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오가 아닌 예만

아니오가 아닌 예만

아니오가 아닌 예만



인간은 어떤 일에 있어서 단정 짓는 말과 행동을 회피하려 든다. 가정이나 정치나 문화나 인간이 몸을 담고 살아가는 사회 속에 부대끼면서 ‘난 이것을 원해!’ 란 말을 하기가 어렵다.



요즈음 같이 직장에서 상사의 지시에 대해 ‘아니오’라고 대답할 용기 있는 자가 몇 안 될 것이다. 그 만큼 이 사회는 악이란 울타리로 엮어져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이 잘 굴러갈 때는 부하직원의 개인적인 일이 생기면 ‘회식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어서 집에 들어가!’ 란 사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젊은 세대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 그러나 지금은 그 양상이 다른 것 같다.



개인마다 기업마다 돈이 궁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모두들 긴장하며 허리띠 졸라매고 출근하고 퇴근한다. 이 세상은 돈이 최고의 신이기 때문에 돈 중심으로 몸도 마음도 사태 파악을 하며 조용히 움직여 나가야 한다. 나이든 과장급, 부장급 직원은 퇴사를 염두 해두고 퇴직금 계산하면서 책상에 앉아 있고 대리급은 중간에 끼어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



(딤후 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딤후 3: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인간은 말세가 이미 자기 코앞에 성큼 다가 왔는데 ‘아니오’, ‘예’란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할뿐더러 그 대답을 용기 있는 타인과 회사노조원들에게 맡겨 버린다. 물론 복음적 의미도 없고. 현 세대가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과 늘 부딪침에도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회피하고 상황 따라 ‘아니오’, ‘예’를 매일 반복한다. 물론 그 배후에는 돈을 쥐고 뒤흔드는 악마가 버티고 있다.



하늘에서 피란 압축기로 자신의 심장을 매일 누리고 있는데 인간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주말의 눈요기 꺼리를 사냥하러 나선다. 예배도 자신의 욕망과 슬픔을 부추겨 줄 눈요기 꺼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몸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잊으리 잊으리!’



그러나 주님의 피는 인간에게 갈등을 유발시킨다. 그리고 부딪히게 만든다. 그런 후 인간 몸 밖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맞닥뜨리게 해서 벙어리로 만들어 버린다. 말 못하는 벙어리와 사물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피의 세계에서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눅 1:20, 개역)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제사장 사가랴는 ‘아니오’, ‘예’란 물음 앞에 죄인으로 들통난다. 문둥병자, 맹인, 손 마른자, 혈루병, 벙어리 등은 율법의 저주받은 자를 대표한다. 약속 밖에 있는 죄인이다. 사가랴의 직분은 제사장이었지만 그의 역할은 원래 죄를 드러내는 것인데 자신은 정상인으로 본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아니오’, ‘예’란 물음 앞에 자신이 원래 누구였는지 알았다. ‘난 원래 벙어리였구나!’



왜 피는 인간의 존재와 상태를 부딪치게 만들까? 그것은 주님의 피안에 모든 피조물을 ‘아니오’가 아닌 ‘예’만 고백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왕하 6: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왕하 6: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자신의 사환과 아람 군대를 갖고 놀고 있다. 이리저리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처럼 자기 집에 가만히 앉아서 마음대로 조종한다. 인간은 성경(피의 책)을 보지 않으면 이 세대가 전부인양 알고 산다. 찰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어서 자신의 몸을 현세대에 맡겨 본다. 그런데 성경을 열면 이상한 이야기만 나온다.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다른 세계가 툭 튀어나와서 마음의 문을 쾅쾅 두드리고 조인다. 혼란스럽다. 그런 말씀이 성경에 있었나? 이거 믿어야 하나?!



불말과 불병거가 ‘아니오’, ‘몰라’, ‘이것도 저것도 아니야’ 라고 말하는 이 세대를 심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아람군대와 인간은 장님이고 벙어리이기에 피의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은 멋도 모르고 저주 받는 자리에 가 있다. 이미 주님의 심판날이 시작되었고 재림의 한 사건(시간도 역사도 아닌 약속)을 통해 최종적으로 마무리 될 것인데 ‘아니오’도 아니고 ‘예’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오’도 아닌 자로 산다.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은 십자가 자신 예수와 맺은 약속에 일양 미쁘시다. 절대적이다. 이 ‘미쁘심’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약속 성취의 미쁘심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이 세상 신인 악마를 등에 업고 약속을 어떻게 무엇으로 취급하고 다루었던 간에 그 약속의 내용은 최종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고후 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지금도 약속의 피로 ‘아니오’가 아니라 모두 ‘예’가 됨을 인간의 의사표현과 상관없이 홀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항하여 이 악한 세대가 하나님의 미쁘심의 약속을 부정 하든 긍정 하든 상관없이 천하를 아들의 피로 심판할 것을 성령은 만방에 이미 다 보여주셨고 앞으로 그날까지만 보여 주실 것이다. 그런 후 무대의 막은 내려지고 끝이다. 울어도 소용없다!!!



(행 17:31, 개역)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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