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목회학 원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목회학 원론(牧會學 原論)

- 에드워드 투르나이젠, 박근원 역-

 

 

제1장 신학과 교회의 문제로서의 목회

 

 

1. 서론

 

목회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개개인에게 전달하는 그 본질이다. 교회의 모든 정통적인 기능과 마찬가지로 목회도 교회에 주어진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1) 목회의 장소

목회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사건이다.

2) 목회의 바탕

목회는 하나의 신학적인 문제이며 동시에 교회의 문제로서 대두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목회의 이론을 정립하려할 때, 그 바탕을 살펴보아야 한다.

3) 목회의 위치

목회의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신학과 교회 안에 자리할 목회학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 하는 점을 먼저 규명해야 한다.

4) 목회의 중심

말씀의 선포 즉 설교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목회의 중심이 된다. 선포하는 행위 즉 설교가 모든 실천신학의 본질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다.

 

2. 설교

 

1) 신학의 전반적인 과제는 말씀을 다루는 일이다.

 

a. 역사신학(historische Theologie)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증언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기록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석(Exegese)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교리사 및 교회사로 범위가 좁혀질 경우 하나님말씀에 대한 이해이다.

 

b. 조직신학(systematische Theologie)은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 즉 하나님의 말씀 속에 깃들어 있는 기독교의 진리를 하나님의 말씀과 견주어 발굴하고 다시금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c. 실천신학(die prakttische Theologie)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인간의 선포와 그것을 인간이 듣는다는 사실과 그것이 바로 학문의 대상이며, 또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문제시하는 것이 곧 실천신학이다.2) 교회의 설교

 

교회의 설교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복잡한 목회행위이다. 설교는 여러 가지 신학 분야들이 취급하는 수많은 기능들을 다 내포하고 있는 선교행위이다. 그 중에서도 선포하는 행위를 본질적인 의미에서 설교라 한다. 이 설교를 이론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을 설교학(Homiletik)이라 부른다. 이 설교학에는 필연적으로 성례전(Sakrament)과 기도(Gebet)가 포함된다.

 

a. 예배학

교회의 행위인 기도하는 방법, 설교로 표현되는 말씀과 관련하여 연구하고 가르쳐야하며, 또 그것이 개개인의 생활 속에 적용되며,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예배를 총괄적으로 다루는 ‘예배학(Liturgik)’이다.

b. 교회교육학

말씀이 진정으로 선포되기 위하여 넓은 의미에서 아직 말씀을 듣기에 미숙한 신자들에게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교 속에 담겨진 용어들과 진리의 표현들을 가르치고 설교를 들을 수 있도록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것이 실천신학에서의 ‘교회교육학’이다.

 

c. 선교학

교회의 설교와 세례 그리고 성찬으로 대표되는 지금까지의 교회의 선포활동이 아직도 공동체 삶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일 그것들이 교회의 설교 및 공동체로서의 특성과 긴밀한 관계만 지속된다면 국내선교의 장애인 세속화를 극복할 수 있으며 그러한 행위가 선교로서의 특성을 갖게 된다고 본다. 교회가 이러한 사역으로부터 탈선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연구와 함께 자선행위까지 포함된 포괄적인 의미로서 ‘선교학’을 말할 수 있다.

 

d. 교회학(목회학)

설교, 교육과 국내외 선교활동을 포괄하는 공동체를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여기에 교회의 기능과 건축 그리고 확장을 등이 포함된 것을 ‘교회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궁극적으로 ‘목회학’이라 할 수 있다. 목회학이란 교인대중을 향해 선포된 메시지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특별하게 전달하는 것이란 뜻이다.3. 목회

 

1) 목회의 정의

 a. 목회가 설교와 성례전을 대치(代置)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필연적으로 동반(同伴)한다. 목회는 설교와 세례 및 성찬을 받음으로써 야기되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교회가 갖추어야할 부차적인 기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b. 목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되, 개인을 중심으로 한 형태로 하는 것이다. 소위 선각자들 가운데서도 루터파 소속인 ‘뢰에’가 목회와 설교의 상호관계를 아주 명확하게 잘 다루었다.

 

2) 목회의 본질

 

a. 설교를 하고 교리 문답을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고 성례전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흔히 사용되어지는 일반적인 수단만을 견지하는 한 그것은 목회를 협소한 의미로 한정시키는 것이다. 그것들은 ‘개인목회’라는 이름으로 별도로 첨가될 성질의 것이다.

 

b. 목회를 담당하는 사람은 꼭 안수 받은 설교자만은 아니다.

 확실히 말해 그것은 안수 받은 설교자의 특수한 임무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면 교회전체가 다 목회에 참여하며 또 그것을 위해 부름 받은 것이다.

 

c. 목회의 영역과 그 구분에 대한 모호성

교회라는 영역 안에서 꼭 있어야 할 사건이라는 사실과 이론의 신학적 배경에 대한 설명은 없다. ‘뢰에’는 설교와 예식을 중심한 예배만을 대상으로 하여 목사의 역할을 아주 협소하게 정의 내린 사실을 예로 들 경우 그는 정말 설교, 예식, 그리고 순수한 경험적 바탕 위에서 본 성례전 등에 목회를 첨가시키고 있지 않다. ‘뢰에’는 목회의 한계성을 분명히 하고자 하고있다. 그러나 목회를 일반적인 것으로 보고 설교, 교리문답, 예식이 목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크리스찬 파머’는 19세기 부르조아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처럼 설교를 “위대한 왕을 모신 식탁에서 교우들이 모여 만찬을 베풀면서 행하”는 일종의 탁상담화와 비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스무센’도 목회대화를 세례준비, 결혼준비, 병자방문의 경우에만 한정시켜 설명한다. 그렇다면 결혼이나 세례나 장례가 아닌 경우에도 내적 고민을 상담하기 위하여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3) 목회의 영역

 

 a. 아스무센(Asmussen)

그는 말씀을 선포한다는 의미를 목회말고 ‘영적지도’란 큰 영역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교육’이란 말과 다를 바 없으며 나아가 결혼식, 세례식, 장례식 등과는 관계가 없는 모든 영역을 다 포함하고 있다.

 

 b. 베노아(Benoit)

그는 실절적인 목회 즉 결혼식, 세례식, 장례식 등과 ‘영적지도’구별하면서 전자는 결코 목회라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스무센은 개인목회와 말씀의 선포를 강조한 반면에 베노아는 말씀 선포보다는 오히려 교훈과 윤리생활 즉 도덕적, 지적, 변증적 또는 종교적인 요소를 강조하면서 영적지도자로서 갖추어야할 정서적인 역량이 중요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입장을 거부하는 점에서는 아스무센과 견해를 같이 한다.

 

 c. 휠마르(Vilmar)

그는 목회를 목사의 직책과 교회 장로들의 직분으로 한정시켜 목회를 가정과 교회 전반에 걸친 훈련을 증진시켜주는 행위로 설명한다.

 

 d. 슈타인마이어(Steinmeyer)

그는 퉁명스럽게 개인 가정의 공기는 성직의 영광을 펼칠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하며 그런 점에서 목사가 개인 가정을 심방할 때에는 엘리야가 입던 두루마기가 어깨에서 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4) 개인목회

 

a. 뢰에(Wilhelm Lohe)

  a) 설교를 통한 목회를 실시했다.b) 성만찬 이전에 회개를 요구했다.c) 영적으로 완숙된 강력한 기도를 드리도록 요구했다.

 

b. 하름스(Claus Harms)

  a) 그는 목회의 세 요소로 설교자(Prediger), 제사장(Priest), 목사(Pastor)를 언급한다.

  b) 목사의 역할에서 그는 설교와 성례전 집행이라는 역할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약세에 있다면서 그는 목회의 범위를 “슬픔이나 기쁨을 만나 특별한 격려를 필요로 하거나 또는 기대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라고 한정시켜 주장한다.

 

 c. 경건주의 목회

   a) 경건주의는 “개인목회”를 끈질기게 추구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리고 목사와 교회의 직책 역시 이러한 목적으로 지향한다고 본다. 경건주의는 심지어 설교와 성찬 배찬을 그것이 개개인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여 평가한다. 뢰에와 휠마르에게 있어서는 교회란 하나의 포괄적인 개념 즉 개개인마다 개성을 가지고 있으나 한 지체로서의 개인들이 모인 장소이다. 개인은 오직 교회 공동체의 지체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b)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경건주의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깨우침을 받고 회개한 개인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깨우침을 받고 세례 받는 개인이 아닌, 깨우침을 받은 개인이다. 이처럼 교회는 깨우치고 회개한 그리스도인들의 총화를 뜻한다. ‘개인목회’라 할 때 ‘개인’이란 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하나 개인적인 설득을 통하여 개개인의 양육과 성장을 중심으로 목회운동을 벌렸던 스펜서, 프랑케, 특히 진센도르프의 경건주의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d. 경건주의가 강조한 목회

  a) 심방b) 개인적 대화c) 구역집회 및 서신왕래

 

e. 루트비히 호파커(Ludwig Hofacker)는 위대한 설교자였다.

  a) 그의 설교는 각자가 속히 각성하고 회개하라는 강렬한 호소를 담고 있다.

  b) 그는 설교말고도 개인목회에 깊이 심취되어 있었다.

  c) 그는 자신의 영혼구원을 위해 일하는 경건주의적 목사의 한 전형이었다.

  d) 그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자기 자신은 물론 하나님과 내적인 대화(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어디서 끝나고 하나님과의 대화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는 항시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를 통하여 영적 생활을 깊이 터득하며, 그것을 항시 일기장이나 비망록에 기록해 두었다. 이러한 스스로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 자기 교회의 교인들에게도 그와 같은 자기 반성의 신앙생활을 하도록 권장해 나갔다.

 

f. 휘마르(Vilmar)

그는 그의 저서에서 “경건주의에 흡입된 많은 목사들은 특히 젊은 목사들은 자기들 스스로의 영적 체험을 토대로 불편 부당하게도 자기들의 체험과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편견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교인들의 신뢰를 얻기에 열을 올린다. 그들은 개인의 체험을 기쁘다는 듯 내 뱉는다. 이것이야말로 목사의 영적 생활을 말장난과 거짓말로 손쉽게 해소시키려든다”고 공격을 퍼붓고 있다.

 

g. ‘뢰에’와 ‘휠마르’ 그리고 ‘하름스’

  a)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혼을 먹이고 살찌게 하며, 일깨워주고, 또 영혼의 생명을 보존해 주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b) 그러나 경건주의 목회에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갖는 가치가 훼손을 당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c) ‘뢰에’는 “전통적 수단”에의 충성이나 현대인에게는 별로 관심거리가 못되는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하나님의 말씀”(휠마르)이란 것이 무슨 뜻을 가질 수 있겠는가를 비난하고 있다.

 

h. 경건주의 목회의 본질

a) 경건주의는 성서를 새롭게 발견하고 성서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원천으로 생각하고 신앙의 한 복판에 갖다 놓음으로써 합리주의와 투쟁을 벌인 바도 있다.b) 다만 경건주의는 성서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학생이 선생 앞에 서듯, 그것을 읽는 학생이 자신의 삶의 중심에 두지 못한 점이다.c)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며, 그럴만한 능력을 길러 줄 수 있다는 것이다.4. 결론

 

말씀과 그 내용을 소유함으로 인하여 영적 생활을 확보하고 또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교회에 맡겨진 말씀이 ‘알파와 오메가’가 아니라, 오히려 개개인의 영적 생활, 즉 말씀으로 일깨움을 받는 개개인과 그 개인적인 경건이 아주 중요시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여기에서 말씀의 독자성이 변질될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건주의 과오를 지적하며 또는 경건주의를 부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비판이 경건주의적 목회의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건주의적인 형태의 목회가 문제일 경우 목회자체까지도 문제가 될 수 는 없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의 객관성을 전제로 하는 종교개혁의 교회는 목회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실천하지도 못한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 자체가 영혼구원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고 그러한 점에서 종교개혁은 일종의 목회운동이다.그렇다면 목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양립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목회는 목회대로 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목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인간적인 경건을 압도하여 유일한 가치를 지니는 목회, 그리고 인간은 항상 그 말씀의 학생이 되는 그러한 목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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