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요약, 제럴드 L. 싯처)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제1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라

1.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길을 가는 내내 하나님께 귀기울이며 반응하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전통적 접근에서는 하나님의 뜻이란 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미래의 구체적 길로 규정되어 있어, 우리 따라야 할 길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 접근법에 의하면 나의 결정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끊임없는 회의감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접근법에 의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결정을 위한 길을 숨겨놓았음을 또는 하나님이 뜻을 선택하지 못할 경우 고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전통적인 접근법에 따르면 우리는 미래를 알고자 하는 하여 결국은 미래를 통제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수 없고 알아서도 안됩니다. 앞으로 이 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찾을 수 있는 길을 밝힐 것입니다.

2. 우리의 놀라운 자유

야고보는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자부하는 신자들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야보고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미래적 뜻보다 현재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이 밖에도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신도들에게 전하는 말들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고민한 흔적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대한 고뇌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와 힘겨운 고난과 성경의 심층 연구에 비추어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였을 때 이른 결론은 하나님의 뜻은 미래보다는 현재에 관련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진정한 시간은 현 순간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되면 우리에게는 놀라운 자유가 생깁니다.우리가 취하여 따를 수 있는 길과 방향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한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삶에 대한 그 분의 뜻이 될 수 있습니다.

불확실하게 사는 것, 모든 선택이 전적으로 나한테 달린 것만 같은 그런 삶, 이런 삶을 허락하심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성과 속으로 구분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정해진 시간에만 드려지는 것이 아닌,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예수님의 말씀이 불확실한 고로,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밀쳐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 시간은 항상 지금이지 나중으로 미뤄둘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삶의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와 확신과 안전을 가져다 줍니다. 진실로 무엇보다 하나님을 먼저 구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길을 선택하든 상관없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하여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현 순간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그 계획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우리가 살아온 그 길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 그것은 살아온 삶을 되돌아봄으로써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밝히신 단 하나의 사실, 하나님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우리는 현재의 삶이 충실히 적용시키면 됩니다.

3. 장애물

과거에서는 선택은 전통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대와 포스트모던 세상은 전통의 법칙을 버리고 우리 앞에 과도한 선택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선택할 것이 많아졌다는 사실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로 인해 삶이 너무 바빠졌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쁜 삶은 현명한 선택에 필요한 분별력을 흐려놓습니다. 또한 살면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우에 처하게 되면서 우리는 분열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때 우리는 공동체에 속해야 합니다. 전통 사회와는 그 의미가 다르지만, 우리는 공동체의 인도와 후원을 통해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4. 삶의 길인 단순한 순종

미국의 대중문화가 정의하는 자유란 외적 구속의 부재 그리고 개인 권리의 보호와 확장입니다. 이런 의미로 파생된 많은 문화에서 자유라는 의미가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독교의 추구가 기독교에까지 들어와 진리 자체를 희생시켜 가며 인간의 자유를 떠받드는 형국을 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이와 대조적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그리스도의 종이 될 때 찾아옵니다. 참된 자유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자신의 의지를 순종의 삶에 헌신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많은 선택의 길이 매력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옳고도 충분한 길은 하나 뿐이니 곧 순종의 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원하는 것 무엇이나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자유가 오히려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자유,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맛보지 못하게 막는다면? 이것은 불필요한 자유인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하나님을 절대적 중심으로 모셔야 한다는 명령을 선택할 때 우리는 참된 자유 즉 순종의 자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제2부 삶의 소명을 분별하라

5. 직업과 소명의 구분

직업이란 수입을 제공하고, 교육이나 훈련이 필요하며,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한 사람의 특정한 일의 분야라고 정의할 수, 소명이란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재능을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하라는, 하나님이 주신 목표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두 단어 간에는 중복되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에는 네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소명은 직업을 초월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차적 소명은 능력과 지휘와 지회와 배경과 무관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둘째, 소명이 결코 직업으로 격하돼서는 안되지만 종종 소명에는 직업이 사용됩니다. 셋째, 소명은 전통적 직업이 가지 못하는 곳으로 우리를 보낼 수 있습니다. 끝으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소명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대부분 우리가 받은 소명은 복합적입니다.

인생의 소명을 이룰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소명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나라를 섬기는 방식의 일부입니다. 자신의 소명을 찾기도 해야하지만, 소명이 이미 우리 정체의 한 부분으로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소명을 찾는 소명 자체도 우리를 요구합니다. 소명은 명령과도 같아서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합니다 "인간이 직업을 선택한다는 말도 가능하지만 직업이 인간을 선택한다고, 즉 소명이 주어지되 인간이 그것을 듣거나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어도 정확할 것입니다.

인간은 직업으로 규정되지 않으며 소명도 직업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인간을 규정하고 그 인간에게 소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럴 때 인간은 자유로이 직업을 사용해 하나님 나라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소명이란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내가 주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내 소명의 방향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정에 오름으로써 우리의 소명을 발견할 수 있고, 이렇듯 소명에 이르는 여정은 소명 자체의 필수 부분이 됩니다. 그 길을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이르러야 합니다. 꼭 따라가야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닙니다.

6. 생의 본분 찾기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살다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있으나 자신이 기대했던 모습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쉐클린의 사례에서 보듯이 모든 것이 끝낸 후에 이상하고 우회적인 방법이긴 하나 자신의 평생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어습니다. 위대함에 깃든 사연이 기대와 달랐을 뿐 그는 위대한 탐험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10년 전에 인생을 미리 계획함으로써가 아니라 현 순간 당면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소명을 발견해 가는 것입니다.

소명 찾기의 과정에서 우리가 살펴야 할 여섯 가지 신호가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내면을 살펴 어떤 일에 동기를 느끼는 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소명의 발견에서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재능입니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적절한 재능이 필요합니다. 셋째, 인생 경험도 비슷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겪는 인생 경험이 그들에게 생의 소명을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넷째는, 기회입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이를 '환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열린 문과 닫힌 문의 비유로 사용되는 많은 인생의 기회들이 우리의 소명을 발견하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다섯때는,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가 자신의 장단점을 인식하는 도움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기쁨의 신호입니다. 우리는 어쩌 수 없다는 느낌을 통해 소명을 발견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기쁨을 발견할 대 소명을 알게 됩니다.

7. 다양한 소명의 관리

우리는 우리 소명의 복수성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이 때난 세 가진 일반 원리를 따를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단순성, 균형,유연성의 원리입니다.

단순성을 소중히 여기면 복수의 소명을 더 잘 관리하는 길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삶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내면의 단순성의 연습을 통해 내 초점을 하나님께로 유지하도록 해야합니다. 균형이란 적절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일을 택하는 것, 자신이 가장 전념하는 것 중심으로 삶을 재편하는 것을 뜻합니다. 균형의 원리는 잘 깨어지긴 하지만, 여전히 적용 가능한 원리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균형이 유지돼야 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유연성 있게 살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런 예측 불능한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우리 힘으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삶을 홀가분한 자세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제3부 신비를 포용하라

8. 역설과 더불어 사는 삶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선택하는 많은 경우의 길에서 결국 우리가 선택한 길에 하나님의 계획하신 길임을 회고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침과 원리만 줄 뿐 장황한 행동 목록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숨겨져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도 또는 역사속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힘일 뿐 역사를 초월하는 지배적인 힘을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둘 다를 믿는 역설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나에게는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역설이란 두 가지 말이 겉으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 보면 동시에 진실인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두 가지 실체의 차원에서 움직여서, 인간의 자유와 상충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신비는 이런 역설적인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성육신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시공 바깥에 존재하십니다. 그러나, 또한 역사의 시공 속에서도 일해 오셨습니다. 역사의 주인 되시는 그 분이 직접 등장 인물이 되어 들어오셨습니다. 그것은 줄거리의 전개 방향을 보고 그것을 직접 바꾸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줄거리가 좋은 결말을 맺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구원을 주기 위하여 하나의 등장인물이 되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이 잇습니다. 기사의 저자는 기사 속의 하나님의 역할을 독자들에게 알림으로써 첫 번째 시각을 보여줍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당시 성경의 등장인물들로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계획을 진행 중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 저자의 시각은 하나님의 숨은 뜻, 즉 시간과 역사에 대한 그 분의 주권적 통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시각은 등장인물들 자신에게서 나옵니다. 그들의 선택은 구성의 전개에 기여하며, 그 구성에 그들이 중요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순종하는 길을 택함으로써 이야기가 끝나기 오래 전부터 이야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유한성 때문에 흐려져 있는 시야를 깨닫고, 모든 사건에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셨다고 믿음으로써 모호한 것에 대한 집착보다는 명확한 것을 행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믿어서는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확실히 알고 있어 행할 수 있는 것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리러 믿어 어림짐작만 할 뿐 내가 알지못하는 것을 구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신비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고, 그 결단이 내 삶을 구했습니다.

9. 제한구역이 없는 고난

고난보다, 특히나 부당한 고난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는 없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뜻하신 것이 아니나, 또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고난은 죄의 산물입니다. 그런 고로 고난의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용하여 궁극적으로 구속의 뜻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고난의 유익이 아무리 영광스러울지라도 이것은 시야를 가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에 부딪칠 때 계속 전진하려면 보조 기구를 사용해야 합니다. 지도에 해당되는 성격을 봐야 하고, 또한, 믿음의 길을 따라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개성을 존중하시는 고로, 우리를 억지로 믿게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선택하길, 능동적인 신뢰를 원하십니다.

10. 고난의 유익

믿음이란 비록 삶이 우리의 바람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숨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인생이 고달플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삶에 실제적 변화를 가져옵니다. 믿음은 그 분의 도움이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 때 크리스찬의 기쁨의 산이라는 안식처를 만나기도 합니다. 기쁨의 산에서 자신의 여정을 초월적 시각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삶이란 원래 평탄치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잘될 것입니다. 선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인 잘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제4부 시간을 붙잡으라

11. 바꿀 수 없는 것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긴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지금 이 순간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현재에 매여있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영원 속에 거하십니다. 하나님과 달리 우리는 시간을 초월할 수 없기에 우리에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과거가 휘두르를 위력은 절대적인 것일까요? 우리가 과거에게 통제권을 내어주는 방식은 후회와 원한의 두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후회도 원한도 복수고 이미 일어난 일을 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12. 과거를 구속함

우리가 기회를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구속하실 수 있습니다. 과거의 구속이란 이미 벌어진 일의 악을 사용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모셔 두고 그분의 은혜를 구한다면, 그 분은 우리의 과거를 구속하실 것입니다. 과거의 악을 취하여 선으로 바꾸시고, 우리의 삶 속에 은혜의 사역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기꺼이 용서를 받아들기이, 기꺼이 용서하기,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도록 기꺼이 기다리기 이 세가지를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 은혜의 사역이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13. 미래를 준비함

현재의 무지는 미래의 지식을 제한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기대할 순 있으나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두려움과 염려로 반응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방식입니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할 때 우리는 다른 모든 것들을 덜 두려워하게 됩니다. 염려는 비현실성에 뿌리를 두고 있고, 우유부단함을 낳으며 또한, 마음을 산만케하는 지라 여러 문제를 유발합니다. 이런 염려를 떨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현재를 잘 살면서,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14. 현 순간의 경이

우리는 현재를 살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하나님은 현 순간을 사용하여 불변의 과거를 구속하시며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우리를 준비시켜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마침내 삶 전체가 그분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영광의 간증이 될 때까지 말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운 분이시기 이런 약속을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그분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택한다고 해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니라고 해서 은혜를 거부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영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그 분을 향한 불순종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가 처한 곳에서 그분을 위해 사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한다면, 은혜를 받고 그분의 뜻 가운데 들어서게 됩니다. 바울이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한 것에서, 우리는 성경이 정의하는 시간에 근거해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우리는 크로노스 안에서 일하지만 카이로스 안에서 진정으로 살아갑니다. 평범한 삶이 우리에게 주는 카이로스의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해 우리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감각 훈련을 통해 "거룩한 지금"을 끌어안으며 현 순간의 경이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제5부 결단하며 살라

15. 작은 것에 충실한 삶

하나님의 뜻이란 날마다 내 주변의 일상생활 속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언젠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있는 특별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우리가 거창하게 하고 싶어하는 큰 일이 아니라 날마다 해만 하는 작은 일들로 이루어 집니다. 평범한 상황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향한 그분의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는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반응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평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은 삶의 방식-습관,확신,방향-과 관련된 것입니다. 소명을 보면, 선택하는 소명의 분야보다는 자신을 준비하기 위해 날마다 사는 작은 일들이 더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삶이야 말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최적의 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웅적, 희생적 삶을 요구할 때가 아니라 매일의 일상에 충실?록 부르실 때 우리는 가장 큰 도전 과제에 맞닥드리게 됩니다. 일상에 충실할 때 우리는 쉽게 만족스런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일상의 의미를 깨우치는 믿음의 눈과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라는 놀라운 선물을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일상의 반복되는 일들에 헌신함으로써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도와 당신이 본래 의도하셨던 모습대로 세상을 회복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작은 일들을 감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궤도에 서있는 것입니다.

16. 선택

선택을 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사 전달 방법은 우리의 것과 다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그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바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 직관에 호소하시며 감화를 주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뜻의 느낌이나 의식으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는 어느 정도 신비함과 모호함이 있긴 하지만 그 한계를 바탕으로 그분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분명 의사를 전달하십니다. 특이한 상황을 통해서도, 꿈과 환상을 통해서도 또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의 밑바닥에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 하나님이 뭔가 하실 말씀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싶다면 영혼에 고요함을 가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아울러 우리는 그분의 전체적인 뜻을 생각하며 그분의 구속 계획의 큰 그림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은 큰 뜻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성을 사용해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바른 시각을 제시하며 좋은 결정을 내리도록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언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풍부한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바른 시각을 유지하여도 우리에게는 결정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결정이란 한 번 내리면 그것으로 끝이고, 선택에 따르는 결과가 더 중요합니다. 선택의 결과로 고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내가 믿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믿으며 내가 처한 곳에서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고, 선택을 '바로' 내렸든, 그 '바른' 선택이 좋은 결과를 냈단 아니든 상관 없이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하며, 그렇게 살아가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면 하나의 유형이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써오신 구속의 이야기가 보일 것이며, 결국 우리는 오직 하나의 길, 오직 하나의 뜻, 오직 하나의 목적만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요 우리가 걸어온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이 성취하신 계획이요, 당신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이루신 큰 뜻이기도 합니다.

17. 다 잘될 것이다

모든 것은 바른 시각으로 귀결됩니다. 하나님과 그 나라를 먼저 구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을 향한 그분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어느 길로 가든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고, 내 선택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있고, 내 삶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로 말이암는 안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놓으시기 않기에, 우리가 택하는 길과 무관하게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친히 시작하신 선한 일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일이 어떻게 풀릴 지 우리는 모르지만, 그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압니다. 그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그 분은 그 모든 상황을 협력하여 우리의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성품이기도 하고 그것이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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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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