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기독교의 핵심진리 20(교육용)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15 성화와 견인이란 무엇인가?

처음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하는 회심은 이후의 신자의 신앙생활에 본보기를 제시합니다. 회개와 믿음은 이른바 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화란 그리스도인이 실생활에서 점점 더 죄에서 멀어지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자신이 더불어 일하는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성화는 분명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며, 신자는 그 사역에 협력합니다. 신자의 성화는 점진적으로 성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결코 완성되지 않습니다.

 

Ⅰ. 성화는 과정입니다.

성화는 거듭난 순간부터 시작되어 평생토록 진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날 때 “죄에게서 해방”(롬 6:18)되었으므로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롬 6:11) 여겨야 합니다. 그러니까 죄가 신자들을 주관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신자가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는데 이것은 참 신자가 더 이상 죄의 지배나 통치를 받지 않으며, 더 이상 죄 짓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 신자는 모두 성화의 과정에 있습니다. 그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결코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라고 한 것입니다. 전도서 7장 20절에서도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하였습니다. 주님도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우리가 매일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눅 11:14) 그리스도인은 죽어서 하나님께로 가게 되면 성화는 완성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마음속에 거하는 죄에서 해방되어 완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측면에서 볼 때에 성화는 전인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전인격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에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빌 3:21) 변하게 하실 때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의 몸도 완전해져서 모든 죄의 권세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이 땅에서는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성화의 꾸준한 진척은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빌 3:13-14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말씀은 평생토록 계속되는 한 과정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죄에서 큰 자유를 맛보았다가도 다른 죄로 깊이 몸부림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죄와의 싸움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변화되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죄와 싸우는 가운데 로마서 6장 14절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결국 죄가 신자들을 주관치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Ⅱ. 성화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과 우리의 역할

성화는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의 뜻을 행하시고...”(히 13:20)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덧입히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거룩하게 만드시며 더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렇게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 5:22 이하) 우리가 점점 성화되어 갈수록 “성령을 좇아” 행하게 되고, “성령의 인도 하시는 바가” 됩니다.(갈 5:16-18)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생활과 성품에 있어서 성령의 요구와 감동에 민감해집니다. 성결의 영이신 성령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거룩함을 낳으십니다.

한편 우리는 성화에 수동적인 동시에 적극적으로 참여 합니다.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라고 합니다.(롬 6:13) 이는 수동적인 참여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13절에서는 “몸의 행실(죄)을 죽이라”는 권면도 하는데 이는 우리 편에서의 능동적인 역할을 함축합니다. 이렇게 성경의 증거로 볼 때에 알 수 있는 것은 성화는 성령의 능력으로써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적극적인 역할을 권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빌2장 12-13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신자는 담대히 ‘거룩함’을 좇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히 12:4) 신자가 되면 성화에 동참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성화’라는 동일한 소명을 주셨습니다.

첫 믿음도 중요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의 지속적인 믿음과 순종의 행동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런 일은 성경읽기와 성경묵상(시 1;2, 마 4;4, 요 17;17), 기도생활(엡 6;18, 빌 4;6) 예배(엡 5;18-20), 말씀증거(마 28;19-20) 자비와 의의 행실(마 23:23,약 1:27), 성도와의 교제(히 10;24-25), 절제와 자기통제(갈 5;23, 딛 1;8) 등등을 통해서 나타나게 하십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화에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과 그런 믿음의 삶에 순종하는 노력 속에서 우리가 성숙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를 믿지 못하면 곧 우리는 교만하여 자신을 과신하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성화의 삶에 힘쓰지 않으면 성화의 삶은 불완전하게 되고, 기쁨과 평안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갈 5:22, 롬 14:17) 그러므로 우리는 사는 동안 더욱더 거룩해지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Ⅲ. 성도의 견인

때때로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구원의 복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의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이 능력으로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리스도인으로 보존됩니다. 모든 참된 신자는 끝까지 인내할 것입니다. 동시에 인내하는 사람만이 참된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양면적인 가르침을 “성도의 견인”이라고 합니다. 성도의 견인교리는 예수님의 약속에서도 확증합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8-29) 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요 10:27)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 신자에게 영원한 생명의 보증으로 ‘약속의 인 치심’인데, 바로 하나님의 임재, 즉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입니다.

결론적으로 볼 때에 성화의 과정은 평생의 과정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면 때때로 성화의 진전이 자신에게서 확연히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신자는 자신을 더 낮게 여기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성화의 과정에서 자신에 대하여 낙심이 될 정도로 실패한 상황에서는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에게 믿음이 없음을 인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막 9:24의 말씀에서처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함께 생각해 봅시다.

1문. ‘성화와 칭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2문. 성화에 있어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이번 주에 여러분이 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문. 견인의 교리를 뒷받침하는 성구들을 열거해 보십시오. 그런 성구들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16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에게 육체적 죽음은 성화의 일부를 완성시킵니다. 임종할 때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즉시 완전해져서 하나님이 계신 속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야만 그리스도인의 몸과 영혼은 모두 충만한 완성을 경험합니다. 그 때에 비로소 몸까지도 부활하여 완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 임종과 재림의 때와 임종에서 재림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Ⅰ. 그리스도인은 왜 죽는가?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형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롬 8:1) 그리스도인의 죄에 대한 모든 형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로 신자가 즉시 구원의 모든 혜택으로 경험하는 것은 최선이 아니라고 판단하셨습니다. 예컨대 그리스도인도 죄를 짓고 병도 나며 자연 재해를 겪기도 하고, 악하고 불의한 행동에 희생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죽습니다. 바르지 못한 세상, 죄의 저주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에 사망을 이기셨지만, 사망은 아직 이 타락한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죄의 마지막 결과로 두셨습니다.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5-26)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화를 완성시키기 위해 죽음의 경험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 닮게 만드시는 수단으로 육체적인 죽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생활에서 고난과 고통을 사용하여 신자의 성화에 도움을 주시는 일은 일반적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고통과 고난은 하나님이 자녀들을 징계하시는 데서 비롯된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비록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鍊達)하는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 12:6-11)

징계는 우리의 잘못을 바로 잡는 역할과 우리를 강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징계는 우리의 성화의 한 수단입니다. 예수님도 죄는 없으셨지만 고난을 통하여 온전케 되셨습니다.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8)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히 2:10) 되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대속의 고난으로 온전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일생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힘은 점점 더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에서 위안거리만을 주시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화를 완성하시기 위해서 죽음을 통해 경험시키십니다. 그래서 신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순종하고, 신실한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죽음은 자연적인 것에 그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죽음으로 이루시는 우리의 성화의 한 단계인 것입니다.

 

Ⅱ.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면 자신의 죽음을 두려움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죽으셨습니다.(히 2:15) 따라서 신자가 죽은 후에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는 사실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쁨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 1:23)

신자라면 우리는 죽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더 분명하게 알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확실히 믿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한번 죽으면 그의 영혼은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지내기 때문에 죽은 신자를 위해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카톨릭 교회에서는 신자가 연옥에 가며, 연옥에서 벗어나려면 지상의 신자들이 기도하여 이룬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비성경적 견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에 우리가 느끼는 슬픔은 영원히 절망적인 슬픔이 아닙니다. 신자는 이 땅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말라고 말입니다.(살전 4:13) 물론 떠나보내면 슬픔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믿음의 선조들도 그의 가족이 이 땅을 떠나 이별하는 과정에서 모두 슬퍼했습니다. 신자의 죽음은 슬프지만 결코 영원히 절망스러운 슬픔은 아닙니다.

 

Ⅲ. 불신자가 죽었을 때

그리스도를 거부한 사람들은 죽을 때에 그 영혼이 즉시 영원한 형벌의 장소에 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그리스도가 재림 할 때까지 땅 속에 남아 있다가 그 때가 되면 마지막 심판의 날을 위해 영혼과 재결합할 것입니다.(마 25:31-46, 요 5:28-29) 하지만 사람이 한 번 죽으면 영원히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 16:24-26)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거부한 사람이 죽었을 때 느껴지는 슬픔은 소망 섞인 슬픔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끝까지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세상을 떠났는지 우리가 구별하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임종의 시기에 접어들어서 참된 구도자의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떤 상황을 함부로 판단하기란 참 곤란합니다. 그러나 불신자가 죽은 후에 천국에 갔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단지 그 불신자의 죽음을 두고 그 사람의 생전에 보였던 미덕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를 표현하는 편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의 죽음을 두고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왕하 1:19-25)

 

Ⅳ. 그리스도인은 언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 하는가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에 몸은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영혼은 하나님 곁으로 즉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롬8:23-24) 그 날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날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롬8:17) 이미 세상을 떠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은 구속의 적용에 있어서 마지막 순서일 것입니다. 그 날에 새롭고 완벽한 몸은 영혼과 재결합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런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 첫 사람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신자들도 그와 같이 부활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고전 15:22-23)

그 때에 신자들이 살아 있다면 그들은 불완전한 몸이 순식간에 완전한 몸으로 변할 것입니다.(고전 15:51-52)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는 구주께서 입으신 몸과 똑같은 새로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영화’라고 합니다. 우리 몸이 새로운 하늘의 영광을 덧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몸은 “썩지 아니할 것”(고전 15:52)입니다. 새 몸은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신 몸과 같이 우리가 이 땅에서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몸보다도 아름답고 매력적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이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조해 주신 모든 탁월한 특징을 다 가진 몸으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 몸은 영원토록 우주, 즉 하나님이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말씀하신 그 우주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지혜의 산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문. 그리스도인은 왜 죽습니까? 이 사실은 언젠가 닥칠 여러분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2문. 그리스도인은 죽을 때 몸과 영혼에 각각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 사실에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듭니까? 그렇게 느낀 이유는 무엇입니까?

3문.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인의 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여러분은 특별히 부활한 몸에 있어서 어떤 측면이 기대가 됩니까?

 

17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모든 시대, 모든 참된 신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참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교회란 그리스도가 구속하기 위하여 죽으신 모든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 전에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바라본 모든 사람을 포괄합니다. 모든 참 신자는 자신이 살았던 그 시대를 막론하고 참 교회를 구성합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을 예배 하려고 함께 모여야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그와 같은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Ⅰ.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교회

사람들의 마음과 영적인 상태를 꿰뚫어 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참 신자들의 교제로서의 실재(實在), 곧 참된 교회가 지닌 영적인 실재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이 보시는 교회입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이 보시는 교회인 반면에 “눈에 보이는 교회”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보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구분을 지을 때 참된 신자들처럼 보이는 이들의 영적인 지위를 지나치게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관대한 시선으로 신앙 고백이나 생활양식으로 볼 때 신자처럼 보이는 모든 사람을 보편적 교회의 일원으로 생각하여 교회라는 어머니의 품에 품어야 할 것입니다.

 

Ⅱ. 교회에 대한 다양한 묘사들

구약의 교회와 다르게 신약의 ‘교회’라는 말은 소규모 가정교회(롬 16:5, 고전 16:19), 도시 전체교회(고전 1:2, 살전 1;1), 한 지방 전체교회(행 9:31), 온 세상의 모든 교회(엡 5:25, 고전 12:28) 등 다양한 형태의 신자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는 어떤 규모든 교회라고 지칭해도 무방합니다. 또한 교회라고 지칭하는 다양한 묘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에 대한 다양한 묘사에서 일단 교회란 하나의 가족이며, 교회 구성원들은 대가족 식구들과 유사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인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라는 가족적인 용어로 표현도기도 합니다.(엡 5:32, 고후 11:2) 몸의 이미지로 교회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는 그 몸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입니다.(엡 1:22-23) 그러면서 몸의 각 지체들이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 밖에도 교회를 표현하기를 신령한 집(벧전 2:4-8), 거룩한 제사장(벧전 2:5), 포도나무와 가지(요 15:5), 감람나무(롬 11:17-24), 하나님의 밭(고전3:6-9) 등으로 비유합니다. 이런 다양한 비유는 어느 한 가지만 집중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교회의 비유에 걸맞게 하는 다른 교회의 기능들이 배제됨으로 균형을 잃게 됩니다.

 

Ⅲ. 무엇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가?

 

그러면 어떤 활동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듭니까? 전통적으로 많은 기독교 저술가들은 모든 교회가 참 교회로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보여주어야 할 두 가지 활동(또는 표지)이 있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첫째, 성경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입니다. 이러한 표지는 설교의 형식보다는 설교의 내용과 더 관계가 있습니다. 교회의 설교가 지속적으로 잘못된 교리를 담고 있거나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이라는 참된 복음의 메시지를 숨긴다면 그런 설교가 전해지는 교회는 참 교회가 아닙니다.

 

둘째, 참된 교회의 표지로는 성례(교회의 의식)가 있습니다. 두 가지의 성례, 곧 세례와 성찬식이 바르게 시행 되느냐에 있습니다. 바르게 시행 되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이 바르게 시행되는 것이 바른 교회의 표지가 되는 이유는 성례가 교회의 구성원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각 개인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수단이며, 성만찬에 참여하는 교회 구성원들이 교회 전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한 방편입니다.

참 교회는 신약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그 밖에도 두 가지 특징이 더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어느 정도 순수하고 화합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순수성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어느 정도나 일치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목표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엡 5:26-27) 그러므로 우리들은 교회의 일원으로서 능력껏 최선을 다해 모든 면에서 교회의 순수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아가 가능한 최선을 다해 화합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분열을 피해야 합니다. “다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참 교회가 다른 참 교회 및 단체(선교 단체)와 협력하여 연합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Ⅳ. 교회는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교회는 하나님과 교인들과 온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 바울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교회의 예배는 무엇을 준비하는 단계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 주요한 목적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곧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이 되기 위해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엡 1:12)

우선 교회는 교인들을 섬기는 일이 있는데, 교회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골 1:28) 세울 수 있도록 교인들을 양육하고, 세우는 일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교회의 재능이 있는 지도자들을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일은 말과 행실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복음은 말(전도, 퀘리그마)과 행실(자비한 마음으로 섬기는 일)로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사역에는 구제 사역이 있습니다. 복음전도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섬기는 일(갈 2:10, 약 1:27)도 포함해 말과 행실을 통해서 온갖 종류의 섬김에 참여해야 합니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세 가지 목적인 예배, 양육, 전도와 구제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어느 목적이 다른 목적보다 중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느 교회도 이 중에서 어느 하나만 중하다고 주된 목적을 삼고 다른 요소를 소홀하게 할 수 없습니다.

 

Ⅴ. 사명을 성취하기 위한 교회의 능력

그리스도는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요 14:26, 행1:8)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섬기는 일에 필수적인 은사(영적인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오늘날에도 교회를 섬기도록 은사들을 내려 주십니다. 영적인 은사에는 선천적인 능력에 속하는 은사들(각종 달란트 : 가르침, 구제, 행정 등등)과 그보다는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은사들(예언, 병 고침, 영분별)이 모두 여기에 포함됩니다. 바울은 선천적인 은사와 초자연적인 은사를 구별하지 않고 기록합니다.(롬 12:6-8, 고전 7:7, 12:8-10, 엡 4:11) 바울은 이런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초대교회 사역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사도들에게만 주신 것이라고 하지 않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사도시대에 초자연적인 은사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은사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때에 사라질 것입니다.(고전 13;8) 이와 같이 모든 은사들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다고 말합니다. 성령이 이와 같이 각각 은사들을 주신 것은 “교회를 세우기”(고전 14:26) 위해 사용하시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영적인 은사들은 교회가 부름 받은 사명을 위한 능력을 공급할 뿐 아니라, 세상에 장차 도래할 시대를 미리 맛보여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는 각 사람들의 죄 없는 삶(요일 3:2) 속에서만 아니라, 신자들의 영화롭게 된 몸(고전 9:53)을 통하여 충분히 알려지고 경험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문. 외부의 ‘성경공부 모임’이나 ‘수련회’등이 교회와 어떻게 다릅니까?

2문. 그리스도인은 왜 교회의 지체가 되어야 합니까? 지역 교회의 교인이 되지 않는 것은 어떤 위험성이 있습니까?

3문.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을 열거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교회에서 하는 일에 성령님이 능력 주시고, 축복하신 구체적인 예가 있다면 말해 보십시오.

 

Blog
About Us
Message
Site Map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Terms of UsePrivacy Notice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

Home
Gospel
Question
Blog
He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