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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빈 무대] -송민선성도님의 글
동영상 속에 한 아기가 표정으로 말을 한다. 중간중간 손으로 지시를 하며 소리를 낸다. "어~어~어~..." 신기한 일은 아기를 화면으로 관찰하고 있는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아기의 보호자는 용하게도 척척 아기가 원하는 것을 준다. 보호자와 아기 사이에 무엇이 있기에 이들은 서로 통하고 있는 것일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랑, 무엇을 주어도 그것이 자기가 원한 것이라고 무조건 받을 수 있는 사랑, 개떡같이 말했는데 자신조차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데 화답이 찰떡같이 오는 사랑, 무엇을 주었고 무엇을 받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왔는지 근원만 중요한 이 특이한 사랑 안에서 이해 못 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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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Dear Brother in the Lord 주 안의 형제
title : The Dear Brother in the Lord 주 안의 형제preacher : pastor Lee Geunhotext : Ephesians 5:22~24date : 2020/02/1621.Tychicus, the dear brother and faithful servant in the Lord, will tell you everything, so that you also may know how I am and what I am doing. 22.I am sending him to you for this very purpose, that you may know how we are, and that 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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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와 가치
용서와 가치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자기 가치를 계속 지속시키기 위함이다. 용서 후에는 자기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구태여 용서받을 이유가 없다고 여기게 마련이다. 어떤 이가 아내에게 잘못한 일이 있어 용서를 구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이 남자가 노리는 바는 용서 후에 현재 자신의 가치가 여전하기를 원하는 바이다. 만약에 용서는 받았지만 교도소에서 제 처벌을 다 받게 되고 사회적으로 매장이 되어버렸다면 이는 용서를 구태여 구한 효력이 없는 셈이 된다. 용서 후에도 당해야 할 것을 다 당했다면 용서의 실익이 없다고 보게 된다. 그래도 아내의 용서를 꼭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럴 이유가 있을까? 참되게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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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st for Replacement 교체를 위한 배역
title : Cast for Replacement 교체를 위한 배역 preacher : pastor Lee Geunhotext : Colossians 1: 3-5 date : November 15, 2020 3.We always thank God,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en we pray for you, 4.because we have heard of your faith in Christ Jesus and of the love you have for all the saints-- 5.the faith and love that spring from the hope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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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piritual War 영적 전쟁
title : The Spiritual War 영적 전쟁 preacher : pastor Lee Geunhotext : Ephesians 6:12 date : 2020/01/26 12.For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authorities, against the powers of this dark world and against the spiritual forces of evil in the heavenly realms.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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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의 능력]-송민선 성도님의 글
신앙생활은 평안 속에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찬 환상적인 삶이 아니다. 오히려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같이 심령으로 평온한 것은 이제 어떤 전쟁같은 순간도 ‘괜찮아요’를 연발할 준비가 된 상태이다. 겉과 속이 다른 가식이나 위선이라고 한들 이미 속에서 올라오는 모든 것이 내가 아니요, 겉으로 의연하게 표현되는 것 또한 내 의도가 아닌 것이 되니 어떤 상황을 단속하되 단속되지 않고 통제해보려 하지만 통제되지 않는 더이상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 삶이다.매 순간 이미 심판 속에 있고 심판을 삼키고 있는 자인 것을 잊지 않도록 닭 우는 소리를 수시로 보내어 주님의 품인 십자가로 달려가게 하시지 않고 예수님도 잃어버리고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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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제발!
교회는 장난치는 곳이요 기발한 농담들이 인기를 얻는 곳이요 노닥거리는 곳이요 잘난 척들 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합니다. 교회 다닌다고, 교회 세운다고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란 그냥 목사들이 어른 짓하는 곳이요 스승짓 하는 곳이요 그러면서도 그 대가로 생계비 조달하는 곳입니다. 선교라는 것도 장난이요 찬양도 장난입니다. 모든 교인들은 거룩한 티 내면서 시간 떼우다가 집회 시간 끝나면 얼른 제일 중요한 '자기 것'이 기다리는 곳으로 얼른 사라지는 임시직인 모임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요 그 말씀 속에서 복음만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외쳐지는 곳은 사람을 죽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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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 생산성
현대사회란 정으로 엮어져 있는 사회가 아니라 '생산성'으로 엮여져 있다. 농부가 농장을 경영해도 팔릴 만한 상품성 있는 작물을 내어놓아야 한다. 사과를 경작해도 실하고 크고 단 사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농부일을 접어야 한다. 농사일이 자연을 벗삼아 세월 보내는 식으로 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농협에서 융자받은 농자금 이자나 원금을 갚아 나가면서도 자신의 최소한 노동의 대가를 농생산물을 통해서 뽑아내야 한다. 일반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생산성을 배가 하기 위해 직원들을 가만 놀리지 않고 계속 닦달낸다. 생산성을 뽑아내지 못하는 직원은 더이상 갈 곳이 없다. 요구하는 생산성에 능력이 딸리면 퇴출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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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당신은 뉘십니까?
[2016.2.14 성경모임 / 히브리서 2장]하나님을 봤습니까? 예수님을 만나 보았습니까? 아니면 천사나 마귀가 있나요? 성경에 등장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불확실한 것들 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성경을 읽고 생각한다는 것은 뭔가 수상한 의도가 깔려 있는 행동입니다. 확실하지 않은 것들에 관한 읽기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왜 모였을까요? 성경은 불확실한 내용으로 가득하지만, 인간에게는 확실한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죽음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습니다. 너무나 확실합니다. 두 번째 확실한 사실은 살아있는 동안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너무나 확실합니다.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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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만장과 근신
기고만장과 근신 한(恨) 맺힘. 인간의 욕구는 분출하면서 먹잇감을 구하게 된다. 마치 수렵시절의 사냥꾼처럼 제대로 먹잇감을 찾지 못하면 한으로 되돌아온다. 수증기가 찬바람 쐬면 대롱대롱 물방울로 영글듯이 인간 마음 내부에 한이 서린다. 한(恨) 없는 인간은 없다. 무엇인가에 대한 원한은 반드시 있다. 인간들의 만남이란 서로의 한과 서로의 한의 만남이요 다툼이다. 이 한(恨)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그것은 절대적인 자아상이다. 나만은 절대적인 존재로 탈바꿈하고 싶은 것이다. 전지전능의 맛을 보고 싶은 것이다. 신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을 들여다본다. 맺힌 한(恨)이 성경 내용을 통해서 풀어보려고 한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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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조커] 평
영화 [조커]를 보고 나서 줄거리에 대해서 따로 쓸 게 없다. 배트맨 이야기를 먼저 깔고 언급해야하기에 줄거리를 나열하면서 배경까지 곁들이게 되면 장황해진다. 가상의 도시이면서 미국 뉴욕시를 연상하는 고담 시에서 정의로운 웨인 가문 출신의 배트맨과 철저하고 치열하게 대결하게 되는 악한 조커의 등장에 관한 영화다.악당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진 자’들이 계속해서 홀로 재력과 권력을 갖겠다고 설치대는 욕심의 부산물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재물과 권력이 몰리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부산물로 지옥이 발생되고, 이번에는 지옥의 고통에 철저하게 맛보고 있는 쪽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의 폭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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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려주세요
하나님의 구원은, 구원받을 자의 입에서 "살려주세요. 주님이여"라는 소리가 나오는 조치와 더불어 진행된다. 출애굽 이전에 애굽에 살던 히브리인들에게 이런 외침이 있었고, 예수님 당시, 문둥병자나 십자가 같이 달렸던 강도도 "살려달라"고 예수님에게 하소연했다.이처럼 구원이 되려면, '왜 나는 스스로의 가치로 구원되지 못할 존재인가'를 먼저 인식하는 자이다. 구원받기 싫다는 자에게 구원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구원이란 건짐인데, 지금 이 상태로 사는 것도 괜찮은 인생이라고 여기는 자에게 구원이란 쓸데없는 소리에 불과하고 따라서 구원자라고 소문난 예수도 자기에게는 별로다. 따라서 구원이 끊어진 자는 간단하다. 지금 예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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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 멜기세덱은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이라…
안녕하십니까감리교서 교회 사모님과 인물별 성경공부를 했습니다만, 그래서 알게 된게 멜기세덱도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하는데요 다시 묵상해보면 멜기세덱의 어떤 면이 그리스도의 모형인지 감이 잘 안옵니다.어디를 보고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하는지요알려주옵소서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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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 뿐이고] -송민선 성도님의 글
설거지를 하는데 딸이 언제 왔는지 뒤에서 살며시 안아준다. “엄마는 내가 언제 제일 예뻐?...” 그때 어디선가 들었던 말씀 한 대목이 휙 지나간다. ‘초식동물 뒤에 사자가 올라타서 목적한 것을 뽑아낼 때까지 끝까지 달라붙는다...’ 그러나 딸은 나에게서 원하는 것을 뽑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포장지 안에 잘 감춰둔 본색인 돈, 인정, 그리고 희망. 희생을 품은 초식동물은 그 자리에 없고 서로에게 이질적인 요소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저 자신을 위한 사명감에 투철한 짐승 두 마리가 덩그러니 있었다. 패배감에 몸서리치며 자기 굴속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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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서 몰고 오신 현실
요한복음 17장은 마치 산 정상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들이 관계라는 용어 속에 충만하게 자리잡고 있어 17장에서 왼쪽을 보면 16장 이전 말씀들의 깊은 뜻이 모두 다 보이는 듯 하고, 오른쪽을 보면 18장부터 시작되는 체포, 재판, 십자가 사건, 부활 사건 등이 숨가쁘게 전개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마치 산 정상에서 굽이쳐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는 듯이 보입니다. 17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라는 분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사실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제자와 제자들로부터 복음을 듣게 되는 자 속에서 동일하게 투영되는 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결국 하나됨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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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지는 즐거움
무너지는 즐거움 사람이 세운 것은 무너질 요소를 함유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 무너지면서 인간은 자신을 만끽한다. 모래에서부터 시작한 인생이였던 것이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무너짐의 시기다. 종말이 닥치면 누구나 무너지게 된다. 언제부터가 종말일까? 예수님이 등장하시면서 사람이 세운 문명과 교체가 된다. 예수님이 제시한 나라는 인류의 문명과 공존되지 아니한다. 영생을 얻고자 나온 부자 청년은 재산 버림을 영생으로부터 요구받았다.(마 19:21) ‘돈’은 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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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움과 평안-이선덕 성도님의 글
의미도 모른채 세상살이 힘들때마다 주문마냥 읊어가며 좋아했던 성경말씀이 있었습니다(마:11:28-30)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근데 웬걸~ 난데없는 사태가 벌어지니자신이 얼마나 이 말씀을 거부하고 무의식적으로 싫어했었던 자인가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구실도 모른채 원인도 모른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그 현장왜 두려워 하고 있었는지~ 알수가 없었던 그때 그순간이 생생하게 생각납니다 주일오전 설교자님의 성경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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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4.24 모임) 안식, 믿음, 순종 그리고 십자가
[2016.4.24. 성경모임-히 4장] 안식, 믿음, 순종 그리고 십자가 히브리서 4장에서 유독 눈에 자주 띄는 단어는 ‘안식(쉼)’입니다. 안식에 관한 성경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인간에게 안식은 내가 주도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숨을 쉬다, 휴식하다는 뜻을 가진 한자 식(息)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息은 스스로 자(自)와 마음 심(心)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스스로 自가 사람의 코를 본떠 만든 상형 글자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자기 마음이 곧 쉼이라는 조합은 인간의 상태를 잘 보여줍니다.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주도할 때 쉼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인간이 가장 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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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탄의 정체-이미아 성도님의 글
살면 살수록 복음은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은 믿을 것이 못 됐었구나!’라는 고백이 나올 뿐이다. 이 고백은, 그럼 그동안 복음을 내가 믿을 수 있었다고 착각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으로 인한 만남은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내고, 그 인식은 옳고 그름을 가려내야만 하는 기로에 서게 한다. 그 선택은 늘 자기정당성, 자기변명, 자기합리화, 자기존재증명, 자기안정성을 최우선의 목표로 세운다. 그것은 곧, 뭘 해도 선악과 따먹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죄인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성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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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겨울수련회 소감문]-오용익 목사님의 글
2024년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소감문 - 십자가 배양기인간이 성경해독 못 한다. ‘시간 너머 시간’ 속 정보(무한)가 ‘시간 안에 가두어진 존재’(유한)들에게 허락된 적 없다. 공주가 되고 싶던 아이는 요정으로 소원을 바꿔서 주문을 외워 보지만 언어 돌려막기로는 자기 달램의 부채를 해결 못 한다.“언어적 논리는 비-논리적인 무의식적 결정의 그물에 사로잡혀 있다. 인간의 이성은 우발적인 사건과 늘 일치되지 못하고 빗나간다.---인간은 항상 자신에 대해 오류된 뜻으로 이해한다.”(교재 2쪽) 의식의 시작인지, 의식과 함께인지, 의식 자체인지, 물음만 있고 답은 알 수 없는 ‘나’들의 움직임의 총화(역사)가 기껏 환상에 그

-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