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망고객-이미아 성도님의 글

가망고객-이미아 성도님의 글

얼마나 많은 오고오는 추석, 설날이라는 명절을 더 보내야 하는가?


사람들은 이 세상의 법에 매여 끌려 가는 꼭두각시와 같다.


세상..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큰 성 바벨론의 타이틀을 품고 입에서 개거품 토해내듯 토해낸다.


사도 바울이 입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눈이 떠지는 다메섹 도상에서의 예수님과의 만남을 설교할 때에 세상은 정결한 음식 차려놓고 귀신에게
절을 한다.


우린 사도 바울처럼 입이 열리지 않았을 때 자기 자랑에 입술이 떨렸고 눈이 떠지지 않았을 때 자기 쾌락에 환장했었고 귀가 열리지 않았을 때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데 미쳤었다. 우리도 그들처럼 "나"라는 신에게 절하는 열심이 특심이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그의 입에서는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었고 그의 눈에는 십자가 외에는 보이지 않았고 그의
귀에는 십자가 외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세상과 십자가 사이..그 두 사이에 끼여 어찌하든지 부활의 몸을 입고자 했던 바울처럼 나도 그러하다.


도피주의자도 아니고 금욕주의자도 아니고 허무주의자도 아니다.


단지 십자가가 와서 붙잡았고 붙잡혔다. 제아무리 딴 말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끝은 언제나 이 고백외엔 나오지 않으니 어찌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할 수만 있다면, 아니 도망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입에서 십자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차라리 눈에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차라리 귀에 십자가가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쩔땐 예수님을 몰랐던 고등학교 이전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알든 모르든 이미 정해진 대로 갈 것이지만.


그랬으면 과연 어땠을까? 그랬으면 과연 잘 살았을까? 아마도 여전히 잘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부자는 부자를 낳고 가난은 가난을
낳을 뿐이니까. 단지 그랬으면 태풍처럼 할퀴고 간 그들에겐 할큄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목사님 설교대로 김영문이라는 깡패 목사가 말하면
그 목사가 맞는 것 같고 장수민 목사가 말하면 그 목사가 맞는 것 같고 최승돈 전도사가 말하면 그 전도사가 맞는 것 같고 박경수 목사가 말하면
그 목사가 맞는 것 같고 김홍전 목사가 말하면 그 목사가 맞는 것 같고...고2때 종교에 입문하면서 소위 말하는 종교주의자들, 자칭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데가 한 곳이 없이 태풍을 맞은 흔적으로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쳐 오게 하셨다.
마치 사울이 바울로 변하기 전에 미쳐 날뛰던 것처럼 그 사람들이 내뱉는 진리라고 속인 거짓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내 인생을 스스로 바꿔보기 위한
종교적 열성이 그 어떤 누구보다 뜨거웠다.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러운 짓거리를 어떤 힘에 이끌리어 자행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미명하에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인 열심이 없는 것에 표독스럽게 비판을 가했고 정죄했다.


칼빈저서에 푹 빠져 칼빈을 추종하며 칼빈의 신앙을 모델 삼아 따라하고자 했다. 머리 셋 달린 뱀이라는 표현으로 삼위일체를 거부했던
세르베투스를 화형에 처하게 했던 칼빈의 한 일에 나는 박수를 보냈다.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또 청교도인들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그들의 하루하루 생활을 베껴 써서 코팅하여 벽에 붙여 놓고 읽으며 하루를 그렇게 살기로 노력하였다. 끝은 어디일까? 지옥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곤고함은 날로 더하고 피폐할 뿐이었다. 죽고 싶었다. 내가 믿었던 하나님, 기독교라는 종교가 희망이 아니라면 이
세상 어디에도 희망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세상은 예수님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걸까? 예수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는 못 사는 것이 세상이다.


예수를 들먹이는 우리는 오히려 세상의 쓰레기들이다.


사람들이 두려운 것은 오로지 죽음이고 돈이다. 절대로 예수가 아니고 십자가가 아니다.


자기가 죽는다는 것은 돈이 없다는 것이기에.. 죽지 않기 위해서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말고 인간의 실체가 어디 있는가?


명절이면 아무리 가까이 살아도 먹고사는데 바빠서 만나기 조차도 힘든 형제들을 만난다.


그러면 또 괜한 한숨이 나오겠지.. 술과 갖가지 음식으로 화합과 공동목적을 이끌어 내려는 형제들의 액션이 차라리 슬퍼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달리 말하면 역겨움 속에 숨어 있는 아이러니한 웃음으로 때워야 한다.


거기 모인 모두가 아파트 한 지붕아래 모여 웃고 떠드는 것은 생각해 보았을지 몰라도 지옥이라는 한 지붕에서 모여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해도 지옥에 간다는 것은 꿈꾸지 않았을 것이고 행여라도 지옥에 가지 않기위한 최선의 자기
기준에서 착한일은 베풀었을 테니까..그들이 생각하는 각기 다른 좋은 곳으로 갈 것이니까..불쌍하다.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이 불쌍하다. 악마의
유혹에 빠져서 악마와 함께 할 곳, 지옥 생활하면서도 이 세상이 그렇게 좋으니...입도 벙긋도 못하는 그들 앞에서 마음 속으로 운다. 그래도
예수 믿지 않는 형제들이 나보다 낫다고 고백되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양심선언이다. 양심이 있다는 가정하에..


나는 예수님의 용서 외에는 아무것도 바랄것이 없는 죄인중에 괴수일 뿐이고


그들은 용서받아야 할 일을 저지르지 않은 최소한의 윤리도덕이 존재하는 자들이기에 그렇다.


왜 예수님은 처참하게 당신의 용서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자로 만들기 위해 백주에 벌거벗기시는 수치를 드러내셔야만 하는가?
그것은 당신에게도 흠집이 되지 않겠는가? 흠집?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일이시기에..때가 되면 그 날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면류관을
받으시며 찬송이 영원토록 울려 퍼질 것이기에....


정말 예수님만 믿으면 내 인생이 풀릴 줄 알았다.


그래서 위에 열거한 목사들의 말을 잘 따랐다. 주의 종을 잘 섬기면 복 받을 줄 알았기에..또 그렇게 선포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속은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그 목사들을 이용하여 역으로 내 종교적인 욕망을 채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난 후 너무나도 너무나도 힘들었다. 온갖 죄가 쏟아져 나왔다. 율법이 없을 때에는 마음으로 남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것이
간음인 줄 몰랐는데 율법이 오고 난 후에는 마음만 먹어도 그것이 곧 간음이 되었다. 율법은 끝없이 나를 정죄했고 곧 율법이 인정사정없이 쏘아대
사망으로 인도했다.


내가 그렇게 무서운 자였는지는 아니, 내가 저주받아 마땅히 죽어야 할 자인지는 예수를 내 수호신으로, 내 욕망을 채워줄 신으로, 내 꿈을
반드시 이루어 줄 신으로 소유했을 때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내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분이셨기에 십자가에 함께 못박혀 죽게 하시는
분이시지 결코 죽을 영혼을 살리시는 분이 아니시다. 이젠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이제 그 누가
손가락질 해도 달디 단 박하사탕을 입에 물은 것과 같이 쌔한 시원함 그 자체다. 순간은 욱할지라도 말이다. 맨발로 도망치는 다윗을 향해 시므이가
저주를 퍼붓는 것을 하나님의 시키심으로 여겼던 다윗의 마음이 내내 남는다. 십자가는 죽음이고 생명이다. 십자가는 흠집내기로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죽이시고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


혈육을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씀이 있다. 말씀은 말씀 그 자체로 이루심이 담겨서 살아 운동한다.


육은 육이고 영은 영이니..성령은 바람처럼 육에 속한 자는 육의 일을, 영에 속한 자는 영의 일을 하게 하신다.


언젠가 내가 일한 직업 중에서 많이 와닿은 내용이 있었다. 비즈니스에서는 만나는 사람 도두를 다 가망고객이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한다.


세일즈맨이 오장육부를 챙긴다는 것은 곧 굶어 죽겠다는 뜻이다. 목적을 이루기 까지는 간이고 쓸개고 전부 내어줄 것처럼 한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면 배 밖으로 나온 간이며 쓸깨를 다 주워 담고 꿰매 버린다.


가망고객이란 저 사람이 내 물건을 사 줄 것인지 아니면 사주지 않을 것인지 저 사람이 나에게 계약을 할 것인지 아니면 계약을 안 할 것인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가망성이 있다는 전제하에 섣불리 판단하지 못하고 가망고객으로 남겨 놓는 것이다.
영업에 노하우가 있는 사람은 타킷을 잘 정해서 가망 고객에 대한 발굴을 잘하지만 신입은 모든 사람이 가망고객으로 보여 그들 앞에서 몸둘바를
모른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이 테두리 안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다. 그러나 바람같은 성령은 어제의 바람이 오늘
그 바람이 아니고 오늘의 바람이 내일의 그 바람이 아니듯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처럼 똑같이 보여도 언제나 새롭다. 성령께는 가망고객이라는 것은
없다. 오로지 창세전에 선택한 대로 예수 안에 있는 자와 예수 밖에 있는 자들만 있을 뿐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아니면 저 사람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성령은 눈치 보지 않는다. 성령은 배신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대신 죽으신 피값으로 산 자들와 끝까지 함께 가신다. 아!
그러나 성령의 바람에 실려 가는지 세상의 바람에 실려 가는지 분간할 수가 없는 이건 뭐지? 사실은 이렇게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지나온
간증같은 글도 쓰고 싶지 않았고 괜히 ~~하는 척(아마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십자가 운운 하기도 싫었고...단지 왜 지금 현실에
감사가 나오지 않는지 괴로움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내 맘대로 써지지 않는다. 명절에 가두어 둔 가족적인 의미로 말미암아 시끌벅적이지 않고
외롭게 지내는 내 처지를 한탄이라도 할려고 한걸까? 달빛이 훤한 이 밤에 처량하게..다 집어치우고 "결국엔 돈이 없어서이다."라고 끝을 맺어야만
맞을 것 같은 압력이 가해진다. 자칭 성도의 불편한 진실이다.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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