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성경, 교리, 교리적 주석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성경, 교리, 교리적 주석

칼빈의 중보자 그리스도의 위격적 연합 교리에 비추어

 

1. 들어가는 말: 축자적, 신앙의 유비

 

성경의 권위(autoritas)와 자기가신성(auvtopistij)은 그 저자 (autor)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순환성”이 단지 억측이나 헛된 논변에 불과하지 않음은 하나님은 스스로 존 재하시고, 스스로 계시하시는,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 문이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이를 신학 혹은 계시의 존재의 원리 (principium essendi)로서 개진하였다. 스스로 존재하는 진리 곧 계 시에 대한 확신은 구원의 은총으로 주어진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르 는 길”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전적으로 이끌리는 것이다. 한 마디( 節)의 성역을 뒤로하고 새 마디의 음조를 짚어 가시는 이환봉 교수님 이 강단에서 남긴 과묵한 사자후, 그 요체가 여기에 있다.1)

성경은 규범하는 규범(norma normans)이며 교리는 성경에 의해 서 규범된 규범(norma normata scriptura)이다. 교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교회가 신앙고백의 형태로 진술한 명제이다. 교리는 그것이 참인 이상 성경에 속한다. 성경은 참 교리에 의해서 그 고백적 가르침 이 명제적으로 진술된다. 주석은 성경을 풀어 참 교리를 조명하는 것 이다. 이렇듯 성경의 참 교리를 풀어서 조명하는 것을 ‘교리적 주석’ 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칼케돈신경에 의해서 수립된 중보자 그리스도의 신인양성의 위격 적 연합에 따른 신성과 신성의 속성교통(koinwni,a ivdiwma,twn, communicatio idiomatum)을 다루면서 칼빈과 개혁신학자들은 그 것이 위격 안에서(in), 위격을 통하여(through), 위격에로(unto) 간 접적으로(indirecte)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것이 직접적으 로(directe) 교통한다고 본 루터란 정통주의와 대척점에 섰다.

 

칼케 돈신경은 그리스도의 인격(persona)만이 구체(具體, concretum)로 서 기체(suppositum)가 되며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natura)은 추 상(抽象, abstractum)으로서 실체(substantia)가 될 뿐 자체로 기 체는 될 수 없다고 보았다.2) 그리하여 “한 동일하신 분(e[na kai. to.n auvto.n, unum eundemque)”이 “신성에 따라서 성부와 동 일 본질이시고, 인성에 따라서 우리와 동일 본질이시며,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와 같으시되 오히려 죄는 없으시며, 실로 창세전에 신성 에 따라서 아버지에게서 나셨고, 후일에 동일하신 분이 우리와 우 리의 구원을 위하여 인성에 따라서 하나님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 에게서 나셨으며”라고 천명하였다.

여기에 사용된 “신성에 따라서 (kata. th,n qeo,thta, secundum deitatem)”와 “인성에 따라서 (kata. th.n avnqrwpo,thta, secundum humanitatem)”는 위격 적 연합 가운데 있는 양성의 속성교통의 방식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표현으로서 본성은 위격 안에 있으나(evnupo,stasij, enhypostasis) 위격은 아니라는(avnupo,stasij, anhypostasis) 정통기독론적 관점 을 견지하고 있다.

 

칼빈과 개혁신학자들은 각각의 본성에 따른 속성들이 모두 한 인 격에 돌려진다는 점에서만 속성교통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위격 안 에서, 위격을 통하여, 위격에로 간접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교통 을 성경이 전하는 바에 따른 축자적 교통(communicatio verbalis) 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단지(tantum)” 하나의 언술 방식(modus loquendi)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realiter) 일어나는 것 으로 다루어졌다. 이는 성찬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영적 그러나 실 제적 현존(praesentia spiritualis sed realis)”을 말한 칼빈의 성례 론에 부합한다. 여기에서 “영적”이라 함은, 인성에 따라서는 어느 곳 에 계시는 한 분 동일하신 주님이 신성에 따라서 모든 곳에 계신다 는 축자적 교통의 비밀(musth,rion)을 함의하고 있다. 성례의 비밀 (sacramentum)은 한 분 그리스도께 인성에 따른 localitas와 신성 에 따른 ubiquitas를 모두 돌릴 때, 온전히 작용한다.

 

루터는 신성과 인성의 속성들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질 경우 그것들을 묶는 모종의 개념을 상정해서 제 3의 길로 이해하려고 드는 경향을 보였다. 후기 루터에 있어서는 이러한 입장이 철회되지만 그 의 제자들은 오히려 스승의 초기 입장을 강화해서 일치신조(Forma Concordiae)에서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인성으로써 모든 곳에 현존 하신다는 인성의 편재(遍在)를 거론하는데 까지 이르고 있다.

그들은 이를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에 충실한 루터의 입장이라고 말 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그것에 역행된다.3) 이와는 대조적으로, 칼 빈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듯한 신성과 인성의 모든 속성 들을 한 인격에 속한 것으로 보아 축자적으로 서술하는 가운데서 그 비밀을 오히려 부각시키고자 한다. 루터는 축자적인 것을 넘어서서 실제적인 것을 찾으려고 하지만, 칼빈은 축자적인 것이야말로 실제 적이라고 여긴다. 칼빈의 성경 해석 방법은 문자적, 역사적, 영적이 라고 회자된다. 문자적이나 영적이기 때문에 유대문자주의를 넘어서 고, 영적이나 문자적이기 때문에 풍유적 해석이 아니라 신학적 해석 에 이르게 된다. 역사적 해석은 문자적-영적 해석을 전제한다. 그 때 에만 역사비평주의를 넘어서게 된다. 본고에서는 칼빈이 개진한 중보 자 그리스도의 위격적 연합 교리가 그의 성경주석에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고찰함으로 이러한 점을 일고하고자 한다.

 

2. 위격적 연합에 따른 속성교통과 소위 초(超)칼빈주의 (the so-called extra Calvinisticum)

 

소위 초칼빈주의는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루터란들의 성찬 교리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생겨난 개념이다. 루터란들은 칼빈의 성찬 교리 가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를 육체적인 임재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자 신들의 속성교통에 관한 이론과 배치(背馳)된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extra Calvinisticum”이라는 이름으로 폄하하였다. 그런데 칼빈을 잇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이 이름이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 는 칼빈신학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오히려 영예로운 호칭이 된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소위(the so-called)”라는 말을 그 앞에 붙여 자 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4) 소위 초칼빈주 의는 칼빈이 성찬 교리뿐만 아니라 승천 후에도 계속되는 그리스도 의 양성적 중보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가 그 자신이 육체적으로 거 하시는 자리를 떠나시지 아니하시고도 순전히 초(超)육체적인(etiam extra carnem) 방법으로 영적 그러나 실제적인 현존(praesentia spiritualis sed realis)을 하신다는 것을 주장하는데 미친다. 이는 그 리스도의 현존은 언제나 전적이나 전체적으로 그리하지는 않는다는 (totus ubique sed non totum, the presence of the whole Christ but not wholly) 원리에 기반한다.5)

 

칼빈의 다음 말이 소위 초칼빈주의의 전형으로 자주 회자된다. 위 격적 연합에 따른 속성교통의 교리적 핵심이 여기에 있다. 이는 다음 과 같은 논법을 취한다. ‘신성에 따라서는 동시에 모든 곳에 계시므로 옮겨 다니실 수 없는 분이 인성에 따라서 내려오셨으므로, 그 분은 떠 나지 아니하시고 내려오셨다.’ 이는 철학적 혹은 논리적 귀결이 아니 라 신앙의 유비에 따라 받아들인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축자적 진술 (praedicatio verbalis)이다.

무한한 본질의 말씀이 인간의 본성과 연합하여 한 인격을 이룬다고 해서 우 리는 그가 그 속에 갇혀 계신다고 공상하지 않는다. 놀랍도다, 하나님의 아들 이 하늘에서 내려 오셨지만 하늘을 떠나지 않으셨도다! 놀랍도다, 그가 처녀의 태중에 계셨으며, 지상에 다니셨으며, 십자가에 달리고자 하셨으며, 처음과 같 이 항상 우주에 편만하셨도다! 6)

 

칼빈이 개진한 소위 초(超)칼빈주의는 그리스도의 신인양성의 위 격적 연합 관점에서 파악된다.7) 칼빈은 대리적 속죄에 대한 루터 의 이론이 그리스도의 양성의 속성간의 “위격적 교통(a hypostatic communication)”이 아니라 “실제적 교환(a real exchange)”에8) 기 초함으로써 오류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간파하면서9), 성육신한 중 보자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하여 다양하게 기술된 성경의 본 문들은 위격적 연합에 따른 “속성교통”이라는 관점에서 일관성 있 게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빈에 따르면, “속성 혹은 특성의 교통(communicatio idiomatum sive proprietatum)”은 다음과 같 은 양상으로 나타난다.10) 이러한 구별은 성경의 서술에 따른 축자적 인 것이다.11)

 

첫째, 성자께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계셨으며(요 8:58), 모든 피 조물보다 먼저 나셨으며(골 1:15, 17), 영원히 아버지와 함께 영광 을 받으시며(요 17:5),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일하시는 분이라는(요 5:17) 말씀들 가운데서 보듯이 신성에 고유한 속성만을 표현하는 경 우에도 양성의 위격적 연합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영원히 성부와 함께 계시고 일하시는 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지 만 동시에 이 땅에 오신 참 사람이시라는 사실을 함께 새겨야 한다.

 

둘째, 인성의 고유한 속성만을 표현하는 말씀들도 양성의 위격적 연 합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성자의 낮아지심과 육 체 가운데 오심이 자주 말씀된다. 예컨대, 성자는 “아버지의 종”이시 다(사 42:1). 그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시고(요 8:50), 자신의 뜻을 행하려 하지 않으시며(요 6:38), 지혜와 키가 자라 가는 분이며 (눅 2:52), 사람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분이시다(눅 24:39). 주님은 자신이 하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요 14:10). 뿐 만 아니라 마지막 날과 때는 자신도 모른다고 하셨다(막 13:32; 마 24:36).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표현하는 이러한 구절들을 읽을 때에 도 그의 신성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대속의 진정한 비밀을 깨닫게 된 다. 그는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연약함을 지니시고 시간에 따라서 성 장해 가는 분이시지만 또한 참 하나님이시므로 언제든 완전하고 불 변하시다.

 

셋째, 신성에 고유한 속성과 인성에 고유한 속성이 함께 표현되 는 다음 본문들은 오직 위격적 연합에 따른 속성교통의 관점에서만 합당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이(신성) 자기 피로(인성) 사신 교 회”(행 20:28), “영광의 주를(신성) 십자가에 못 박지(인성) 아니하였 으리라”(고전 2:8),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신성) 우리가 들은 바 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인성)”(요 일 1:1), “그가[하나님이](신성)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인 성)”(요일 3:16) 등.

 

복음서의 많은 구절들은 주어는 신성을 술어는 인성을 제시하거나, 혹은 그 반대 경우, 혹은 주어는 인성을 술어는 신인양성을, 혹은 그 반대 경우 등 다양하지만 언제든 신인양성의 위격적 교통이라는 관점 에서 읽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은 인성에 따라서 그리하셨으나 그 사역이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주님께 동시에 함 께 돌려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다는 말씀과 영광의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말씀이 모순된 것이 아니라 오히 려 위격적 연합의 비밀을 심오하게 제시하고 있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를 흘리셨다는 말씀으로 그 분께서 인성 가운데 하신 일을 신성으로 돌린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신성에 고유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치에 맞지 않는 것 은 아니다.12)

 

넷째, 칼빈은 그리스도의 속성 교통을 다루면서 성경에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함의하는 인격을 전하는 구절들이 많음을 지적한다. 이 구절들은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참 실체를(veram Christi substantiam)” 신성이나 인성으로 특정할 수 없는 경우로서 동일한 말씀으로 양성의 어떠함을 동시에 나타내는 본문들도 위격적 연합에 따른 속성교통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이러한 본문들은 요한복음 에 많이 나타난다.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사하는 권능을 가지시고(요 1:29; 막 2:10), 마지막 날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로 서 공경을 받으시며(요 5:21-23), “세상의 빛”(요 8:12; 9:5), “선한 목자”(요 10:11), 구원의 “문”(요 10:9), “참 포도나무”(요 15:1)로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신다는 말씀들이 이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 “주”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신성과 인성을 함께 아우 르는 가장 중요한 표현이다(고전 8:6). 이러한 권위와 사역은 단지 사 람에 불과한 자에게는 부여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 버지께도 이를 그대로 돌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성육신한 아들에게 이를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절들이 신 성과 인성 어느 한 성에만 특정되는 속성을 제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분류가 칼빈에게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13) 칼빈의 고유성은 이러한 분류가 신학적 사변의 산물이 아니라 성경 언어와 역사와 문 맥에 충실한 주석의 열매라는 점에 있다.14)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맥 고완은 칼빈의 설교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들어, 그것이 성경의 권위 에 기초하고, 강해적, 체계적, 교리적이며, 목회와 예배의 일환으로 행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15) 우리는 이를 칼빈의 주석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신성양성의 속성교통론의 기초 가 되는 위격적 연합 교리를 칼빈이 어떻게 그의 성경주석에서 전개하고 있는지 아래에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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