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 장로교단의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중심으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3.4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고신대 신학과 중심의 저널인 ‘고신신학’(전신은 ‘고려신학보’)에 실린 글을 먼저 살펴보자. 구약의 구속사적 해석과 관련하여, 신득일은 해석자가 고안한 신학적 전제가 아니라 성경 자체가 요구하는 전제인 점진적으로 펼쳐지는 ‘구속사’를 구약의 가장 포괄적인 중심주제로 제시한다. 신득일은 구약 안에서의 구속사의 발전에 주목한다. 그는 여리고성의 재건 시에 임할 저주 예언(수 6:26)이 아합 왕 때에(왕상 16:34)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구속사적으로 다룬다. 이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신득일은 아합을 그리스도 왕국을 대적하는 자로 해석함으로써, 구약 본문을 세밀하게 기독론적으로 주석하는 대신에 적용 부분을 기독론적으로 마무리한다. 이런 특징은 그의 아모서 주석에서도 나타나는데, 열국에 대한 심판은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이며, 새 언약 시대에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1985년 이후 20여 년간 고신대학교 신약학에서 구속사적 해석을 주도한 이는 황창기이다. 그는 구속사적 해석(언약적 해석)의 기둥으로 그레이다누스가 제시한 구약에서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7가지 길(점진적 구속사, 약속-성취, 모형론, 유추, 통시적 주제들, 신약 관련 구절 사용, 대조)과 구약 해석의 열쇠인 그리스도의 역할을 강조하는 에드문드 클라우니(E.P. Clowney)의 사각형(구약 진리, 구약 사건, 그리스도의 성취, 현대 적용)을 중요시 한다. 그리고 그는 구약의 여러 언약들 사이의 중첩(overlapping), 신구약의 중첩, 신약 성도 안의 중첩에도 주목한다. 황창기는 종말론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개혁주의 종말론을 ‘때’보다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중심으로 이해하도록 제안한다. 그는 종말론의 시간적 틀인 ‘이미’와 ‘아직 아니’를 고수하지만, 종말이신 그리스도의 ‘온 교회적 인격’ 및 ‘만유적 인격’을 강조한다. 성도와 연합된 만유이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결과는 개인, 세상(천국), 만유가 하나님과 변혁을 거쳐 화목한 것이다. 황창기는 특정 주제(예. 경건, 딤전 3:16)도 그리스도 중심적, 종말론적 교회론(엡 3:3-6) 및 성령론과 연관된 구속사(고전 15:44-46; 고후 3:17)에 근거하여 이해한다. 그는 2006년에는 ‘그리스도 완결적(Christotelic) 해석’을 제시한다. 그는 시편 68:11이 에베소서 4:8에서 변경된 이유는 구속사의 절정이자 완성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구약을 해석하여 신약 독자의 상황에 맞도록 조정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께서 원형(archetype, 그리고 ‘원초 모형’[prototype])이라는 기독론적 예표론(Christological typology)을 제시한다. 사건은 시대별로 이해하되, 적용은 그리스도 중심적 혹은 그리스도 완결적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출애굽의 원형을 모세 당시의 구속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출애굽(눅 9:31)으로 보기에, 그리스도 완결적인 모형론적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임영효는 양식비평의 하부분과로 1950년대에 태어난 ‘편집비평’은 특히 네 문서 가설과 역사적 회의주의에 근거해 있으므로, 복음주의 학자들이 사용하기에 부적절한 해석 방법으로 본다.

   

구약과 그것이 사용된 신약 사이의 대화에 나타난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주목하면서 송영목은 요한계시록의 간(間) 본문적 해석을 시도한다. ‘부분적 과거론’으로 계시록을 해석하면서 그는 간 본문들의 불연속성은 그리스도 사건으로 인한 구속사의 확대-상승에서 주요 요인을 찾는다. 또한 송영목은 요한계시록의 여성주의적 해석의 전제와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패미니스트들이 계시록의 구약 간 본문과 저자의 의도를 무시한 점을 부각시킨다.

   

이제 고신대 신학대학원의 저널인 ‘개혁교회와 신학’(전신은 ‘고려신학보’)에 실린 글을 살펴볼 차례다. 오병세는 하나님 나라를 정의할 때, 하나님의 역동적인 주권과 현재성 및 미래성을 균형 있게 강조한다. 그는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나타났지만, 신약에서는 교회를 통해서 역사한다고 본다. 즉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창조하고,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역사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구속사에서 출애굽 사건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출애굽과 십계명이 신약에서 어떻게 발전되고 성취되었는가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다. 홍반식은 구약의 메시아 예언(사 9:1-6; 52-53; 슥 12:10)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된 것을 부인하는 유대인의 해석을 비판한다.

   

고신교회에 있어서 구속사적 해석의 본격적인 발전을 위해서 화란 개혁교회가 파송한 교의학 교수 고재수선교사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구속사를 간단히 “모든 시대를 포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사역”이라고 정의하는 고재수의 말을 들어보자: “구약을 기독론적으로 읽는 것은 그저 재미있는 주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생이 걸려있는 죽음과 생명의 문제이다.” 구약의 도덕적 해석의 한계를 인지하면서, 그는 지엽적이거나 표면적 유사성이 아니라, 구약 본문의 문맥과 전체 의도를 고려한 채 (모형론을 통해) 기독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재수와 동시대에, 박종칠은 신구약의 통일성에 기초하여 기독론적 구속사적 해석을 강조했다. 그는 구속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더불어 사랑의 교제 가운데서 살려고 하시며, 또 자기 계획을 실현하려고 하는 모든 역사적인 사실들의 총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는 “구약은  ... 그리스도를 지향하는 성경으로서, 오실 것으로 선포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성문화한 것인데, 말씀과 기록으로 구약이 생긴 것은 오로지 오실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 자신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성경을 단순한 사실을 기록하는 역사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구속해 가셨는가를 기록하는 신학적인 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한정건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에 입각하여 선지서(특히 이사야서)를 구속사적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그는 구약 예언에서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장한다. 그 결과 그는 구약 예언이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을 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한정건은 계시역사의 가장 큰 주제를 ‘하나님 나라’로 보면서, ‘언약’은 천국의 완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제라고 본다. 한정건이 적지 않은 관심을 둔 ‘언약의 발전’ 역시 전천년주의에 근거한다. 예를 들어, 그는 단편가설이나 자료비평을 반대하면서, 유다 지파에 대한 예언(창 49:8-12)은 유다의 궁극적 왕권 회복을 예언하는 신명기 33:7을 거쳐, 에스겔 21:27에서 동일 주제가 다시 등장하는데, 메시아적이며 종말론적인 예언이라고 본다(계 5:5). 여기서 ‘종말론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초림보다는 재림으로 임할 평화롭고 풍성한 메시아 시대라는 미래적 뉘앙스가 강하다. 한정건은 아담 언약을 행위언약이 아니라(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1-6; 대교리문답 20문), 종주권적인 ‘은혜언약’의 범주에 포함시키며, ‘생명과 사망의 언약’이라고 명명한다(참고. 롬 5:17; 계 22:2, 19). 그리고 그는 안식과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장소이자 창조의 극치였던 에덴동산이 보여준 미래 종말론적인 안식의 모습을 이사야 11:1-5, 에스겔 34:25, 히브리서 4:1을 거쳐, 완성은 계시록 21-22장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의 주장을 짧게 평가를 해 보면, 역사적 전천년에 입각한 해석인데, 구약의 예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니라 초림으로 성취된 측면을 약화시킨다. 또한 한정건은 창세기의 창조기사는 구속역사의 서론에 해당하며 안식으로 끝을 맺으며, 창조기사는 안식을 향한 구속의 구도였고(신 5:14), 더 나아가 안식년(레 25:3-5)과 희년(레 25:8)도 단지 일에서 쉼보다는 구속의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신약의 구속사적 해석과 관련하여, 이승미는 성경의 영감성을 강조하면서 성경 계시 내용의 목표(scopus)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고 본다. 변종길은 로마서 3:25의 힐라스테리온을 ‘속죄제물’(참고. 헬라어 ‘힐라스모스’, 요일 2:2)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예표하는 ‘법궤 두껑’(혹은 贖罪壇)으로 이해하면서(참고. 히 9:5), 이 명사가 구약과 신약을 잇는 ‘구속사적 고리’일 뿐 아니라, 신약의 빛 아래서 구약을 이해하는 ‘해석학적 고리’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변종길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는 물론 ‘영토’ 개념도 강조한다. 그리고 천국의 ‘이미’와 ‘아직 아니’를 ‘긴장’ 관계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긴장이 있다면 천국 백성이 되었지만, 불완전한 사람에게 존재한다고 본다.

   

길성남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이 회고적 방식으로 모형론을 사용했다고 본다. 즉 바울이 그리스도 사건으로 가능해진 기독교의 세례(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로운 계시)를 출발점으로 하여 모세 당시의 출애굽을 회상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구약의 모형은 대형(antitype)을 내다보는 전망적 성격을 가진다고 본다. 길성남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종말론적인 의도가 완전하게 만족된 구약의 율법 전체가 그리스도인에게 계속적이고 직접적인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해도, 율법의 본질적 내용은 신자의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모두 인정했다. 

   

고신의 구속사적 해석은 합동의 경우처럼 성경의 영감성에 근거하여, 역사비평을 허용하지 않는다. 구속사적 연구에 있어서, 초기에 화란 선교사 고재수의 긍정적 역할은 논문과 설교를 통해서 실제적이었다. 그리고 언약의 중첩에 대한 분석과 적극적인 모형론적 해석 및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을 넘어서,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과 간 본문적 해석(그리고 화행론)에 이르기 까지 방법론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고신의 경우, 최신 성경 해석의 경향(예. 바울의 새 관점)과 제 2성전 시기의 유대문헌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다. 종말론에 있어서는 언약의 승리 종말론(후천년설)은 물론, 무천년설과 전천년설 등 다양한 입장이 상호 존중 가운데 공존한다.

3.5 평가

장신대의 김중은은 총신을 ‘칼빈주의에 역점을 둔 근본주의 신학’으로, 고신을 ‘근대 화란 개혁주의에 기초한 근본주의 신학’으로, 기장을 ‘자유주의적 신정통주의 신학-진보주의 신학-신정통주의 문화신학-민중신학’으로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고신과 합동은 ‘근본주의’라는 표현과 그 범주에 자신이 있다는 김중은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4개 교단의 학술지에 실린 전체 논문 중 구속사적 성경해석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모형론적 해석은 4개 교단 전체에 등장한다. 구속사적 성경해석 중 언약, 하나님 나라, 구원과 같은 주제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기장이나 통합보다는 합동과 고신에서 다소 높게 나타난다. 구속사적 해석의 연도별 분포도를 분석해 보면, 기장은 1950-60년대에 절정에 달했고, 통합은 1990년대 초까지, 반면 합동과 고신은 지금까지 꾸준한 분포를 보인다.

4 나오면서: 한국 장로교의 구속사적 성경해석 전망

   

한국의 4개 장로교단의 성경해석은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기장과 통합은 각각 세계 수준의 신학과 에큐메니칼적 신학을 표방하면서, 역사비평과 구속사적 해석을 조화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 조화의 성공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합동과 고신은 구속사적 해석에 있어서 대동소이한데, 후자보다 더 풍부한 인적 자원을 가진 전자가 구속사적 해석을 더 넓은 범위와 주제에 걸쳐서 시도했다면(예. 공관복음 본문들의 구속사적 비교, 새 창조로서의 출애굽, 성경 주제들에 관한 성경신학적 연구, 바울의 새 관점에 대한 비평 등), 후자는 구속사적 해석을 다소 더 세밀한 방법으로(예. 언약의 중첩,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 간 본문적 해석, 그리스도 인격 중심의 종말론 등) 시도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구속사적 성경해석은 구식 혹은 골동품으로 취급 받을 신학이 아니다. 구원의 역사는 성경의 광맥이기에, 칼빈의 전통을 이어 받은 장로교회가 마땅히 발전시켜야 할 해석법이며, 장로교회의 강단에서 핵심으로 자리를 잡아야 할 내용이다. 이를 위해서,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장로교단들은 물론이거니와, 학회들(예. 개혁신학회, 한국성경신학회, 한국장로교신학회) 사이에 학술적 토론이 더 촉진되기를 바란다. 구속사에 관한 주제에 있어서는 ‘신약의 구약 사용’에 관한 연구가 더 필요하고, 이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회 내의 분과의 설립도 필요하다고 본다.

Blog
About Us
Message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