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 나타난 성경의 무오론[1]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고대에 나타난 성경의 무오론[1] 성경 무오 교리는 신구약 성경 자체가 주장하는 것으로서 성경의 성경 무오 선언을 그대로 받아들인 구약 교회 성도들의 신앙임을 증거하는 중간기의 문헌 뿐만 아니라 고대 교회 교부들의 문헌들에서 표현되었다. 1 세기 말부터 5 세기 초에 이르는 고대 교회 교부들은 성경 자체가 증거하는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그대로 믿고 그들의 문헌을 통해서 성경 무오 교리가 처음부터 신약 교회 성도들의 신앙이었음을 반영하고 있다. 성경 무오 교리는 고대 기독교회에서도 분명하게 주장되었으며, 고대교회에서는 성경 무오 교리가 결코 논쟁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성경 무오 교리는 구약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이어 받은 역사적 기독교회의 기본 신앙임을 다음의 연구를 통해서 밝히고자 한다.6.1. 로마의 클레멘트 (Clement of Rome, AD 30-100)로마의 클레멘트 (Clement of Rome)는 이방인인 동시에 로마인이었다. 그는 바울과 함께 빌립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속사도 교부 (The Apostolic Fathers) 중의 한 사람인 로마의 클레멘트는, 교회사가 필립 샤프 (Philip Schaff)에 따르면, 바울과 베드로의 제자 (a disciple of Paul and Peter)였다. 유세비우스는 로마의 클레멘트 (Clement of Rome)를 로마교회의 3대 감독으로 말하였다. 로마의 초대 감독 리누스 (Linus)의 뒤를 이어 도미티안 황제의 통치 12년에 로마교회의 제2대 감독으로 12년간 일해온 아넨클레투스 (Anencletus)를 이어서 클레멘트 (Clement)가 로마교회의 3대 감독이 되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의 말미에서 리누스를 언급하였고, 빌립보서에서는 클레멘트를 자기의 동역자라고 표현했다.유세비우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클레멘트는 복된 사도들을 친히 목격했으며 그들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었으므로 사도들의 교리가 항상 그의 귓속을 울리고 있었으며 사도들이 전해준 것들이 그의 눈에 선했다. 클레멘트가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고린도교회가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나뉘어 형제들 사이에 큰 분쟁이 일자 로마교회는 고린도교회에 서신을 보내 그들이 화평하게 지내고 사도들로부터 받은 믿음과 교리를 되살리기를 원했다. 그러나 로마교회가 직면한 “갑작스럽고도 계속적인 불행한 사건들 때문에” 고린도교회의 “싸움에 주의를 돌릴 여유”가 없다가 96년에 가서야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 후 클레멘트 서신은 교회에서 권위 있는 서신으로 받아들여져 보편화되었다. 주후 170년에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는 이 서신의 저자가 클레멘트라고 언급하면서 주일에 고린도에서 널리 읽혔다고 증거하고 있다.그가 썼다는 저술들 가운데 순수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65장으로 구성된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thians) 로서 기독교 고전의 가장 아름다운 문헌적 기념비 가운데 하나이다. 클레멘트는 이 편지에서 선동자들로 말미암아 불복종으로 오도된 고린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질투의 파멸성과 심판을 가르치면서 회개와 참회 그리고 겸손, 복종, 사랑의 단일성 및 갱신을 권면하고 있다.클레멘트는 70인경을 비롯, 성경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보이며. 또한 바울 서신, 특별히 고린도전서에 익숙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 이유는 클레멘트 서신이 고린도서와 사랑, 분열, 부활 등에 대한 서술에 있어서 문체가 비슷하기 때문이다.권위 있는 초대 교회사가 리차드슨 (C. C. Richardson)에 따르면, 로마교회에 보낸 클레멘트의 서신은 신약정경 외에 가장 오래된 기독교 문헌이다. 이 저술에는 AD 64년의 네로의 박해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건으로 묘사되었고, 고린도교인들을 가리키면서 “고대교회” (ancient Church of the Corinthians)라고 칭하고 있다. 현대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클레멘트가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는 성경관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로마의 클레멘트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성경이 오류가 전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성경을 조심스럽게 보십시오. 그것은 성령님의 진실한 말씀들 (the true utterances)입니다. 거기에 기록된 어떤 것도 부정한 것이나 거짓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관찰하십시오.위 인용문은 로마의 클레멘트가 성경의 광범위하고 강력한 영감을 주장한 구절이다. “성령님의 진실한 말씀들”이라는 글의 말은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성경의 내용은 진실하고 오류가 없다. “거기에 기록된 어떤 것도 부정한 것이나 거짓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그의 말은 성경의 내용 가운데 틀린 점이 전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말이다. 성경이 성령의 진실한 말씀들이므로 성경은 영감된 하나님의 성령의 말씀이며 따라서 완전히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은 로마의 클레멘트가 성경에는 인간의 구원 목적을 위한 신앙과 행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도 오류가 전혀 없음을 주장한 것이다. 로마의 클레멘트는 바울의 서신을 성령의 감동 하에 오류가 전혀 없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했다.복 된 사도 바울의 편지를 보십시오.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을 그 때에 그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썼습니까? 진실로, 성령의 영감 아래에서 그는 그 자신과 게바와 아볼로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썼습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그때 여러분 가운데 당파들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여기서 로마의 클레멘트는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위 인용문에서 말하는 사도 바울의 편지는 고린도전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그 자신과 게바와 아볼로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썼습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그때 여러분 가운데 당파들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그의 말은 고린도전서 1장 12절의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편지는 “성령의 영감 아래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로마의 클레멘트가 명백히 지적함으로써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이외에도 로마의 클레멘트는 “성령이 말한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성경에 대하여 말하기를, 성경은 “성령의 말씀”이며, “성령을 통한” 말씀이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기록들은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그가 확신하고 있었음을 증거한다. 다른 예를 들자면, 클레멘트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자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회개를 촉구했다”고 말하고, 에스겔 33장 11절을 인용했다. 에스겔 선지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회개를 촉구했다. 즉 에스겔이 회개를 촉구한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선언된 것이다. 에스겔이 예언한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한 것이다. 로마의 클레멘트가 에스겔 33장 11절을 인용한 것은 그가 에스겔서를 하나님의 틀림없는 말씀인 성경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에스겔서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다.더욱이 그는 다음과 같은 은혜로운 선언을 덧 붙였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는 에스겔 18장 30절 말씀과 이사야 1장 16-20절이다.아울러 그는 예레미야 9장 23절과 24절, 고린도전서 1장 31절, 고린도후서 10장 27절을 단순하게 인용하면서, “성령이 말했다”고 하였으며, 시편 34편을 인용할 때는 “그 (그리스도)가 스스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우리에게 이야기한다”고 주장하였다. “성령이 말했다”는 주장이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야기한다”는 주장은 예레미야서와 고린도전후서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구약의 이사야서는 물론이고 예레미야서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로마의 클레멘트는 성경 자체가 말하는 바에 따라서 예언서와 시편과 신약의 성경의 모든 내용이 성령의 말씀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는 성경의 증언에 따라서 모든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라고 주장하였다..벵트 헤그룬트가 지적한 것처럼, 로마의 클레멘트의 글에는 “성경이 성령에 의해서 축자적으로 영감되었다는 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로마의 클레멘트는 성경이 말하는 바 성경의 신적인 기원과 영감, 그리고 그것의 절대성과 무오성을 이처럼 확신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6.2. 순교자 저스틴 (Justin Martyr, 110-165)저스틴은 2세기의 기독교 대변자로서 변증서를 내놓은 변증가들 가운데 최초의 한 사람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스스로를 철학자로 인식했던 저스틴은 유세비우스가 지적하듯이 “이 시대에 활약한 사람들 중에 가장 뛰어난 인물”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고 또 자신의 저술을 통하여 신앙을 위해 싸웠다.” 그는 이교도 부모에게서 출생되었다. 그의 조부의 이름은 바키우스였고, 아버지의 이름은 프리스쿠였다. 그래서 저스틴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진리를 발견하기까지 진리를 찾아 여러 철학 사상을 편력하였다. 저스틴의 사상은 당대의 철학과의 만남, 기독교와의 만남을 통하여 형성되었다. 저스틴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한 마디로,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들을 행하라. 그러면 아마도 당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얻을 것이다.저스틴의 이러한 발언은 그의 성경에 대한 관점을 보여준다. 즉 율법과 성경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발언이다.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들을 행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얻을 것이지만,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들을 행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율법은 하나님의 자비를 얻는 표준이 된다. 율법의 준행 여부에 따라서 하나님의 자비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율법을 준행함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얻는 것은 율법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율법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율법을 준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동시에 율법을 준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을 준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다. 율법을 준행한 자가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율법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오류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율법이 완벽하고 흠이 없이 완전해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율법은 무흠하다. 그는 이와 같은 언급에 이어서 “기독교인은 근거없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우리는 공허한 우화들이나 근거 없는 말씀들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고, 큰 능력과 은혜로 차고 넘치는 말씀들을 믿는다는 것을, 당신이 여기에 서 있는 것처럼, 나는 당신에게 증명할 것입니다.저스틴이 『트리포와의 대화』 (Dialogue with Trypho)에 서 말한 이 발언은 그가 성경의 영감을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말씀들을 믿는다”는 그의 말은 바로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확신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성경은 공허한 우화들이 아니고 근거없는 말씀들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말씀들이기 때문에 성경의 근거와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성경의 내용에 오류가 없다. 그렇기 떄문에 저스틴은 성경의 권위를 신뢰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다.저스틴이 “팔 일만에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은 그의 백성 중에서 그 영혼이 끊어지리라”고 말한 것은 율법의 절대성을 증거하는 말이다.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율법은 구약시대에 절대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그 영혼이 백성 중에서 끊어졌다. 이것은 율법이 얼마나 절대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율법이 절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율법에 흠과 오류가 전혀 없음을 나타낸다. 할례 율법의 절대성은 모든 율법의 무흠성과 무오성 그리고 그것의 완벽성을 지시한다.당 신은 이사야가 말한 이 말씀을 읽지 않으셨습니까?: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이 말은 저스틴이 이사야서를 하나님의 권위있는 말씀으로 굳게 믿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사야서 51장 4-5절을 인용한 저스틴은 “이사야가 말한 이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미 절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의 신적 기원을 증거한다. 율법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고 따라서 무흠하다.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성경의 절대적인 성격을 증거한다.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가 “만민의 빛”으로 세워진다는 것은 율법의 절대성과 무흠성이 전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저스틴은 이사야서가 하나님의 오류 없는 말씀으로 확신하고 있었다.그 리고 예레미야는 이처럼 동일한 새 언약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저스틴은 이사야서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서도 하나님의 틀림없는 말씀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예레미야가 말한 내용은 그대로가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이라는 말씀은 예레미야가 말하였어도 단지 예레미야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으로 한 말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고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분은 예레미야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저스틴의 이러한 말들은 그가 율법과 선지서들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고 모세의 율법과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들이 기록한 말씀을 그대로 신뢰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 대해서 트리포에게 “성경은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수여하신 것 외에 어떤 새로운 언약을 수여하시기로 약속했다고 예언하지 않았느냐?”고 말했을 때, 트리포는 “이것이 예언되었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대화는 모세가 받은 율법의 신빙성과 권위를 보여준다.그리고 저스틴은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에게서 탄생했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증명했다. 그가 인용한 구절은 이사야 7장 10-17절이다.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저스틴은 “이제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육체를 따라서 처녀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우리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것이 모두에게 증거한다”고 말했다. 『트리포와의 대화』 (Dialogue with Trypho) 에서 트리포가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은 ‘보라, 처녀 (the virgin)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가 아니라, ‘보라, 젊은 여자 (the young woman)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고 했고,” “더우기 헬라의 우화 (fable) 가운데 페르세우스 (Perseus)가 처녀였던 단네 (Danae)에게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었다”고 반박하자, 저스틴은 “나는 성경의 증거를 따라서 진술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저스틴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주장한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아울러 저스틴이 성경의 진술과 권위를 그대로 신뢰하고 수용했음을 보여준다.저스틴이 이렇게 성경의 내용을 신뢰한 것은 성경이 영감되었기 때문이라는 확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스틴은 이미 “내가 생각하기로, 당신도 당연하게 여길 것이지만,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영감되었다”고 말한 바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선지자들의 말들은 그들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말하여진 것이다”고 말하였다. 아울러 그는 “선지자들은 의롭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발언을 하였는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가운데 그들이 보고 들은 것만을 말하였다”고 하였다. 이사야 65장 2절과 58장 2절을 인용하면서 저스틴은 “이사야 선지자도 예언의 영에 의해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으며, 다윗이 기록한 시편 19편 2-5절을 인용하여 언급하면서 선지자이면서 왕인 다윗이 예언의 영으로 말미암아 발언하였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저스틴은 성경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 것이다.이와 같이 다소 기계적인 것처럼 보이는 저스틴의 영감론 (Justin's doctrine of inspiration)은 당시의 변증적 상황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보다 우월한 기원을 강조함으로써 기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려 하였다. 기독교는 세상과 자연에서 비롯된 세상의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하늘의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왜 냐하면 사람이 매우 위대하고 신적인 것들을 아는 것은, 자연에 의해서도 아니고 인간의 개념에 의해서도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하프나 현금같은 도구처럼 의로운 사람들을 사용하는 하나님의 (현악기 연주용) 채 그 자체가 하늘의 신적인 것들의 지식을 우리에게 계시하기 위해서, 수사학적 기교나 싸움을 즐기거나 말다툼하는 식의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입과 하나의 혀로 말미암은 것처럼, 그들은 서로 계승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님, 세상의 창조, 인간의 형성, 인간 영혼의 불멸성, 이 생 이후에 있을 심판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가 꼭 필요하게 알아야 할 모든 것들에 관하여, 우리에게 가르쳤고, 이와 같이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신적인 명령들을 우리에게 공급하였다.이것은 성경의 우월성과 조화성을 나타낸 저스틴의 말이다. “사람이 매우 위대하고 신적인 것들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힘으로만 그 자체를 나타내는, 거룩한 사람들 위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은사에 의해서 가능”하고, “하나의 입과 하나의 혀로 말미암은 것처럼, 그들은 서로 계승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신적인 명령들을 우리에게 공급하였다”고 말한 저스틴은 결코 기계적인 영감을 말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변증의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성경의 의사전달에 있어서 인간의 합리적인 과정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스틴은 기계적 영감이 아니라 유기적 영감을 말한 것이다. 저스틴은 “선지자 모세가 신적인 영감에 의해서 히브리인의 특성을 기록했다”고 주장하였다.아울러 성경의 가신성과 신뢰성에 대해서는 트리포 (Trypho)도 인정하고 있음을 저스틴이 나타냈다. 트리포는 “따라서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믿도록 강요하는 것들에게 우리의 신뢰를 주기 위해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을 부지런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저스틴도 성경에 근거해서 트리포를 설득하는 대화를 하였다.그렇게 여러번 성경이 인간이 되었다고 당신에게 증명한 그리스도와 창조주 외에, 어느 다른 사람이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라 불리우고 예배받으실만 함을 언급했다고 생각합니까?저스틴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와 창조주 하나님을 그대로 믿었다. 이것은 그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믿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저스틴은 “트리포여,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는 이사야의 예언은 다윗의 집이 아니라 열두 족장의 다른 집에게 말한 것이라면, 아마도 문제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다윗의 집을 언급한 것이기 때문에, 이사야는 하나님에 의하여 신비하게 다윗에게 말하여진 것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를 설명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이사야의 예언은 우리의 그리스도를 언급한 것이지, 히스기야가 아니다”고 트리포에게 말했다. 더 나아가서 저스틴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빈곤한 이방인들이 나무 형상에게 경배하는 허무함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갖게 될 것을 예언한 성경을 트리포에게 제시했다. 그 구절은 이사야 35장 1-7절이다.이러한 대화의 내용은 저스틴과 트리포와의 대화가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이 대화 가운데 성경의 권위는 저스틴에게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성경의 해석에 관하여 트리포와 저스틴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이사야가 예언한 내용이나 시편 96편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한 내용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놓고, 트리포는 아니라고 부정하고, 저스틴은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한다고 긍정한다. 이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내용이냐 아니냐의 해석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점에서는 양자가 동일하다. 따라서 이들은 성경의 무오를 의심하지 않았다. 저스틴은 성경에 오류가 전혀 없고 모순되거나 충돌되는 정보가 하나도 없음을 분명하게 진술하였다.그 리고 나는 대답했다. “트리포여, 당신이 이런 말을 했다면, 단순하게 나쁜 의도가 전혀 없이 과거로 가서 반복하지도 말고 나중에 오는 것을 더하지도 말고 침묵을 지켜서, 당신은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했다면, 내가 성경을 서로 모순된다고 말하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그 구절을 의심한다고 상상하기 때문에, 당신은 잘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종류인 것으로 나타나는 어떤 성경이 제출된다면, 그리고 약간 반대된다고 말할 구실이 있다면, 나는 성경이 전혀 서로 모순되지 않다고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내가 기록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인정할 것이며, 성경이 모순된다고 상상하는 자들을 설득하여, 차라리 나 자신과 같은 의견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그러므로 저스틴은 “나는 성경이 전혀 서로 모순되지 않다고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경이 모순된다고 상상하는 자들을 설득하여, 차라리 나 자신과 같은 의견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성경이 오류가 전혀 없는 “신적인 말씀 (the Divine Word)”이며, “성경은 진실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트리포가 성경에 모순이 있고 의심되는 구절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저스틴에 의하면, 하나님은 신적인 말씀 (로고스)과 성령을 통하여 구약의 기록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메시지를 기록하였다. 그 말씀들은 영감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그 말씀들은 뛰어난 가치가 있고, 서로 모순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어서, 성경의 각 말씀은 평가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성경의 완전축자 영감을 믿었다. 이러한 성경이 자증하는 것처럼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저스틴의 성경관이다.이어서[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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