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에
단번에
히브리서 7:26-28
단번에 레위기 9:7-11에 보면, “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하되 무릇 여호와의 명대로 하라 이에 아론이 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아론에게 받들어 주니 아론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단 밑에 쏟고 그 속죄제 희생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단 위에 불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고 그 고기와 가죽은 진 밖에서 불사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먼저 드리는 속죄제에 전 백성이 다 참여되어야 방식으로 죄 사함을 받는 장치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제사에서 희생제물이 어떻게 박살나는지를 봐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속죄 제물은 피를 내고 고기와 가죽은 진 밖에서 불사르게 되고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은 벌건 제단 위에서 불사름이 됩니다.
도무지 희생제물의 자존감이나 자신이 끝까지 가져갈 가치와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완전히 말살되어야 될 의무만 희생제물 전체에 사정없이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주인공들은, 곧 대제사장과 희생제물은 매해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특별한 끝을 향하여 달려가는 세월과 시간 내내 되풀이해서 이 제사가 실시됩니다.
그만큼 희생제물 및 거기에 참여하는 대제사장은 최종적인 제사가 아직 남아 있음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대제사장과 희생제물의 미흡함에 모든 인간들이 다 적용받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아 있는 단번’을 위하여 부족한 그들이 시연을 보여주는 것처럼 오늘날 성도들도 이미 완성하신 단번을 위해 매사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모자람을 반복하는 일상이 남아 있는 겁니다.
바로 이 제사를 통해서 우리는 인류사 전체 범주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가 있습니다. 부질없는 인간들의 소망과 객기는 모두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일에 대한 반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