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과 정답
2010-05-24 07:49:09 이름 : 이근호
거리에 벽보가 나붙었다. 선거철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미 문제지가 주어졌다. “벽에 붙어 있는 인물들을 잘 보고 그 중에 한 사람을 뽑으세요”라는 것이 문제다. “당신의 선택에 의해 지역 발전 여부를 달렸습니다. 옳은 정답을 내리시고 그 책임은 당신에게 돌아갑니다.”라고 강요하고 있다.
‘정답 골라내기’를 매일같이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주된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자신이 결정한 것에 의해 자신의 미래를 확정된다고 여기는 것은 복음을 모르는 어두운 시절을 장악했던 미신이다. 과연 한순간의 잘못된 시험으로 인하여 인생이 나락으로 빠지는가?
자신이 찾아낸 그 정답 인하여 우수한 나만의 남은 인생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정답을 요구하신 적이 없다. 정답을 고르라고 강요하시지도 않는다. 인간을 정답을 골라낼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있어 정답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이미 예수님께서 정답이시기에 왜 예수님만이 정답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을 만들어내시는데 그것이 바로 성도들이다.
그래서 성도는 정답 골라내는 시험 치기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있다. “내가 곧 정답입니다”를 증명하기 위해 고분 분투해야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살아가야 할 자들이다. “나는 정답이 아닙니다. 정답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결정 때문에 오늘날 제가 허접스럽게 살아갑니다. 맨 날 실수하면서…”라는 고백을 내놓게 된다.
성도에게 있어 실수란 딴 게 아니라,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그 태도에 있다. 예를 들면, 난치병에 걸려 있는 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신앙심과 용기를 총동원해서 그 병에서 보란 듯이 나아보겠다고 나서는 객기 같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악마가 쳐놓은 늪에 빠진 꼴이 된다.
시험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요구한 바가 아니라 자신이 자존심이 그런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모든 시험에서 빼주었고 자유케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 스스로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측정해서 확인하고 싶어 세상을 상대로 배틀(battle)에 나선다면 무모한 발상이다.
성도는 경쟁하기 위해 세상을 사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서 승리했음’이라는 정답을 세상에 전달하기 위해서 투박한 뚝배기 같은 볼품없는 흔하고 흔한 그릇 같은 존재다. 따라서 나의 승리는 따로 필요치 않다. 혹시 시시하게 죽는 것도 승리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12:11)
모든 결정과 선택과 시험에서 이미 면제된 신분자로서 사는 것만이 천사도 부러워할 자유인이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전 6:3)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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