 철저한 순종에 의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입니다. 하나이기 때문에 버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성도 또한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버려질 것입니다. 그 버려짐은 우리가 흉내내고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온전히 버려짐에 순종하신 분에 의해 덧입혀질 뿐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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