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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적 같은 예수님
본문 : 누가복음 12: 35-40 제목 : 도적 같은 예수님몰래 활동한다는 것은 참으로 비사회적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기존 사회에 합류할 의사가 없는 경우란, 자기만의 세상과 세계가 따로 있든지 아니면, 그냥 자결할 의사를 가졌든지 할 뿐입니다. 하지만 도둑의 경우에는 특이합니다. 남들이 다 잠을 잘 때, 그리고 마땅히 잠을 자야만 하는 그 밤에 활동을 개시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도둑에게는 타인들이 잠에서 깨면 아니됩니다. 오로지 자기 혼자만이 잠자기 않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타인들은 자신에게 피해를 봐야 하는 피해자들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피해보지 아니하면 도둑은 살 길이 막막합니다. 밤에 활동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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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의 때
누가복음 17:26-37 인자의 때 인자의 때는 ‘인간’을 갈구는 때입니다. 인간의 삶을 통째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괴롭게 하는 때입니다. 더 이상 인간이 인간으로서 삶을 허용하지 않는 때입니다. 이 때로 인하여 인간의 독자적인 삶이란 용납될 수 없고 하나님에 의해서 관장되는 ‘인자의 삶’에 예속되는 삶만 있을 뿐입니다. 즉 온 우주에 예수님의 삶에서 나오는 속성만 충만한 그런 세상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최후의 심판’이라는 것이 인간들의 일상 생활에 대해서 ‘인자의 때’를 배경으로 해서 그 성질을 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상생활을 중지하고 아무 일도 안했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생활하면서 얼마나 ‘인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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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동전
본문: 누가복음 15:8-10 잃어버린 동전 인간이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째서 자신이 하나님에게 ‘죄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왜냐하면 죄인이라는 것은 사태 파악을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참된 현실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옹호해주는 그런 현실관을 따로 장만해서 그 안에서 자신을 존중하는 식으로 ‘죄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이것을 성경에서 ‘육’이라고 합니다. 육에서 나온 것은 육으로 계속 질주할 뿐입니다. 육이 영으로 도약하는 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은 육과 협상하거나 타협하거나 흥정하거나 의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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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생 얻기
◆ 설교 요약 ◆ 2011년 1 월 30일〈 지난 주 설교 요약 〉예수님의 소원대로 발생된 성도는 둘째 사망의 위력에서 벗어난 성도입니다. 이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뜻이란 오직 ‘여자가 남자는 안는다’는 사실 뿐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자기 몸 위주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에게는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아무리 살아봤자 악마의 힘에 잠겨 있는 처지입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천국의 열쇠 뿐입니다. ‘천국의 열쇠’란 둘 째 사망마저 이긴 그 위력으로 제공된 것이라서 예수님의 공로만 자랑하는 식으로 전개됩니다.〈이번 주 설교 요약 〉본문 : 누가복음 10:25-27 제목 : 영생 얻기 창세기 3장에서 분명히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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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윤님의 고백과 질문
회사 출근해서 화장실에 들를 때면. 거울 속 내 모습을 살핀다. 초췌하다, 피곤해 보이고 젊음은 잠시 구나 하며 소멸되어 가는 나를 보며 그런 모습에 고개를 떨구며 끄덕인다. 자랑 할 것 없는 내 모습,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슬그머니 미래에 무엇 무엇, 또는 어떤 일을 이루어야 하는 걱정을 쏟아 낸다. 마치 홀로그램 같다, 홀로그램 스티커에서 2개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나타나는 모습 그런데 왜 회사에서 유독 더 그런 것을 느끼며 나타나는 걸까? 본문 설교말씀에 파장이 일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일터라는 것이다, 저 일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자아의 발아 본문을 보면서...매일 쪽지 시험 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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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으로 낳은 자식
고린도전서 4:14-17 복음으로 낳은 자식사람의 육은 부모의 죄 속에서 출생한 것입니다. 육의 요소가 여전하기에 죄가 작렬하는 배양토로서 평생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들 끼리 누구를 본받는다는 것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같은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바로 ‘사라짐’을 본받는 인생을 뜻합니다. 즉 복음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낯선 세상에서 다시 등장되는 존재로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동은 인간의 재주로 성사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육적인 요소를 벗겨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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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18장
목사님! 오늘 저희교회 예배에서 눅 18:1~8절까지 말씀을 듣던 중 1절부터 7절까지는 비유의 한 틀로 이해가 되나, 8절의 후반부에 있는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더라' 라는 문맥은앞 7절까지의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인 것 같고 연결을 하지 못하겠습니다.1. 8절의 후반부가 앞의 비유와 어떤 연결의 의미인지요?2. 또한,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의미는 문맥상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해석이 되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시는 믿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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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자취
로마서 4:9-13 믿음의 자취“언약은 율법으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아 난 것이다”고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4개의 생소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언약’, ‘율법’, ‘믿음’, ‘의’ 같은 겁니다. 하나의 요소가 이탈된다면 나머지 요소가 갖고 있는 본래의 뜻을 위반될 것입니다. 그 정도로 이 네 가지 단어는 뭉쳐져서 어느 하나를 그 자리에서 독립적으로 뺄 수가 없습니다. 이는 흔히들 “믿음, 하나만 알면 돼”라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믿음이 뭔지를 알려면 참으로 율법이 뭔지도 더불어 알아야 하고, 그것만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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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과 귀신
고린도전서 10:17-22 몸과 귀신 평소에도 악마는 예수님쪽을 향하여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습니다. 전에 지상에 몸을 갖고 계신 예수님을 괴롭힌 수법을 더욱 더 강렬하고 정교하게 성도에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쪽은 ‘몸’과 ‘피’의 관계를 공고히 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피의 내용이 발췌되는 몸만이 몸이다’는 겁니다. 아담의 몸부터 시작해서 모든 몸은 죽음을 발산하는 몸입니다. 그 이유와 원인에 대해서 인간들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건강에 대해서 그렇게 챙기고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하나님께서 왜 건강하지도 않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일하시는지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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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말씀이 옳은지요
162번 정낙원목사님글과 163번 정석훈목사님글은 좀 다른 주장을 하시는 것 같은데 잘못본것인가요십자가마을에 들어온지 얼마되지않아 분별력이 부족합니다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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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집
《 설교 요약 》 2010년 7월 11일 이근호목사〈 지난 주 설교 요약 〉애초에 우리 인간은 열매였습니다. 영생의 열매 아니면 저주스러운 열매로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뭉쳐진 열매 같은 존재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과 함께 했던 민족입니다. 그러나 결국 저주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지는 줄기일 때만 좋은 열매가 됩니다.〈 이번 주 설교 요약 〉본문 : 누가복음 6:46-49 제목 : 무너진 집 종말을 반기는 사람은 종말 뒤의 세계를 기대하고 사는 사람 밖에 없을 것입니다. 종말은 일종의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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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지지 않는 사랑
로마서 8: 35-39 끊어지지 않는 사랑‘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숱하게 끊어진 경우가 인간 세상 안에서 있어왔다는 점을 전제로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 쪽에서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모든 시도들은 항상 끊어져왔고 또 끊어질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악마를 이긴 전력이 있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악한 권세는, 인간들이 신에게 나가는 모든 것을 끊어놓도록 작동하는 권세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 연결선을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끊게 만드는 위세 앞에서 무능할 뿐입니다. 악마가 시도하는 방식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환란, 곤고, 핍박,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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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불
본문 : 누가복음 11: 33 -36 제목 : 등 불 어두움 속에서 사는 어두움 사람은 자신이 어두운 줄도 모르고 자기 바깥도 어두운 줄로 모릅니다. 만약에 어느 날 자기 속이 밝아지기 시작하면 자기 바깥이 비로소 어둡다는 것이 알게 됩니다. 동시에 자신이 이 어두움을 어둡다고 알려주는 등불의 역할을 하고 있음도 아울러 알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세상을 처음 만드실 때부터 어두운 가운데 빛을 만드시고 그 빛을 가지고 비로소 어두움과 빛을 구분하는 식으로 세상을 정리해 나가셨습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작업에 동원된 자재들이요 설비들입니다. 인간들은 이러한 창조주의 의도를 모릅니다. 그저 즐기는 데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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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기 속의 그리스도'를 읽고 질문 드립니다.
50p 밑에서 8번째 줄에 '그리고 두 번째 위임식용 번제를 드릴 때는 어떤 것이 가미됩니다. 인간이 평소 먹고 살려고 먹는 본인들의 음식이 감히 거룩한 제사에 들어가는 것을 주께서 허락해요'라고 하셨는데,,여기 '인간이 평소 먹고 살려고 먹는 본인들의 음식'은 두 번째 양 오른쪽 뒷다리에 얹어지는 무교병과 전병을 가리키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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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산
이 시대에 변화산에서 처럼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반대로 변화산 사건이 일어난 이유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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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마오의 두 제자
본문 : 누가복음 24 : 13 - 23 제목: 엠마오의 두 제자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만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쪽에서 일방적으로 두 제자에게 찾아와주신 것입니다. 이로서 부활되신 분이 아직 부활되지 않는 지상의 사람과 접촉이 가능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도권은 인간에게 여전히 있지 아니합니다. 부활의 세계가 부활에 이르지 못한 세계에 대해서 지배권를 행사하고 있는 겁니다. 등장하면 만나지고 철수하면 그 현장에 계시지 아니합니다. 이는 지상의 살아 있는 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소유할 수는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예가 됩니다.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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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므나 비유
본문 : 누가복음 19:15-20 제목: 한 므나 비유 사람들은 오해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다가섭니다. 예수님 입에서 떨어지는 모든 말씀을 왜곡되게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평소에 자기 위주로 살아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오는 줄로 여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평소의 생활 방침을 변경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기본 마음이 정당하고 반듯한 것으로 계속 유지하고 싶은 생각 때문에, “내가 이해 못할 예수님의 말씀을 없을 것이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는 바로 인간들이 이런 오해를 겨냥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천국이 당장 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동안에 너희들 뭘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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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판단
고린도전서 4:4-5 하나님의 판단 ‘주께서 오시기까지’라는 말은 모든 인간은 바로 이 주님 오심 사건에 이미 잠그져 있다는 말입니다. 굳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이 굳어져 있는 내용 속의 하나가 바로 인간들의 판단입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책할 것’이 자기로서는 찾아낼 수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곧 최종 판단을 자기에게서 주님에게로 늘 옮길 용의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판단 대상이 인간이 되어버리면 여기서 오류가 발생됩니다. 왜냐하면 늘 변하는 자신이 늘 변하는 대상을 고정적으로 판단하는 바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 때 복음을 부인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영원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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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나의 표적
본문 : 누가복음 11: 29 -32 제목 : 요나의 표적 요나의 등장은 마치 우리 중에 키 큰 사람이 우뚝 솟아 오르는 것처럼 돋보이게 하는 하나님의 조치였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주목해야 될 인물이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가 당한 일을 남의 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요나의 등장은 곧 ‘그 분의 오심’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요나의 외침은 ‘그 분의 목소리’가 됩니다. 자기 것을 쥐고 있는 관계로 하나님께서 요나를 자신들에게 경고용으로 보내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동안 니느웨 사람들은 자기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기 것’이 요나의 시선으로 보면, 죄를 양산하는 공장시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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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감사합니다 또 건져 주시네요
주님 감사합니다 또 건져 주시네요 2011년 3월 2일 수요일 오전 10:50:08 김대식 아벨은 자기 제사가 없다. 있어도 삭제 당함 당한다.(노아홍수처럼 심판이다. 싹슬이 빼앗김이다.) 그저 미래의 예수님의 제사만 쳐다보고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가인은 자기 제사가 있다. 삭제 해도 다시 자신의 제사를 또 세운다. (바벨탑처럼 노아홍수의 심판의 흔적을 삭제해 버린다. 그리고 결집 일치 협동 조직 시스템화 한다.) 아벨은 자신이 제사를 도저히 드릴 수가 없어서 예수님의 개입을 요청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아무리 봐도 자기에서 나올수 없는 답이기에 예수님의 숙제로 떠 넘겨버리는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낯짝 두꺼운 모습이
-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