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개 장로교단의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중심으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3.3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복음이 조선에 전래된 지 약 30년이 지난 1918년에 창간된 ‘신학지남’의 초기 집필진은 주로 선교사들이었다(곽안련, 나부열, 어도만, 소열도 등). 1928년 조선인 남궁혁박사가 편집인이 된 후 신학지남은 발전기에 돌입했다. 해방 전 신약 관련 글의 특징은 성경 강해와 관련된 글과 공관복음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해방 후에는 신약신학과 관련하여, 언어학이나 해석학과 관련된 논문이 자주 등장했다. 그 무렵 박윤선은 ‘신학지남’을 통해서 논문발표보다는 주로 성경 주석에 몰두했던 것 같다.

   

총신 신약학의 본격적인 발전기는 1984년 박영희, 1988년 권성수, 1989년 김세윤, 이한수, 정훈택이 교수로 임용될 때 부터였다. 정훈택은 신학지남의 (신약관련) 글들이 성경의 영감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비평도 (현재까지) 허용하지 않았고, 공관복음과 바울신학 연구에 있어서 방법론이 후퇴했고, 전근대적인 해석 방법과 주제에 몰두했다고 다소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신학지남에서 가장 각광을 받으며,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다루어진 신학사상은 ‘칼빈주의’인데, 1970년부터 ‘개혁주의’라는 용어로 바뀌었다. 참고로 1960년에 에큐메니칼적 성격을 지닌 통합과의 분리(1959년) 직후 ‘보수주의’라는 표현이 신학지남에 종종 나타났다.

   

20세기 신학지남에 실린 논문의 계량서지적 분석에 의하면, 구약의 신학적 주제로 ‘모형론, 언약, 예언의 성취’와 같은 구속사적 표현이 자주 등장했고, 신약의 경우 ‘설교, 강해, 바울’이 자주 등장하지만 기독론과 종말론 등에 관한 연구는 미비했다.

   

김정우에 의하면, 전승사 비평이 성경에 나타난 사건의 역사성에 대한 회의와 확인 불가능한 구전과 자료들에 대한 신뢰에 기초해 있다면, 구속사적 해석에 있어서 정경은 초기 단계와 성장 단계에 있어서도 최종적인 문학적 맥락에서와 마찬가지로 정확하고, 권위가 있으며 영감되었다. 따라서 그는 원저자의 의도가 정경 형성 과정에서 손상되지 않고, 명확해 졌다고 본다. 김인환은 출애굽기에 반영된 창조 주제를 연구하여, 구원 사건인 출애굽을 이스라엘의 재창조로 본다.

   

차영배는 “구속사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사를 이름인데, 성경은 단순한 말씀이나 추상적 진리를 담은 것이 아니고, 창조라는 큰 역사적 사건을 시발점으로 하여 재창조의 완성에 이르기 까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神)의 일련의 행동사를 기록했다”고 설명한다. 성경은 항상 구속사의 진행의 빛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하는데, 구약부터 전개된 계시의 절정은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다. 한편 김인환은 구속사에 나타난 ‘저주’의 역할에도 주목하면서, 그것은 우상숭배 같은 죄악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다른 일면임을 지적한다.

   

신약 복음서의 구속사적 해석에 있어서 유상섭의 공헌은 간과될 수 없다. 그는 주기도문을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주석하여, 이 땅에 재창조의 구원 사역을 감당하기 오신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이며 동시에 새 이스라엘이신데, 주기도문은 주님에게 속한 신자의 기도와 삶을 긴밀하게 연결시킨다고 본다. 그리고 주기도문은 광야 이스라엘의 사명과 삶과도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 만물 지배권을 수여 받은 아담의 사명과도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결국 주기도문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과 참 이스라엘이라는 구원 계시사적 해석을 통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상섭은 신약의 구약 인용을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속사로 이해하기 위해서, MT, LXX, 신약 헬라어 본문을 세밀하게 비교했다. 덧붙여 유상섭은 공관복음서의 신학적 통일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독특성과 강조점을 문법-역사적 해석 및 구속사적 주석을 통해서 밝힌 공헌이 있다.

   

신약의 구속사적 해석 가운데 바울 신학과 관련하여, 신성종은 예수님과 바울 사이의 사상적 연속성을 강조했다: “십자가는 바울신학의 중심으로써 어떤 면에서 볼 때에 바울신학은 기독론이요, 따라서 기독론의 중심인 십자가는 바울 신학의 중심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이한수는 ‘바울의 새 관점’과 전통적 해석을 모두 비판한다. 이한수는 김세윤, 김경식 등을 언급하면서, AD 1세기 유대교가 행위구원 종교였다는 전통적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전통적인 주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유대교의 스펙트럼이 넓다고 본다: “전통적 유대교 연구는 율법이 신분 규정의 표준으로서 지닌 이러한 측면들을 소홀히 하고, 오로지 삶의 방편으로만 접근했던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잘못된 접근으로 인해 유대교는 행위로 구원을 확보하려는 ‘행위구원의 종교’ 또는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어내려는 공적주의의 행위의(行爲議) 종교로 간주 될 수밖에 없었다.” 이한수는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율이 나란히 작용하는 ‘신인협력적 신율주의’(synergistic nomism)라고 보는 절충적 입장에 동의하는 것 같다. 동시에 이한수는 유대교가 은혜 종교임을 언급하는 제 2성전 시대 유대문헌들을 중요시하여 논리를 편 새 관점주의자들의 주장에도 문제점이 있음을 제기한다: “바울 당대의 유대인들은 모세 언약을 아브라함 언약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 간주하였기에, 아브라함의 언약에 속한 모든 복은 당연히 모세 언약에 속한 자들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유대인들은 할례와 율법 없는 바울 복음을 유대인들의 우월한 자의식과 유대교의 중심적 정체성을 공격하는 이단적 주장으로 여기고 그의 복음과 사역을 핍박하게 되었다.” 이한수에 의하면, 이에 맞서 바울은 아브라함 언약이 지닌 보편성과 그 보편성을 인종을 초월하여 적용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제시하여 변증했다(롬 4:14): “로마서 4:13-25의 경우, 바울의 “유대인 논적들이 비평받을 점이 있다면, 그들이 율법을 행위구원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이 죄인들에게 진노를 이룰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특권적 신분의 발판으로 삼았으며, 또한 율법을 통해서 아브라함 언약의 복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이 막혀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 언약의 구성원이 되면 자동적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의 상속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오해한 때문이다.”

   

합동의 구속사적 신학은 성경의 유기적 영감과 통일성에 기초하여, 헤르만 리덜보스, 게할더스 보스, 리차드 개핀 Jr.과 같은 화란 및 구 프린스턴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사비평에 개방적인 기장이나 조심스럽게 수용하려는 통합과 달리, 합동은 역사비평을 성경의 영감성과 일치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 거부하며, 대신에 문법(문예)적-역사적-정경적 해석을 고수한다. 하지만 특정 주제(예. 자살)를 교의학이 아닌 성경신학적으로 다루려고 시도한 공헌을 빠뜨릴 수 없는 이한수를 제외하면, 유대문헌에 대한 연구가 통합에 비해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구속사와 관련하여, 종말론에 있어서 기존의 전천년설과 다른 입장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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