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그의 아들로 말씀하심-히브리서 1장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히브리서의 위대한 멧세지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그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주의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살아계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제 1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들과 천사들보다 우월한 분이심을 보게 되는데, 그들은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이들이었다.
1. 선지자들보다 더 나은 분이신 그리스도(1:1-3)
그의 인격에 있어서-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나, 선지자들은 다만 종으로 부름받았던 인간일 뿐이었다.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지으셨으며(또는 “모든 세계를 조성하셨으며“), 온 세상을 붙드시는 분이시다. 그의 말씀은 능력이 있으시다! 그가 말씀하시자 온 세상이 있게 되었고, 이제는 그의 말씀이 세상을 다스리며 보존하신다.
그리스도는 또한 만물의 상속자이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세상 죄를 담당하신 하나님의 제물이시다. 그는 십자가 상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셨다.“ 이제 그는 왕같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영광 중에 좌정해 계신다. 그의 사역이 완성되었으므로 그는 지금까지 좌정해 계시는 것이다.
그의 멧세지에 있어서-옛 시대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주어졌다. 어떠한 선지자도 완전한 계시를 소유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입을 통해 하셨던 것처럼 이상과 꿈과 상징과 사건들을 통해 계시하셨다.
이 계시들 모두가 그리스도를 지목하였으며,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최종적인 계시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시다! 구약의 모든 계시는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로 점차 이끌어졌다. 오늘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날 계시를 주지 않으신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단번에 주어진 모든 계시로 비추어 주신다."
2. 천사보다 더 나은 분이신 그리스도(1:4-14)
유대인의 종교에 있어서 천사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신명기 33장 2절, 사도행전 7장 53절, 갈라디아서 3장 19절에 따르면, 율법은 천사들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성도」=거룩한 이들, 천사들).
만일 유대인들이 천사들을 통해 주어진 율법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천사들보다 더 위대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멧세지에 대해서는 보다 더 큰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저자는 천사들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를 보이기 위해 구약에서 일곱 군데를 인용하고 있다.
시편 2편 7절과 사무엘하 7장 14절 인용(4-5절)-만유의 후사이신 그리스도는 보다 큰 기업을 얻으시며, 따라서 보다 위대한 이름을 얻으신다. 시편 2편 7절에서 성부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내 아들“이라 부르시는데, 천사들에게는 이 칭호를 주신 일이 없으시다(구약에서 천사들이 집합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웠지만, 개별적으로는 그렇게 불리운 일이 없다).
이 진술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계된 말이지 그의 베들레헴 탄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행 13:33 참조).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을 때는 한 번도 장사지낸 일이 없는 처녀 무덤에서 “낳은 바 되셨다“. 골로새서 1장18절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라고 지칭한다.
두번째 인용은 솔로몬을 언급한다. 사무엘하 7장 전체를 주의깊게 읽자. 왜냐하면 다윗의 “집“이란 말이 히브리서에 다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건축하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은 솔로몬이 그 일을 할 것으로 작정하셨으며, 또한 친히 솔로몬의 아버지가 되실 것을 다윗에게 약속하셨다. 히브리서 1장 5절은 이 일을 “솔로몬보다 더 큰 이“이신 그리스도께 적용한다(마 12:42).
시편 97편 7절 인용(6절)-아마도 70인경이라고 불리우는 헬라어 역본으로는 신명기 32장 43절을 인용했을 것이다. 이 인용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돌아오심을 가리키고 있다(“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 “).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 경배를 드렸던 것처럼 재림 때에도 그리스도를 경배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더 위대하시다는 증거이다.
시편 104편 4절 인용(7절)-천사들은 하나님의 종들로 지은 바된 영물들이다. 다음의 인용은 그리스도께서 종이 아니라 절대 주권자이심을 보여 준다.
시편 45편 6-7절 인용(8-9절)-시편 45편은 그리스도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결혼의 시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즉위하심을 명백히밝히시며, 또한 성부께서는 성자를 “하나님!“이라고 부르신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점을 입증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이러한 구절들을 왜곡시키고 있다. 어떤 “왜곡된 해석“은 심지어 “주의 보좌는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구절들은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선포한다. 그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102편 25-27절 인용(10-12절)-여기서 다시 예수님은 “주님“으로 불리운다. 그는 태초부터 계신 우주의 창조자이시다. 우주는 오래된 옷과 같이 낡아져서 산산이 부서질 것이지만 그리스도는 결코 변함이 없으실 것이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천사들은 피조물이나, 그리스도는 영원한 아들이시다.
시편 110편 1절 인용(13절)-이것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핵심적인 시편이다. 왜냐하면 시편 110편 4절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제사장이신 동시에 왕(Priest-King)이시다. 베드로도 사도행전 2장 34절에서 이와 똑같은 구절을 인용한다.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그리스도께 아직 절하지 않았으나, 어느날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천사들의 지위를 요약한다. 이들은 보좌에 오른 아들들이 아닌 섬기는 영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원 안에서 그와 더불어 후사가 된 우리를 섬기는 것이다.
이 인용 구절들을 복습할 때 하나님의 아들의 위엄과 그 영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4절에서 진술하듯이, 그리스도는 천사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계신다. 왜냐하면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보다 큰 기업을 얻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성품과 사역과 섬김에 있어서 최고의 위치를 점하신다. 오늘날 비록 그리스도의 왕국이 지상에 있지는 않지만 그는 여전히 왕으로 좌정해 계시며, 이 땅에 의를 세우기 위하여 언젠가는 돌아오실 것이다.
▣ 부가적 연구
3절에 나오는 “형상“(cxprss image)이란 영어의 성품(character)이란 말의 근간이 된다. 그것은 “인“(印, imprint)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데,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신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인(引)이시다. 이 단어는 마태복음 22장 20절에 나오는 “형상“과 똑같은 말인데, 동전에 새긴 가이사의 형상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더 나은“(better)이란 단어(4절)는 히브리서의 핵심 단어이다. 성경에서 이 단어를 찾아 표시해 보라.
사무엘하 7장 14절을 그리스도께 적용함에 있어서 저자는 솔로몬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다윗과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한 이중적 표상이다. 다윗은 추적당하고 거절을 당한 “도피하는 왕“이었다. 그러나, 마침내는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솔로몬은 큰 영광 중에서 왕위에 올랐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통치는 평화로웠고 찬란했다. 솔로몬은 건축자였는데, 우리의 주님도 그러하시다. 솔로몬은 그의 지혜로 유명했는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시다.
히브리서 1장 10-12절에서 인용되는 시편 102편은 그리스도의 배척자 고난과, 죽음을 나타낸다. 24절은 히브리서 5장 7절과 연관이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기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죽음에서 구원되기를 바라시며 드린 기도였다.
저자는 확실히 구약을 알고 있었다! 히브리서를 공부함에 있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말씀을 구약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그는 시편에서 많이 인용한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조차 시편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관련된 구절들이 들어 있는 시편을 다 읽어 보면 당신에게 무언가를 더 말해 줄것이다."
▣ 우리의 큰구원-히브리서 2장
본 장은 1장에서의 논점을 계속해서 다루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나은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논쟁을 중단하고 권면을 하는데, 이 권면은 본 서의 다섯 가지 권면들 중 첫번째 것이다(개요 참조).
1. 권면(2:1-4)
천사들로 말미암아 주신 말씀(구약 율법)이 견고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신 말씀도 역시 견고한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구약의 날들 가운데서 그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들을 처리하셨다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거나 거절하는 사람들도 처리하실 것이다!
여기서의 위험은 말씀을 “등한시함으로써 떠내려 가는“ 것이다. “... 언제라도 그 말씀들을 벗어나는 곳으로 떠내려 가지 않기를“(“혹 흘러 떠내려 갈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번역이다. 3절은 “불신자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라는 뜻이 아니라, “만일 우리(신자들)가 등한히 여기면... “의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기 시작하는 데에서부터 영적 퇴보가 시작된다. 10장 19-25절에서 주는 권면을 볼 때, 이 서신의 당시 대상자인 유대인들은 기도를 소홀히 하고 하나님의 백성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고 있었던 것 같다(딤전 4:14 참조).
불순종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듣기를 즐겨하지 않는“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지 않는 성도들은 불순종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으로 그의 말씀을 확증하셨다(4절/ 행 2:22/행 2:43 참조). 이 말씀이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상, “등한히 하다“는 말은 마태복음 22장 5절에서 “돌아 보지도 않고“(가볍게 여기고)라고 번역되어 있다."
2. 해설(2:5-18)
1장에서 제시한 바,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뛰어난 분이라는 저자의 논증은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가지실 때에도 그가 어떻게 보다 뛰어날 수 있는가? 천사들은 자신을 제한하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보다 더뛰어난 존재가 아닌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야기시켰다. 그는 예수께서 친히 육신의 몸을 입으셔야 하는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이 물음에 답한다.
마지막 아담이 되기 위함(5-13절)-성경의 그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장차 오는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일이 없다. 창세기로 돌아가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온 땅을 다스리게 하셨다(창 1:26-31). 바울은 시편 8편 5-7절을 인용하는데, 여기서는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축복이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는데, 흑은 문자적으로는 “잠깐 동안 하나님보다 못하게“라는 말이 된다. 이 말은 아담과 하와가 시련의 시기에 처해 있었다는 뜻인 듯하다.
이들은 하나님보다 못한 상태로 머물러 있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므로, 만약 그들이 범죄하기를 거절했었다면 이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였을 것이다. 사탄은 그들이 “잠깐 동안“만 하나님보다 못한 상태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서둘러서 때가 되기도 전에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죄가 들어왔으며, 이 일은 아담에게서 세상을 통치할 모든 권한을 빼앗아 갔다. 그는 왕이 되기를 중지하고 노예가 되었다. 바로 그 점이 8절에서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사람)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라고 말하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 “우리는 예수를 본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시며, 그의 죽음과 부활은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을 때 저질러 놓은 모든 것을 원상태로 회복하였다. 그리스도는 잠깐 동안 천사들보다 못한 자리에 이르셨고, 갈보리 밑바닥까지 낮아지셨다(빌 2:1-12).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담당하여 죽으시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으셔야만 했다. 사람들은 가시로 그에게 관을 씌웠으나, 이제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벧후 1:17).
세상에는 이제 새로운 가족 관계가 있다. 그리스도는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아담은 그의 죄로 말미암아 그의 가족을 죄와 사망으로 몰아넣었는데, 그리스도는 이제 아담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변화시키신다. 그는 우리 구원의 “개척자“(대장)이시며 우리가 따라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가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제들인 것은 우리 모두가 그의 거룩한 본성에의 참여자가 되었고, 그의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구별된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10:10).
그는 시편 22편 22절을 인용하는데, 이는 갈보리에 관한 시에서 부활을 다룬 부분이다. 그는 또한 이사야 8장 17-18절도 인용한다. 이사야의 두 아이는 그 민족에게 보이는 징표였다. 스알야숩(사 7:3)은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이다“는 뜻이며, 마헬살랄하스바스(사 8:1)는 “서둘러 탈취하다, 약탈하는 데 재빠르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사야 시대에 다른 사람들이 버림받을때에도 구원받은 믿음을 가진 “남은 자“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이들이 “이사야의 자녀들“인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로 구성된 한 가족, 곧 유대인 중의 남은 한 그루터기를 가지신다. 이들은 장차 다가올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마귀를 패배시키기 위함(14-16절)-사망과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담의 죄의 결과였다(창 2:17/창 3:10). 사단은 사망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사용해 왔다. 사단은 “사망의 권세“를 전혀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욥의 경우와 같이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권세“라는 단어는 권위라기 보다는 “힘“이라는 뜻이다. 사단은 죄인들과 어두움을 주관하는 권세를 가졌으나(눅 22:53), 그리스도께서 흑암의 권세로부터 성도들을 건져내셨다(골 1:12-13). 사단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주관하기 위하여 “사망의 권세“를 움켜쥐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이러한 권세의 효력을 깨뜨리셨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여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실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사단을 패배시키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만 했던 것이다(요일 3:8 참조).
16절은 그리스도께서 천사들의 본성을 입지 않고 아브라함의 씨를 입으셨다고 분명히 밝힌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는 천사가 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셨으며, 유대인이 되셨던 것이다. 그는 천사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 타락한 천사들은 결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으나, 타락한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동정적인 제사장이 되기 위함(17-18절)-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신 세번째 이유이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의 약점을 돕기 위하여 동정심 많은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로 고난받게 하셨으며 이러한 고난을 통하여 그의 제사장 직분을 준비시키셨다(10절).
그리스도의 인격은 숙달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인(God-Man)으로서 그는 우리의 필요에 대처하기 위해서 고난을 견디셔야 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육신을 입으셨고(요 1:14) 이 땅에서 고난의 생을 사시는 동안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죄로 여김“을 받으셨다(고후 5:21).
이제 그리스도는 인간 제사장과는 달리 자비롭고 충성된 대제사장이시다. 우리는 그를 의지할 수 있다. 우리가 도움을 받고자 하여 그 앞에 나오면 그는 우리를 도우실 수가 있으시다. “도우신다“는 말은 “부름을 받고 달려온다“는 뜻으로, 의사에게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를 요청하면 우리를 도우시려고 달려오신다!이상으로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우월하시다는 그의 논증은 완결된다. 이로써 저자는 그리스도가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분이신바, 그의 인격과 사역에 있어서, 그 이름에 있어서 우월하심을 보여 주었다. 결론은 명백하다. 그리스도는 우월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말씀을 간직하고 순종해야만 한다. 등한히 함으로써 흘러 떠내려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시편 8편에 대한 부가적 연구
시편 9편의 맨 처음에 나오는 주(註, “영장으로 뭇랍벤에 맞춘 노래“)는 8편의 맨 끝에 속한 것이다. 그것은 “싸움을 돋우는 자의 죽음에 붙여“라는 뜻이며,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고 승리한 것을 가리킨다. 골리앗은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였으나(삼상 17:45) 다윗은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다. 하나님은 40일 동안 참람한 말을 했던 “원수를 잠잠케 하셨다“(시 8:2 /시 17:16). 골리앗은 17장 4절과 23절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로 불리우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어린 아이와 젖먹이 같았을지라도(시 8:2) 하나님께로서 힘입어 원수를 무찔렀다(삼상 17:42 참조).
다윗은 크게 승리한 후 하나님께 고하려고 밤에 밖으로 나갔는데, 그로 인해 시편 8편이 씌어진 것이다. 이 시편을 사무엘상 17장과 함께 정성껏 읽고 어떤 새로운 의미를 주는지 알아보자."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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