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성경. 교리. 교리적 주석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3. 위격적 연합 교리에 관한 주석: 신인양성의 속성교통에 주목하여

 

칼빈의 주석 가운데 요한복음과 요한일서 주석에 위격적 연합 교 리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요한문헌에는 ‘나는......이다(ejgwv eijmiv)’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그 자신의 증언이 풍부하다. 칼빈은 공관복음을 “중보자의 모 든 의무(partes)”를 다룬 “몸(corpus)”이라고 부르고 요한복음을 “ 영혼(anima)”이며 “다른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한 길을 여는 열쇠 (clavis)”라고 부른다.16)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위격적 연합이라는 교 리적 주제(locus classicus)를 그것을 증언하는 요한문헌의 본문들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3.1. 말씀이 육신이 되심

 

칼빈은 제 2위 성자 하나님의 인격 자체가 성육신의 비밀의 원천 이 됨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심의 형언할 수 없 는 은밀함(ineffabile arcanum)”은 “하나님의 본질로 계신 진정한 위격(veram in essentia Dei hypostasin)”에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말씀의(요 1:14) “자명한 의미(clara sententia)”는 “창세 전에 나신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거하시면서 사람 이 되셨다”는데 있다.17)

칼빈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무엇보다도 적절히(magis proprie)” 표 현한 말이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Deus manifestatus in carne)” 이라고 본다.18) 칼빈은 주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많은 본문이 “단지 그 의 신성 자체를(in nudam divinitatem)”를 말하고자 함도 “그의 인 성”을 말하고자 함도 아니고 “육체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묘사(elogium filii Dei in carne manifestati)”를 담고 있다고 주석한다.19) “육체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Deus manifestatus in carne)”으로서 대속의 중보를 행하시는 주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는 말씀들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20)

 

칼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말씀을(요 1:14) “하나님의 아들 은 시간적인 시작을(temporis initium) 지니지 않으신 영원한 말씀 이신 채로 여전히 계시면서 어느 시점에 사람이 되셨다(homo esse coepit)”고 하여 소위 초칼빈주의의 일단을 드러낸다.21) 소위 초칼빈 주의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찬송시라고 알려진 빌 2:5-11에 대한 칼빈의 주석에도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forma Dei)” 로서(빌 2:6) 영원한 “엄위(maiestas)”를 지니신다. 성육신한 주님 이 자기를 비우심은(빌 2:7) 신성의 포기가 아니라 한 인격 안에서의 인성을 취하심으로 신성이 인성과 연합함을 뜻한다. 이는 다음과 같 이 주석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실제로 아버지와 동일하시며, 자신의 영광을 제한하심이 없이, 종의 모양으로 육체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셨다.” 22)

소위 초칼빈주의는 성육신 전의 중보자 그리스도의 임재를 설명하 기 위한 신학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야곱의 사닥다리 위에 나타난 여 호와의 사자를 주석하면서 칼빈은 “그리스도의 몸이 유한하다는 사실 은 그가 땅과 하늘을 가득 채우시는 것을 제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은혜와 능력이 모든 곳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23) 같 은 맥락에서, “고대에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습(forma hominis)으로 나타나셨을 때, 그것은 이후에 하나님이 육체 가운데 오셨을 때 보여 주셨던 신비의 서곡(praeludium mysterii)이었다”고 주장한다.24)

 

비록 그리스도는 아직 육신 가운데 나타나시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그가 그 자신을 조상들에게 나타내셨을 때는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중보자였으며,”25) “미래 그의 사역의 실례(specimen)”를 계시하셨다 고 보는 것도 같은 경우이다.26) 성육신 전의 그리스도의 중보를 특별 히 강조하는 입장에 비추어 우리는 칼빈이 그리스도의 영적이나 실제 적인 편재(遍在)가 역사 가운데 시종 구현되고 있음을—비록 구약에 서는 예표적이나—확신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27)

 

3.2. 세 가지 종류의 신인양성의 교통

 

3.2.1. 은사의 교통(communicatio gratiarum)과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마치 신적인 인간과 같이(quasi divinum hominem)” “그의 인격 가운데” “인성에 있어서” “하늘의 능력(coelestis virtus)”을 지니신다. 인성은 신성의 고유한 속성을 그대로 지닐 수는 없으나, 신성과 연합함으로 그 고귀함을 누리게 된다.28)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엄위가 육체에 결속된다 (Dei maiestas cum carne coniuncta).”29) 우리가 하나님과 결속하 는 유일한 고리는 그리스도와의 결속이다(unicum esse vinculum nostrae cum Deo coniunctionis, si Christo coniuncti sumus).”30)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마 1:23)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사람들성경, 교리, 교리적 주석: 칼빈의 중보자 그리스도의 위격적 연합 교리에 비추어

사이의 교통의 방식”이 되신다는 점을 지시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호의를 얻을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그와 하나가 된다(unum cum eo efficimur).”31) 이렇듯,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 체로” 거하시는(골 2:9)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전부 우 리에게 교통하신다(totum se nobis communicat).”32) 성령이 그리 스도께 무한이 임하였다. 그것은 은사의 종류 여하에 따라서 제한적 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영의 무한한 부요함을 아 들에게 부어주셨다. 그리하여 그 충만함에 모든 구원받은 자녀들이 동참하게 하셨다.33)

 

비록 의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흘러나오지만, 그 완전한 현현은 그리스 도의 육체 외에 그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의 육체 안에서 사람의 구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육체 안에서 죄를 속하기 위한 희생제물 이 드려졌으며,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한 하나님을 향한 복종이 이 루어졌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죽음을 이기고, 그의 육체는 하늘의 영광 속으 로 취해졌다.34)

그리스도는 “그가 자신의 본성 가운데 지니신 것을 우리를 양자 로 삼으심으로 우리에게 교통하신다(quod natura proprium habet nobis adoptione communicat).”35)

 

3.2.2. 속성의 교통(communicatio idiomatum)

 

속성의 교통은 한 인격 안에서 한 본성에 속한 속성들이 다른 본성 에 “돌려지는(transfertur, aptetur)” 경우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말씀을(행 20:28) 주석하면서 칼빈은 “여 기에서 바울이 피를 하나님께 돌린 것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리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교부들 은 한 본성의 속성이 다른 본성에 돌려지므로 이러한 형태의 어법을 속성의 교통이라고 불렀다”라고 하여 이에 대한 자신의 분명한 입장 을 피력하였다.36)

칼빈에 따르면,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에서(요 3:13) “인자”는 인성에 따른 표현이고 하늘에 올라간 자는 신성에 따른 표현이다. 이렇듯 “인격의 하나됨으 로 인하여 한 본성에 속한 특성이 다른 본성의 특성에 돌려지는 것은 (transferri) 자주 있는 일이며 통상적이다.”37) 이렇듯 부활하신 주님 의 신인양성의 위격적 연합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38) 이와 관련하 여 칼빈은 “신성이 쉬고 있는 동안에(quiescente divinitate)” 인성 은 죽음을 죽으셨다는 이레네우스(Irenaeus)의 말이 광범위하게 적 용될 수 있다고 지적하므로 신인양성의 속성의 교통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개진하였다.39)

무엇보다 이와 관련하여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에 관한 칼빈의 주석 이 주목된다. 주님은 인성에 따라서 “죽음의 공포에(metu mortis)” 휩싸여 계셨지만 “신적인 영광의 엄위”를 버리지 아니하셨다. 그에게는 “경건과 엄위(pietas et maiestas)”가 함께 있었다(암브로스, Ambrose). 다만 신성에 따른 능력이 “마치 숨은 듯 일시적으로 쉬고 있었다(quasi abscondita ad tempus quievisse).” 그러나 고통당 하고 두려워하는 동안에도 인성은 그것과 연합되어 있는 말씀의 권능 에 의지하였다. 그리스도의 뜻은 인성에 따른 자발적인 것으로 성부 의 뜻에 일치하였다(알렉산드리아의 키릴, Cyril of Alexandria). 그 러므로 단의론자들(Monothelites)의 주장은 잘못되었다.40)

 

칼빈은 신인양성의 중보가 없다면 우리의 구원도, 아버지께 영광을 올림도, 그 동일한 영광으로 아들이 높아짐 곧 승귀도 없다는 점을 분 명히 적시하고 있다.

우리의 복은 죄로 말미암아 지워진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서 회복하고 갱신하는 것에 있다.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살 아있는 형상(viva imago)일 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와 함께 지니신 그의 인성 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영광이 새겨진 영상(影像, effigies)이시다. 그리하여 그 는 우리를 변화시켜 그의 지체로 삼으신다.41)

 

3.2.3. 사역의 교통(communicatio apotelesmatum)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신인양성의 중보자로서 대속의 사역을 다 이루셨다. “생명이시자 생명의 근원(vita et fons vitae)”이 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영혼과 육체의 사람이 되 시고 그 인성에 따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리하셨다. 신성에 따라 서 영원한 생명이신 분이 인성에 따라서 죽으셨다.42)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을(요 14:1) 주석하면서 칼빈은 믿음의 주초(柱礎)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양성의 위격적 연 합에 따른 중보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만한 사람들은 그리 스도의 비하를 부끄러워하고 하나님의 불가해한 신령(神靈)으로 날아 올라간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으로서 우리가 보기에 낮은 곳에 처 하신 그리스도께 의탁하지 않는 한 결코 하늘에 이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연약함에서 기초를 찾지 않는 한 그것은 결코 확 고해질 수 없다.”43)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 심”으로(요 5:17) 사람이 되신 주님이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신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직분을 수행하는” “구원의 저자(salutis autorem)” 가 되심을 알리시기 위해서였다.44)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 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는 말씀을(요 5:19) 주석하면서 칼빈은 본문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나 그가 성부와 구 별되는 성자의 위격을 지니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하는데 그치는 것 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그의 인성이 아니라 “그의 가시적인 육체 아래 숨겨진 하나님의 능력으로(divina virtute, quae sub carne visibili latebat)” 병자를 치유하였음을 부각시켜 그의 사역이 신성과 인성의 양성적 중보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기록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로부터 주님의 일 은 “하나님의 일(opera divina)”이기 때문에 안식일에도 금할 수 없 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안식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45)주님은 우리의 대속을 위하여 “육체의 본질과 정서(essentia carniset affectus)”를 함께 지니셨다. 그리하여 연약함 가운데 대속의 죽음 을 죽으셨다.46) “신격이 육체의 연약함에 여지를 허락하신 방식으로 (quomodo deitas locum cesserit carnis infirmitati)” 대속의 죽음 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영혼과 육체의 전인적 죽음에 복종하 신 분이 죽음에 대한 “승리자(victor)”가 되셨다.47)

 

3.3. 위격적 연합과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맞추심(accommodatio divina)

 

칼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의 신인양성의 위격을 다루 면서 종종 “그리스도의 영(spiritus Christi)”이라는 말로 신성을 대 신한다. 주님이 “생명의 빛”이라는 말씀을 주석하면서(요 8:12) 칼빈 은 비록 그리스도는 “몸으로는(corporis adspectu)” 우리를 떠나 계 시지만 “그의 영의 비밀스러운 능력은 날마다 우리 가운데 조명된다” 고 강조한다.48) “성령은 그리스도와 무관히 어떤 것도 우리에게 부여 하지 않으신다. 그는 그가 우리에게 비추시는 것을 그리스도로부터 취하신다.”49)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특정하여 부르는 것은(롬 8:9), 그 “충 만함(plenitudo)”이 우리의 중보자시며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부어지 셨으므로 그에게서 우리가 “우리의 몫(nostrum portio)”을 받아 누 리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50) 성자와 성령은 각각의 특성에 따라서 구분된다. 보혜사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능력 과 작용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역사하기 때문이다. 보혜사 성령의 임 재로 말미암아 ‘우리 밖에(extra nos)’ 계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in nobis)’ 계신다.51) 그리하여 우리를 위하여 계속적으로 중보하신다. 이러한 중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미친다. 이러 한 측면에서 보혜사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자 진리의 영이라 일컫는 다.52) 여기에서 우리는 나를 초월한 말씀이 내 속에서 말씀된다는 소 위 초칼빈주의의 인식론적 차원을 발견한다.53)

 

이러한 위격적 연합의 인식론적 차원이 칼빈이 『기독교 강요』와 신 학적 작품들, 그리고 주석과 설교 등에서 누차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 의 맞추심이란 개념에 잘 드러난다. 신학자들은 주로 그 기원과 용례 를 연구함에 있어서 수사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그러나 칼빈에 게 있어서 이 개념은 그 이상의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54) 신구약이 실 체에 있어서는 하나이나 경륜에 있어서는 다양하다고 지적하면서 그 다양함을 설명하거나,55)

 

여기에서와 같이 위격적 연합에 따른 양성의 속성교통을 다룰 때 하나님의 맞추심이라는 개념이 현저히 나타난다.칼빈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독생자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 다고 전하는 말씀은(요 1:14) 우리에게 “그에 대한 사변적인 지식이 아니라 실제적인 지식을 제공한다”고 하면서 “은혜와 진리”라는 용어 는 일종의 “치환(per hypallagen)”으로서 모든 일에 있어서 그리스 도가 우리의 구세주시며 메시야라는 사실을 가징 특징적으로 부각시 키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곧 우리에게 맞추신 말이라 는 것이다.56) “평범한 단순성(plebeia simplicitas)”이 그리스도의 “ 교수방법(ratio docendi)”이다.57)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유일하신 해 석자(unus patris consiliarius)”로서 감추어진 비밀을 우리에게 알 리신다.58) 다양한 양상의 속성교통은 그러한 맞추심의 은혜를 우리 에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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