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싸움

멈출 수 없는 싸움

멈출 수 없는 싸움


 


예수님이 죽든 말든 자신은 기어이 살아남겠다는 투지는 모든 인간들에게 타고난 것이다. 성령으로 교정이 안 되면 아무리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여도 그곳은 행함 위주의 교회가 된다. 즉 행함으로 구원도 따내고 행함으로 복도 따내겠다는 것이 유일한 진리로 통하는 동네다. 당연히 거기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농담거리나 심심할 때 씹어보는 안주거리로 전락한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영광을 돌리는 일은, 햇빛과 단비를 늘 공급받고 있는 피조물로서 당연히 해야 될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마땅히 저주해야 될 이 세상에 대해서 햇빛과 공기와 단비를 주시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입각해서 제공되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노아 언약의 중심지에는 예수님께서 홀로 희생하신 살과 피가 담겨 있다. 그래서 새언약은 모든 언약의 완성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으심보다 자기 몸의 피곤함과 서러움과 외로움에 더 예민해있다. 따라서 당연히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들로부터 늘 시선을 빼앗기도 있다. 마치 우상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다. 즉 사람들은 십자가가 옛날 일이라고 간주한다. 햇빛과 신선한 공기와 단비를 자기네들에게 당장 필요하지만 그것을 제공하는 십자가 피는 시급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회마다 십자가 능력이 나오지 않는 교회로 꾸려간다. 사람들의 고생담이나 듣고 서로를 위로하기에 급급하다. 정작 존재케 하시는 주인님은 대화에서 빠져 있다. 이것은 교회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곳을 교회라고 우긴다. 왜 그럴까? 인간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상대로 싸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 왜 이렇게 꼬이게 했느냐”고 싸우고 싶어 한다. “내가 얼마나 착하고 순결하고 매사를 성실하게 처리하는 사람인데 왜 이런 나를 힘들게 하느냐”고 시비 걸고 싸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서 저녁 늦게까지 그 멱살을 놓지 않는다. 인생이 다할 때까지도 하나님에 대해 욕하면서 죽는다. 온 우주를 통해서 영광을 감사와 찬양을 받아 마땅한 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처럼 항시 욕을 얻어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곧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갉지 않는다. 그 인간 속에 들어있는 악마의 깊은 눈동자를 주시하신다. “악마야, 오늘은 무슨 행함을 근거로 나를 욕할 거야?”


 


이처럼 교회는 싸우는 곳이다. 성경을 펼쳐놓고 싸우는 곳이다. 십자가 피가 나오는 해석이냐 아니면 인간의 행함을 건져 올리는 해석이냐? 십자가의 영이신 성령이 찾아들지 아니하면 십자가는 이해 안 되고 인간의 타고난 본성도 바뀌지 않는다. 악마가 악마답게 들추어지는 곳, 그곳이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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