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선택이란 무엇인가?
선택이란 하나님이 창세전에 어떤 사람들을 택하시되 하나님이 미리 아신 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한 뜻으로 그들을 택하신 일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교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선택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
신약성경의 여러 본문에서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들을 미리 정하셨다고 확증하는 것을 봅니다. 누가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여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고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훗날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2)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기에게로 부르시는 이유는 우리가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원 전의 계획과 값없는 은혜 때문입니다.
선택이 의미하는 것
신약성경 기자들이 선택 교리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위로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다음 두 절에서 그 이유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음(롬 8:29)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그들로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셨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롬 8:30) 또한 바울은 미래를 바라볼 때 하나님이 언젠가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완전하고 영화롭게 된 몸을 주시겠다고 이미 결정하셨다는 점에서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롬 8:30)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선을 염두에 두고 일하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우리의 선을 위해 일하실 것이라는 위로와 확신의 근거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 때문입니다.(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에 대한 우리의 자연스런 반응은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엡 1:12) 우리의 구원과 그에 따른 모든 선한 일을 궁극적으로 책임지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알고 하나님이 택하신 이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살전 1:2-4)
선택이 의미하지 않는 것
선택교리를 주장하는 것이 곧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신약성경은 구원의 모든 역사를 인격적인 피조물을 깊이 사랑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일로 표현합니다.(엡 1:5) 하나님의 선택에는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이들에 대한 인격적인 사랑이 스며 있습니다.(요 3;16, 롬:28) 더 나아가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부할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선택하는 인격적 피조물로 봅니다.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부름 받은 그들은 진정으로 이 초대를 듣고, 자기의 뜻에 따른 결정으로 이에 반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실제적인 결정은 영원한 결과를 가져옵니다.(요 3:18) 선택에 대한 바른 이해는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실제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선택이 우리의 선택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로마서 8장 29절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라고 말 할 때에 하나님은 이들의 구원과 관계된 맥락에서 이들을 “미리”아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알미니안>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각 개인의 믿음의 결정이나 행동을 미리 아신다.’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사실 성경은 결코 믿음을 하나님이 누군가를 택하신 원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이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비록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실제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선택이 우리의 선택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때가 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인격적인 존재를 입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선택하게 하신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아래 우리가 인격적으로 설복되어 자원하는 마음을 갖고 선택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원인이 되어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가?
‘선택의 교리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수백 번이나 ‘자발적인’ 또는 ‘자기 뜻에 따른’ 결정을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호소하거나 명령합니다. 우리의 자발적인 선택에 대한 성구들과 우리에게 반응하고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성경의 모든 계명을 살펴보십시오. 그래서 ‘인간의 선택’이라는 의미 속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의 부분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자기 성품에 부합되는 일을 하기로 선택하시는 모습을 그대로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하기로 선택하시는 모습을 그대로 본받아 선택할 성향을 갖게 된 것이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작정하심 속에 예정된 구원계획에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보전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청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면 우리는 진실로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께 반응하기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 하셨다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충분히 그 내면을 다 이해 하지는 못하지만 말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진리를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우리는 성경이 모든 면에서 이 사실에 대해 가르치는 대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원하는 선택’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부합해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능력의 말씀대로 만물을 붙드시고,(엡 1:11) 또한 우리의 자원하는 선택을 그 안에 보전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선택의 결과에 대한 복을 주기도 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그에 마땅한 책임을 묻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다.
선택 교리는 우리 자신이 행한 일이나, 앞으로 우리가 행할 일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바른 반응은 영원토록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또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바른 반응은 사랑과 겸손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주장할 만한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모든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선택교리를 그런 차원으로 봐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문. 여러분은 선택교리를 이해하면서 기쁘십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문. 하나님의 선택교리에 대하여 우리의 선택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3문.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대하여 말하고, 구원은총과 비교하여 생각합시다.
13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로마서 8장 30절에서 구원의 복이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순서를 제시합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앞 장에서 예정을 다루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측면을 다룰 것입니다.
Ⅰ. 효력 있는 부르심
로마서 8장 30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부르심이란 사람들이 때때로 어떤 직업을 선택하거나 어떤 교회의 등록 회원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를 설명할 때 말하는 그런 유의 ‘부르심’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부르심’이란 “미리 정하신” 이들, 의롭다 하신 이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이 부르심은 특별히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에게 임하는 부르심입니다.
복음의 부르심은 사람들의 복음전파를 통해 전달됩니다. 바울은 이 점을 데살로니가후서 2장 14절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 복음”, 즉 바울 및 다른 이들이 그들에게 전한 복음을 통해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효력 있는 부르심을 통해 사도행전 16장 14절에서 리디아에게 하신 일을 똑같이 행하실 것이라고 믿고 복음을 담대히 전파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모든 복음의 부르심이 다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가 할 일은 복음의 메시지를 설명하는 일이고, 그 메시지 즉 부르심을 효력 있게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Ⅱ. 복음의 부르심의 요소
모든 복음의 부르심에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세 가지 핵심적 요소가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사실의 설명, 개인적으로 회개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반응하라는 초대, 죄 용서와 영생의 약속이 그것입니다. 구원에 관한 사실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롬 3:23)는 것이며 둘째, 우리의 죗값은 사망이다(롬6:23)선언이며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죗값을 치르시기 위해 죽으셨다(롬 5:8)는 것입니다. 이어서 이 복음을 믿으라고 하는 초대가 있는 것입니다. 마 11장 28-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복음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용서의 은총을 주시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경험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요 3:16) 결국 주님께 오는 자는 결코 쫓아내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요 6:38)
Ⅲ. 거듭남, 부르심을 받아들임
사람이 복음에 반응하라는 초대를 받은 후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이 먼저 있어야만 합니다. 영적인 생명을 전해주시는 은밀한 역사는 때때로 거듭남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시는데 이 순간적인 사건은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이런 일이 한 번 일어나면 이 변화를 겪은 사람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처럼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런 변화는 곧바로 인식되지 않더라도 이 변화는 다시 변화된 성품으로 이어져 변화된 삶을 가져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새로운 사랑(마 22:37-40),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진심어린 순종(요 14:15), 바울이 성령의 열매라고 칭한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의 특성(갈 5:22-23)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Ⅳ. 회심, 부르심에 반응함
하나님이 효력 있는 부르심을 통해 부르시고 거듭남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킨 이후에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반응은 회개와 믿음입니다. 복음의 부르심은 개인적인 부르심이므로 개인적인 반응을 필요로 합니다. 복음의 부르심에 대한 이런 자발적이고 인격적이며 개인적인 반응을 일컬어 우리는 ‘회심’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참된 구원을 얻는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더 이상 예수님에 대해 단순히 사실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여러분을 구원해주셨음을 믿습니다. 성경은 이런 개인적인 신뢰를 설명하기 위해 강한 어조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신뢰하고 구분께 의지해야 합니다.
Ⅴ. 회개와 믿음
이러한 신뢰에는 회개와 믿음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관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죽은 행실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회개란 죄에서 돌이키겠다는 의식적인 결단을 뜻하며, 믿음이란 그리스도께 그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심으로 죄를 끊고 버리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께 믿음을 바치며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최초의 회개와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남은 평생 동안 회개와 믿음에 대한 지속적인 마음가짐의 본보기를 제시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골 2:6)는 말씀이 그런 맥락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문. 사람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됩니까?
2문.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 보시오. 진심으로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3문.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습니까?
14 ‘칭의’와 ‘양자됨’이란 무엇인가?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바울은 로마서 8장 30절에서 구원의 복이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순서를 제시합니다. 우리는 앞 장에서 부르심에 대하여 먼저 다루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측면, 즉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시는 ‘칭의’와 ‘양자 삼으심’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Ⅰ. ‘칭의’란? 하나님의 법정에서 선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사람이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할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그 사람의 것으로 여기심으로써 그 믿음에 화답하십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행동을 ‘칭의’라고 합니다. ‘칭의’는 즉각적이며 법적인 하나님의 선언으로서 믿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은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여기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도덕적으로 옳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러한 ‘칭의’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반응한 이후에 오며, ‘칭의’란 우리의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라고 바울은 밝힙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롬 3:26) 하신다고 말하며,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더 상세히 말하기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줄 안다”고 했습니다. 분명 ‘칭의’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야고보 2:21,24,25의 말씀은 하나님께 의롭다고 일컬음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롭게 보인다는 차원의 말씀입니다. 이미 믿음이 있는 사람의 외적인 증거를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2장 18-26절의 본문은 그런 문맥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Ⅱ. ‘칭의’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선언입니다.
‘칭의’는 하나님의 법정의 선언입니다. ‘칭의’는 하나님이 재판관으로서 한 개인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일입니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모두 용서하시며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롬8:1)이 없습니다. 33절에서도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은 아무도 정죄 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신 자들은 자신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은 것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이들의 죄가 용서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까닭은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그리스도의 것으로 여기시고, 그리스도는 이미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의 것으로 간주하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여기십니다. 우리가 바라는 열납의 자리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가 져야 할 죄과를 당신이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은 ‘칭의’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충분히 의로운 존재로 여기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Ⅲ.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롬 3:24)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또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칭의’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칭의’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칭의’는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신이나 우리의 선행으로 인하여 얻은 것이 아닙니다.
‘칭의’는 우리의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 공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믿음 때문이 아닙니다. ‘칭의’는 오로지 그리스도가 이루신 공로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공로가 될 수도 없습니다. 믿음 자체도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우리가 이룰 수 없고, 우리의 죄 값을 우리가 치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개신교는 ‘칭의’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우리의 공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에서는 말하기를 ‘칭의’는 믿음과 더불어 교회의 성사들을 사용함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성사: 견진, 미사, 성만찬, 고해성사) 성경은 우리가 믿는 순간 우리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롬 8:1) 결국 로마 카톨릭은 이 땅에서 우리가 완전히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고, 죽은 후 연옥에서 정결케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옥은 사실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은 자기들의 주장에 불과합니다.
Ⅳ. 양자 됨이란 하나님의 새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 삼으심은 ‘칭의’와 더불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특권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때에 “불순종의 아들들”이요, “진노의 아들들”에 속했던 것입니다. 이제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간주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그 많은 혜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노예의 영’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자녀의 영’으로 사는 존재들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모든 복의 상속자로 살아가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된 것입니다.(롬 8:15) 하나님의 양자가 된 우리가 자녀의 축복과 혜택의 일부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런 축복들을 충만하게 경험하지는 못하지만,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됨의 충만한 축복을 누리게 될 날을 기다립니다.(롬 8:23) 그동안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에는 많은 축복과 더불어 고난도 따를 것입니다.(롬 8:17) 이런 고난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바울은 확언합니다.(롬 8:18) 이 땅에서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하시고 양자 삼으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문. 의로다 함을 받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2문.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의롭다함을 받습니까? 여러분은 한 번에 영원히 완전히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습니까?
3문.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가족이 된 기분이 어떻습니까? 왜 그런 기분을 느낍니까? 양자됨에서 비롯된 구체적인 축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