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 장로교단의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중심으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1 들어가면서

이 글의 목적은 장로교 총회가 조직된 지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2년에, 대표적인 4개 장로교단(기장, 통합, 합동, 고신)의 성경 해석을 회고하되, 구속사적 해석에 초점을 두어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로교의 바람직한 성경해석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글의 방법은 4개 장로 교단의 신학교 저널에 실린 글 중에서 구속사적 해석과 관련된 논문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서 “구속사와 역사비평의 조화를 꾀한 것이 기장과 통합의 흐름이라면, 합동과 고신은 역사비평을 배제한 구속사적 해석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2 구속사적 성경 해석의 정의 및 특징

구속사적(특별계시역사적) 성경해석의 정의를 위해서, ‘성경신학의 아버지’ 게할더스 보스(G. Vos)가 내린 고전적인 정의는 여전히 적실하다: “주경신학의 한 분과로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과정을 다루는 작업이다.” 보스는 성경신학적 해석의 4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계시 과정의 역사적 점진성, (2) 역사 안에서의 계시의 실제적인 구체화, (3) 계시 안에서 관찰 가능한 역사적 과정의 유기적 성격, (4) 성도의 삶에 적용되는 실제성. 이 성경 해석법은 판 더 발(C. Van der Waal), 헬베르그(J.L. Helberg), 시드니 그레이다누스(S. Greidanus), 그레엄 골즈워디(G. Goldsworthy), 그레고리 비일(G.K. Beale), 데니스 존슨(D.E. Johnson), 마이클 윌리엄스(Michael Williams) 등에 의해서 계승, 발전되고 있다.

   

이제 보스가 내린 구속사의 정의와 특징들을 염두에 둔 채, 4개 장로교단의 학술지에 실린 관련 논문들을 분석해 보자. 본 연구에서는, 위에서 밝힌 보스의 성경신학적 정의와 4가지 특징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고 반영된 학술지의 글들로 제한한다. 필요한 경우, 구속사와 연관된 성경해석 방법론에 관한 논의도 포함된다.

   

학술지의 논문 이외의 구속사와 관련된 저술은 본 연구에서 제외되므로, 전체적이고 철저한 분석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논문이 아닌 단행본에서 학자들의 구속사적 해석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동일 저자의 논문과 단행본의 비교는 또 다른 논문을 필요로 한다.

3 구속사적 성경해석의 회고와 평가: 4개 장로교단 신학교의 학술지를 중심으로

3.1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 ‘신학연구’

1939년 3월, 한국인에 의한 신학운동의 자립과 신학의 세계수준 도달을 목적으로 조선신학원이 설립되었으며, 1946년에 장로회총회 직영신학교가 되었다. 학술지 ‘신학연구’는 1955년 8월에 창간된 ‘한국신학대학 학보’의 후신이며, 1960년 7월부터 그렇게 명명되었다. 필자는 한신대 교수의 의견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즉 전체가 아니라 학자 개별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기장의 구속사적 성경해석에 나름대로 처음으로 기여한 이는 전경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오직 김재준박사와 한국신학대학이 전통적 칼빈적 신학을 계승하면서도 비평적 연구방법을 용납하였다. 이것은 한국의 기독교사의 큰 사건이며 한국의 신학이 세계적 조류에 끼어들어 건전한 발전을 하게 된 기연(機緣)이 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과학적으로 훈련 받은 현대인에게 선교할 방도로 역사비평에 기초를 둔 칼빈적 신학(구속사적 해석?)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전경연은 정통신학은 독단에 빠져 성경의 인간적 차원을 고려하지 못한 채,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주장함으로써 과학적인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전경연은 개혁교회의 신학이 성서해석학에 끼칠 공헌은 성경의 인간적 측면을 고려하여 언어적, 시대사적, 여러 학문적 연구를 동원하려는 인간적 노력과 함께, 이런 노력이 자신에게 최후적 가치와 정통성을 돌리지 않고 성령에게 그것을 미루는 태도를 학문적으로 확립하는 길이라고 본다.

   

전경연은 구속사적 성경해석에서 의미 있는 자리매김을 하는 ‘모형론’이 성서의 논리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는데 동의한다: “구속사에 일어난 일로서 전에 있었던 일이 후에 일어난 일과 동일함을 지적하여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일관성 또 구원의 사실로서의 확실성을 논증하는 방도가 동형론(typology)이다.” 그가 모형론을 지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성서는 과연 선민과의 계약이란 기본적 관계로 엮어지는 구속사이며 그리스도가 그 역사의 통일 원리이며 중심이란 이해에 도달한다면, 하나님의 활동 때문에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의 서로의 관련과 의미를 예표와 완성의 관계에서 찾는 것의 정당성을 볼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모형론적 해석에서 역사비평이나 종교사연구도 의미를 얻는다고 주장한다.

   

전경연의 위의 주장은 비평이 필요하다. 성경에 나타난 사건의 역사성과 초역사성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역사비평과 성경에 영감을 주신 성령의 사역이 실제로 조화되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성경의 유기적 통일성을 강조하는 모형론과 역사비평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성경의 역사적이며 인간적 측면을 합리적으로 밝히려는 역사비평으로 성경을 제대로 해석 할 수 있다면, 성경을 그런 전문적인 방법에 무지한 일반성도로부터 단절시키는 역효과가 발생하고 말 것이다.

   

문익환은 오경의 문서설(J, E, D, P)을 수용하면서 구약을 ‘구속’으로만 보지 말고, ‘새 창조’ 즉 창조의 회복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그는 구약을 ‘창조’에서 출발하여 ‘구속’을 거쳐 ‘재창조’로 전개되는 내러티브로 이해한다. 문익환은 구속의 역사는 창조의 회복이며, 성경이 천지의 창조에서 시작되어 신천신지의 창조로 끝나는 것은 성경의 구조뿐 아니라, 내용이라는 면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문익환의 주장처럼 문서설에 근거한 재창조의 구속사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환언하면, 창조-구속-재창조라는 성경의 구속사적 해석의 결론은 정당하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도록 인도하는 방법론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비교적 최근에 오영석은 그리스도의 삼중직론 중에서 예언자직과 제사장직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그는 구약의 예언자직과 제사장직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속사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방법론에서 ‘제 2이사야서의 전승사적 맥락’이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전승사를 사용했고, 적용에서는 ‘사회적 악을 고발하고 추방하는 운동’, ‘민중 해방’, ‘민족 분단과 갈등의 치유’ 등을 강조함으로써 민중신학적 뉘앙스가 강하게 묻어나는 어조로 마무리했다.

   

오래 전에 로마서 1장 주석을 통해서 강한표는 구속사적 해석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다루지만, 그분의 노(怒)도 다룬다고 정확히 간파한바 있다. 그에 의하면, ‘구원’(swthri,a)은 단순한 구출(救出)이라는 의미, 즉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의가 지금 이미 상실된 세계 위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노에서 그들을 보호한다는 소극적 의미 뿐 아니라, 동시에 ‘구원’(Heil)이라는 적극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구속사적 해석은 심판 혹은 하나님의 노(怒)도 다룬다. 이 구원하는 하나님의 의의 계시가 구속사의 ‘현재’에 실현되는 종말론적 사건이기 때문에, 이 동일한 순간에 인간의 모든 불의에 대하여는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노가 계시된다.

   

기장의 성경해석은 한편으로는 역사비평을 적극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속사적 해석을 시도하는 일종의 부조화가 느껴진다. 더구나 이런 구속사적 연구는 본격적으로 민중신학이 발현되기 이전인 1950-60년대에 국한되는 듯하다.

3.2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장신논단’

장신대 신학노선은 ‘좌도 우도 아닌 중도보수’, ‘색깔이 분명치 않은 신학’, ‘회색신학교’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이종성과 김이태는 장신의 노선을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 혹은 ‘복음전통의 중심에 선 (개혁)신학’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85년 ‘장로회신학대학 신학성명’은 복음적, 성경적, 개혁주의적, 에큐메니칼적, 대화적, 세계적, 선교적, 사회참여적 신학으로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신학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장신의 성경 해석의 특징 중 하나는 ‘역사비평’의 수용 정도를 두고 고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64년 호주 장로교 선교사 변조은(John P. Brown)이 성서비평학을 조심스럽게 장신대에 소개했으며, 1966년 미국 장로교 선교사 김기수(Keith R. Crim)는 요나서의 상징적(비역사적) 해석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적 있었다. 1972년 이래 문희석도 이 입장을 이어 받아 교수했다. 1980년대에 들어, 성종현은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와 상황을 초월한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매 시대와 역사와 상황 속의 인간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와 상황과 인간에 맞는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역사비평의 종말을 선언한 마이어(G. Maier)를 극단적, 근본주의적 성경해석자로 분류하여 비판하지만, 신구약 성경을 하나의 전승사적 통일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슈툴마허(P. Stuhlmacher)와 게제(H. Gese)는 중도적, 긍정적 역사비평학자로 높이 평가한다. 성종현은 신중하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역사비평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런 입장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말이라는 측면을 가진 것에 주목한 박수암에게서도 볼 수 있다: “성서 자체가 역사적인 사건에서 행하여진 것의 소산이기 때문에, 계시가 일어났던 그 역사적 사건을 가능한 한도 내에서 재구성하는 데에는 비평적이면서 역사적인 연구가 필요하게 된다.” 박수암은 역사비평은 성경해석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성령의 역사를 배제한 순수한 이성적 작업으로 빠질 우려가 있기에, 적절하고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재준이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신학을 ‘극단적인 정통주의’ 혹은 ‘근본주의’라 부른 것을 거부하는 김중은의 입장도 위의 고민과 맥을 같이 한다: “성경 문자의 우상화를 방지하고 가현설적 이해를 경계하기 위해서 성경의 역사적 성격과 그 형성사를 이해하는 것은 당연하나, 성경의 저자가 인간이기 때문에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며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김지철도 “우리의 성서연구는 지상적 예수에게 이르는 전승사적 연구와 성서 본문이 지닌 양식사적 비판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의 신앙을 밝히는 편집사적 연구가 동시에 추구되어야 한다”라고 밝힌바 있다. 그는 역사비평에 호의적 입장을 보이는 동시에, “우리의 신학은 개혁신앙의 본질인 성서로 돌아가며, 구약과 신약의 기본적인 관계인 예언과 성취의 구속사적 구조를 염두에 두고, 그 맥락에 대한 올바른 해석에 개방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창선도 “성서를 대하는 사람은, 성서의 역사 가운데는 역사적/종교사적인 방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이며 신적인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역사비평과 신학적 해석의 통합을 강조한다. 장신의 성경해석의 유연성 혹은 통전성은 “포스트모던에는 포스트모던에 대응하는 성경관과 성경해석으로 대응 하여야 할 것이다”는 강사문의 최근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장신 교수들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J, E, D, P', ‘신화화된 전승’, ‘율법 전승’, ‘신명기적 역사가의 자료’, ‘제 1, 2, 3 이사야’, 'Q', ‘예수 전승’, ‘바울 학파’, ‘제 2 바울 서신’, ‘바울 이전 초대교회 신앙전승문’과 같은 가설적인 자료와 개념을 수용한다.

   

일부 장신 교수들은 보스(Vos)의 정의에 부합되는 구속사적 해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강사문은 MT, LXX, 신약 본문을 비교하여 신약의 구약 사용을 연구하면서, 신약 저자들이 구원사적, 모형론적, 기독론적, 권위 있는 영적 해석을 시도했다고 보면서, 신구약의 이해가 기독론적 관점에서 해석되는 것은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장영일은 출애굽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는 부활신학을 모든 구약 신학들(창조신학, 구속신학, 계약신학 등)의 종합이요 절정이며 최후 종착점으로 본다. 구약 부활의 성취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염두에 두면서 장영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부활신학에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마지막 목표를 확인했으며, 부활신학은 메시아 사상과 더불어 구약성경이 도달한 최후의 목표였다고 주장한다.

   

김지철은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메시아적 구원행위(치유, 선포, 축귀 등)를 하신 예수님이 창조신학과 구속신학을 연결한다고 본다: “창조신학은 자연에 대한 고찰이나 관찰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발견된다기보다는,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인간을 사랑하고 자유케 하고 구원하시려는 계시의 빛 아래서 비로소 인간은 자연만물을 바르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창조신학은 예수에게서 자연스럽게 구속신학과 연결된다.” 성종현에 의하면, 종말 메시아적 인자이신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종말론적 예언을 성취하여, 천국 즉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새 통치를 이 땅에 가지고 오셨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통합의 경우 성경해석에서 역사비평의 수용 정도에 관한 해석학적 혹은 방법론적 논의는 비교적 활발했지만, 구속사적 해석 자체에 대한 연구는 활발한 편이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50-60년대의 기장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이후 통합의 경우 역사비평을 조심스럽게 수용하면서 동시에 구속사적 해석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일으키게 한다. 장신논단에 이런 의문을 시원하게 해소할만한 글은 많아 보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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