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 나타난 성경의 무오론[2]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6.3. 이레니우스 (Irenaeus, 120-202)
이레니우스는 최초의 교부로서 사도시대와 속사도시대 그리고 변증가들의 시대를 요약하고 3세기와 4세기 교부들로 잇는 교차로에 서 있다는 점에서 교리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는 교회의 실제적인 목회자로서 영지주의가 교회를 혼란하게 할 무렵에 사도들의 신앙을 확립하고 계승하는데 관심을 두었다. 그는 교회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였고, 또는 교인들의 양육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신약의 정경적 기록이 끝난 후 기독교 최초의 위대한 조직 신학자로 간주되는 이레니우스는 리용의 감독 (bishop of Lyons)으로서 로마 감독의 교회 행정에까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노스틱주의 즉 발렌티니안주의와 마르키온주의가 교인들을 미혹케 하고, 특히 마르키온이 별도로 교파를 조직하여 교회의 분열을 초래할 때 이에 대하여 반박함과 동시에 교회의 바른 신앙을 확립하고 교육하기에 진력하였다.이레니우스에게 노스틱주의에 대한 논박은 주로 실용적 목회적 문제였다. 이레니우스는 자신의 회중 가운데 선량한 부녀들이 노스틱교 집회에서 무의미한 의식에 끌리어 “은혜를 불러내려 물위에 임하게 하면 물이 붉은 색으로 변한다”는 등 허위에 속아 다니는 데 대하여 건전한 종교를 확립하기 위하여 힘쓴 것이었다. 또한 성육신 (incarnation)이나 부활 등을 부인한 노스틱주의에 대하여 이레니우스는 성육신, 성찬, 부활 등의 상호 관계를 해명하며, 구약과 신약의 조화를 고조하며, 동시에 교회의 전통을 주장하였다.이레니우스는 평생 노스틱주의를 논박하고 하나님의 구원역사 계획을 역사 신학 내에서 진지하게 설정하였으며, 신약을 구약과 같은 권위로 보면서 성경을 총체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헬라 철학의 도움을 동원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성경적 전통만이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었다.젊은 시절 요한의 제자 폴리갑에게서 배운 이레니우스의 저작으로서 완전히 남아 있는 것은 두 편뿐이다. 『사도적 설교의 증명』 (Proof of the Apostolic Preaching)과 『이단논박』 (Against Heresies)이다. 그 밖에는 단편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사도적 설교의 증명』은 논쟁적인 글이 아니고 신앙의 대중적인 평범한 해설서이다. 이것은 보편적 교리의 직접적 조직적 제시라고 할 수 있다.『이단논박』은 『사도적 설교의 증명』보 다 더 완전하고 그 문제 내용의 범위가 더 넓다. 본래 이레니우스는 발렌티누스주의 (Valentinianism)를 간결하게 해석하고 그것을 논박하는 짧은 저술을 하려던 것이었는데 그러나 그 범위가 점점 커진 것이라 한다. 전 5 권으로서 제 1 권에서 여러 이단들을 해설하고. 제 2 귄에서 이들에 대한 철학적 논리적 논박을 전개하고, 제 3 권에서 성경과 전통에 있어서의 기독교 교리의 기초를 제시하고, 또 그 본질적인 부분 즉 하나님의 통일성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을 해명한다. 제 4 권에서 두 언약의 통일성을 주장하고 마르키온을 논박한다. 제 5 권에서는 구속론을 다시 취급하며 종말관과 내세의 소망에 대하여 논한다.이레니우스에 있어서 성경은 그가 활동하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과 법칙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저술에 신구약 성경 중에서 상당히 많은 구절을 인용하거나 언급하였다. 예컨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하, 시편, 잠언,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야, 요엘, 아모스, 요나, 미가, 하박국, 스가랴, 말라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등을 인용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그의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왜 냐하면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하나님이 모든 것의 첫 번째 근원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물질적인 실체를 ‘방출했는가’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되는 무한한 것들에 대해 억측에 빠지거나 추측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도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에게 남겨 두어야 한다.아들이 어떻게 아버지로부터 ‘나왔는가’에 대해서 발렌티누스 (Valentinus)나, 마르키온 (Marcion)이나, 사투르니누스 (Saturninus)나, 바실리데스 (Basilides)나, 천사들이나, 천사장도, 어떠한 지배자나 권력자도 이해하지 못했고, 오직 아버지만이 그를 낳은 자를 알고 낳아진 아들을 안다고 이레니우스는 말했다. 그는 이 인용문을 통해서 성경을 예수님의 “나심”에 대한 용어의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하나님이 모든 것의 첫 번째 근원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물질적인 실체를 ‘방출했는가’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경은 이레니우스에게 가치판단의 기준이었다. 이것은 다음의 그의 글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진다.그 들이 성경으로부터 논박당할 때, 그들은 마치 성경이 뭔가 잘못된 것처럼 성경 자체를 비난해 버린다. 그들은 성경이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 권위를 비방한다. 그리고 그들은 전통을 가진 자들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전통은 기록된 말이 아니라 입의 말에 의해 전달되어 왔다는 이유로, 한 때는 발렌티누스가, 다음에는 마르키온이, 그 다음에는 케린투스와 바실리데스가, 혹은 어떤 다른 신앙의 대적자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가 사도들로부터 유래하고 장로들의 계승에 의해 교회 안에 보존된 저 전통에 호소함으로써 그들에게 도전할 때 그들은 자기들이 장로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도들보다 더 현명하고, 오염되지 않은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전통에 대적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사도들은 구세주의 말씀에 율법에 속한 것을 혼합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주님 자신이 일부 데미우르게 (the Demiurge)로부터 온 것과, 중간적 권세로 (the Intermediate Power)부터 온 것과, 지존자 (Highest)로부터 온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들 자신은 감추어진 신비를 의심과 오염과 혼합 없이 알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그들의 창조자에 대한 아주 무례한 신성모독이다. 따라서 그들은 성경에도, 전통에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이단들은 성경으로부터 논박당할 때, 마치 성경이 뭔가 잘못된 것처럼, 성경이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성경 자체를 비난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통을 가진 자들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전통은 기록된 말이 아니라 입의 말에 의해 전달되어 왔다는 이유로, 성경의 권위를 비난했다. 그들에 의하면, 진리는 참으로 그들에게서만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성경의 권위를 비난하면서,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니, 이는 이 세상에 속한 지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는 자기가 혼자 발견하였거나 혹은 오히려 발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그들은 자기들이 장로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도들보다 더 현명하고, 오염되지 않은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전통에 대적했다. 그래서 진리는 참으로 그들에게서만 발견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단들은 그들 자신의 독단으로 성경의 권위를 비난하는 것이 된다.그러나 이레니우스는 사도들로부터 유래하고 장로들의 계승에 의해 교회 안에 보존된 전통에 호소했다. 그러나 그들은 말하기를, 사도들은 구세주의 말씀에 율법에 속한 것을 혼합했다고 주장하면서, 주님 자신이 일부 데미우르게로부터 온 것과, 중간적 권세로부터 온 것과, 지존자로부터 온 것을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그들 자신은 감추어진 신비를 의심과 오염과 혼합 없이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레니우스는 이러한 이단들의 주장에 대해서 그들의 창조자에 대한 아주 무례한 신성모독이라고 보았다. 이단들의 주장은 성경에도, 전통에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레니우스는 그의 판단의 기준을 성경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여기서 이레니우스가 말하는 성경이란 사도들의 유전 (paradosis)을 기록으로 남긴 것으로 보았다. 그는 사도들의 유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우 리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교회가 전파하는 것은 어디서나 같은 것이고 끊어짐 없는 경로를 거쳐 계승되어 오고,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모든 제자들로부터 증거를 받아온 것이다. 우리가 이미 증명한 바와 같이 처음에 관련된 이들, 중도에 있는 이들 그리고 최근에 있는 이들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전 경륜을 통하여 계승되어 온 것인데, 이것은 사람을 구원에로 이끄는 완비된 체계로서, 말하자면 우리의 신앙이다. 이것을 우리는 교회로부터 받았고, 이것을 우리는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 젊음을 언제나 새롭게 하는 것으로서 마치 훌륭한 그릇에 담긴 귀중한 저장물 같아서 그것을 담은 그릇까지도 그 젊음을 새롭게 만드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 선물이 교회에 의탁된 것은 마치 첫 번째 창조된 사람에게 호흡을 주시어 그 호흡으로써 모든 지체가 생명을 얻음과 같다.이처럼 이레니우스는 사도들의 유전이 성령의 역사로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강조하여 그 유전의 권위를 강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 젊음을 언제나 새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마치 훌륭한 그릇에 담긴 귀중한 저장물 같아서 그것을 담은 그릇까지도 그 젊음을 새롭게 만드는 것과 같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곧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레니우스는 성경에 대해서 말하기를, 교회가 전파하는 것은 어디서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의 책이기 때문에 세상의 어디서나 같은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는 성경이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모든 제자들로부터 증거를 받아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전 경륜을 통하여 계승되어 온 것인데, 이것은 사람을 구원에로 이끄는 완비된 체계로서, 이것을 우리는 교회로부터 받은 것이다.그리고 이레니우스는 성경에 대해서 말하기를 성경은 교회로부터 받은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러한 성경을 교회에 의탁된 것은 마치 첫 번째 창조된 사람에게 호흡을 주시어 그 호흡으로써 모든 지체가 생명을 얻은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성경을 통해서 사람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 가능한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레니우스는 마르키온의 복음서에 반대하여 신약 성경의 4복음서의 전통을 확립하기에 힘썼다.우 리는 우리의 구원의 계획을 배움에 있어서 복음을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그들에게서 배울 수밖에 없다. 우리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성령이 저들 위에 임하였을 때에 저들은 위로부터 오는 능력 힘입었고, 모든 일에 있어서 충만하게 되었고 또한 완전한 지식을 가졌다. 저들은 땅 끝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부여된 좋은 일들을 전파하였고.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이르는 평화를 선포하여 모두가 각각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태는 히브리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말로써 복음에 관한 기록을 내었고, 한편 베드로와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세웠다. 저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 베드로의 제자요 통역자인 마가도 또한 베드로가 전파한 것을 기록으로써 우리에게 남겼다. 그리고 바울을 따라 다녔던 누가는 바울이 전파한 대로 복음을 기록으로 남겼으며, 주의 제자요 그의 품에 누웠던 요한도 아시아의 에베소에 있을 때에 몸소 복음서를 내었다. 이 모든 복음서들이 우리에게 이미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한 바와 같이 천지의 창조자이신 한 분 하나님이 계시며, 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계신다는 것을 전하여 주었다.이 인용문을 통해서 우리는 이레니우스의 성경관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이레니우스는 4복음서의 기록자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레니우스는 “저들이 처음으로 그 복음을 전파하였고, 후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기록으로 우리에게 전달하여 우리의 신앙의 기초와 기둥이 되게 하였다”고 주장했다. “우리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성령이 저들 위에 임하였을 때에 저들은 위로부터 오는 능력 힘입었다”는 이레니우스의 말은 4복음서의 기록자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 시에 성령의 권능을 충만히 받았음을 말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충만하게 되었고 또한 완전한 지식을 가졌다”는 말은 4복음서의 기록자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복음서를 기록할만한 자격을 갖추었음을 말한다.그리고 “저들은 땅 끝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부여된 좋은 일들을 전파하였고,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이르는 평화를 선포하여 모두가 각각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 말을 보면, 4복음서의 기록자들이 주님으로부터 복음을 받아 땅 끝까지 그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4 복음서의 기록자들 모두가 각각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각각 복음서들을 기록했다는 의미로 보인다.여기서 이레니우스는 성경의 신적 영감을 말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위의 인용문에서 ”성령이 저들 위에 임하였을 때에 저들은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힘입었고, 모든 일에 있어서 충만하게 되었고 또한 완전한 지식을 가졌다”는 말은 그가 성령의 영감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성령의 영감으로, 마태는 히브리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말로써 복음에 관한 기록을 했고, 베드로와 바울이 세상을 떠난 후에 베드로의 제자요 통역자인 마가는 베드로가 전파한 것을 기록으로써 우리에게 남겼고, 바울을 따라 다녔던 누가는 바울이 전파한 대로 복음을 기록으로 남겼으며, 주의 제자요 그의 품에 누웠던 요한은 아시아의 에베소에 있을 때에 몸소 복음서를 발행했다. 즉 4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각각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복음서들이 우리에게 이미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한 바와 같이 천지의 창조자이신 한 분 하나님이 계시며, 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계신다는 것을 전하여 주었다.” 즉 복음서는 한 분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계시이다.아울러 이레니우스는 성령의 영향으로 생산되는 것은 무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였다.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성령으로 말하여진 것이기 때문에, 성경이 참으로 완전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속한 알 수 없는 것의 성질에 관한 것들을 남겨 놓아야 한다.이레니우스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성령으로 말하여진 것이기 때문에, 성경이 참으로 완전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오류가 없다는 말이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틀림없는 말씀이다. 이레니우스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속한 알 수 없는 것의 성질에 관한 것들을 남겨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비한 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의 성질이 있기도 하다. 하나님께 속한 알 수 없는 것의 성질에 관한 것들을 남겨 놓아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성경의 영감을 강조하는 이레니우스의 주장은 70인경의 작업을 서술하는 그의 기록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70인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번역되었다고까지 말했다.로 마제국이 세워지기 이전, 마게도니아인들이 아시아를 점령하고 있을 때, 라구스 (Lagus)의 아들 톨레미 (Ptolemy)는 알렉산드리아에 도서관을 세우고, 그곳에 연구할 가치가 있는 모든 저서를 비치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그들의 저서들을 헬라어로 번역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그들은 아직 마게도니아에 예속되어 있었으므로 성경 및 두 나라 언어에 능통한 70인의 장로들을 톨레미에게 보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처럼 그의 계획을 장려해주었다. 톨레미는 그들이 각기 별도로 번역작업을 하기를 원했으며 혹시 그들이 제휴하여 번역함으로써 성경의 진리를 감추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따라서 그는 그들을 각기 분리시켜 놓고 각자에게 같은 것을 번역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모든 책들을 번역시켰다. 마침내 톨레미가 임석한 가운데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각기 자신의 번역본을 비교해보았을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고 성경이 참으로 거룩한 책이라는 것이 인정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표현과 동일한 단어로 동일하게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방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번역되었음을 깨달았다.이 인용에서 보는 대로 이레니우스는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책”이고, 70인역까지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번역되었음을 이방인들도 깨달았음”을 말하였다. 왜냐하면 톨레미가 예루살렘 장로 70인에게 각기 별도로 번역작업을 하기를 원했으며 그들을 각기 분리시켜 놓고 각자에게 같은 것을 번역하라고 명령했는데, 마침내 톨레미가 임석한 가운데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각기 자신의 번역본을 비교해보았을 때,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표현과 동일한 단어로 동일하게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이레니우스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을 때 성경이 소실되고 말았는데 70년이 지난 후 바사왕 아닥사스다 시대에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귀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레위 족속의 제사장 에스라에게 영감을 내리셔서 옛 선지자들의 모든 설교들을 새로이 짜 맞추고 모세 율법을 복원하게 하셨던 분이심을 언급함으로써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을 더욱 확실히 하였다. 따라서 번역본마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는 그가 성경 원본의 신적 영감과 무오를 확신했음은 명약관화 (明若觀火)하다.이레니우스는 후에 복음서들의 통일성과 또 그 수가 넷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였다.복 음서는 그 수에 있어서 더하거나 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네 개의 지역 (four zones)과, 네 개의 보편적인 정신이 있고, 교회는 모든 세상에 흩어져 있고, 교회의 “기둥과 터”는 복음과 생명의 영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모든 방면에 불멸성을 불어넣어서 사람들을 새롭게 생명을 주는 네 개의 기둥을 가지는 것이 적당하다.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으며, 모든 것을 품고, 그룹 위에 좌정하신 말씀이신 조물주께서 복음을 네 방면으로 우리에게 주셨는데, 한 성령으로 묶어서 함께 묶어주셨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이레니우스는 “복음서는 그 수에 있어서 더하거나 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이유로 세상에는 동서남북이라는 네 개의 지역이 있고, 교회는 모든 세상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레니우스가 이렇게 말한 것은 4 복음서의 완벽성을 설명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여진다. 4 복음서는 그 수에 있어서 더하거나 덜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틀림이 없고 오류가 없다는 그의 확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뿐만 아니라 그는 구약성경과 동일한 정경인 신약성경에 대하여 거의 명확하게 말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이레니우스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 (마13:52)는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면서, 예수님은 옛 것과 새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해석은 구약과 신약의 저자는 동일하고 그 목적도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 것과 옛 것”은 두 언약인데, 옛 언약의 대표적인 것은 율법이고, 새 언약의 대표적인 것은 복음이라는 의미이다.다 윗이 말한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시96:1)와, 이사야가 말한 “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사42:10)와, 그리고 예레미야가 예언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 (렘31:31-32)이라고 말씀하시고, 아브라함과 모세와 함께 말씀하셨고 우리를 자유에로 새롭게 회복하시고 그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은혜를 증가시키신 분은, 두 언약 (both covenants)을 생산한 한 분이시고 동일한 집 주인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신구약 성경의 근본적인 저자는 여러 사람이 아니고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동일하신 하나님 한 분 뿐이시라는 이레니우스의 설명이다. 이레니우스가 말하는 두 언약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말한다. 옛 언약은 다윗과 이사야가 예언한 언약이고, 새 언약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언약이다. 이레니우스는 이 두 언약을 하나님이 생산하셨다는 점을 말한다. 하나님은 옛 언약도 맺으시고 새 언약도 약속하셨다. 옛 언약과 새 언약, 구약과 신약의 작성자는 하나님이시다. 즉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함께 말씀하셨고 우리를 자유에로 새롭게 회복하시고 그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은혜를 증가시키신 분이시다.성경은 그러한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오류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레니우스의 성경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레니우스는 성경은 “진리의 성경 (scriptures of Truth)”이며, “성경은 참으로 완전하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성경의 완전함은 성경의 무오를 의미하는 매우 유력한 증거가 된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성경은 그 단어까지도 정확하다.그 러므로, 전체 성경, 선지서, 복음서는, 분명하고 명백하고 조화 있게 모든 사람에 의하여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그것들을 믿지 않더라도, 그들은 유일하신 한 하나님은, 모든 다른 것들을 제외하고, 내가 성경의 참된 말씀으로부터 보아온 것처럼,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하늘이나 땅이나, 물 안에서나 땅 아래나, 모든 것을 그분의 말씀으로 형성하였다고 선언하였다.모든 성경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해될 수 있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천지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형성되었다. 그분의 말씀으로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하늘이나 땅이나, 물 안에서나 땅 아래나, 모든 것이 형성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천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만큼 권위가 있고 권세가 있다. 사람들이 모두 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아도 성경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분명하고 명백하고 조화가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다. 성경이 “참된 말씀”이라는 표현은 성경에 거짓이나 오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즉 성경은 무오하다. 사도들의 기록에 관하여 이레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마찬가지로, 진리의 제자들인 사도들은 모든 거짓말을 극복하였다; 왜냐하면 어두움이 빛과 함께 할 수 없고, 후자의 임재는 전자의 내쫓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진리와 교제하는 거짓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이레니우스가 진리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모든 거짓말을 극복하였다고 주장한 것은 성경을 기록한 사도들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거짓을 극복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거짓을 극복한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레니우스는 성경에 거짓이 전혀 없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말한 대로, 성경에 거짓이 없는 것은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할 수 없음과 같다. 빛이 어두움을 내쫓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리와 거짓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다. 성경에는 잘못된 거짓이 있을 수 없다. 이레니우스는 성경에 오류가 없음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레니우스는 신적인 영감이 무오성을 전제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그 러나, 우리가 연구의 주제를 이루는 성경 안에서 모든 것들에 관한 설명을 발견할 수 없더라도, 그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는 그분 외에 어느 다른 신을 따라가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이것은 가장 심각한 불경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성령으로 말하여졌기 때문에, 성경은 정말로 완전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확신하면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 남겨놔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성령보다 열등하고 그보다 나중에 존재하는 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분의 신비의 지식에 관하여 빈곤한 것이다.이레니우스는 성경의 신적 영감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하여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령으로 말하여졌다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영감되었음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정말로 완전하고 오류가 없다는 것을 이레니우스는 확신하고 있었다. 성경은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보다 열등하고 그보다 나중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비한 지식에 관하여 빈곤한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유한하고 하나님은 무한하여서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 유한한 인간이 신비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오류가 없고 완전하여서 오류가 있고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성경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유오한 인간이 무오한 성경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인간이 성경을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따라가야 한다. 인간이 성경에서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을 다 발견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다른 신을 따라가서는 안된다.이와 같이 이레니우스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성령으로 말하여졌기 때문에, 성경은 정말로 완전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 남겨놔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레니우스는 성경 자체가 주장하는 바에 따라서 4복음서를 비롯하여 신구약 성경이 신적으로 영감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며 그 단어들까지 정확하여 절대적으로 무오하다는 것을 그의 저술에 그의 신앙과 신념으로 나타냈다.6.4.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153-217)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Clement of Alexandria)로 알려진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트 (Titus Flavious Clement)는 주후 150 년경 아테네의 이교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는 타오르는 학문적 갈증으로 희랍과 이집트의 학문의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매우 일찍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동서양의 유명한 기독교 스승들을 찾아 다녔는데, “예언자와 사도들의 푸른 초지에서 꽃을 찾는 시실리아의 꿀벌”로 표현되는 판테누스 (Pantänus)에게서 스승의 이상을 찾았다. 판테누스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인도로 갔을 때 데메트리우스에 의해 클레멘트는 사제로 봉직되었고, 189 년에 알렉산드리아의 교장으로 승진되었다. 그 직위로써 그는 교회 학문을 위해 불멸의 공적을 세웠으며 그의 문하에서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배출되었다. 그는 기독교 진리를 전파하는 데 정력을 다 바쳤고, 215 년경 매우 연로한 가운데 사망했으나, 어디에서 죽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2세기 말엽부터 3 세기 초엽까지 활동하면서 알렉산드리아 신학의 정초를 놓았다. 그는 성경의 영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만 일 당신이 헬라인들에게 속한 것이든지 혹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든지 모든 선을 하나님의 섭리로 돌린다면 ‘당신은 요동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선한 것들의 원천이며, 또한 신구약 성경의 원천이며, 결국에는 철학의 원천이기 때문이다.하나님은 모든 선한 것들의 원천이시다. 따라서 헬라인들에게 속한 것이든지 혹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든지 모든 선을 하나님의 섭리로 돌려야 한다. 모든 선을 하나님의 섭리로 돌린다면 ‘당신은 요동이 없을 것이다’고 주장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하나님이 모든 선한 것들의 원천으로 확신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모든 선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신구약 성경의 원천이며, 결국에는 철학의 원천이기도 하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주장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의 원천”이라고 한 것은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한다. 성경의 원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성경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모든 선한 것들과 철학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것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주장이다. 그러니까 성경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의 원천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권위가 있고 성경은 무오하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성령의 영향으로 성경이 기록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완성된 지혜를 수여하였다기 보다는 차라리 성령이 예레미야 안에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이러한 주장을 통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한 것은 그의 지혜가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성령의 영감으로 예언한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가까운 데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먼 데 하나님”이어서 천지에 충만한 하나님이시다는 것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설명이다.이와 관련하여 그는 거짓 교사들에 관하여 공표할 때 “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경건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선언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성령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분명히 성경에 관해서 “영감된 말씀 (the inspired Word)”과 “하나님의 음성 (voice of the Lord)” 그리고 “영감된 성경 (the inspired scriptures)”이라고 언급하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성경 (the Lord's scriptures 혹은 the scriptures of the Lord)”이며, “신적인 성경 (the divine scriptures)”이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소리 (the Lord's scriptures and his actual voice)”라고 했기 때문에, 그는 성경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고 성경이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분명히 하였다.그는 모세가 신명기 32장에서 이스라엘 총회에게 읽어 들린 노래를 인용하면서 성령이 사랑하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신명기 32장 10-12절에서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고 말한 모세의 노래가 곧 성령의 노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설명은 신명기 32장을 포함하고 있는 모세 오경과 같은 성경 말씀이 성령의 말씀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이것은 모세 오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와 같이 성경의 신적 기원을 주장하였고, 나아가서 신구약 성경의 동등성을 주장했다.왜 냐하면 주 안에서 우리는 선지서들과 복음서와 복된 사도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지식에로 우리를 안내하는, 교육의 제일 원리 (the first principle of instruction)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선지서”는 구약 성경을 말하고 “복음서”는 신약 성경을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다. “선지서들과 복음서들과 복된 사도들”이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종말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신구약의 동등성을 나타낸다. 신약과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서 동등한 신적 권위가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성경의 영감은 성경 전체의 영감이며 따라서 이 사실은 성경의 단어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그 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또 다른 기원이 요구되었다고 상상한다면, 참으로 하나의 기원은 더 이상 보존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만들어진 성경과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바르게 믿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확실히, 우리는 그것을 사물의 발견에 있어서 하나의 표준으로 사용한다.성경은 그 기원에 있어서 하나님 외에 다른 기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주장이다. 성경의 유일한 기원은 하나님이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목소리”이다. 하나님의 목소리는 곧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에게서 유래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에게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목소리도 절대적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목소리에 틀림이란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목소리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성경은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성경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졌다는 것이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의 주장이다.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경은 “사물의 발견에 있어서 하나의 표준”이다. 성경은 사물을 발견하는데 있어서 유일하고 절대적인 표준이다. 따라서 표준이 되는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성경은 절대적으로 무오한 표준이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절대적인 표준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같은 책의 같은 장 (chapter)에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영감받은 기록자의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그들이 기록한 영감된 단어들과 연합되었음을 주장하였다. 거짓 교사들에 관하여 언급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그들은, 이단을 세우기 위해서, 인간의 교훈으로써 신적인 전통을 반대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논쟁으로써 영감된 말씀에 열중하는 복된 사도들과 교사들에 의해서 전달된 것들을 자발적으로 회피하는 영광을 갈망한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성경이 “영감된 말씀”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영감되었으며, “복된 사도들과 교사들에 의해서 전달된 것들”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신적인 전통이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신적 전통”이라고 이해했으며, 복된 사도들과 교사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열중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처럼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 이해한 반면에, 이단들은 이와 같은 성경을 자발적으로 반대하고 회피한다고 증언했다. 성경의 영감을 확신하고 있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성경을 보증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나는, 성취됨이 없이는 ‘하나의 칭호도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관하여, 일만 개의 성경 구절을 인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입으로서의 성령이 이것들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성경은 “여호와의 입으로서의 성령이 말씀”한 것이라는 것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주장이다. 이것은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임을 말한다. 성경은 성령이 말씀하신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성경이 하나도 소멸되지 않고 모두 성취된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일만 개의 성경 구절이라도 인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그가 성경의 절대성과 무오성을 얼마나 굳게 믿고 있었는가를 증거한다. 그는 다른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였다.그 러나 단지 의견을 진술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고, 진술된 것이 확증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사람의 증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든 증명들 가운데서 가장 확실한 것이 되며, 혹은 차라리 유일한 증명이 되는, 주님 (the Lord)의 목소리에 의해서 제기된 문제를 확립해야 한다.성경은 모든 증명들 가운데서 가장 확실한 것이라는 것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확신이다. 그에 의하면, 사람의 증거는 충분하지 않고 확증되어야 할 것이지만, 성경은 “주님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성경을 하나님의 목소리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틀림없는 표준” (infallible criterion)으로서 묘사하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가장 확실한 “유일한 증명”이다. 성경이 모든 증명들 가운데서 가장 확실한 이유는 성경이 절대적으로 무오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는 심지어 진리가 성경 말씀의 정상적인 의미라고 주장하였다.그 러나 진리는 의미를 바꿈으로써가 아니라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모든 진실한 가르침을 뒤엎기 때문이다), 주권적인 하나님께 완전히 소속하여 그 분에게 어울리는 것을 고려하고, 성경에서 다시 비슷한 성경으로부터 증명한 각각의 요점들을 세우는 가운데서 발견된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진리의 기준이 성경인 것을 주장했다. 그는 진리라는 것은 주권적인 하나님께 완전히 소속하여야 하고 하나님에게 어울려야 하는 것인데 이러한 진리는 성경에 의해서 증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성경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진리는 성경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다. 진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으로 그 의미가 바뀌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이 불변하시기 때문에 진리도 그 의미가 바뀌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성경과 하나님께 속해야 하는 진리는 불변해야 한다. 그러기에 진리가 불변한 것으로 증명되기 위해서는 성경의 중명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성경은 진리의 기준이다. 이것은 성경에 절대적인 권위가 있음을 중거한다. 성경에 오류가 있어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질 수 없으므로 성경은 무오한 가운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다.이상의 연구를 통해서 볼 때,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성경 자체가 주장하는 바에 따라서 성경의 영감을 믿고 있었고, 성경이 절대적인 권위가 있으며, 하나님의 오류없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나타냈다. 그는 기록된 성경의 가르침대로 오류없는 성경의 확실성을 믿고 있었으며, 성경이 성령의 무오한 말씀인 것과 하나님의 입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인 것과 신적인 권위가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의 말씀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이어서 [3]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